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최근 편집: 2023년 9월 22일 (금) 00:47

레즈비언(lesbian)은 여성 동성애자를 일컫는 말이다. 보통 줄여서 레즈, L이라고도 말한다. 최근 비언이라 부르는 움직임도 있다.

역사

많은 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여성 동성애남성 동성애만큼 법적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그 대신 여성 동성애는 그 존재 자체가 완전히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다. 역사적으로 남성에 대한 남성의 사랑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소년애’ 등 가시화된 경우가 많았다. 구약성경 레위기에도 남성 동성애자에 대한 금령은 적혀져있지만, 레위기에는 여성 동성애자에 대한 금령은 없다. 이에 대해 개그논이라는 신학자는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여성 동성애자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었고, 그래서 별도로 규정할 필요도 없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여자의 정절을 매우 귀중히 여겼기 때문에 여자들의 동성애가 지속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1]고 주장하기도 했다. 확실히 여성 동성애자도 일단 ‘여성’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레즈비언 선조들은 (그들이 존재했다면) 남성 동성애자보다 더 가정적이고 관습적이며 성적으로 일부일처제에 순종하라는 사회적 압력을 더 강하게 받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성적인 측면과 경제적인 측면 모두에서 크게 억압받는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레즈비언에게 영광스럽게 확장시킬만한 역사와 선조들이 아주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장 유명한 레즈비언의 역사적 사례 중 하나는 고대 그리스 레스보스섬의 여성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남성 동성애에 비하여 여성 동성애는 공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드러내놓고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아무런 사회적 위상을 갖지 못하고 도착된 것으로 매도당하고 억압되거나, 지극히 제한적이고 예외적인 행위로 받아들여졌으나, 어쨌거나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여성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가 빈약하게나마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 동성애의 대명사는 사포Sappho였다. 사포는 기원전 600년경에 다른 여성들을 사랑하는 내용의 시를 쓴 여성 시인으로, 그녀의 고향인 레스보스섬의 이름을 따서 여성 동성애자를 레즈비언Lesbian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지금의 의미를 갖게 된 것으로,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대중화되기 전에는 ‘트리버드(Tribade, 시저링(가위치기: 서로의 클리토리스를 마찰시키는 체위)를 뜻하는 옛 용어인 ’트리바디즘(Tribadisme)과 연관된 단어)’와 ‘사피스트(Sapphist, 앞서 나온 시인 사포에서 비롯된 단어)’가 쓰이곤 하였다.

근대 레즈비언 정체성의 발달

릴리안 패더만의 책 <남자의 사랑을 뛰어넘는>에서 패더만은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역사 문헌과 문학 문헌을 다양하게 검토하여 서구 문화 도처에 여자들 사이의 성적이거나 열정적인 애정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드러냈다.[2] 패더만은 20세기 이전까지는 여자들 사이의 낭만적인 우정이 사회적으로 승인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묵인되었던 여자들간의 사랑이 박해를 받게 된 것은 제1물결 페미니즘의 사회적 요구에 대한 반동적 반응과 성과학자들의 여성 동성애병리화 경향이 점점 심해진 때문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서프라제트 등의 페미니즘이 등장하자, 비정상적인 여자들만이 남자에 대한 자신의 종속적 지위를 변화시키고 싶어 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하였고, 원래 묵인되었던 여자들간의 사랑이 기괴한 것, 비정상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레즈비어니즘’과 페미니즘이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1910년대에 서양의 성과학은 일본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성과학에서 동성애를 병리적으로 구분하며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학교를 다니는 여학생간의 친밀한 관계는 여성의 발달 단계의 한 과정으로 이해했으며, 여학생 간의 관계를 남녀 관계의 전 단계로 보았기에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나 1940년대 후반에 들어서자, 성을 다룬 미디어가 급격히 확산됨에 따라 여학생 간의 정신적인 동성애가 아닌 성인 여성 간의 동성애 관계가 포르노그래피로 그려져 확산되게 되었다. 1950년대에 <킨제이 보고서>가 등장하여, 여성 간의 성적인 관계를 지시하는 언어로서 ‘레즈비언’을 사용했다. 50년대 당시에는 레즈비언이라는 외래어는 그다지 일반화되지 않았으나, 1960년대에 들어서자 대중잡지의 기사가 레즈비언과 일본의 구체적인 예시들을 연결시키기 시작하였다. 또한 60년대에는 남장을 한 여성이 손님을 접대하는 가게가 증가하기도 했는데, 이를 ‘레즈비언 바’라고 불렀으며, 바에 모이는 여성들도 ‘레즈비언’이라고 했다. (이는 물론 2020년 현재의 ‘레즈비언 바’와는 다르다). 그후 여성 간의 친밀한 관계는 레즈비언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의미가 덧붙여지기 시작했다.[3]

