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출생주의

최근 편집: 2023년 6월 15일 (목) 09:16

개요

은 좋고, 죽음은 더 좋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알아 버렸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혼, 가족, 더 나아가 모든 사회 규범에 대한 내 두려움은 거기서 온다. 자기 자신의 결함을 자식에게 전달하는 것, 그래서 자신이 겪었던 시련을, 어쩌면 더 지독한 시련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것은 범죄 행위다. 내 불행과 내 고통을 이어받을 사람을 낳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부모들이란 모두 무책임한 자들이거나 살인자들이다.

선한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그렇게나 노력하면서, 아이들의 모든 고통을 예방하는 확실하면서도 유일한 방법이, 그 아이들을 애초에 태어나지 않게끔 하는 것이란 사실까지는 대부분 깨닫지 못한다. 그런 이들이 그토록 적다는 점은 매우 유별난 일이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결정은 그 아이들의 부모가 될 뻔한 이들의 이익에 반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을 위해서는 최선의 결정이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은 존재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치열한 고통을 경험할 필요도 없이, 비존재의 축복받은 고요를 영원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출생주의(反出生主義, Antinatalism)는 인간의 출생을 부정적으로 보는 철학적 입장이다.

반출생주의자는 인간이 아이를 만듦으로써 탄생되는 존재에게 그와 미리 합의되지 않은 고통 가능성을 강제하고, 이는 도의적으로 옳지 않기에 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주 2]

출생주의는 생물본능에 대한 애착과 번식 욕구 등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상이기에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아무래도 지배층과 기득권 입장에서는 피지배 집단의 인구 증가를 원하기 때문에 출산을 장려하는 경향이 있다. [주 3] 근대까지만 해도 안락사를 포함한 자살·독신[주 4]·무자녀 부부·동성애 등 출산을 저해하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은 악랄하게 탄압당했고, 현재도 지역에 따라 탄압당하고 있다. 그리고 탄압까진 아닌 지역도 이러한 개인의 선택권을 무시하려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번식하는 게 자연의 섭리이며 따라서 도덕적으로 옳다는 식의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는 경우도 많다.

세상은 온갖 종류의 고통·불행·악이 상존하는 곳이고, 고아나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는 아이들도 많다. 또한 인구도 과밀하여 인간이 충분히 귀하게 여겨지지 못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끊임 없이, 동의 없이 부모에 의해 이 세상에 강제로 던져진다(하이데거의 '피투성被投性').[주 5] 물론 누군가는 충분히 배가 불러서 세상에는 쾌락행복을 포함해서 좋은 것도 있다고 말하겠지만, 그것들이 개인의 고통과 불행이라는 부조리를 상쇄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부조리는 상존할 수밖에 없다.[주 6]

인간과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기성 가치의 권위를 부인한다는 점에서 염세주의허무주의[주 7]와도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사상들이 자연과학무신론적 사고를 포함해서 인간의 이성이 급격하게 발전하던 근대부터 확립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창조주(조물주)라는 개념이 사실상 궁극의 부모[주 8]와 같다는 점에서 신무신론·반신론·반종교주의와 통하는 면도 있다.

현대코펜하겐 해석 이후에도 여전히 거시계는 결정적이다. 인간은 손상·뇌수술·호르몬 등으로 인해 성격이 바뀔 수 있다.[주 9] 기억은 저장하는 과정에서 변질되거나, 그냥 시간이 지나기만 해도 변질된다. 최면이나 반복적인 상담만으로도 오기억을 심을 수 있다. 심지어 뇌에 가해진 특정 자극을 의식하지 못할 경우 그 자극으로 인한 반응을 자신의 의지로 행동한 것이라고 오해한다.[주 10] 따라서 ·사후세계·영혼·자유의지 등은 존재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으나 존재 가정이 무요하다.[주 11] 즉 과학적인 관점에서는 반출생주의를 배격하는 출생 편향적 신앙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이 부분 또한 종교적, 신비주의적 사고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출생주의 사상에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실 종교적·신비주의적 입장이라고 모두 반출생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영지주의나 이에 영향을 받은 여러 교파는 임신 및 출산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정치 기득권과 이해가 일치한 종교 기득권에 의해 이단, 사이비로 몰려 잔혹하게 탄압돼왔다.

인도 종교[주 12]윤회 사상도 반출생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고통의 유전적 재생산을 은유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불교·자이나교 등은 세상을 고통으로 가득찬 곳으로, 인간을 윤회의 고통에 시달리는 존재로 인식하는데, 이는 반출생주의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마찬가지 관점에서, 해탈열반 개념 또한 깨달음을 통해 번식 욕구라는 번뇌를 극복하고 되풀이되는 삶과 고통의 굴레를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주 13]

현대의 인구과잉으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인권 문제, 환경 파괴와 자원 고갈 문제, 인간의 영리를 위해 잔인하게 희생당하는 가축과 동물 실험 같은 동물권 문제 등 생태주의와도 관련이 있다.

반출생주의적 담론에 대해 혼자 자살하면 되지 않냐는 조롱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는 무섭고 싫은,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죽음을 구태여 대물림하지 말자는 반출생주의의 취지를 망각한 논점 일탈이자 본능적 거부감 표출에 불과하다. 100년을 살아도 죽음이 임박하면 두렵고, 자는 중에 의식하지 못한 채 안락하게 죽길 바라는 법이다. 하물며 끔찍한 고통 때문에 차라리 죽여달라는 불치병 환자도 어떻게든 안락사를 바랄지언정, 자살은 쉬이 하지 못한다. 이렇듯 자살은 이미 태어난 이상 고도로 진화한 생존 본능 때문에 실행이 어렵고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울 뿐더러, 사회 역시 자살을 억제하기 위해 편안한 실행 방법을 최대한 차단하고 불편과 고통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듯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 강제로 소환하는 것을 옹호하면서 억울한 개인이 자살하면 그만이라는 것은, 결국 자살하는 피해자를 계속 양산하는 부도덕을 옹호하는 것과 같다. 그 외에도 자살자 주변인이 겪을 수 있는 정신적 고통 문제 등이 있다.

