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스클로도프스카 퀴리(Maria Sklodowska Curie, 1867년 11월 7일 ~ 1934년 7월 4일)는 폴란드핵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이다. 1891년에 파리대학에 입학하면서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바꾸어 마리 퀴리가 되었다.

1 생애

마리아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마리아가 네 살 되던 해에 기숙학교 교장이었던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물리학, 수학 교수였던 아버지는 정치적인 이유로 해고를 당하여 어려움을 겪였다. 마리아와 브로냐 자매는 언니 브로냐가 먼저 파리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하는 동안 마리아가 언니를 돕고, 대신에 언니가 마리아를 파리로 데려가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폴란드에서 1985년 8월부터 1891년 9월까지 6년 동안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마리아는 개인적으로 화학과 수학공부를 하였다.

마리아는 1891년에 프랑스에 도착하였고, 파리대학에 입학하여 이름을 마리로 바꾸었다. 1894년에 수석으로 물리학 학위와 차석으로 수학 학위를 취득하고, 남편 피에르 퀴리를 만났다. 다음해에 간단한 결혼식을 올리고, 결혼한지 2년 만에 피에르가 공과대학에서 교수 직책을 얻자, 마리 또한 교직 자격증을 얻기위해 공부하였다. 1896년 8월에 교사 임용고시에서 수석을 차지하였다.

1898년에 방사능 물질 토륨과 방사성이 강한 원소 폴로늄, 라듐을 발견하고 1902년까지 순수한 라듐 염화물을 추출하였다.

1898년부터 1904년까지 마리 부부가 발표한 연구 논문은 36개에 달한다.

1904년에 프랑스의 최고 명문인 소르본대학이 피에르 퀴리에게 물리학 교수의 직위를 주었다. 1906년에 4월 19일 피에르 퀴리가 마차에 치어 세상을 떠나고, 마리는 딸 이렌느와 이브를 돌보며 방사능의 영향으로 점점 쇠약해졌다. 1906년 5월엔 소르본대학의 조교수로 임명되었고, 1908년에는 피에르의 교수직을 넘겨받아 소르본대학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물리학 강사가 되었다.

1903년과 1911년에 마리는 두 차례에 걸쳐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1914년 8월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마리는 X-선이 부상당한 군인들의 부러진 뼈를 접골하고 몸에 박힌 총탄을 찾아내는데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프랑스 군의무대 소속 이동 X-선 촬영 의무반'을 조직하였다. 장녀 이렌느 퀴리와 함께 뢴트겐 투사기를 탑재한 트럭을 끌고다녔으며, 전선에서 200개의 X-선 부서를 열어 X-선 촬영장비를 운용하기 위해 150명의 여성을 훈련시켰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파리 의학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 마리는 새로 설립된 프랑스 라듐연구소의 소장이 되었지만, 당시 프랑스의 재정 상태로는 연구비를 받을수 없었다. 미국의 기자 미시 멜로니가 마리의 상황을 알리자 1920년대 미국 여성들이 마리 퀴리를 위해 라듐을 사는 캠페인을 하였고, 기금 조성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마리 또한 미국을 방문하여 여성들을 만났다.

그러나 라듐연구소에서 일하던 많은 노동자들이 암으로 죽었듯이, 마리의 건강은 좋지 않았다. 마리는 만성피로에 시달리며, 방사능 때문에 생긴 백내장으로 네번의 수술을 받고서도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에서, 방사능 과다 노출로 인한 백혈병으로 1934년 7월 4일에 요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마리의 장녀 이렌느 졸리오 퀴리(Irene Joliot Curie)는 라듐연구소에서 연구를 계속하여, 1935년에 남편과 함께 인공 방사능 발견 등의 공적을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고, 후에 라듐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2 방사성이 강한 원소 발견과 추출

1896년부터 마리는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베크렐의 X-선 실험 결과를 논문 과제로 선택하였다. 베크렐의 X-선이란, 베크렐이 물체에 빛을 쬔 후 빛을 제거하여도 장시간 빛을 내는 물체에서 X-선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착안 아래 실험하고 검증한 결과, 빛을 발하지 않는 상태이거나 태양 광선에 의해 충전하지 않은 상태라도 X선이 만들어지는 우라늄 화학물을 발견한 일이다. 베크렐은 또한 우라늄 주변의 공기에 전기가 흐른다는 사실도 증명해냈다.