레즈비언 운동의 역사

1951년에 미국에서 ‘매타쉰 협회’라는 이름의 동성애 옹호단체가 설립되었다. 초기의 매타쉰 협회는 거의 비밀단체였으나, 점차적으로 로스앤젤레스 기반을 넘어 다른 캘리포니아 지역들 뿐만 아니라 뉴욕과 시카고에도 지부를 냈다. 그러나 매타쉰 협회는 남성중심적인 단체였다. 매타쉰 협회에서는 상당히 자주 레즈비언의 경험은 간과한 채 게이다움을 정의하였으며, 대체로 남자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1955년에 설립된 ‘빌리티스의 딸들’은 이러한 상황을 바로잡으려 하였다. 빌리티스의 딸들은 원래 네 쌍의 커플들이 1950년대의 레즈비언 바Bar 문화에 대한 대안으로 만든 친목단체 였으나, 이내 레즈비어니즘이라는 말에 흔히들 가지고 있던 관념을 개혁하고자 하는 정치적 집단이 되었다. 1956년 빌리티스의 딸들은 <사다리>라는 잡지를 출간하기 시작했는데 이 잡지는 모성, 이성결혼 관계에 있는 레즈비언들, 고용문제 등을 포함해 다양한 사안을 다루었다. 빌리티스의 딸들은 매타쉰 협회와 제휴하는 동시에 레즈비언의 상황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지속해갔다.

그러나 빌리티스의 딸들은 당시 노동계급 레즈비언 중심의 바 문화라는 기존의 하위문화에 대한 대안 혹은 반대항으로서 등장하였기에, 레즈비언 바 문화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는 부치 스타일과 부치들이 흔히 했던 공장 노동 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빌리티스의 딸들은 이성애중심주의 문화에 대해 동화주의적 입장이었고, 때문에 레즈비언들이 더 좋은 직장에 다녀 성공하기 위해 여성스러운 옷을 입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1950년대 말까지 빌리티스의 딸들은 잡지, 소식지, 신문 등을 통해 레즈비언에 관한 정보를 유통시키는 데에 집중했다.

일본의 경우 레즈비언 운동이 시작된 것은 1971년이다. 일본 최초의 레즈비언 서클인 ‘와카쿠사노카이’가 시작되어, 회장이 레즈비언으로서 잡지와 텔레비전에 나가서 회원 모집을 하였다. 또한 70년대 후반에는 레즈비언 관련 미니 커뮤니티 잡지가 3개 발행되었다.

한국의 경우에는 1993년 11월에 레즈비언 3명, 게이 3명으로 구성된 한국 최초 동성애자 단체인 ‘초동회’가 결성되었다. 초동회는 왜곡된 동성애자 이미지를 바로 잡고, 오도된 에이즈 운동을 비판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초동회의 레즈비언 멤버들은 레즈비언 독자 조직의 필요성을 느꼈고, 그 결과 초동회는 조직 2개월 만에 해체를 결정하여 이후 게이들은 1994년 1월 남성 동성애자 인권모임 ‘친구사이’를, 레즈비언들은 같은 해 11월에 여성 동성애자 인권모임 ‘끼리끼리’를 만들었다. 2000년에 끼리끼리는 ‘한국여성동성애자인권모임’에서 ‘한국여성이반커뮤니티센터’로 위상을 전환하며 인권운동단체로서의 위상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2001년 1월 끼리끼리는 다시 ‘한국여성성적소수자 인권운동모임’으로 위상을 전환하였다.[4]

끼리끼리는 한동안 한국에 유일한 레즈비언 인권운동단체였다. 그러다 2001년, 이화여대 내 레즈비언 인권운동모임인 ‘변태소녀하늘을날다’가 조직되었고 2002년에는 학내 정식동아리로 공식 발족하였다. 2003년에는 ‘부산여성성적소수자인권센터’와 ‘레즈비언인권연구소(이후 레즈비언권리연구소로 개정)’가, 2005년에는 ‘여성성소수자네트워크 무지개숲’이 발족하였다. 또 이 해에 끼리끼리는 ‘한국레즈비언상담소’로 위상을 전환하였다. 이리하여 2005년에 첫 레즈비언단체만의 연대체로 ‘레즈비언권리운동연대’가 조직되었다.[5]

페미니즘과 레즈비언

문화주의 페미니즘

문화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은 모두 레즈비언이라고 규정하면서, 여성과 섹스를 했느냐가 아니라 그 여성이 저항적 실천을 했느냐가 문제이므로 따라서 페미니스트들은 모두 레즈비언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을 참고할 것 정치적 레즈비어니즘

이러한 주장은 소수자의 언어를 빼앗는 성소수자 혐오라는 비판을 받는다.

생활

레즈비언 클럽(Lbar)

남성 출입 금지이다. 게이바가 여성 출입이 허용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레즈비언의 섹스

  • 보통 손가락을 이용하며 섹스토이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 손가락을 이용할 때도 위생이나 상처 방지를 위해 콘돔을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는데, 손에 착용하는 핑거콘돔을 사용하면 좋다.
  • 레즈비언 성관계로 인한 에이즈 감염률은 타 관계에 비해 극단적으로 낮다.

관련 작품

국내 작품

영화

드라마

단행본

해외 작품

함께 보기

  1. 김진규 (2017년 3월 11일). 《최근 동성애 논쟁의 주요 쟁점들: 제임스 브론슨의 동성애 관련 구약 본문 해석에 대한 비평》. 
  2. 야고스, 애너메리 (2012). 《퀴어이론입문》. 여이연. 
  3. 스기우라 이쿠코. 《일본 ‘레즈비언 전후사’ 다시 읽기》. 
  4.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 (2004). 《한국 레즈비언 인권운동 10년사》. 
  5. 한채윤 (2011). 《한국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