기독교와의 관계

기독교 주류 입장은 반출생주의(Antinatalism)가 배격하는 출생주의(Natalism)를 지지한다. 이 때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일렀다는 구절, 마태복음에서 예수모세유대교도 허용은 했던 이혼을 엄금하고 하느님이 허락한 경우에만 결혼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는 구절[주 14] 등을 그 근거로 든다.[주 15] 어차피 정치 기득권이나 종교 기득권이나 부양받을 피지배 계층 인구가 많을 수록 좋은 게 보통이고 이런 면에서는 서로 이해가 일치하는 편이다. 따라서 출생주의는 지배층과 종교가 유착[주 16]하여 상부상조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반출생주의는 기독교와 상극에 가깝다.

기독교는 멋대로 자신이 그렇게 창조해놓고 무고한 아이와 동물까지 홍수로 몰살시킨 창조주를 절대선으로 숭앙하는 종교이다. 그리고 인류가 의 존재로 인해 고통받는 이유를 자유의지 탓으로 돌리는데, 아담하와가 창조주에 의해 강제로 주입당한 자유의지로 인해 창조주의 맘에 안 드는 일을 하고 에덴에서 추방당했다는 이유로 인류 전체에게 연좌제원죄를 적용,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대속' 신앙을 요구한다.[주 17]

이 때 불신자는 죽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는데, 자녀가 불신자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만약 기독교인 부모가 그 자녀를 신실한 신자로 키우지 못하고 천국에 보내는데 실패한다면, 이 부모는 설령 고의가 아니더라도 그 어떤 악질의 아동 방임·학대·살해 부모가 자녀에게 가한 고통보다 더 끔찍한 지옥의 고통을 자녀에게 선사한 죄인이 되고 만다. 이런 끔찍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일단 낳고 본다는 것은 너무나도 무책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아예 낳지 않는다면 적어도 불신자인 자식은 생기지 않으며 최소한 이런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신학계에서는 연옥 같은 개념을 지어내 물타기를 시도하거나 견강부회식 성경 해석으로 나름의 합리화를 시도하지만, 평신도 중 이런 부분에 대해 충분히 고민한 후 낳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비자발적 불신자의 처우 문제[주 18] 등은 지옥에 대해 회의하게 만든다.

자녀를 낳고 싶고 그럴 여력이 있다면 그만큼 입양을 하면 된다. 모세·예수·에스더는 사실상 입양아였고, 로마서·에베소서 등에서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에 기독교에서는 입양 역시 장려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혈연에 집착하는 기독교인이 많다.

의외로 성경에는 반출생주의를 대변하는 듯한 구절이 곳곳에 존재한다. 솔로몬 왕의 저작이라는 전승이 있는 전도서에는 죽은 자가 산 자보다 더 복되고 태어나지 않은 자는 더더욱 복되다는 실레노스의 지혜와 유사한 구절이 있다. 그 외에도 욥기, 예레미야 등에 생일을 저주하며 차라리 어머니의 자궁에 있을 때 죽는 게 좋았다는 구절이 존재한다.

사실 기독교(가톨릭개신교정교회 등)가 인구 면에서 대표적일 뿐, 유대교•이슬람교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자체가 출생주의적인 면이 타 종교에 비해 강한 편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지옥의 이미지가 하느님의 공의에 어긋나며 성경 내용과 상이하다는 이유로 위와 같은 지옥을 부정한다. 또한 생일을 이교적·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성경 구절들을 근거로 생일을 기념하지 않는다.

또한, (보통 주류 기독교 입장에서는 이단으로 취급되지만) 기독교의 분파 혹은 기독교에서 유래한 종교인 거세파 (스콥치) 및 보고밀파 등은 반출생주의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다.

데이비드 베너타의 논리

위 사상은 본디 명확한 구심점 없이 파편화된 상태에 가까웠으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철학자이자 케이프타운 대학교철학 교수로 재직 중인 데이비드 베너타에 이르러 본격적인 논증이 이뤄졌다.

그의 저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존재하게 되는 것의 해악」에 따르면,

  • 고통은 나쁘다.
  • 쾌락은 좋다.
  • 고통의 부재는 좋다. 이를 향유할 존재가 없더라도.
  • 쾌락의 부재는 나쁘지 않다. 그 부재가 쾌락을 빼앗긴 상황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 행복한 사람을 또 만들어야 할 도덕적 의무는 없지만, 불행한 사람을 또 만들지 말아야 할 도덕적 의무는 있다.
  • 아이를 만들기로 한 이유로 아이를 가질 때의 이익을 드는 것은 이상하지만, 아이를 만들지 않기로 한 이유로 아이를 가지지 않을 때의 이익을 드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 우리는 우리의 결정 때문에 태어난 누군가가 고통을 느끼는 것으로 인해 그 결정을 후회할 수 있지만, 우리의 결정 때문에 태어나지 않은 누군가가 쾌락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그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 우리는 누가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에 슬퍼하지만, 누가 태어나지 않아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에 슬퍼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위 논리에 거부감을 느끼고 삶의 질에 대해 비이성적인 평가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낙천주의 편향: 우리는 우리의 과거[주 19], 현재, 미래를 긍정적 관점으로 왜곡해서 보는 경향이 있다.
  • 적응: 우리는 우리의 주변 상황에 적응을 해서, 상황이 더 나빠지면 행복의 기준을 그에 맞춰 낮춘다.
  • 비교: 우리는 주변의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우리 삶을 판단하며, 대부분 자신의 상황보다 더 나쁜 것과 비교해서 자신의 행복의 가치를 과대평가한다.

베너타의 반출생주의 논증은 '비동일성 문제(미래 개인의 역설)'[1]의 유력한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한국에서의 대두 배경

청년층의 사회 문제

과거부터 존재는 해왔으나 터부시되던 담론이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재조명되는 것은 이 시기 청년 세대의 실업 문제 같은 경제적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현실 여건상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고, 더 이상 자식에게 노후 부양을 기대할 수 없다면 자식을 낳지 않는 편이 예비 부모 입장에서나 태어날 자식 입장에서나 더 나을 수 있다. 실제로 호황이 끝나고 장기 불황 속에서 청년 실업이 심화되자 제대로 독립하지 못하는 자식을 계속 부양해야 하는 부모의 사례가 적지 않다. 게다가 이전의 개도국 호황은 다시 기대하기 어렵고, 앞으로도 불황이 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과적으로 출산 기피 현상을 부추긴다.

