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 브리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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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 브리지스(Ruby Bridges)1960년 11월 '백인 학교'에 최초로 입학한 비백인이다.

군중들을 보고도 무슨 축젯날인가 여겼다

어머니는 루실 브리지스, 아버지는 에이번 브리지스이다. 루실 브리지스가 남편의 만류와 학교 당국과 백인 주민들의 격한 반발을 무릅쓰고 만 6세 때 백인 학교인 루이지애나의 윌리엄프란츠에 입학시켜 졸업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루비는 흑인 165녕이 치른 백인학교 입학자격시험에 합격한 5명 중 한 명이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윌리엄프란츠 초등학교에 입학 원서를 내 다니게 되었다. 첫 등교에는 연방보안관의 보호를 받았고, 이후 루비를 보호하기 위해 교실을 지켰다. 가르치겠다는 교사가 없어 첫날은 교장실에만 앉아 있었고, 다음날 보스턴에서 자원한 교사 바버라 헨리가 도착했다. 에이번 브리지스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는데, 참전기간동안 막사와 식사가 분리되는 등 차별을 겪었다. 이로 인해 그는 딸이 차별을 겪는 것을 걱정해 입학에 반대했다. 루비의 부모는 60년대 말 이혼했다.

고교를 졸업하고 말콤 홀과 결혼했다. 여행사에 취직해 15년을 일하며 네 아들을 키웠다. 1992년 11월 막내 동생 밀턴 브리지스가 총기사고로 숨진 후 어린 조카를 맡아 키운다. 조카들은 루비의 모교에 다녔는데, 이때는 재학생 전원이 흑인인 흑인학교로 바뀌어 있었다. 법적 분리차별의 자리를 경제적 분리차별이 대체한 것을 확인한 루비는 학부모 연락관 직에 자원하였고, 자신의 경험을 알리는 강연을 시작했다. 1999년 비영리 '루비 브리지스 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윌리엄프란츠는 2005년 4월 미국 등록사적지로 지정되었지만, 태풍 카트리나로 부숴졌다. 루비는 주 정부 등의 지원을 받아 대안학교 성격의 자립형 공립학교 아킬리 아카데미로 재개교했다.[1]

1 저서

2 출처

  1. 최윤필 (2020년 12월 14일). “그들이 저들과 함께 걸었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