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 페미니즘 또는 래디컬 페미니즘(영어: Radical feminism)은 법과 제도의 결함보다는 가부장제 자체에 집중하는 페미니즘의 한 갈래이다. 여러 시위, 여성을 위한 교육이나 피해 지원, 문화적인 투쟁으로 여성억압을 극복하고자 한다. 서양에서 래디컬 페미니즘은 1960년대의 리버럴 페미니즘에 대응하여 제 2물결 페미니즘으로 부상하여 여러 학파로 갈라졌으며 한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주요 이론으로 주목받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한자 번역은 '급진적'이라는 뜻에 한정된다.
주요 사상
공통 이론
다음은 래디컬 페미니즘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이론이다.
- 여성은 역사적으로 최초의 피지배 집단이다.[1]
-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여성억압은 사실상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1]
- 여성억압은 가장 근절하기 어려운 억압 형태이며 계급사회 철폐만으로는 제거할 수 없다.
- 여성 억압은 양적•질적으로 피해자에게 극심한 고통을 야기하나, 그 고통이 압제자와 피해자 모두의 성차별적 편견으로 인해 종종 인식되지 못한 채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1]
- 여성 억압은 모든 다른 억압 형태를 이해할 수 있는 개념적 모델을 제공한다.[1]
즉 래디컬 페미니즘은 단지 공적인 영역인 법과 제도의 결함을 개혁하는 것만으로는 뿌리깊은 여성억압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여성억압의 근원인 가부장제와 성별 체제 자체를 전복하여 사회를 변혁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래디컬 페미니즘의 주요한 의의는 이전의 1세대 페미니즘(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여성 참정권과 같은 제도적이고 명시적인 여권의 향상과 여성의 선택에 맡긴 반면에,이들은 여성을 목메던 비가시적인 여성억압을 주목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자유주의 이전 정치에서는 권력투쟁에서 밀리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런데 자유주의가 주류 사상이 된 이후 이러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때로는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로 불리기도 하는)은, 설사 권력 투쟁에서 밀리더라도(공적 영역에서 패자가 된다 해도) 사적 영역은 침해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며, 이것이 자유주의의 가장 큰 의의 중 하나였다.
그런데 래디컬 페미니즘은 이처럼 자유주의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서 등장한 것이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명언이다. 자유주의는 가정과 같은 사적 영역을 비정치적인 것으로 간주해 정치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부분으로 보았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바로 이 점 때문에, (행해지는 범위만 사적 영역일 뿐 사실상 사회 구조적으로 진행되는) 사적 영역에서의 지배 구조와 여성 억압이 본질적인 무대로 나오지 못하는 것, 정치 투쟁의 대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것을 비판했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가정, 연애, (여성의) 신체와 같은 사적 영역이 비정치적 영역으로 취급받는 것, 때문에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했던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일들─생리, 강간, 임신, 낙태, 데이트폭력, 가정폭력─이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것을 지적했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사적 영역이라는 이유로 감춰져 있던 문제들을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었다.
분리주의 페미니즘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은 1960년대 후반 부상한 래디컬 페미니즘에 존재한 분리주의를 가장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결과물이었다. 1970년대 초 미국 사회를 뒤흔든 반란의 물결이 퇴조하자 좌파들의 정치적 혼란과 운동의 분열은 심각해졌다. 이런 분열과 사기 저하 속에서 분리주의적 페미니즘이 세를 얻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라 모든 남성을 비난하고 사회의 변혁이 아니라 개인의 ‘해방’에 집중했다.[2]
모든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분리주의 사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레즈비어니즘
그 중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더 나아가 “페미니즘은 이론이고, 레즈비어니즘은 실천이다”라고 선언하며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2]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은 성적 지향이 정치적이고 여성주의적인 '선택'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가부장제의 이성애와 남성중심 연애·혼인에 복무하지 않는 여성과의 성애와 사회를 지향한다.
분리주의는 대표적으로 "비비탄", "4B"이라는 표어에서 드러난다.
비판
다만 이렇게 성적 지향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의 입장은 도리어 성소수자혐오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성적 지향은 누군가 어떤 목적을 위해 가볍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판하는 이들은 정치적 레즈비어니스트들이 페미니즘을 위해 성적 지향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분파
래디컬 페미니즘은 크게 문화주의 급진적 페미니즘과 자유의지론적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나누어진다.