국가와 사회가 여성을 애 낳는 기계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에 반발하여 퍼진 '비혼 비출산'[주 20]이란 구호는 한국에서 반출생주의를 구체화하고 재발견하는 데 공헌하였다. 실제로 '반출생주의'라는 확실한 키워드는 주로 여성계 언론여초 커뮤니티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다. 낙태(인공 유산) 또한 대부분 긍정하는 편이다.[주 21] 기독교에 대해서도 낙태에 대한 입장차나 교리에 내재된 성차별 때문에 과거에 비해 거부감을 가지는 편이다.

기성 세대에 대한 분노와 사회에 대한 절망도 현상의 원인이라 볼 수 있다. 특히 한반도 사상 최고 경제 호황의 혜택[주 22]을 누린 민주화·운동권·386세대는 정의를 부르짖으며 군사독재 정권을 타도했으면서도, 자신들이 기득권에 다가가자 자신들에게 유리한 적폐가부장적인 권위주의·전체주의 요소를 답습하는 위선적인 면모를 보였다. 또한 청년 세대에 대한 갑질·성범죄투기 같은 추태가 가장 자주 보고되는 세대이며, 그러면서도 베이비붐을 겪은 세대답게 '그래도 결혼은 하고 손주는 보여야 효도[주 23]지.' 같은 식으로 청년 세대의 절망에 공감을 하지 않는 면이 있다.

다만 위 중년 세대도 전쟁 직후 인구 조절 없이 산업화 세대에 의해 태어나 많은 형제자매 속에서 방목되듯 자란 것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물론 산업화 세대 또한 자기 부모 세대에 의해 일제강점기 말에 태어나 한국 전쟁을 겪고 사회 분위기에 세뇌된 채 낳아댄 것이므로 어느 세대든 책임을 완전히 물을 수는 없다. 그리고 베이비붐을 일으킨 노년 세대는 OECD 노인 자살률 및 빈곤율 1위로 그 대가를 치루고 있다.

즉, 노예처럼 살고 대물림하기 싫다는 심리는 위와 같은 기성 세대의 모습을 보고 학습한 결과이며, 결과적으로 아이 낳기 싫은 나라를 물려준 건 기성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성별 무관 청년 세대에서 반출생주의적인 사고를 공유하는 경우가 증가하였다. 물론 아직은 결혼과 출산을 원하지만 포기(당)하거나, 단순히 관심이 없는 경우에 머무는 비중이 높다.

도의적 문제

청년층의 경제적 문제나 페미니즘이 반출생주의적 사상에 대한 공감을 촉진한 것은 맞고, 언론 보도 기사도 여기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설령 자신의 노후가 걱정되더라도 자식에게 불행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선의가 본질이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반출생주의 사상을 가진 청년 세대의 경우는 결정론 또는 수저 계급론[주 24]을 믿으며 '흙수저 부모(이하 흙부모)'의 출산은 자식에게 죄 짓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흙부모' 말고도 '번식'이라는 비하적 명칭도 존재한다. 일본의 경우 어느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전형적으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저학력자 부모를 지칭하는 '도큔(DQN)'이라는 멸칭도 존재한다.

사실 높은 이혼율, 넘쳐나는 고아와 자격 미달 부모 등을 생각해보면 무작정 결혼, 출산과 다둥이 가정을 장려하는 상황은 적나라하게 말해서 국가와 기성 세대를 부양할 노예를 생산하라고 독촉하는 것이며 결국 세상에 만연한 부조리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오히려 생물본능인 생물의 본능인 번식욕을 극복하여 낳지 않거나, 남이 무책임하게 낳은 아이를 대신 입양하는 부모가 훨씬 양심적이고 이타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친자가 아니라 입양할 때도 최소한의 자격을 심사하는 게 현실이다.[주 25] 인간이 아닌 동물판 자격 미달 부모인 애니멀 호더조차도 비난받고 동물 학대로 처벌되며 일부 선진국에선 예방을 위해 키울 자격이 있는지 재산과 주거를 심사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임신과 출산은 지구상 그 어느 나라도 최소한의 자격 심사조차 없으며, 오히려 저출산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 불안정한 형태의 출산도 권장하려 드는 판국이다. 이는 도덕적으로 일관성이 없을 뿐더러 국익과 애국을 빙자한 아동 학대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입양아 수출대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그다지 고아 문제가 개선이 되지 않고 있으며, 국내 보육원의 학대 및 비리 문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어린이집도 아동 학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항의할 부모조차 없는 아이의 경우는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인데도 무턱대고 새로운 불행 가능성만 더 생산하게 장려하는 건 부도덕하다.

또한 입양은 물론 애완동물조차도 키울 자격을 논하는 추세인데, 입양할 자격조차 없는 무능한 부모가 아이를 낳는 것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건 끔찍한 모순이다. 심지어 제3세계에서는 상당수의 부모가 아동에게 노동·성노동·인신매매 등을 강요하거나, 구호품을 노리기 위한 선전 수단으로 아이를 이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애초에 정말 태어날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라면, 예컨대 본인 치료에 필요한 투약에 기형 유발 우려가 있다면 그동안은 피임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주 26] 마찬가지로 정말 태어날 아이를 위한다면 경제적으로 곤란할 때는 낳는 것을 주저하는 게 정상이라 할 수 있다. 즉, 단순히 '돈 없으면 애도 낳지 말라는 거냐!'라는 생각으로 부유층에 대한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지극히 본능적이고 이기적이다.

자녀는 부모의 즐거움을 위한 애완동물도, 대리만족을 위한 아바타도, 노후를 위한 보험도 아니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는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역설하면서도 태어날 아이의 높은 불행 가능성을 억지로 외면하고, 부모의 번식욕 충족과 기성 세대의 노후 부양만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여태까지는 기득권은 체제 유지 및 부양 기반을 얻고 저소득층 부모는 동물적 번식욕을 충족하는 나름대로의 윈윈 전략이 성립했을 수 있다. 그러나 교육과 매체로 인해 눈높이가 높아진 자식 세대의 경우는 더 이상 불행의 대물림을 원치 않는 편이며, 출산율도 기성 세대에 비해 현저히 낮다.

