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수레 실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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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일본 유학길에 오른 박꽃수레 씨가 2016년 7월 돌연 실종된 사건이다. 가족도 모르게 두 번의 결혼과 한 번의 이혼을 했다는 점 이외에도, 관련자가 다른 일본인 유학생 실종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등 범죄로 의심되는 수상쩍은 점들이 많다.

실종

박씨는 성인이 되어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한일간 국제결혼 주선 업체에서 통역 일을 하던 박씨는 정작 자신의 결혼과 이혼은 가족들로부터 숨겼다.

2016년 6월 말, 외삼촌 장례식장을 찾았다가 3일간 한국에 머문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 박씨는 이날 두번의 통화를 한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 어머니는 원래 연락을 잘 하던 박씨에게서 답장이 없자 2-3일을 혼자 연락해보다 식구들에게 알렸고, 가족들은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2016년 7월 11일 박꽃수레 실종 사실을 인지한 것은 경기도 이천 경찰서로, 이를 신고받은 영사관에서 일본 경찰에 실종 사건을 접수했다. 일본 경찰은 한국 경찰의 제안에도 주권침해이며 이 사건은 자신들의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들은 가족들에게도 함구를 당부했다. 가족들은 일본 경찰 말만 듣고 700여 일을 기약 없이 기다렸다.

일본에서의 행적

박씨는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시 아라이 지역에서 사토 다카시란 남성과 2년여의 결혼생활을 했다. 이웃들은 이들 부부를 별로 만나지도 않았고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2년 전 경찰들이 부부의 집을 찾아와서 비로소 실종 사실을 알았고 남편의 죽음도 수상한데 아내도 실종되어 기이하다고 말했다.

다카시의 친구가 증언하길 다카시는 풀을 베고 태우려고 붙인 불이 몸의 하반신에 옮겨붙어서 구급차로 병원에 후송됐다. 그러나 가을도 아니고 에 밭에서 풀을 태운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친구는 다카시가 구급차에 올랐을 때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하겠다며 스스로 올라탔을 정도로 건강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사토 다카시는 얼마 후 숨졌다. 이것이 2016년 4월이다.

이후 2016년 6월에 박씨는 외삼촌 장례식으로 한국에 입국했고, 이때 박씨는 서양식 장례복장을 하고 왔는데 자신의 두번째 남편 장례식 때 입은 옷을 챙겨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3일간 한국에 머문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 가족과 마지막 연락을 주고받은 것이 이날이다.

2016년 7월 6일, 박씨는 집안 조명과 에어컨을 켜둔 채 외출했으며 지갑 같은 귀중품이 집에 그대로 있었다. 그는 이날 오전에 예약한 네일아트를 취소했다. 이후, 원래 네일아트 예약이 잡혀 있던 오전 시간에 박씨 소유 차가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톨게이트를 지나는 것이 찍혔는데, 차량에는 한 남성이 동승해 있었다. CCTV에 찍힌 이 남성은 가족이 의심했던 이와 동일인물로, 한국인 남성 이성재(가명)였으며 이후 박씨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성재는 누구인가

행적

박씨가 한국에 남겨두고 간 물건 중에는 48통의 편지가 있었다. 이 편지의 정체는 2011년부터 2012년 사이 이성재 씨가 박씨에게 보내온 것들로, 편지 내용으로 볼 때 두 사람은 서로를 부부처럼 호칭하는 등 연인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성재는 어머니 사망진단서 위조 혐의로 1년형을 받고 강릉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이성재는 6억 상당의 어머니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일본에 멀쩡히 살아있는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거짓으로 사망신고를 했다.

박씨의 직장 후배는 처음 박씨가 이성재를 만났을 때 이성재가 이혼남인데다 무서워 보여 교제를 반대했다. 2012년 이성재가 출소하고 얼마 안되어 두 사람은 결별했는데, 이후 결별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성재가 박씨에게 갑자기 찾아와서 화를 냈다고 한다. 가전제품까지 던졌다기에 후배는 경찰에 신고하라고 조언했다. 이별 후 이성재는 일본인 여성과 결혼했고 박씨도 결혼했다.

