라티노, 그들은 누구인가(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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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산체스 (Mexico Information Project 원장) 

자기 땅에서 이민온 사람들

현재 미국 땅에 살고 있는 라티노들의 역사를 올 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라티노의 다수를 차지 하는 멕시칸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미국의 남서부지역(South West)으로 알려진 텍사스, 네바다, 유타, 아리조나, 뉴멕시코, 그리고 캘리포 나아주는 1848년 전까지만 해도 멕시코의 땅이었 다. 당시 미국의 대농들과 신생 공업자본들은 서부 진출을 꿈꾸었고 미국은 남서부 지역의 토지매입 시도가 좌절되자 멕시코와 전쟁을 일으켜 거대한 땅을 병합시키고 만다. 물론 이 지역에는 멕시코 인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미국은 멕시코와의 전쟁을 끝내면서 "과달루페협정"(Treaty of Guadalupe Ilago)을 통하여 거주자들에게 시민으로서의 권리, 문화적인 권리, 토지소유권 등을 보장하였지만, 미 국정부가 원주민들과 맺은 협정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던 것처럼 불과 30년이 지나지도 않아 메시코 인들은 서부로 진출하는 백인들에 의하여 강압적으 로 또는 합법적으로 자기의 땅을 빼앗기고 만다.

한편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해방이 된 이후 대 농장이나 광산업에서는 높은 노동강도의 노동자들 이필요하게 되면서 멕시코에서 노동자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 멕시코 내전과 정치적인 소 요에 의하여 열악한 노동조건에도 불구하고 이주 노동자의 수는 늘어나고 있었다. 반면 캘리포니아 의 경우 "외국인 광부 차별법" (Foreign Minor Act)을 시행하여 멕시칸 광부들에게만 세금을 부과 시키는 등 멕시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시작되었댜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가 위 하여 파업이나 노조건설 등을 하게 되고 멕시칸에 대한 데러가 계속되자 무장투쟁(소위 Bandit으로 불려진 의적단)으로 맞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로 들어오면서 멕시코 노동자의 수요는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멕시 코에서 계속되는 정치, 경제적 불안에 인하여 1900년에서 1930년 사이에 멕시코 인구의 10%가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당시 아시안이나 동구 유럽인들의 이민이 제한된 상태에서 멕시코 노동자 들의 피와 땀은 미국 남서부지역의 급속한 경제발 전의 믿거름이 되었다. 1930년 대공황이 시작되자 반이만의 추세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여 50-60만의 치카노(남서부지역에 원래부터 있던 멕시코인)와 멕시코 이먼 노동자가 강제 추방을 당하게 된다. 한편 이러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여 멕시칸둘은 커뮤니티운동, 노동운동 등 여러 방면에서 사회운 동을 조직적으로 활발히 벌여 성공적안 소수민족 사흰운동 역사를 남기게 된다.

2차대전과 베트남전쟁은 멕시칸 커뮤니티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2차 대전에서 독일의 파시즘과 인종우월주의에 대항하여 싸우다 돌아온 멕시칸 젊 은이들이 미국 내에서 계속되는 소수민족(특히 멕 시칸)에 대한 인종차별을 보게 되면서 ‘과연 무엇을 위해 피흘려 싸웠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또한 베 트남 전쟁 중 치카노의 사망률은 타인종에 비하여 월등히 높아 자신들이 백인들의 총알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각성하게 된다. 1960년대를 기 점으로 하여 타소수민족과 더불어 반전운동, 민권 운동, 제 3세계 민족해방 연대운동 등 새로운 운동 을 시작하게 되며 나아가 평등교육, 이중언어교육 문제, 커뮤니티 경제개발, 경찰폭력 저지운동 등 다 양하고 구체적인 사회운동을 벌이게 된다. 이 당 시의 운동은 멕시코 학생운동의 영향을 받았고 멕 시코 정권의 탄압을 피하여 미국으로 온 운동가들 의 참여로 더욱 활성화되었다.

다양해지는 라티노 커뮤니티

1960년대 미국이 라틴아메리카 여 러 국가에 대한 군사, 정치, 경제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지역 경제구 조의 변화가 생기게 된다. 다양한 국 적을 가진 라티노 이민자 수가 증가 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도미니카 공화국, 아이티, 푸에르토리코, 엘살 바도르 등의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 련의 역사적 사건 속에서 미국의 역 할과 라티노 이민의 함수관계를 찾 아낼 수 있다. 이들 나라는 모두 미국의 군사개입을 받고 있었다, 미국의 직접적인 자 본투자에 의하여 전통적인 생산구조가 무너지고 대 규모 수출주도 농업경제로 전환하면서 그 여파로 전통적안 가족관계, 문화구조, 생활양식의 붕괴와 더불어 대규모 인구이동이 일어났다.