심지어 부유층 자녀조차도 행복을 장담할 수 없다. 그들 역시 지위에 따르는 부모의 체면 유지를 위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강요받아 정신질환에 시달리기도 하는 등 나름의 고충이 있다.

그 어떤 악질의 독재자, 범죄자나 사회 주류에게 멸시당하는 장애인, 정신질환자, 성소수자 등의 소수 집단도 결국 비자발적으로 세상에 태어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대에 들어 3D 업종 수요로 인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면서도 밥그릇 문제 때문에 혐오받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도 결국 따지고 보면 그 나라의 흙부모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난민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흙부모가 만악의 근원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주 27]

한 발 더 나아가면, 설령 물질적·유전적·정신적 흙부모가 아닌 이상적인 부모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자녀가 반드시 행복하게 살 거라는 보장은 없다. 결국 사회에 불행과 고통이 상존하는 이상, 정도의 차이일 뿐 임신 및 출산 자체가 악행일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금수저도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다. 하물며 사람이 살다 보면 아무리 조심해도 교통사고 등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 있는데, 이국종이 밝힌 바와 같이 저소득층의 경우 3D 업종에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 목숨을 잃거나 영구적인 장애 또는 후유증이 남을 만한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설령 부모가 별 미련이나 큰 고통 없이 죽더라도 남겨진 자식은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힘들어질 공산이 큰데, 국가유공자의 유가족조차도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가 어떤 형태로 남겨진 자녀를 괴롭힐지는 아무도 모르고, 이에 대한 완전한 방비도 불가능하다.

또한 이미 세계 대전이 두 번이나 터진데다, 국제 정세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생각했을 때 앞으로도 전쟁국지도발[주 28]로 인해 미래 세대가 참화를 겪을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확히는 수정란이 고통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태아로 자란 순간부터 절대 고통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육체적·물질적 고통은 차치하더라도 정신적·감정적 고통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인간은 무시당할 때는 모멸감을 느끼고, 만인 위에 군림하여 숭배받아도 고독감을 느끼는 등 양면성을 지닌다. 심지어 같은 사건을 놓고도 좋은 동시에 싫은 양가감정마저 느낀다.[주 29] 그리고 예정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고통, 더한 삶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미리 자살하려 마음 먹는 것조차 고통, 해탈 끝에 도달한 허무감조차도 고통이다. 따라서 고통을 피해야 할 악이라고 여긴다면, 임신 및 출산 행위를 지양해야 할 악행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출산 이후뿐만 아니라 출산 행위 자체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비좁은 산도를 비집고 나와 첫 숨을 쉬는 고통은 차치하더라도, 출산은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에도 여전히 산모와 산아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행위이다.[주 30] 결국 이런 위험성을 부모가 정확히 알고 임신했다면, 출산시의 사망 사고는 역설적이게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간접적 자살 또는 살인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물론 산모야 자신의 위험을 감수할 수도 있고, 자동차 이용 등 문명의 이기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성은 사회적인 호혜 계약으로 감수하는 게 사람이다. 그러나 아이의 생명과 관해서는 아이와 합의할 방법이 전무하다. 이 또한 출산을 권하는 사회와 종교가 내포하는 모순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세계 어디에도 '임신치사죄'는 없다.

결국 아이의 행복이 더 클 수도 있고 자긴 잘 키울 자신이 있으니 낳아도 된다는 주장은 무책임한 낙관론에 불과하다. 특히 부모 자신의 욕심 때문에 아이가 겪을 인생 리스크를 아이가 대신 감수한다는 점에서 뻔뻔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아이 인생이 행복으로 끝난다면 다행이지만, 불행하다면 책임질 방법이 전무하다. 법정 피고인의 무고 가능성은 따지면서, 그보다 더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 아이의 불행 가능성은 외면하는 건 일관성이 없다. 그리고 설사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더라도, 계속 자녀를 낳고 이를 대물림하다 보면 개중에 불행한 인생은 반드시 생겨나기 마련이다.

결정적으로, 부모는 아이가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 낳는다. 부모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아이가 충분히 행복한 삶을 누린다 가정하더라도,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이상 아이는 죽음의 공포와 행복한 만큼 더 살고 싶은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아이가 원치 않는다 해도 아이의 행복은 아이의 생명과 함께 죽음이 앗아간다. 이렇게 병 주고 약 준 후 다시 빼앗는 듯한 상황을 만드는 이유가 아이를 위해서라고 할 수는 없으며, 애초에 이런 상황을 안 만드는 것이 낫다. 결국 아이를 존재시키는 행위는 그 자체로는 결코 아이를 위한 이타주의적 행위일 수 없으며, 이미 태어난 세대의 집단 이기주의적 행위에 불과하다.

설령 안락사가 전면 허용되더라도 죽기 전까지 이미 고통을 겪은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문제도 있다. 예컨대 아무나 납치해서 원치 않은 고통을 주다가 미안하다며 죽이거나 자살하게 만드는 것은, 그걸로 고통이 끝난다 한들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다. 이러한 리스크를 굳이 감수하는 것부터가 결과에 상관 없이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악행이라는 것이다.

부모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단 한 명이라도 비출산으로 마음을 돌리게 만든다면, 어디까지 대물림될지 모르는 수많은 불행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선행일 수 있다. 그리고 무책임한 부모에게 유기당한 아이를 입양까지 해서 잘 키운다면 지고의 선행일 것이다.

