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주의 페미니즘에서 넘어옴)

문화적 래디컬 페미니즘래디컬 페미니즘의 한 갈래이다.

1 이론

  1. 이성애적인 성 관계는 일반적으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적 폭력을 지원하는 성적 객관화 이데올로기(주체/주인으로서의 남성, 객체/노예로서의 여성)의 특징을 지닌다.
  2.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의 성적 폭력을 지원하거나 또는 그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모든 성적 관행들을 거부해야 한다.
  3.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남성의 성적 선호사항들과 다른 우리 자신의 성적 선호사항들에 대한 관심(즉 행위보다 친밀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임)을 증대함으로써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아야 한다.
  4. 이상적인 성 관계는 감정적으로 연루되고 양극화된 역할에 참여하지 않는 진정으로 합의가 이루어진 동등한 관계의 파트너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앤 퍼거슨이 정리한 문화적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견해.

문화적 래디컬 페미니즘은 사회가 만들어낸 성규범가부장제가 여성 억압을 만들어내었고, 교육과 사회 인식 개선 등을 통해 평등을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

2 인물

마릴린 프렌치, 메리 댈리 등이 있다.[2]

프렌치는 남성-여성의 차이점들이 사회화(후천적)보다 생물학(선천적)에 기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프렌치는 자유의지론적 래디컬 페미니스트보다 문화적 래디컬 페미니스트로 분류되었다. 그런 까닭에 그녀의 양성적 인간에 대한 이론에는 남성적 특성보다 여성적 특성들이 훨씬 더 많이 편입되어 있다. 프렌치는 자신의 저서 힘을 넘어서서에서 여성의 전통적 특성들이 남성의 전통적 특성보다 더 훌륭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양성의 형식을 보여주었다. 프렌치는 15년 전의 밀렛이나 파이어스톤과 마찬가지로 남성들의 여성 억압이 논리적으로 다른 인간 지배 체계들로 인도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남성의 여성 지배가 정당화될 수 있다면, 갖가지 모든 지배 형태를 정당화할 수 있다.

프랜치는 가부장제의 기원들을 탐구한 후 초기 인간들은 자연과 화합하며 살았다고 결론지었다. 초기 인간들은 자신들이 큰 전체 속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프랜치는 한 그룹이 생존 지향적 활동을 할 때 중심은 어머니였기 때문에 첫 번째 인간 사회는 모계 중심적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한 인구가 증가하면서 불가피하게 음식이 부족해졌다고 추정했다. 인간은 기술을 개발했고 자연을 개간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점차 분리되었다. 자연에 행사하는 통제력이 증가한 결과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소원하게 되었다. 소원함은 적개심이 되었고 적개심은 두려움, 두려움은 원한이 되었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들은 여성들에게 향했다. 여성은 생식 역할 때문에 자연과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남성의 욕망으로 상위 세력을 귀히 여기는 가부장제가 생겨났다. 상위 세력은 점차 우두머리가 되었고, 가부장적 경쟁은 필히 인간 갈등으로 인도할 것이라 프랜치는 추정했다.

프랜치는 특히 요즈음에는 핵에 의한 대학살로 확대될 수 있으므로 이 세상의 갈등을 없애기를 소망하여, 여성적 가치들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창출해낸 남성적 사회로 재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랜치가 말하는 최고의 사회는 역사적으로 여성적인 가치들을 여성적으로 남성적인 가치들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남성 여성이 열렬하게 수용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프랜치는 실제로는 남성적 가치들보다 여성적 가치들을 더 귀중하게 여겼으며, 남성적 가치를 승인할 때마다 개념의 언어적 재해석을 거쳤다.

프랜치의 양성에는 여성의/여성적 특성은 그대로 둔 채 남성의/남성적 특성들에 대한 상당한 재해석이 포함된다는 것이 힘을 넘어서서를 통해서 점차 분명해졌다. 과거에는 "인간다움"이ㅣ 유해할 정도로 파괴적이고 힘을 담당하는 남성적 세상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에는 그것이 창조적이고 힘을 공유하는 여성적 세상과 동일시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남성적 세계는 상위 세력의 가치에 기초하기 때문에, 단지 소수의 사람만 그를 수용할 수 있다. 그리하여 가부장이 된다는 것은 분별 없고 욕심스러운 힘의 남성 대표자가 되는 것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여성적 세상은 즐거움의 가치에 기초하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존재 방식들과 행동방식들을 수용할 수 있다. 프랜치는 즐거움이 매우 광범위하고도 심오한 개념으로, 성숙한 인간이 겪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모든 경험들을 포용한다고 생각했다.

