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최근 편집: 2023년 8월 17일 (목) 12:3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출생1828년 09월 09일(1828-09-09)
러시아, 툴라, 야스나야 폴랴나
사망1910년 11월 07일 ()
러시아 아스타포보 역
정보 수정

일찍 부모를 여의고 친척들 손에 자라긴 했지만, 톨스토이는 기본적으로 부유한 러시아의 대귀족 집안이었다. 16세에 카잔대학교에 입학했지만, 형식적인 교육에 실망해 그만두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을 오가며 방황하던 톨스토이는 1851년 형 니콜라이를 따라 군에 입대한다.

군대에 복무하면서 〈어린 시절〉 등 자전적 삼부작을 발표해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850년대 후반에는 농민들의 열악한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교육에 있다고 판단, 야스나야 폴랴나 농민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열고, 교육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병행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한 평론을 썼으며,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 등의 문학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자기완성과 악에 대한 무저항, 사적 소유 부정이라는 철학적 관점에 기초하여 《고백》 《인생에 대하여》 《예술론》 등을 저술하고 당대 러시아 사회와 종교를 강렬하게 비판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 정교에서 파문을 당하고 정부의 압박을 받았지만, 모든 걸 가졌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러시아 황제와 달리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모든 걸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러시아 황제로 불릴 만큼 민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만년에 이르러 술·담배를 끊고 채식주의자가 되었으며 농부처럼 입고 노동하며 생활했다. 생전에 수많은 톨스토이주의자가 야스나야 폴랴나에 몰려와 농민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했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조용한 피난처를 찾아 집을 나선 며칠 후, 1910년 11월 7일 아스타포보 역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그의 가출은 현실에 대한 극복이자 다른 삶을 향한 마지막 도전으로 상징된다. 작가이자 폭력을 거부한 평화사상가, 농민교육가이자 삶의 철학자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1]

소설가 박경리는 그의 작품 토지에서 톨스토이가 귀족 신분, 재산, 종교를 버리지 못하여 개인과 인생과 사회, 인류 문제 등을 고민하며 '꽁지에 불붙은 것처럼 넓은 방안을 수없이 왔다갔다' 했고, 그가 그의 소유물 모두를 버린 것은 훨씬 훗날의 일이었으나, 죽는 날까지 그 자신을 해방하지 못했다고 환국의 입을 빌려 평가했다.

저서

  • 고백
  •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 부활
  • 비폭력에 대하여
  •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 세르기우스 신부
  • 안나 카레니나
  • 에멜리얀과 북
  • 우리가 어른보다 똑똑해요
  • 어린 시절
  • 예술론
  • 유년시절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인생에 대하여
  • 전쟁과 평화
  • 젊은 차르의 꿈
  • 참회록
  • 촛불
  • 크로이제트 소나타
  • 톨스토이 비폭력 평화 편지
  • 톨스토이의 예수
  • 하지 무라트
  • 학교는 아이들의 실험장이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