인물

  • 데이비드 베너타: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대학교 교수, 철학자, 작가. 자세한 사항은 소개, 서평 참고. 2019년 1월 조던 피터슨과 반출생주의에 대해 논쟁을 벌여 판정승을 거뒀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독일의 철학자. 반출생주의로 해석되는 쇼펜하우어의 견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본능적 욕망으로 인해 고통이 생겨나고, 존재는 고통으로 가득하다. 세상은 쾌락보다 고통이 더 많고, 쾌락이 고통을 배상할 수도 없다. 따라서 종합적으로 봤을 때 인생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며, 맹목적인 삶에의 의지에 굴복하여 아이를 만드는 것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하며 부도덕하다. 따라서 삶은 비존재의 축복받은 고요를 방해하는, 이로울 것이 없는 사건으로 여길 수 있다.
  • 에밀 시오랑: 루마니아 출신 작가.
  • 자코모 레오파르디: 이탈리아의 시인. "태어난 생물에게 생일은 한탄해야 하는 날이다." "모든 것은 죄악이다. 내 말은 모든 것이 그러하며 사악하다는 뜻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죄악이다. 모든 것은 사악한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존재는 사악함이며 사악함을 위한 사제로 임명받았다. 죄악은 그 목적이며 마지막 목적이며 우주다. 유일하게 좋은 것은 비존재뿐이다."
  • 카림 아케르마: 카림 아케르마는 인간이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으로 선한 창조주를 가정하여(신정론), 인위적인 고통 생산으로부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더 이상 무리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쾌락의 최대화보다 고통의 최소화를 가장 중시하는 부정적 공리주의 측면에서 반출생주의를 지지한다.
  • 테오필 드 지로: 벨기에 작가이자 사회 운동가. 동지와 함께 '비부모의 날'을 정해 기념했다. 그는 태어나지 않을 권리, 그리고 이것이 이미 침해된 경우 좋은 부모에게 태어날 권리를 제창했다. 또한 아이를 낳는 대신 입양을 권한다. 유튜브
  • 페테르 베셀 삽페: 노르웨이의 작가. 아이가 동의 없이 태어난다는 것을 고려하여, 결혼했으나 아이를 낳지 않는 걸 선택했다. 그는 인간의 의식이 과잉 진화한 탓에 지나친 인식·이해 능력을 지니게 됐고, 그 탓에 존재하지 않는 정의와 의미에 대해 망상하며 버티는 비극적인 존재로 파악했다. 그리고 이런 부자연스러운 현실 왜곡과 인간 초월에 대한 갈구를 끝낼 방법은 출산을 회피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자세한 사항은 위키백과반출생주의 문서와 페테르 베셀 삽페 문서 참고.
  • 훌리오 카브레라: 브라질에 거주하는 아르헨티나 철학자. 비존재를 막연히 나쁘게 보는 긍정적 윤리의 모순을 지적하며, 도덕적으로 보다 일관성 있는 '부정적 윤리'를 주창했다. 그는 인간의 삶은 구조적 부정성으로 인해 여러 고통 요소를 지니고, 살면서 누군가를 조작하고 해를 끼칠 수밖에 없기에 근본적으로 도덕적 실격이라 여긴다. 또한 사람들이 아이들을 단순히 미적 대상으로 여기며, 아이는 부모를 위해 구조적으로 부정적인 세상에 던져진다고 본다. 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행위는 최악의 가해 행위이자 자율성 훼손 행위라고 주장한다. 자세한 사항은 위키백과의 반출생주의(영문) 문서와 훌리오 카브레라(영문) 문서 참고.
  • 마광수: 국어국문학자. "나는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못내 억울하고, 게다가 적반하장 격으로 세상에 내보내준 은혜를 고마와하라고 들입다 강조해대는 사상이 얄밉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식에게 효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자식은 그저 '애완용'으로 길러야 한다." - <마광수의 뇌구조> 中
  • 무라카미 하루키: 일본의 소설가. "아니야, 그런 문제가 아니야. 무슨 뜻이냐 하면 생명을 만들어내는 일이 정말로 옳은 일인지 어떤지, 그걸 잘 모르겠다는 거야. 아이들이 성장하고, 세대가 교체되고,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거지? 산을 더 허물어서 바다를 메우고, 더 빨리 달리는 차가 발명되고 더 많은 고양이가 치여 죽어. 그뿐 아니겠어?" - <양을 쫓는 모험> 中
  • 라파엘 새뮤얼: 뭄바이의 사업가이자 인도인 반출생주의자. 반출생주의를 근거로 변호사인 부모를 고소했다. BBC 기사
  • 이한: 변호사, 법학 박사. 데이비드 베너타의 저서「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의 역자. 윤리학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시민교육센터
  • 레스 나이트: 미국의 사회 운동가. 그는 사람들에게 자발적 인류 멸종 운동(Voluntary Human Extinction Movement, VHEMT)에 동참하길 권한다. VHEMT 참여자들은 반출생주의를 통해 인구과잉으로 인한 기아 문제, 자원 고갈 문제 등을 해결 또는 억제할 수 있다고 여긴다.[2] 하지만 이들은 자살 혹은 살인을 권장하지도 않고, 강제 불임 수술을 통해 사람들이 출산을 하지 못하게 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태어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으니까 최대한 오래, 행복하게 살다가 가자고 할 뿐. VHEMT 공식 홈페이지