문화주의 급진적 페미니즘 | 자유의지론적 급진적 페미니즘 | |
---|---|---|
섹슈얼리티 | 기존 개념은 남성이 만든 것으로 모두 거부, 여성은 자기성애와 동성애를 해야 함 | 억압받는 성을 개방, 성소수자들에게 찍힌 낙인을 없애야 함 |
포르노그래피 | 유해함 | 권장함 |
어머니 | 여성의 힘의 원천으로 찬양 | 어머니라는 역할을 여성 억압으로 봄, 기술의 발전으로 인공 출생을 가능하게 해야 함 |
성별억압의 해결법 | 여성성이 그동안 낮게 평가되었으므로 이를 새롭게 높게 평가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균형을 맞춤 | 여성과 남성이 모두 양쪽 특징을 가지는 것으로 해결 |
성별억압의 해결법 | 여성들은 남성과의 이성애를 하지 않고 레즈비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 | 레즈비어니즘을 강요하는 것은 또다른 잘못이라 주장. |
남성성 | 배척 | 남성적으로 보이는 행위들도 권장 |
남성에 대한 태도 | 배척,분리주의 | 페미니즘적으로 남성과 대면해야 |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를 참고 문화주의 페미니즘과 자유의지론적 페미니즘의 비교
역사
제2의 물결
래디컬 페미니즘은 흔히 제1물결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자유주의 페미니즘 이후, 제2세대 페미니즘으로서 부상했다. 왜냐하면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이 만들어졌는데도, 여전히 성차별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 이후 68운동에 근간이 만들어 지게 되었다.
또한 이 물결은 68운동로 일컫는 새로운 신좌파 운동에서 비롯되었으며,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섹스의 자유를 허하라." 는 이후 여성의 성적해방, 가부장제로부터 해방로 계승되었다.
이와 같은 탄생 초기, 래디컬 페미니즘이 비가시적이고 사적인 분야에서의 성차별에 투쟁하기 위하여 시도한 전략과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성폭력에 대한 공론화 : 시위를 통해 사적이며 비정치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성폭행 범죄를 여론화·공론화하였다.
- 여성에 대한 교육 지원 : 여성이 여성의 시각에서 나 다른 주제를 연구할 수 있도록 여성학 프로그램을 대학에 개설하였다.
- 여성에 대한 피해 지원 : 여성 상담 센터를 설립하거나 학대받는 여성의 피신처를 개설하여 여성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
- 여성 해방 단체의 설립 : `레드스타킹`, `페미니스트들`, `뉴욕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과 같은 의식 고양(CR)단체와 여성 해방 단체를 조직하고 이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시민권 운동과 같이 1960년대 초 미국을 휩쓸었던 급진 사회 운동[주 1]에 참여하였다.
- 문화적 투쟁 : 래디컬 페미니즘은 법과 제도뿐 아니라 사회의 '문화'를 통해, 여성에 대한 차별은 여성은 사회 구조적으로 매우 은밀하고 체계적으로 진행된다고 주장해왔다.
예컨대 '사랑=섹스' 혹은 '섹스=사랑'이라는 공식을 깨트려보면, 포르노가 여성을 (인격이 아닌) 성적 대상으로만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나이 든 여자가 현명하게 그려지는 법이 거의 없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래서 래디컬 페미니즘은 법적·제도적 차별의 철폐와 더불어 광범위한 문화적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에 걸맞는 이론을 전개해 나간 것이다.
한국의 래디컬 페미니즘
한국에서 래디컬 페미니즘이 태동하기 시작하게 된 시기는 바로 1970년대~1980년대로, 알겠다시피 서구권에서 "금지된 것을 금지하라."라는 기존 사상에서의 해방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지향하는 68운동이 휩쓸고 얼마 안되었던 시기였고, 대한민국에선 민주화운동이 시작된 시기였다.[주 2]
1960-1970년대에는 나혜석,차미리사 등으로 대표되는[주 3] 리버럴 페미니즘과 김활란으로부터 계승된[주 4] YWCA,대한여협로 대표되는 보수주의 페미니즘이 주된 페미니즘이었다. 물론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주장하기도 했고, 허정숙처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리버럴 페미니즘은 앞서 말한 듯이 성차별의 해소를 완벽하게 이루지 못했고, 보수주의 페미니즘은 낙태 금지, 여남에게 모두 강요되는 개신교적인 엄숙주의, (특히 여성에게 강요되는) 순결 등으로 인하여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주 5], 또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오직 경제적인 불평등만이 성차별의 원인이라고 주장해서 한계점이 있었다. 그 때 새롭게 발견된게, 당시 서유럽,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래디컬 페미니즘이었다.
또한 이때는 민주화 운동을 위해 NLPDR,PD 등의 운동권들이 융성하던 시기로 이때 당시 신생이였던[주 6] 여성인권단체들도 연대하게 된 시기다. 물론 이때는 "성별에 상관없이 독재에 맞서자."는 모토 아래 운동권과 같이 싸웠지만, 그럼에도 남성 운동권들은 전근대적인 여성관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고, 여성인권이 뒤로 물러나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운동권 내부의 성폭력은 비일비재했다. 참고로 심상정 의원도 이전에 같이 운동권에서 참여했던 심재철의 전근대적인 여성관에 충격을 받고 총여학생회를 만들었을 정도로 심각했다.
