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카슨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4일 (토) 04:44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 사진제공=flickr, https://www.flickr.com/photos/smithsonian/3359709268

레이첼 카슨(Rachel Louise Carson, 1907년 5월 27일 ~ 1964년 4월 14일)은 미국해양생물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이다. 1960년대 미국 사회에 큰 변혁을 일으킨 인물이며 대표 저서인 '침묵의 봄'은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책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생애

레이첼은 펜실베이니아의 스프링데일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열 살 무렵부터 잡지에 글을 기고해 왔으며 본래 작가를 꿈꾸며 펜실베이니아 여자대학(현 채텀 대학) 영문학과에 진학하지만 생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전공을 생물학으로 바꾸었으며 졸업 후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1932년 동물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매사추세츠 케이프코드에 있는 우즈 홀 해양과학연구소에서 해양 및 해양생물에 관한 연구에 참가하였다. 이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미국어업국해양생물학 연구원으로 지원하였다. 미국어업국에서 사무직이 아닌 여성 전문연구원은 레이첼이 처음이었다.

레이첼은 해양에 관한 라디오 프로그램 시리즈를 쓰고, 어업국 출판물들을 편집하는 한편 자신의 글을 썼다. 1937년에 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에 실린, 레이첼이 해양생물의 아름다움에 대해 쓴 에세이 시리즈 해저는 1941년에 바닷바람 아래서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1948년부터 제 2차 세계대전 중 위험을 무릅쓰고 자료를 모으고 연구한 주변의 바다가 1951년에 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성공에 힘입어 레이첼은 내셔널 북 어워즈와 구겐하임 연구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어류야생동물청[주 1]를 그만둔 후 조수 간만의 차로 생기는 웅덩이의 생태계를 연구하기 위해 마인 해안에 집을 산 레이첼은 1955년에 바다의 끝자락에서를 출판하였다.

또한 레이첼은 미국과 미국 정부가 경제적 이익과 개발의 수단으로만 자연을 바라보는 환경정책을 비난하고, 1962년DDT‘디클로로-다이페닐-트라이클로로 에테인’(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 [주 2]의 위험성을 경고한 기념비적 저서 침묵의 봄(Silent Spring)을 출간했다. 레이철은 DDT로 인해 조류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사람들의 암 발병률이 늘어났다는 연구자료들을 통해 화학물질에 의한 환경오염이 결국 조류와 해양동물의 수를 감소시키고 언젠가는 자연의 멋진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침묵의 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화학산업체는 물론이고 미국 정부기관조차 침묵의 봄과 레이첼을 공격하였고, 미국농무부와 화학공업회사, 대농장주 등은 레이첼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배포하였지만 몇 년 후 미국정부는 DDT 사용을 금지시켰다.

레이첼은 침묵의 봄을 쓰는 동안 발병한 유방암이 온 몸에 퍼져, 1964년 4월 14일에 메릴랜드 주 실버스프링 자택에서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침묵의 봄

카슨이 강조한 유독성 화학물질의 무서운 점은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통해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축적되며 이 물질이 매우 긴 시간 동안 남는다는 점, 그리고 생태계는 대단히 섬세한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데 유독성 화학물질에 의한 인위적 개입이 이루어질 경우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 3][1] 당장의 발전을 위해 거시적인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사지를 향해 가는 것이 명백한 고속도로를 맹렬한 속도로 달리기만 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다.

<침묵의 봄>은 미국 사회에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켰다. 대중들은 분노하며 진상 규명을 요구했고 화학산업계와 살충제 업체들은 반박하는 글을 기고하는 등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히스테릭하다는 딱지를 붙였다. <타임>지를 비롯한 여러 미디어는 '지나치게 히스테릭한 항의, 침묵의 봄', '불공평하고, 일방적이고, 히스테릭할 만큼 지나치게 감정적인 책'과 같은 여성혐오적 평가를 싣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적 여파에 힘입어 수많은 환경 단체가 결성되었으며 살충제 사용 문제, 야생 동식물 보호 문제, 수질 오염과 대기 오염 문제 등 다양한 형태의 환경 문제에 정부가 광범위한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된다.[2]

나아가 레이철은 TV 출연, 케네디 대통령의 지원, 환경운동가들의 지원, 미시시피 강에서 발생한 최악의 물고기 떼죽음 등의 당시 상황에 힘입어 여론의 지지를 얻게 되고 마침내 의회를 설득한다.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살충제의 위험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결국 DDT의 사용이 금지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과학자가 사회적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중과 소통할 때의 긍정적인 측면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침묵의 봄>은 단순히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과학기술 이슈에 수많은 대중들의 시선을 모아 맹목적 발전주의의 허상을 낱낱이 드러냈다. 또한 과학자와 전문가들을 대중들에 의한 검증의 장으로 이끌어내 이들의 말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연설명

  1. 어업국은 1940년에 다른 부서와 합병되어 어류야생동물청이 되었다.
  2. 매사추세츠의 모기를 없애기 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새를 비롯한 많은 무해한 생물에게 피해를 끼쳤다.
  3. 식물의 엽록소를 무분별하게 먹어치우는 잎진드기의 경우 DDT에 의해 천적들이 몰살당하며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갔다.

참고

달렌 스틸 (2008).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 양문. ISBN 978-89-87203-96-6.

  1. 김성환, [필독서 따라잡기]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2012.06.04, 베리타스 알파, http://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70
  2. 임경순,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1962) 출현의 역사적 배경 및 그 영향>, https://www.medhist.or.kr/upload/pdf/kjmh-5-2-99.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