종교 및 단체

  • 자이나교: 자이나교는 불교의 교조 석가모니와 동시대에 태어나, 신분 역시 비슷하게 왕자였다고 전해지는 마하비라[주 31]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한다. 자이나교는 사실상 인도 서북 지방에서만 계승되고 있는 극단적인 금욕주의 종교로서, 자이나교의 승려는 불살생(아힘사)을 위해 나체로 지내거나(공의파) 헐벗는 등(백의파) 계율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도구[주 32]만 소유한다. 또한 채식은 물론이고 그조차도 죽지 않게 일부를 떼어 먹을 수 있는 것만 먹으며 벌레가 물어도 방치하는 등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이나교의 5계[주 33]는 종교학적으로 뿌리(브라만교)가 같은 불교의 5계[주 34]보다 요구 조건이 훨씬 더 엄격하다. 마하비라는 걸식을 위한 그릇조차 거부하여 손을 모아 받아먹고 성욕에서 비롯되는 행위 자체를 금했다고 전해진다. 자이나교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해탈 방법은 식욕마저 버린 아사이다. 이러한 자이나교의 교리는 설령 자신이 고행할지언정 미물을 포함한 다른 존재에게 주는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영지주의: 영지주의는 당대 기독교 주류에 의해 탄압당했고, 이단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남용되다 보니 지칭하는 저변이 지나치게 넓긴 하지만, 기독교 금욕주의 관련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성욕과 식욕을 특히 죄악시했으며, 결혼이나 출산을 부정적으로 보는 기독교 관련 교파들은 거의 모두 영지주의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 엔크라테이아파: 엔크라테이아파는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절제(encrateia)'를 미덕으로 삼았던 기독교 이단 교파로, 육식•음주•결혼•성생활 등을 사탄을 돕는 일로 여겨 금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탄생이 죽음으로 이어지므로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출산을 멈춰야 한다고 보았다. 시리아의 타티아누스는 그리스 교육을 받고 진리를 찾다 발견한 기독교로 개종하는데, 스승 사후 엔크라테이아파의 지도자가 된다. 그는 성찬례의 술을 물로 대체하는 등의 일로 인해 파문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 마르키온파: 기독교인 중 최초로 정경(正經)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 마르키온은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이 철저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구약에서 묘사된 유대교의 하느님이 얼마나 모순적이며 악의적인지 신랄하게 비판하며, 사랑의 하느님인 예수의 하느님이 불행과 악이 만연한 불완전한 세상을 창조할 리 없다고 믿었다. 또한 성교의 난잡함이나 임신 및 출산의 고통을 납득하지 못했으며, 결혼을 유대교의 하느님을 돕는 일로 간주하고 배격했다. 결국 이단 선고 후 탄압받고 마니교에도 흡수되는 등 세력이 쇠했다.
  • 보고밀파, 카타리파: 불가리아에서 기원한 기독교의 이단 교파인 보고밀파는 기독교의 선한 하느님이 이런 불합리한 세상을 만들었을 리 없다고 여겨 악마가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출산은 악마를 기쁘게 할, 육체의 노예를 만들어내는 행위로 파악했다. 따라서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고, 생식을 목적으로 하는 성행위를 경원시했다. 대신 성욕 해소 대안으로 항문성교를 권장했다.[주 35] 이후 보고밀파는 대부분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된다. 카타리파는 보고밀파의 시각을 공유했으며, 결국 알비 십자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말살당했다.
  • 마니교: 페르시아에서 기원하였으며, 조로아스터교·유대교·기독교·불교 등 온갖 종교의 교리를 융합한 종교인 마니교는 육식, 간음, 출산 등 육적인 것을 고집하면 환생의 고통을 겪는다고 설파했다. 위협적인 성장세를 보이던 마니교는 교조 마니가 처형되는 등 기득권 종교들에 의해 모진 박해를 받았다. 그 박해 와중에 마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인물이 바로 기독교의 교부로 추앙되는 아우구스티누스이다.
  • ANP(The Anti-Natalist Party): 영국의 반출생주의 정당. 이들은 단지 불필요한 쾌락을 위해 불필요한 고통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출산 억제를 위한 세법 도입을 주장하기도 한다. ANP 공식 홈페이지

영화

  • 가버나움: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하고 싶어요...” 신분증도 없고, 출생증명서도 없어서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자인. 법정에 선 자인에게 왜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지 판사가 묻자 자인이 대답한다. "태어나게 했으니까요. 이 끔찍한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게 그들이니까요."
  • 진격의 거인