2016년 4월 박씨의 남편이 사망한 뒤, 이성재와 박씨는 본격적으로 가까워졌다. 이성재는 박씨에게 결혼을 약속했다고 한다. 일본인과 결혼했던 두 사람은 이혼을 하면 비자가 사라져 일본에 장기 거주가 불가능했다. 이에 이성재는 박씨에게 500만 엔(한화 약 5천만원)을 예치하면 장기 거주 비자를 발급해주는 일본 법을 소개했다. 이들의 지인은 박씨의 돈으로 이성재 아내의 차까지 바꾸었다며, 이성재가 박씨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성재와 함께 살기를 원했으나 결혼을 같이 하자고까지 말했던 이성재는 사실 박씨와 사는 것을 원치 않았는데, 지인들이 이성재에게 박씨와 같이 살 것이냐고 물으면 이성재는 '내가 미쳤냐'고 답했다고 한다.

이후 박씨는 2016년 6월 외삼촌 장례식으로 한국에 들어왔을 때 직장 후배가 박씨에게 한국에 머물다 가겠냐고 묻자 일이 있어서 돌아가야 한다며 돈이 생겨서 가게를 차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세한 것은 들어가 봐야 안다고 말했다. 후배의 말로는 박씨는 원래 모아놓은 돈도 있었다. 후배는 박씨와 이성재가 다시 이어진 데에는 돈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한편 박씨의 남편 사토 다카시가 응급실에 실려갈 당시 함께 있던 다카시의 친구는 박씨가 다카시의 집과 토지 등을 상속받게 된 상태였는데 이 유산 때문에 박씨가 범행의 대상이 된 것 아닐까 추측했다.

체포, 그리고 이후

이성재는 박씨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으로, 박씨의 신용카드를 사용한 것은 물론 남편 사토 다카시의 신용까지 도용했다. 이성재는 박씨 실종 당일 오토바이 상점에서 이들의 카드로 350만원 가량의 오토바이 보관용 조립식 창고를 구매했다. 오토바이 용품을 사고 주유를 하고 호텔에 투숙할 때, 그는 박씨 없이 혼자였다. 가족들은 남자 문제와 돈 문제가 결부돼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실종된 해 7월에 카드 사용 흔적이 있었고 이 범인을 체포해서 조사하고 있었기에 조만간 결과가 나오리라고 기대했다고 한다. 경찰에서도 돈이나 남성과의 관계를 의심했고, 7월 6일과 10일 사이에 살해됐을 것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주변 관계를 조사하면서 이성재는 유력 용의자로 부상했다. 이후 일본 경찰은 2017년 9월 24일 이성재를 사기 혐의로 체포했다.

일본 경찰이 이성재를 체포한 것은 박씨가 실종되고 1년 2개월이 지난 뒤였으나, 이성재는 그전부터 의심받고 있었다. 1년간의 미행과 4번의 체포가 있었지만 직접 살인 및 유기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해 그를 사기와 횡령, 절도 혐의로만 기소했으며 후쿠시마 법원에서는 절도만 인정했다. 이성재는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고 현재 출소한 상태다. 이성재는 출소 후 자신의 기사를 올린 SNS마다 방문해 댓글을 남기며 '신용카드는 박씨가 빌려준 것이고 박씨는 지인들에게 빚을 진 뒤 도주했다'고 주장했다. 범죄심리학자인 박지선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 교수는 "박씨의 것뿐만 아니라 박씨 남편의 신용카드까지 사용한 것은 박씨가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박씨의 아버지는 출소한 이성재를 직접 만나보기로 결심했으나 실패했고, 대신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의 도움으로 전화 연결을 시도해 박씨와 함께 간 곳이 어디인지 물었다. 이성재를 벌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박씨를 찾기 위해 묻는 것이라고까지 말했지만 이성재는 "내 전화번호 한국 경찰이 알려준거냐. 아버지는 수레 일만 중요하고 내 일은 중요하지 않은거냐. 아버님은 딸 찾고 싶죠? 그럼 찾아라. 나한테 그러지 말고"라며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었다.

이성재의 편지

전문가들은 이성재가 박씨에게 쓴 편지에 대해, 이성재와 박씨가 전혀 균형이 맞지 않고 불평등한 완전한 종속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한다.