이 당시 미국내의 노동시장은 주로 청소, 식모, 보모, 식당일 호텔 일을 하는 저임금 노동자를 필 요로 하게 되 었다. 이 런 일들이 라티노 노동자들 에게 돌아가는 몫이 되었고, 또한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저임금 노동착취 시장도 이민 자를 유인하는 요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또한 농 업의 경우, 미국 농업이 대기업화 하면서 최저임금 조차 주고 싶어하지 않는 농업주들에 의해 라티노 노동자들이 고용됨으로써 최저임금구조가 깨져버린 다. 현재 농업노동자의 거의 100% 를 라티노형제 들이 자지하고 있다.

각 라티노 커튜니티의 특성과 과제

다양한 출신의 라티노 이민자중에서 뉴욕의 푸에 르토리칸 커뮤니티는 형성된지 100년 가까이 되는 데 근로계층으로서 탄탄하게 자리잡았다.

제 2차 대전 이후부터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60 -70년대에 들어서 민주당과 손을 잡고 선거에 서 표를 찍어주는 대신 커뮤니티에 혜택이 돌아올 수 있도록 계약을 맺는다. 그렇게 하여 나름대로의 성치력을 가지게 되었댜 아직도 미국의 식민지로 있는 자기 나라의 독립문제가 이들의 최대의 관심 사이지만 조국 문제에 대해 미국에서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도 받고 있다 푸에 르토리코 커뮤니티와 함께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도미니크 공화국 커뮤니티는 1965년부터 이민이 시 작되어 새로이 형성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 푸에르 토리코 커뮤니티와 도미니크 공화국 커뮤니티는 어 느 커뮤니티가 출신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대표하느 냐는 문제로 갈등이 있다.

라티노 커뮤니티 중 특이한 커뮤니티는 쿠바 커 뮤니티이댜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대거 피난형 식으로 이주하여 플로리다주 마이에머에 커뮤니티 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카스트로 정권에 불만을 품고 도망 나온 사람들로서 대개 자본 있고 학력도 높고 사업운영 경험도 있는, 정치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상당히 특수한 정치상황 속에서 한꺼번에 대량으로 이먼 왔기 때 문에 짧은 기간 내에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집단으로 등장한다. 상당한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예 마이애미에서는 압도적인 정 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또 어떤 면에서는 미국 정치 전반에까지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근래에는 쿠바 커뮤니티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쿠바에서 새로 이민 오는 사람들은 꼭 쿠바의 사회주의 체제에 반 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생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난민으로 오고 있기 때문에 획일적안 반공 이념 일색의 커뮤니티에서 상당히 벗어나 민족의 현실과 장래를 걱정하는 커뮤니티로 변화하고 있다.

역사가 가장 긴 멕시코 커뮤니티는 세대 층이 광범위한 편이다. 미국의 남서부지역이 멕시코 땅이었을 때부터 거주해온 멕시칸의 후예들, 초기 노 동 이민자들의 후예들, 최근에 이면온 자들, 불법 체류자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면역사가 길고 미국에서 태어난 세대도 많고, 영어를 유창 하게 하는 세대 층이 두텁기 때문에 연방하원의원, 시와 카운티 등 지역정치에 많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국 단위뿐만 아니라 지역단위에서도 멕시코 커뮤 니티의 의사반영을 위한 단체가 많이 있다. 멕시 코 커뮤니디가 당면한 과제는 자기 커뮤니티를 향 상, 발전시키기 위하여 어디에 우선 순위를 두는가 하는 문제이다. 한편으로는 선거 등을 통하여 전 국적 또는 지역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참여하여 혜 택을 받아냄으로써 멕시칸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높 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입장과 다른 한편으로는 풀뿌리 조직을 중심으로 커뮤니티 조직강화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라티노 형제들의 인구는 캘리포 니아 전 인구의 약 40%에 달하고 있으며 그들 대 부분이 득히 남가주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멕시 코 형제들은 라티노 인구의 약 60% 에 달하고 있 댜) 시만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유권자 등록을 한 사람은 50% 미만이고 선거에 참여하는 사람은 유권자 등록자의 30% 정도이다. 위의 통 계를 보아 알 수 있듯이 앞으로 이들이 어떤 형식 으로 정치력을 강화할 것인가가 차후 캘리포니아의 장래에 중요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남미 이민자들의 경우 1980년대 이 후에 대부분 본국의 내전을 피해서 나온 난만들이 많았지만 미국정부에서는 중남미 국가에서의 내전 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민으로서 미국에 거 주할 명목이 주어지지 않았다. 중남미 커뮤니티예 서는 반전운동과 함께 난민들을 보호해 주고 미국 에 남아있을 수 있도록 법정권리 투쟁을 하는 등 난면권리운동이 주요 과제였다. 현재 중남미국가에 서 내전이 종식 또는 소강기예 들어갔기 때문에 본국으로 스스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상 태에서 앞으로 커뮤니티운동 내용을 두고 많은 고심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