바깥 고리

언론 보도

주석

  1. 이와 비슷한 내용의 그리스 전설이 있다. 미다스 왕이 디오니소스의 시종이자 거인 현자인 실레노스를 붙잡아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 뭔지 물었다. 그러자 실레노스는 웃으며 대답했다. "가련한 하루살이 종족이여! 우연과 간난(艱難)의 아들이여! 듣지 않는 것이 너희들에게 좋을텐데, 어째서 나로 하여금 말하기를 강요하는가? 너희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너희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다시 말해서 태어나지 않는 일, 무(無)라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에게 다음으로 좋은 것이란 곧 죽는 것이다." 소포클레스희곡에도 비슷한 대사가 있는데 위 전설을 변용한 것일 수 있다. 쇼펜하우어, 니체도 비슷한 말을 한 바 있다.
  2. 이에 대해 합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아니라는 반론이 있다. 예컨대 아동은 판단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성인의 아동범죄에 아동이 설득당해 동의하더라도 무효로 간주된다. 하물며 태어나기 전의 아이는 저런 동의를 얻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오히려 반출생주의의 이유가 된다. 그리고 아이를 고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아이의 행위의 자유를 크게 제한할 수밖에 없는 것 역시 아이에게는 고통이다.
  3. 물론 이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도 있다. 계획생육정책 등 여러 국가가 시행한 산아제한정책이 바로 그것. 그러나 이것은 당시 맬서스가 제기한 인구 과다로 인한 사회 붕괴 우려 때문이었으므로, 현 사회 구조 유지를 추구하는 출산장려정책과 사실상 목적이 같으며 본질적으로는 다를 게 없다. 실제로 맬서스의 인구론이 무너지고 당장 더 문제가 되는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선 상태.
  4. 가톨릭 등의 경우 성직자에 한해 독신을 요구하지만, 이는 세습을 막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
  5. 소위 '낳음당했다.', '낳은 죄' 등으로 표현되는 부모와 자식 간의 비대칭성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낳아줬으니 감사히 여기고 효도해라.'라는 적반하장식의 세뇌교육을 빙자해 이루어져온 게 현실이다. 비단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욕구를 못 이겨 낳은 이상 당연한 양육 의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키워줬다는 생색을 내는 경우는 흔하다.
  6. 질서혼돈, 논리비논리처럼 행복과 불행, 쾌락과 고통은 공존하기에 구분될 수 있는 개념이다. 설령 다수의 쾌락과 행복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소수의 불행과 고통을 정당화할 순 없는데, 심지어 현실의 불행과 고통이 소수라고 볼 수도 없다. 그리고 행복했던 기억도 죽음의 순간엔 이미 과거일 뿐이다.
  7. 허무주의도 능동적 허무주의가 존재하는 등 꼭 태도가 무기력하지만은 않다. 그리고 반출생주의 또한 이미 태어난 사람은 이왕 사는 거 되도록 즐겁게 살자고 말한다. 단지 번식 욕심은 아이를 위해 포기하고 참자고 설득할 뿐이다. 반출생주의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상대와 어떠한 암묵적 합의조차 없이, 그 상대에게 고통 가능성을 강제하는 것은 나쁘다는 도덕적 당위에 기반한 일관성 요구이며, 그 결과 현재로서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최선으로 여겨질 뿐이다.
  8. 보통의 부모라면 그들 역시 부모에 의해 강제로 태어나 사회적으로 세뇌된 존재이기에 이해와 용서의 여지가 있지만, 스스로 존재한다는 전지전능한 부모는 그럴 여지도 없다. 특히 현세의 고통도 모자라 맘에 안 드는 자녀를 위해 각별히 영원한 고문장까지 예비한 부모라면 현대의 관점에서는 악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9. 전두엽이 큰 충격을 받아 손상되거나 종양에 침식될 경우, 단기 기억 상실·언어 장애를 경험하거나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폭력성을 띠기도 한다. 19세기에는 정신질환 치료를 목적으로 전두엽을 헤집는 수술이 성행하기도 했는데, 얌전해지는 대신 삶에 있어서 대부분의 의욕을 잃거나 사물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그리고 우울증세로토닌도파민노르에피네프린멜라토닌 등 호르몬의 결핍 및 불균형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 1990년대 미국에서 프로이트를 흉내내던 상담사들에 의해 많은 아이들이 부모가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굳게 믿게 되어 엄청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또한 뇌에 연결한 전극을 통해 손을 움직이도록 만든 실험, 과거 간질 발작을 막기 위해 뇌량을 절개했던 분리뇌 환자 양안에 각각 별개의 그림을 보여주고 행동을 유도하는 실험 등에서 피험자는 유도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으로 그럴싸한 이야기를 지어내고 꿰맞춰 순수하게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행동이라고 굳게 믿었다.
  11. 현상의 원인으로 가정한 존재가 있든 말든 동일하게 해당 현상이 설명 가능하다면 오컴의 면도날 원칙에 의거해서 생략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 예시로 에테르 가설, 플로지스톤 가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등이 있다. 다만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자유의지의 존재를 가정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양립가능론에 기반한 의무론 측면에서 부모에게 굳이 자녀를 낳아 자녀에게 고통과 죽음을 야기한 책임을 묻고 비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12. 카르마힌두교카스트 제도수저 계급론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13. 영국령 인도 출신 법학자 하리 싱 구어는 자신의 저서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출산과 죽음의 순환을 끝내라는 것으로 해석한 바 있다. 아이를 만드는 것이 인생의 고통과 죽음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아이를 만들지 않을 거라는 것.
  14. 이 때 예시 중 하나로 고자를 든 것, 시대상으로나 교리상으로나 결혼하면 출산이 당연시되고 결혼이 바람직한 출산의 자격 조건이었던 것 등을 감안하면 예수 또한 출생주의적인 입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
  15. 다만 기독교 내 근본주의 또는 교조주의적 입장을 제외하면 출생주의가 꼭 절대적인 교리라고 할 수는 없다. 성경에 대한 해석과 적용은 다양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출생주의적인 해석에 절대 다수가 동조적이거나 중립적인 입장인 건 사실이다. 사실 과거에 이에 반하는 교파가 있긴 했으나 이단으로 몰려 말살당한 바 있다. 종교 및 단체 항목 참조.
  16. 현대의 정경유착, 경언유착 등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정치인과 대형 교회의 유착 정황은 자주 목격된다. 미국의 초대형 교회는 대기업과도 맞먹는다. 물론 이는 개신교만의 문제는 아니고, 종교의 자유가 없는 공산권 국가나 일부 예외 사료를 제외하면 전세계 과거와 현재에서 찾아볼 수 있다.