  • '사랑하는 부인에게 지엄한 서방님으로부터'라고 한다.
  • 시일이 흐를수록 줄간격도 멀어지고, '편지를 쓰기 힘들다', '편지에 쓸 말이 없다'는 식의 표현을 반복적으로 한다.
  • 본인에게 필요한 물건을 설명하는 데에만 내용이 치중돼 있다.

또다른 실종

이성재가 교도소에 있던 2011-2012년경 박씨에게 보낸 편지에는 '영돈'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편지에는 '이제부터 영돈이 일은 잊어버리고 마음 편하게 지내자'고 적혀 있었다. 문제는 2008년 10월 실종되었다가 2010년 6월 일본 미야기현 대나무숲에서 백골화된 사체로 발견된 한국인 유학생의 이름이 '김영돈'이라는 것이다.

김씨의 실종 당시 김씨의 아버지는 영사관에 실종 신고를 했고, 영사관은 심상치 않음을 느껴 일본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단순 가출로 여겼다. 그 이유는 주변인의 진술 때문이었는데, 이 진술했다는 주변인이 바로 이성재였다. 이성재는 당시 김씨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김씨가 잠시 바람을 쐬러 갔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성재는 김씨의 가족들에게 "실종 이후에 내가 영돈이를 만났으니 죽었다 할 순 없다. 영돈이는 살아있고 죽었으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했으며 이렇게 말한 것이 녹음된 녹취 파일은 가족들이 가지고 있다. 이성재는 또한 김씨 실종 2년 6개월 뒤 가족들에게 김씨는 고민이 많아 가출한 것이며 자신이 김씨와 만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고, 김씨가 자신에게 전화도 걸어왔다면서 수신번호까지 보여주었다.

이후 2010년, 미야기현 대나무숲에 대나무를 베러 온 사람이 숲에서 사체를 발견한다. 시신이 백골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형체는 물론 신발 색깔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라 처음에 그는 동물 시체라고 생각했으나 잘 보니 사람이었다. 발견 당시 김씨는 옷과 신발을 착용한 상태로, 실종 당시의 차림새와 동일한 것으로 이후 확인되었다. 게다가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김씨가 발견된 곳은 부패가 느리게 진행되는 환경이므로, 김씨가 실종 직후 사망했다는 데에 무게가 실린다. 또한 이곳은 농사짓는 사람들만 이용하는 길 옆이기 때문에 범인은 이곳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일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신원은 2016년 확인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김씨 가족이 의심하기 시작하자 이성재는 그와 함께 김씨를 만났다는 목격자, 박씨를 데리고 나타났다. 박씨는 실종 1년여 뒤 김영돈 씨를 만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 김씨가 실종 직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김씨 실종 사건으로 박씨와 이성재를 참고인 조사한 경찰에게 박씨는 이성재가 시켜서 그렇게 진술했으며 사실 그때 김씨를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거짓말 탐지기를 하려고 하니 이성재와 박씨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박씨는 왜 목격자인 척 했을까?

또한 박씨와 이성재의 지인은 이성재가 파칭코를 하는데, 소문에 의하면 김씨가 이성재에게 돈을 달라고 하자 이성재가 후루카와에서 줄테니 같이 가자고 했으며 그 뒤 김씨가 없어졌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후루카와는 이성재의 어머니가 있는 곳이다.

이성재의 편지

전문가들이 가장 주목한 편지는 김씨가 언급된 편지와 그 직후의 편지다. 면회를 온 박꽃수레 씨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울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박지선 교수는 백골이 김씨 시신이라는 것이 알려지지 않은 시점에서 울었다는 것은 '영돈이 일'이라는 것이 단순한 실종 사건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 편지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해갔다'는 표현도 등장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이성재를 찾아가 이 사건들에 대해 물었는데, 김씨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말하던 이성재는 자신의 편지를 제작진이 꺼내보이자 흥분하며 "이 사람들 너무하네. 모르겠다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인권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냐. 사람이 좋게 얘기하면 이쯤에서 알겠습니다, 하고 가야지 계속 앉아서 또 물어보냐. 당신들이 경찰이냐"고 역정을 내고 이내 경찰을 불렀다.

