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괴페르트 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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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괴페르트 마이어(Maria Goeppert Mayer, 1906년 6월 28일~1972년 2월 20일)는 이론물리학자이다. 원자핵의 껍질 모형을 제안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이는 마리 퀴리에 이은 두 번째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이다.

1 생애

마리아 거트루드 케이드 괴페르트는 당시 독일령이었던 실레지아 북부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마리아가 4살이 되던 해에 독일 괴팅겐의 작은 대학 동네로 이주하였다. 소녀들을 가르치는 공립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여성참정권론자들이 세운 작은 사립학교를 다녔다.

마리아가 8살이 된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실레지아 북부지방은 폴란드로 바뀌고, 마리아가 다니던 사립학교가 사라지면서 대학 시험에 도전하였다.

1924년에 괴팅겐의 대학에 입학하여 수학을 공부하다가 원자 물리학을 접하면서 양자 역학에 입문하였다. 1930년에 논문을 제출하고 괴팅겐 대학을 졸업하였다.

1930년에 조 마이어와 결혼하여, 남편이 존스 홉킨스 대학의 조교수직으로 채용되자 미국 메릴랜드 주의 볼티모어로 이주하였다.

1933년에 미국 시민권자가 된 마리아는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동료 과학자 제임스 프랑크의 도피처를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 계약서에 대리 서명을 해주었고, 점차 나치 정권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조 마이어가 존스 홉킨스 대학으로부터 해고당하고 컬럼비아 대학에 채용되었을 때에야 마리아는 컬럼비아 대학 물리학부에서 개인 연구실과 급료 없는 작은 교육직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물리학자가 부족해지자, 마리아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일한지 12년 만에 매년 2천 8백 달러가 지급되는 파트타임직으로 채용되었다. 그리고 원자 폭탄을 위한 우라늄 농축 방법 개발 프로젝트의 비공식 리더가 되었다.

마리아는 전쟁 기간 동안 스트레스로 인해 줄담배와 폭음을 일삼으면서 폐렴을 앓았고 담낭 수술을 받았으며 갑상선종 또한 앓았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컬럼비아 대학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는 이렇다 할만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1945년에 일본이 항복하면서 마리아는 시카고로 이사하여 시카고 대학이 세운, 핵을 연구하기 위한 제휴 연구소에 자원하여 참여하였다. 제휴 연구소에서 마리아는 조교수를 거쳐 교수 직위를 얻었다.

1949년에 회전 궤도 결합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1956년에 미국과학학회에 선출되었고, 같은 해에 갑자기 왼쪽 청력을 잃었다.

1960년에 53세가 되고서야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급료를 받으며 정규직 교수로 채용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 마리아는 뇌졸중의 발작을 앓으며, 왼쪽 팔이 마비되는 증상을 겪었다.

196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받을 때에는 메달과 상장조차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받아야 할 정도로 쇠약해졌다. 노벨상은 유진 위그너와 공동 수상하였다.

마리아는 심장박동 조절장치에 의존하다가 1972년 2월 20일에 폐색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2 업적

1930년에 제출한 마리아의 논문은 원자의 핵을 맴도는 하나의 전자가 핵과 가까운 전자 궤도로 뛰어들 때 하나가 아닌 두 개의 광자나 빛의 양자 단위를 방사하는 확률을 계산한 것으로, 1960년대에 레이저로 재확인되어 광학과 원자물리학, 분자물리학의 논문들에 수시로 인용되었다.

미국 메릴랜드 주의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연구실을 얻지 못하고, 다락방에서 카를 헤르쯔펠드와 함께 연구한 끝에 9년 동안 10개의 논문과 한 권의 교과서를 출판하였다. 분자적 시스템에 관한 화학 교과서 통계적 역학은 44년 동안 판을 거듭하며 출간되었다.

시카고 대학의 제휴 연구소에서 어떤 동위원소가 다른 것보다 더 많이 있는지에 관한 쟁점이 오가는 중에 마리아는 126개의 중성자를 가진 동위원소가 127개나 128개의 중성자를 가진 동위원소보다 더 안정적인 현상에 주목하여, 2, 8, 20, 28, 50, 82, 126개의 양성자나 중성자를 가진 핵이 유별나게 안정적인 것을 발견하였다.

이 현상을 정리하여, 1949년에 전자각 안에 핵 전자 궤도 안에 있는 입자들이 아무것도 없는 중심으로부터 회전 궤도를 이루며 결합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였고, 한스 예너젠과 공동저자로 핵 전자각 모델에 관한 책을 출판하였다.

3 마리아와 여성차별

  • 1924년 마리아가 다른 4명의 여학생들과 함께 괴팅겐 대학에 입학했을 때, 기존에 있었던 10명의 대학생 중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 마리아는 대학 직원들의 아내 고용을 엄격히 금하는 반연고주의 규칙으로 인하여 채용되지 못했으며, 빈 연구실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 컬럼비아대학교는 마리아의 논문에 대학명을 기술하는 것을 거부하였고, 매주 세미나에 참석할 때마다 강의가 끝난 뒤의 저녁 만찬에는 오지 않도록 권고받았다.
  • 시카고대학교는 마리아가 자원 조교수에서 자원 교수가 될 때까지 급료를 주지 않았다.

4 출처

섀런버트시맥그레인 (27 November 2007). 《두뇌 살아있는 생각》. 룩스미아. ISBN 978-89-91274-23-5. 

  1. “Personality (Goeppert-Mayer)”. 《scientists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