  17. 정말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누가 어떻게 지옥에 갈지 미리 다 알면서(예정설) 그러도록 방치한다는 뜻이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칼뱅•루터 등은 예정설을 주장하는 동시에 신은 무조건 선이니 정당하고(신정론), 자유의지가 악에 물들었기에(루터는 아예 노예의지론을 주장했다.) 악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악의 문제를 해명하려는 신정론의 모순은 에피쿠로스 시절부터 이미 지적되어 있던 것이다('악이 존재하는 한 신은 악하거나 무능하다.'). 전지전능하고 절대선인 신은 분명 다른 좋은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피조물이 고통받을 것을 알면서 이렇게 창조했다는 것은 모순이다. 이에 대해 불완전한 인간이 감히 완전한 신의 뜻을 어찌 아냐고 신앙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다면 모든 신학과 종교 논리 또한 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인간이 멋대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8. 개신교 주류 주장에 따르면, 신앙을 알고 선택할 기회 없이 사망한 아이 등의 경우 천국에 간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영유아 살해, 순교 강요, 종교의 자유 박탈과 전도 금지를 포함한 대대적인 종교 탄압 등 극단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 행위가 타인을 천국에 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실제로 아메리카 원주민 영아를 세례해주고 바로 살해한 스페인 기독교인들의 사례가 있다. 물론 기독교에서는 이런 생각 자체가 신의 뜻에 반하고 용서받을 수 없는 신성모독이므로 생각 자체를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19. '좋았던 옛날' 편향(므두셀라 증후군). 인간은 과거의 기억을 기반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기에 미화된 추억이 미래에 대한 현재의 태도를 결정하기 쉽다.
  20. 이후 '비연애 비섹스 비소비 비돕비' 등이 추가되었다. 이를 6B라고 칭한다.
  21.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별개로 반출생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피임을 안 한 건 죄지만 이미 임신한 이상 낙태를 생각할 정도로 형편 없는 부모한테서 태어나느니 차라리 안 태어나는 게 낫고, 딱히 누가 대신 책임져주는 것도 아니기에 (고통을 느끼는 임신 주차 이전의) 낙태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차악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낙태가 정말 범죄라면 '부모자격제', '무단임신죄' 등을 신설하여 만악의 원흉인 무책임한 임신부터 범죄로 취급해야 순서에 맞는다는 문제도 있다. 그리고 현재 합법인 시험관 아기 시술은 그 과정에서 성공율을 높이기 위해 다수의 수정란을 배양하고 건강한 배아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배아를 전부 폐기하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낙태와 같다. 결국 낙태죄는 선진국 대다수가 그러하듯 한국에서도 위헌으로 판시됐다.
  22. 3저 호황 같은 역대급 성장기에는 어지간히 무능하지 않은 이상 별 스펙 없이도 취직하거나 자영업 후 결혼해서 애 낳고 은퇴하면 가게 차리는 게 가능했다는, 즉 똑같이 무능해도 훨씬 살기 쉬웠다는 주장이 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계급이 과다대표되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386세대가 아닌 동년배 초중졸도 외환위기 전까진 지금 청년에 비해 충분히 사업하기 쉬운 경제 유동성이 갖춰진 환경에 있었다는 것은 부정하긴 힘들어 보인다. 외환위기 이후 호황은 끝나 현 청년층은 사상 최초로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세대가 됐으며, 계층 이동이 경색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기성 세대와 같은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기성 세대 중 상당수가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자기 밥숟갈은 자기가 쥐고 태어난다고 하거나, 노력하면 다 된다고 하면서 꼰대질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세대갈등의 주 원인이기도 하다.
  23. 효 사상은 비판적 관점에서 보면 부모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과 헌신 강요(특히 물질적인 노후 부양)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수직적 사회 부조리가 그렇듯 어린 세대도 시간이 지나면 수혜 대상이 되기에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저출산 등으로 인해 자기 자식에게 더 이상 효도를 기대하기 어렵다면 효도는 계승할 가치를 잃는데, 그 결과 다시 저출산을 부추기는 식으로 순환된다.
  24. 가난은 인간의 평생 지능을 상당 부분 결정하는 아동의 뇌 발달기에 악영향을 끼친다. 또한 비단 재산뿐만 아니라 외모장애 여부 등을 결정하는 유전자와 정서적 환경도 중요하며, 노력 또한 집중력과 노력 가능한 환경에 의한 재능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금전적 스트레스는 사회적 성공을 돕는 집중력·판단력·인내심 등을 저하시키고, 타인과 미래에 대한 신뢰 역시 어렵게 만들어 근시안적인 사고를 갖게 유도한다.
  25. 물론 이렇게 해도 지원금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생긴다. 선진국의 경우 이것을 생계로 삼는 엉터리 부모도 존재한다. 그리고 소아성애자가 더러운 속셈으로 입양하는 것을 다 막진 못하고 아이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26. 이는 부모의 자격과 후손에의 도리를 논하는 '비동일성 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반출생주의는 비동일성 문제의 가장 유력한 해결책이자 결론이 될 수 있다.
  27. 이 흙부모 또한 흙부모에게서 태어나 무작정 출산을 권하는 사회 분위기에 세뇌된 것이고, 이런 식으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빅뱅 자체가 원흉이기에, 결국 부모에 대한 원망도 거시적으로 허무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허무감조차도 따지고 보면 허무하다는 식으로 또 연쇄가 발생하기에 허무주의도 취향에 따라 성향이 갈리는 것이다.
  28. 한국전쟁, 연평도 포격 사건, 천안함 피격 사건 등의 선례 참고.
  29. '영속성 생식기 발작 증후군'의 사례로 알 수 있듯 너무 오르가슴이 잦아도 일상 생활 영위가 불능하기에 자살 충동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지나치게 행복하다고 생각되면 차후 상대적으로 불행해졌을 때 낙차가 두려워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미리 걱정하는 경우도 흔하다.
  30. 그러나 사람들은 잊을 만하면 출산 사망 사고를 접하면서도 위험성을 잘 실감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과거에는 분만의 고통과 후유증을 경감할 방법도 거의 없었고, 임산부 사망률과 영아 사망률이 지금과 비교도 안 되게 매우 높았는데도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했었다. 그리고 아기가 무사히 일정 기간 동안 자라 아버지에게 '인지'되기 전까지는 사람 취급도 안 했다. 애초에 아기에게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부터가 아기에게 자연 환경이 적대적임을 뜻하며, 심지어 임산부의 육체와 정신이 꼭 아기에게 우호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31. 대영웅이라는 뜻이다. 본명은 바르다마나. 마하비라는 엄밀히 말해 자이나교의 교조는 아니나 그에 준한다. 마하비라는 승자, 정복자라는 뜻을 가진 '지나'로 숭상되는데, '자이나'는 이 '지나'를 따르는 자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32. 방울 지팡이, 입을 가리고 물을 걸러먹을 천, 빗자루 등. 이것들 역시 미물조차 최대한 죽이지 않기 위한 도구에 해당된다.
  33. 불살생, 불소득(무소유), 불망어(거짓말 금지), 불탈취(절도 금지), 불음(모든 성적 행동 금지)
  34. 불살생, 불투도(절도 금지), 불사음(간통 금지), 불망어, 불음주
  35. 항문성교를 뜻하는 단어 buggery는 보고밀파가 기원했던 불가리아에서 유래한 말로 알려져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에는 피임법이 발달하지 못했다.
  1. 비동일성 문제는 태어날 자녀나 후손이 겪을 장애나 환경 오염 등의 피해를 막기 위한 부모와 현재 세대의 선택이, 원래 존재했어야 할 자녀나 후손 대신 다른 동일성(정체성)을 지닌 자녀나 후손을 존재시킨다는 역설 또는 딜레마에 대한 윤리적 문제다. 데릭 파핏이 이 문제를 제기한 이래 많은 현대 철학자들이 미래 세대에 대한 도덕적 책임의 근거와 기준에 대해 논쟁하고 있다.
  2. 실제로 중국은 계획생육정책을 시행했고 인도에서도 비슷한 정책을 시행했다. 한국도 군사독재 시절 산아제한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권장이 아닌 강제적인 방식으로 행해졌다는 점에서 인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리고 저출산이 경제 성장 둔화의 원인이 되는 등 국익을 저해한다고 여겨지자 오히려 출산장려정책으로 돌아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