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서는 국내 인구구성 요소 때문에 일반적으로 한민족과 한국인을 동일시하지만, 국외에서는 국적에 관계없이 한민족 사람들을 통칭 할 표현이 필요하게 된다. 이를 위해 현재 가장 폭넓게 쓰이는 표현은 한인이다.[주 1]
미국 내의 한인 인구는 약 200만으로 추정된다. 캘리포니아, 뉴욕, 뉴저지, 텍사스, 버지니아, 워싱턴, 일리노이, 조지아, 메릴랜드, 펜실바니아의 주에 대도시를 중심으로 전체 한인 인구 중 70%가 밀집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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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및 하위 그룹
한인
한인이라는 표현은 미국에 거주한 지 오래 된 이들이 가장 부담없이 사용 할 수 있는 표현이다. 상대방의 국적이 무엇이든 적용 할 수 있는, 민족에 특화된 표현이다. 1990년대를 전후하여 한인 사회에 정착된 표현으로 보인다. 한인 언론과 일부 단체들에서 쓰이며 표준적 표현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인 및 "한국 사람"
두가지 사용 용례가 나타나는데, 80년대 이전에 미국에 이주한 이들, 그리고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되는 이들 사이에서 주로 나타난다. 미국으로 온지 얼마 안 되는 이들은 "국가"와 "국적"의 명확한 구분에 익숙해 있어 "한국인"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한국 사람"이라는 표현은 캐쥬얼하게 한인들의 단합을 강조하거나 인정을 찾을 때 (예를 들어 "아이고 그래도 한국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야죠~~" 등의 표현) 강조 목적을 위해서 가끔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워낙 평범한 표현이라 그 외에도 자주 쓰인다.
Korean American 코리안 아메리칸
코리안 아메리칸을 단순한 "한인"의 영어 표현으로 볼 수도 있지만, 국가 프레임을 중시하는 이들은 이 표현의 "아메리칸" 부분에 집중 해 "한국계 미국인"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좀 살면서 정체성의 fluidity 를 접하다 보면 국적이 미국인이 아닌 이가 "나는 코리안 아메리칸"이다 라고 주장해도 아무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 일례로 KoreAm Magazine 에서 2013년 경 추진한 I am Korean American 웹 프로젝트가 있다. 이는 "000 아메리칸" 형태의 타 정체성을 자세히 보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이런 물렁물렁한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한인들이 계속 코리안 아메리칸을 "한국계 미국인"으로 계속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시각은 계속 존재 할 것이고, 정체성이나 정체성의 이름이라는게 그냥 일정 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존재 자체는 하는 것이기에 미묘한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계 미국인
한국계 미국인은 전통적인 국적 중심의 표현이다. 미국 국적의 한민족이라는 의미. 순수하게 법적인 경로만을 생각해보자면 자신의 민족이 한민족인 미국에서 태어난 이, 그리고 미국 국적을 취득한 한민족 사람이 여기에 해당된다로 볼 수 있다.(그래서 2세라는 표현과 구분된다)
Korean-American 코리안-아메리칸
하이픈이 들어간 코리안-아메리칸은 흑인의 경우 "African American"이 아프리카 이민자 출신, 그리고 "African-American"이 노예가 절대다수인 초기 흑인을 구분하는 것에 착안하여 구분짓기를 시도한 명칭. 소수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활동가들이 이 정체성의 정의를 시도하고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좀 더 연구가 필요할 듯)
한인 2세
한인 2세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이라는 의미로, 문화적, 언어적 차이를 강조 할 때 일반적으로 쓰이며, 한인 이민 역사가 비교적 짧은 편에 속하기에 "젋은 한인" 또는 "어린 한인"과 거의 동의어로 쓰인다. 한인 2세라고 했을 때 50대 장년 한인을 잘 연상하지는 않는다. 보통 10대-20대로 생각하는것이 일반적.
한인 1.5세
한인 1.5세는 한인 2세를 좀 더 정교하게 구분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으로, 한국에서 태어나서 일부 기간을 지내다가 미성년자일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온 경우를 지칭한다. 미국으로 오기 전 한국에서 학교를 1년이라도 다니면 다니지 않은 이와 비교해 한국어 능력이 확연히 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둘을 구분해서 1.5세는 학교를 다닌 이, 더 작은 소숫점(1.8세 등)에 학교를 다니지 않은 이를 배정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한인 1.5세는 한국어 및 영어를 어느 정도 하는 편이기에 1세들이 "이들 청년들이 한인들이 미국 사회에 진입하는 것을 도와줄 것이야"라는 기대를 가지는 편이다.
재미 교포, 재미 동포
교포라는 표현을 쓸 때가 있는데, 일부 진보측에서는 이게 안 좋은 표현이라며 교포 대신 동포라는 표현을 쓰자고 한다.[주 2]
혼혈
라티노, 흑인, 타 아시안, 백인 등 다른 민족과의 혼혈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아직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특정 혼혈 그룹 지칭적인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잠시 머물러 있는 이들은?