이성재 씨와의 대화를 면밀히 검토한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 편지를 들이대니 호기심이 났다. 진지하게 바뀌면서 다리 꼬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그쯤 팔짱을 낀다. 팔짱 끼는건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을 심리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몸동작이다.
  • 경찰에서는 넘어갔는데 경찰이 놓친 부분에 대해 방송팀이 치밀하게 접근하니까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다. 대처할 준비가 안 돼 있어서 화를 낸 것으로 보인다.
  • 경험한 대로만 이야기한다면 이런 물증이 나타났을 때 당황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이후

기밀수사를 고집하던 일본 경찰은 최근에 와서야 태도를 바꾸었다. 이러한 일본 경찰의 태도에 대해 공정식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실종자가 한국인이라면 한국 경찰에 필요한 정보들, 예를 들면 SNS나 통장, 휴대폰 등 생활반응이 있는지 조사,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관련 기록들에 대해 공조수사를 통해 확보하고 조사가 이루어져야 조금 더 진실에 가까이 가게 되는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추후에 하면 범인을 못 잡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지 기자는 다른 실종사건들도 일어났는데, 여러 사건이 같은 현에서 일어나 수사도 산만해져 한쪽에 수사를 집중하지 못한 원인도 있다고 보았다.

사건일지

  • 한국인 일본 유학생 김영돈과 이성재,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 사이. 소문에 의하면 파칭코를 하는 이성재에게 김씨가 돈을 달라고 하자 이성재가 후루카와에서 줄 테니 같이 가자고 함. 후루카와는 이성재의 어머니가 있는 곳.
  • 2008년 10월, 김씨 실종. 일본 경찰, 이성재의 증언을 근거로 단순 가출 판단.
  • 2010년 6월, 일본 미야기현 대나무숲에서 백골 사체 발견. 이후 2016년, 신원이 2008년 실종된 김씨로 확인됨
  • 2011-2012년, 이성재가 어머니 사망진단서 위조 혐의로 1년형을 받고 강릉교도소에 수감생활. 이때 재일한국인 박꽃수레와 주고받은 편지에 '영돈이 일', '최악의 시나리오' 등의 말이 등장.
  • 2012년, 이성재 출소. 얼마 안되어 박씨와 이성재 결별. 이후 헤어졌는데도 불구 이성재가 박씨를 찾아가 가전제품을 던지는 등 화를 냄. 이에 박씨의 직장후배, 신고하라고 조언.
  • 이성재와 박씨, 각각 일본인과 결혼.
  • 2016년(자세한 시기 불명) 김씨 가족이 이성재를 의심하기 시작하자 박씨를 데리고 나타남. 박씨는 김씨 실종 1년 뒤 김씨를 목격했다고 증언했으나 이후 이성재가 시켜서 그렇게 진술했으며 사실 그때 김씨를 만난 적이 없다고 번복. 이후 두 사람 일본으로 귀국.
  • 2016년 4월, 박씨의 남편 사토 다카시 사망. 이성재와 박씨, 본격적으로 다시 가까워짐. 이성재는 박씨에게 결혼을 약속했으나 그럴 마음이 없었음. 이성재, 박씨 돈으로 아내의 차를 사는 등 박씨를 이용하고, 500만엔을 지불하면 장기 거주 권리를 받는 일본 법 소개함.
  • 2016년 6월 말, 박씨가 외삼촌 장례식으로 한국 입국 후 3일 머무름.
  • 2016년 7월 초, 박씨가 일본으로 돌아간 이후 연락 끊김. 가족들, 2-3일 기다리다 경찰에 신고.
  • 2016년 7월 6일, 박씨가 집안 조명과 에어컨을 켜둔 채 외출. 이성재와 함께 차에 탄 것이 CCTV에 찍혔으며 이것이 마지막 생존 확인. 이성재, 오토바이 상점에서 박씨와 남편의 카드로 350만원 가량의 오토바이 보관용 조립식 창고를 구매함. 그가 주유를 하고 호텔에 투숙할 때, 박씨는 없었음.
  • 2017년 9월 24일, 이성재 사기 혐의로 체포.
  • 이성재 출소.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