프랜치는 분명 상위 세력이라는 남성적 가치를 싫어했기 때문에, 양성적인 사람은 함께 하는 즐거움과 그녀가 "대응 세력"이라고 칭한 여성화한 상위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랜치는 힘이 파괴 욕망(상위 세력)이 아니라 창조 욕망(대응 세력)으로 나타나기만 한다면,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에서 즐거움은 물론 힘을 가지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역설했다.

문화적 래디컬 페미니스트인 댈리는 밀렛,파이어스톤,프렌치보다도 더 강하게 전통적인 남성적 속성들을 비난했다. 댈리는 비록 하나님 아버지를 넘어서서에서는 양성에 대한 호소로 시작하였지만, 궁극적으로 그녀는 "남성적", "여성적"이라는 용어들을 혼란스러운 가부장제의 산물이라고 거부했다. 용어를 변형시키는 댈리의 여행길은 여성/생태학을 거쳐서 순수한 욕망에서 끝이 나는데 이 책에서 그녀는 레즈비언 래디컬 페미니스트 분리주의자들을 용감하게 옹호하였다.

댈리는 첫 번째 주요 저서인 하나님 아버지를 넘어서서:여성의 해방 철학을 향하여에서 하나님이 남성과 여성 모두의 의식에서 차지하는 왕위에서 물러나지 않는 한, 여성은 결코 완전한 인간의 권위를 부여받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모든 가부장에 대한 패러다임으로서의 하나님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이 책에서 반복되는 개념이 시사하는 것은 만일 누군가가 상위 세력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초월적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초월적 하나님은 나-그것,주체-객체,자아-타자의 관계의 관점에서 생각한다. 이 초월적 하나님에게 낯설은 것은 그가 총체적 무에서 만들어낸 자연 세계이다. 그리하여 출산 능력 때문에 자연과 연합되는 여성은, 하나님과 남성이 담당하는 주체와 자아의 역할들에 반하여 객체와 타자의 역할들을 담당한다. 댈리는 과거의 초월적 하나님이 여성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새로운 보편내재적 하나님으로 대치시키기를 소망했다. 보편내재적 하나님은 우주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거주하면서 나-당신,주체-주체,자아-자아 관계의 관점에서 생각한다. 그리하여 여성은 이 하나님 앞에서 남성과 동등하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나-그것 사고가 반영되는 주요한 방식 중 하나는 인간 사회를 두 그룹으로 양극화하는 엄격한 남성적, 여성적 성별 체계라고 댈리는 말했다. 남성들은 여성을 제2의 성으로 인식하고 규정하기 때문에, 각각의 남성은 나 또는 자아가 되고 각각의 여성은 그것 또는 타자가 된다. 그렇다면 나-그것 사고와 초월적 하나님을 극복하는 방법은 두 형식을 모두 넘어서는 양성적 인간을 구축하여 성별 이형성을 분해하는 것이다.