정체성이라는 것이 그 정체성을 claim 하는데 뚜렷한 정치적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 한, 부르는 사람 마음이기 때문에, 유학생 이나 심지어 관광객이 스스로를 한인이나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정체화해도 그것을 문제삼는 이들은 적다. 어차피 미국 인구통계부나 한인 언론들은 이들을 편의상 다 한인으로 친다.
인구
미국 내의 한인 인구는 2010년 인구조사를 기점으로 약 200만으로 추정된다. 로스앤젤레스 광역권이 한인이 제일 많다.
미국의 2016년 인구조사 (ACS 5년치 합산 보정치)에 따르면 한인 및 한인 혼혈의 수 (Korean Alone or in any combination)는 180만명이다. 한국 외교부의 2017년 재외동포현황에 따르면 재미 동포의 수는 영주권자 42만, 일반 체류 55만, 유학생 7만, 미국 국적 145만, 총합 249만명이다.
두 기관은 집계 방법이 다른데 미국은 10년격 인구조사는 100% 샘플링으로 받은 후 매년 1% 샘플을 추출해서 5년치, 3년치 합산 통계 보정을 한다. 하지만 한인을 포함한 유색인종은 여러가지 이유로 참여율이 백인에 비해 떨어져 항상 더 낮게 집계 되는 경향이 있다. 한국 외교부는 한국 국적자의 미국 출입과 출국자 수를 계산 한 후 미국 국적자의 수를 더하는 식이다. 아마 미국 국적자 수치는 인구조사국 통계를 사용할 듯? 다시 말해 한국 외교부 수치에는 관광객 등 유동인구도 포함된다.
주 별 인구
2015년을 기준으로 한인이 제일 많은 상위 10개 주는 아래와 같다: (ACS 5년 합산)
- 525,883 California
- 147,446 New York
- 104,696 New Jersey
- 91,581 Texas
- 86,147 Virginia
- 85,066 Washington
- 73,708 Illinois
- 66,670 Georgia
- 56,920 Maryland
- 49,017 Pennsylvania
도시별 인구
여느 이민자 및 소수민족 커뮤니티와 유사하게 대도시를 중심으로 모이는 경향을 보인다. 2016년에 한인 인구가 1만명 이상인 도시는 아래와 같다: (지리적 단위는 인구조사청 코드 160 번인 Place를 적용)
- Los Angeles, California 115,853
- New York, New York 95,945
- Irvine, California 20,850
- Urban Honolulu CDP[1], Hawaii 20,567
- Fullerton, California 18,282
- San Diego, California 16,258
- San Jose, California 15,071
- Chicago, Illinois 13,123
- San Francisco, California 12,944
- Torrance, California 11,095
- Seattle, Washington 10,361
캘리포니아 도시별 유권자
한편 2017년 기준으로 캘리포니아에서 미국 국적의 한인 중 미국 선거에 유권자 등록을 한 이들의 수는 아래와 같다:
- 47,986 Los Angeles
- 9,259 San Francisco
- 7,086 Irvine
- 6,798 San Jose
- 6,384 San Diego
- 5,783 Fullerton
- 4,379 Torrance
- 3,948 Glendale
- 3,740 Cerritos
- 3,026 Buena Park
언어
1세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2세는 영어 사용 경향이 높다. 특이한 사항으로는 초기 이민자일 수록 고립되어 살면서 이민 온 시기의 (80년대, 90년대 등) 한국어의 특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사는 가능성이 생긴다.
한인들 사이에 농담삼아 "미국에 오면 영어가 늘 줄 알았는데 영어는 안 늘고 한국어는 자꾸만 까먹는다"라고 자조하는데, 실제로 일어난다. 한국에 살 때와는 다르게 일상의 모든 경험을 한국어로 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한국어를 안 쓰는 분야를 중심으로 어휘력이 제한된다. 그리고 어지간히 영어를 잘하고 미국에 인맥이 있는 준비된 상류층이 아닌 이상 일반 중산층이나 심지어 고학력이라고 생각되는 대학 교수 같은 사람들도 이민 1세는 미국에 이민 가서 간단한 일일 노동을 하거나 자영업 등을 하는 경우가 매우 높다. 자리를 잡을 때 정도 되면 또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것 때문에 고생을 하게 된다. 이러다 보니 영어를 사용할 기회 자체가 잘 안 오는 경우가 많다. (이민 1세와 풀타임 학생 신분인 유학생의 경험은 다르니 유의..)
영어를 편하게 못하는 비율이 매우 높으며, 2005년 설문조사에서 이민 생활의 어려움으로 영어를 잘 못하는 점이 1순위로 꼽혔다.