하루는 여학생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학생회장 후보였던 심재철이 노크도 없이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와서는 외투를 홱 집어던지며 소파에 몸을 던졌다. 운동을 한다는 자만심과 우월감이 배어나는 행동이었다. 속이 뒤틀려, 던져진 외투를 심재철의 가슴에 처박으며 내쫓아버렸다. 그러고는 서울대 여학생회를 결성했다. (월간중앙, 2005. 3.24)
이때 래디컬 페미니즘이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실제로 이때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앞서 말한 보수주의 페미니즘의 순결 강요,성적 억압, 낙태 금지 등의 요소를 비판하고 리버럴 페미니즘의 한계성을 지적하였고, 운동권들의 전근대적인 여성관을 비판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마녀나 돌꽃모임과 같은 래디컬 페미니스트 소모임은 이런 경향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었다.[3]
2010년대 래디컬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로는 워마드, 여성시대, 쭉빵카페 등이 있다.[주 7] 특히 온라인 사이트에서 태동하여 페미니즘의 재부흥을 불러온 메갈리아는 전형적인 래디컬 페미니즘의 한 조류이다. 메갈리아 워마드
하지만 페미니즘간의 경계가 모호하기에 래디컬 페미니즘은 다른 페미니즘과 명확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며, 특히 래디컬 페미니즘이 본질적이고 실질적으로 가부장제 종식에 의한 성차별 타파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이라도 그 성향을 띠지 않는 곳은 찾기 어렵다.[주 8] 대표적으로 인스티즈 등 다른 여초 사이트에서도 급진적 페미니즘의 요소가 가끔씩 보이고, 대한민국의 여성인권단체(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도 많이 보인다.
사실 래디컬 페미니즘이라고 전부 통일되었지 않았다. 애당초 래디컬 페미니즘은 "젠더 권력" , "남성 사회(가부장제) 타파", "방어적 폭력"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을 통틀어 일컫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탈코르셋, TERF(GCF), 기혼 여성의 참여 여부, 남성의 참여 여부 등 여러가지 요소에서 갈린다.
단, 주류 여성단체인 경우는 아래의 성소수자와의 관계처럼 성소수자와 여성을 가부장제로부터 억압받는 피억압자라는 명분으로 연대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해외에서도 래디컬 페미니스트라도 가부장제 타파라는 명분으로 연대하는 경우가 많다.
성소수자와의 관계
래디컬 페미니즘 성향 단체(주류 여성인권 단체도 여기에 가깝다.)와 성소수자 인권 단체와 연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냐하면 두 쪽 모두 성소수자와 여성은 가부장제라는 공통적인 적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고, 가부장제를 없애야 여성혐오와 성소수자 혐오를 없앨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같이 성소수자와 여성의 인권이 잘 보장 되지 않는 나라에선 래디컬 페미니즘 성향 단체와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연대를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상호간의 혐오(여성의 게이 혐오,게이의 여성 혐오)에 대한 입장차로 가끔씩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참고로 분리주의 페미니즘 계열과 TERF(GCF)들은 오직 생물학적인 순수 여성과 래즈비언만을 챙기기 때문에 게이 등 남성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
비판
- 여성 개인 간의 차이를 무시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참고로 이를 통해 새로 생긴 페미니즘의 갈래가 바로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이다.
- 상호교차주의 페미니즘에게 생물학적 성별 개념에 집착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억압당하고 남성은 남성이기 때문에 억압하는 위치에 선다는 본질주의적 함정에 빠져들게 하며 초역사성을 너무 강조해서 역사적 맥락과 사회, 문화적 조건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 래디컬 페미니즘은 여성을 너무 쉽게 하나의 통일된 집단으로 처리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흑인 여성들의 이러한 지적은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을, 탈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러한 지적은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을, 젠더이분법에 맞지 않는 수많은 퀴어들을 지운다는 지적은 트랜스페미니즘을 대두시켰다.
- 어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자연주의적 오류를 저지른다. 이 오류는 주로 가부장제의 성차별 논리를 미러링하는 데에서 생겨나곤 한다. 가부장제는 여성이 열등한 계급으로 정착된 것이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생물학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차별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미러링하여, 여성과 남성 간의 생물학적 차이는 전혀 없기 때문에 여성을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사실에서 가치를 도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가 있든 없든 간에, 차별은 옳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차별이 부당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여성만의 특질이 완전히 허구라는 주장을 할 필요는 없다.