댈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넘어서서에서 양성을 명백하게 수용하였지만, 그녀의 양성 개념은 밀렛이나 파이어스톤보다 프렌치의 개념에 더 가깝다. 댈리는 양성의 "다원주의적"(남성과 여성은 개별적이지만 평등하고 상보적인 특성을 지님) 모델과 "동화" (인간다움 성취를 위해 남성적 여성적 특질의 통합이 필요) 모델을 모두 거부했다. 댈리가 지적했듯이, 이 모델들은 "남성성"과 "여성성"이 보존 가치가 있는 개념인지 논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프렌치는 전통적인 남성적 특질들을 재해석하는 데 관심이 있었던 것 같고, 그와는 달리 댈리는 전통적인 여성적 특질들을 재해석하는 일에 몰두했던 것 같다. 댈리는 긍정적인 여성적 특질들이 피학성 변태성욕적인 여성적 "덕목들"과 구별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댈리는 여성성 개념을 고찰하고서 이 개념에는 여성이 추구할 만한 좋은 것이 전혀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녀는 가부장제가 이브는 물론 마리아를, 창녀는 물론 마돈나를, 부정적인 여성적 특징들은 물론 긍정적인 여성적 특질을 구축했다고 주장했다. 댈리는 이것들이 모두 가부장제의 감옥 속에 여성들을 빠뜨릴 목적으로 남성들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외견상 나쁜 것 뿐만 아니라 좋은 것들도 함께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댈리는 여성/생태학에서 양성을 단호하게 거부하게 되면서 니체가 가치 체계를 전도함으로써 인도되었던 그 지점으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인도되었다. 댈리는 지배적인 선악 개념에 대응하여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를 다시 규정하게 되었다. 댈리가 니체적인 이유는 여성과 관련지어서 가부장이 사악하다고 지목하는 여인은 사실상 착한 반면, 가부장이 선하다고 지목한 여인은 사실상 악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댈리는 여성 자신들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여성이 추한 노파가 되는 것은 좋은 것이다.

댈리는 여성/생태학을 집필할 때 분명히 양성적 인간의 이상을 거부하고, 남성성과 여성성을 초월하여 살아가는 자유분방한 여성의 이상으로 대치하였다. 여성은 완전한 인간이 되려면 여성성을 벗어버려야만 여족장제에서 자신의 생활을 영위했을 경우 여성이 가졌을 그런 자아로서 그녀 자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댈리는 순수한 욕망:기본적인 페미니스트 철학에서 계속해서 가치체계를 전도시킨다. 여성들은 강건해지기 위해 양성의 올가미에 저항해야 한다. 남성들은 양성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점차 인식하게 된다. 남성들은 여성의 에너지를 모두 그들의 신체와 정신 속에서 뺴내어 포섭하거나 소모시키길 원한다. 여성들은 양성이라는 여성 말살 과정에 굴복하는 대신 남성들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서 강력한 자기 이해체계를 새롭게 만들어내야 한다고 댈리는 말했다.

순수한 욕망에서 인상적인 점을 댈리가 용어에 새로운 의미들, 즉 규범적인 동시에 서술적인 의미들을 부여하는 능력이다. 욕망(lust)이라는 용어가 그 적절한 예이다. 그것은 성적 욕망, 호색, 음란함 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욕망은 사악한 것이라고 댈리는 시인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우리가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가부장제의 노예 도덕 체계를 가지고서 살기 때문이다. 비가부장제 사회에서 산다면, 욕망은 좋은 의미들도 나타낼 수 있다고 댈리는 말했다.

순수한 욕망은 여성에게 도덕적 덕목과 도덕적 악덕으로 간주되던 것의 가치체계를 전도시켰다. 특히 그것은 가부장제 세력이 어떻게 자연스러운 여성들에게서 진정한 열정을 빼앗고 나서, 그 대신 댈리가 "합성적"이고 "통속화한" 것이라고 부른 온갖 종류의 열정들(허위의 열정들)로 대치하였는가를 보여주었다. 댈리에 의하면 합성적인 열정들은 진정한 열정들에 대한 대체물이 결코 될 수 없다. 여성들을 의미심장한 행동을 하도록 자극하는 진정한 열정들과는 대조적으로 합성적 열정들은 여성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성취감이라는 합성적 열정이 환희라는 진정한 열정과 혼동되어서는 아니 된다. 댈리는 성취감이 바로 프리단이 말한 "이름 없는 문제점"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말했다. 댈리는 또한 통속화한 열정도 합성적 열정들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열정들의 빈약한 대치물이라고 말했다.

3 다른 래디컬 페미니즘과의 차이

문화적 래디컬 페미니즘은 자유의지론적 래디컬 페미니즘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구체적으로는 성적 경험에 대한 입장, 생물학적 어머니에 대한 입장, 성별 억압을 타파하는 방법 등이 다르다. ▶︎ 문화주의 페미니즘과 자유지상주의 페미니즘의 비교

4 기타

5 같이 보기

6 출처

  1. 페미니즘 사상-종합적 접근-. 로즈마리 퍼트남 통. 한신문화사
  2. 캐럴 페이트만, 메어리 린든 쉐일리. 페미니즘 정치 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