영어를 유창하게는 못 하는 것에 비해 일상 회화에 섞어 쓰는 영어 단어의 비율이 남한에서 쓰이는 영어 단어의 비율보다 높다. 습관도 있지만 상당수는 기본이 영어로 된 삶의 조건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주차장을 파킹랏이라 부르는데, 운전하면서 주차장을 찾으려면 도로에 파킹랏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인 비즈니스 자체 주차장에는 주차장이라고 적혀 있기도 하다)
여러가지 이유로 2세들의 한국어 습득에 충분히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그 결과 부모와 자녀 사이에 엄청난 소통 장애가 발생해, 아래의 문화적, 정치적 차이와 더불어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문화
개인과 살아온 것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한국적"으로 생각되어지는 관례들이 덜 지켜진다. 예를 들어 대학이나 직장에서 나이나 기수를 따져 선후배 관계를 지키는 관습이 없다시피 하다. (물론 유학생 등 미국 체류 기간이 짧을 수록 이런 관습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은 편이나, 대학측에서 제도적으로 이를 위해 마련해주는 기반이 없다시피 하니 기수 확인 자체가 어려운 편이다)
정치
전반적으로 미국 민주당이 강세이며[주 3], 타 인종에 비해 정당에 등록하지 않는 (무소속이라고도 한다) 비율이 높아 20% 에서 35%에 달한다. 이 두 부분 다 아시안 아메리칸에 공통된 사항이다. 한인 유권자의 75% 정도가 한국 출생인 1세 내지는 1.5세이다.
2015년 퍼거슨 시위로 불붙은 Black Lives Matter 운동 당시 한인 언론을 비롯하여 한인 사회의 그 누구도 운동에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을 보고 2016년에 한인 2세를 포함한 아시안 아메리칸 2세들이 인터넷에서 모여 1세들에게 한국어, 중국어, 따갈로어등 언어로 흑인 차별과 경찰 폭력에 대해 호소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Letters for Black Lives라는 운동을 펼쳤다.
전통적으로 미국으로 이주하거나 미국에서 생활한 한국인 중 조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활동을 펼치는 이들이 있었다. 망명을 떠나면 가는 곳 중 한 곳이 미국이니 자연스러운 상황이라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한 서재필, 안창호, 이승만, 그리고 박정희 및 전두환 군부 독재에 맞선 김대중, 김상돈, 윤한봉 등이 있다.
통일, 한국 민주화, 노무현 탄핵, 4대강, 세월호, 박근혜 탄핵 등 굵직 굵직한 한국의 정치 사안마다 리버럴한 성향의 일부 청장년층과 보수적인 일부 노년층이 대립해왔다.
역사
미국에 발을 딛은 최초의 한인들은 조선 말기와 일제 시대 중에 중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오기 시작했다. 1902년에 고종의 허락하에 이들이 하와이로 이주하여 사탕수수 밭에서 노동을 시작했다. 이 기간동안 소수의 한인들이 하와이와 서부에 정착했다.
첫번째 유의미한 규모의 이주는 한국 전쟁을 전후하여 한국에 진주한 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오기 시작한 이들과 미군 위안부 중 결혼한 이들이었다. 소수의 유학생과 전문직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번째 웨이브는 1960-70년대에 대거 들어온 어린이 또는 아기 나이대의 입양인이다.
민권 운동의 결실로 1965년에 이민법이 개정되어 아시안발 이민자 수 쿼터제를 없애고 고용 및 가족에 의한 이민이 시작되어 세번째 이민 웨이브가 시작되었어 1975년 이후 본격적으로 대규모의 이민이 시작되었다.
이후 이민은 꾸준히 증가했고, 1997년 IMF를 전후하여 이민의 성격에 고학력 및 전문직이 유의미한 증가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민
이민 신분이 없는 서류미비자를 비롯해 서류미비자의 문턱에 있는, 각종 방법으로 체류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 각종 비자 소지자, 영주권자, 그리고 시민권자가 있다. 전체 한인 중 약 14%가 서류미비자이며, 39%가 미국 출생 시민권자, 35%가 미국 국적을 취득한 시민권자이다.
트리비아
- 방탄소년단 미국 진출 당시 'BTS'를 'Burning Butthole Sensation(매운 것을 먹은 다음날 항문이 곤욕을 치른다)'로 알고 있었던 재미 한인들이 당황스러워했다고 한다. 특히 방탄소년단의 곡 제목들이 <Fire(불타오르네)>, <Save Me> 등등이라서 더 당황했다고 한다.
ㅋㅋㅋㅋ 아니 이게 뭔 소리.. 처음 듣는디요?
참고 문헌
- Asian American Center for Advancing Justice - Community of Contrasts - Asian Americans in the United States (2011)
- AAPI Civic Engagement Fund - Asian American Election Eve Poll (2016)
- AAPI Data.com - Demographic Data and Policy Research on Asian Americans & Pacific Islanders
부연 설명
- ↑ CDP는 인구조사에서 인근 지역을 모아 합산하는 단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