반론
2번째 사항인 경우는 여성이라도 인종,장애,성적 지향등으로 인하여 더 차별 받는 경우가 많기에 타당하지만, 1번째인 경우는 어느정도 설명이 가능한 게 실제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압당하고, 남성이라는 이유로 억압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타
- 가끔 페미니즘에 무지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페미니즘 갈래를 지칭해야 할 때,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아마도 이것이 제일 급진적(변혁적)인 페미니즘일 것이라는 추측에서 급진적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4][주 9] 예컨대 나무위키에서는 래디컬 페미니즘이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가장 비판받는 페미니즘이라고 서술하고 있고 페미위키와 아름드리 위키도 래디컬 페미니즘으로 분류하고 있다.[5] 호주제 폐지운동에서 페미니스트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 또한, "진짜 페미니즘이 아니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라 그런 주장을 하는가"와 같은 말이었다
- 인터넷에서 랟펨은 래디컬 페미니스트의의 준말로 쓰인다. 단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래디컬 페미니즘보다는 더욱 축소된 의미로 쓰인다. 온라인상에서 형성되어 있는 '쓰까 vs 랟펨'의 구도 속에서 규정된다.[6] 주로 분리주의 페미니즘 성향 페미니스트들이 많이 쓰인다. 이들은 "오직 여자만 챙긴다"가 주요 입장이며, 게이에 대한 혐오, 트랜스남성,트랜스여성 배제, 로리콘을 조장하는 복장에 대한 매우 제한적인 해석 등을 그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6]
같이 보기
- 래디컬 페미니스트 단체들
- 래디컬 페미니스트들
- 포르노 논쟁
- 기혼여성혐오
-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래디컬 페미니즘이 자유주의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등장한 명언.
- 젠더 페미니즘 : 에쿼티 페미니즘 진영의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즈가 주로 급진적 페미니즘을 비판하기 위해 부여한 이름.
- TERF : 젠더 개념이 사회적 성 고정관념을 강화한다고 주장하며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
- 분리주의 페미니즘
- 갈래: 급진적 페미니즘을 다시 여러가지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들은 상당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부연 설명
- ↑ 시민권 운동, 신좌파 정치, 평화 운동 등
- ↑ 한국의 사례 같은 경우 동유럽 상황과 유사하다.
- ↑ 두 분 다 조선여자교육회(현 덕성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의 설립자이다.
- ↑ 사실 김활란은 리버럴 페미니즘에 가깝다. 하지만 이후 이승만-박정희 정부를 거치면서 반공이 국가의 기반이 되었고, 이에 따른 개신교의 우경화로 인하여 보수화되었고, 이들은 보수주의 페미니즘이 된 것이다.
- ↑ 사실 보수주의 페미니즘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에쿼티 페미니즘과 같이 까이는 사상이다. 왜냐하면 낙태 금지, 순결 강조 등의 페미니즘과는 동떨어진 요소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 ↑ 진보성향의 여성인권단체 중에 가장 먼저 생긴 여성의 전화의 탄생년도가 1983년이였고,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탄생년도가 1987년 2월 18일이다.
- ↑ 래디컬 페미니즘의 부흥을 불러온 메갈리아는 2018년 현재 운영되지 않고 있다. 물론 시류는 여러 곳에서 계승이 되었다.
- ↑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여성해방론 이라고도 한다.) 계열이 유일한 예외다.
- ↑ 해당 유튜버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래디컬 페미니즘이 아니라 아나키 페미니즘이다.
출처
- 테렌스 볼, 리처드 대거. (2006). 현대 정치사상의 파노라마. 아카넷
- 이재경. (2007). 여성학. 미래M&B.
- 페미니즘 사상 -종합적 접근-. 로즈마리 퍼트남 통. 한신문화사(2000)
- ↑ 1.0 1.1 1.2 1.3 Alison Jagger& Paula Rothenberg, 1993
- ↑ 2.0 2.1 양효영 (2018년 2월 20일). “정치적 레즈비언주의란 무엇인가?”. 《노동자연대》.
정치적 레즈비언주의는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여성운동에서 부상한 근본적 페미니즘에 존재한 분리주의를 가장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결과물이었다.
- ↑ “아버지의 ‘순리’를 거역한다”. 《한겨레21》. 1998년 7월 9일. 2017년 12월 1일에 확인함.
- ↑ https://youtu.be/B7onZE83hM8?t=4m22s
- ↑ “분류:래디컬 페미니즘 - 나무위키”. 2021년 6월 10일에 확인함.
- ↑ 6.0 6.1 손희정 (2018). 혐오 담론 7년. 문화과학, 93, 2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