마리 부부는 광석 샘플 주변의 전하를 탐지하는 압전기를 사용하여, 우라늄처럼 X-선을 만들어내는 토륨을 발견하였고, 사람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X-선을 만들어내는 이 성질을 방사능(radioactivity)이라고 불렀다. 또한 우라늄과 토륨 광석 표본 주변에 흐르는 전류의 세기를 측정하여, 방사능이 원자에서부터 나오며, 우라늄의 세 배 정도 방사성이 강한 역청 우라늄석에 적어도 한 개 이상의 방사능 물질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피치블렌드에 대하여 방사능을 바탕으로 화학분석을 한 결과, 마리 부부는 1898년 7월에 우라늄보다 400배 정도 방사성이 강한 원소를 발견하고 폴로늄(polonium)이라고 이름지었다. 폴로늄 표본을 가지고 연구를 계속하여, 1898년 12월에는 우라늄보다 100만 배 정도 방사성이 강한 라듐을 추가로 발견하였다.

마리는 폴로늄과 라듐의 순수한 표본을 추출하는 것을 다음 연구주제로 삼았다. 그리하여 1898년부터 1902년에 걸쳐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창고에서 수톤의 우라늄 광석에서 10분의 1그램의 순수한 라듐 염화물을 추출하면서, 마리 부부는 유독한 가스를 들이마시며 피부와 뼈에 치명적인 방사능 물질을 다루었다. 마리는 방사능이 건강에 해로울 것이라고 의심하기는 했지만 얼마나 위험한지는 전혀 몰랐다.

마리 부부는 자신들이 과학을 상업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믿었고, 라듐 추출과정을 특허로 출원하지않았다. 그리하여 마리 부부가 라듐 추출에 성공하면서, 의료용 방사선뿐만 아니라 라듐의 효능을 앞세운 약과 빛나는 미용 크림, 립스틱, 발광 성질의 입욕제 등의 다양한 사업이 등장하였다.

1906년에 라듐이 원소가 아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마리가 4년에 걸쳐 순수한 라듐을 생성해내어 라듐이 원소라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3 노벨상 수상

1903년에 마리 부부는 방사능의 성질에 대한 연구를 인정받아,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투안 앙리 베크렐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마리 부부는 방사능에 중독되어 건강이 좋지 않아 시상식에 참가하지 못했다.

1911년에 마리는 라듐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고, 수락연설에서 방사능을 '평가할 수 없는 화학'이라고 지칭하였다.

4 마리 퀴리와 여성차별

  • 1903년에 노벨 물리학상의 후보가 처음 거론되었을때, 피에르 퀴리와 앙리 베크렐뿐이었다. 페미니스트 수학자 괴스타 미타그레플러의 반발로 마리 퀴리 또한 수상자 목록에 기록되었지만 노벨상 심사위원단은 '남자가 혼자 있어서는 안 된다. 남자에게는 그 곁에서 보조를 맞퉈주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 1910년에 마리 퀴리와 폴 랑주뱅 사이에 스캔들이 제기되면서 '남편을 훔쳐간 외국 여자', '여자가 남자와 똑같아지려 해서는 안 된다', '과학이 여성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말이 쏟아졌다.
  • 1911년에 마리는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 가입하려다가 기존의 회원들로부터 그가 반유대주의이며 급진적인 자유주의 여성이고 페미니스트이자 교회도 반대하는 외국인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한 표 차이로 가입하지 못했다.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1979년이 되어서야 여성 회원을 선출했다.
  • 1920년에 마리는 미국에 가서 당시 미 대통령으로부터 경의의 인사를 받고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지만, 하버드 대학 총장 찰스 엘리엇은 '마리 퀴리는 단지 라듐에 관한 연구의 사소한 부분에서만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며 마리에게 명예박사 학위 수여를 거부했다.

5 출처

  • 달렌 스틸 (2008).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 양문. ISBN 978-89-87203-96-6.
  • 니콜라 비트코프스키 (2015). 딴짓의 재발견 두번째 이야기. 애플북스. ISBN 978-89-94353-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