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녀’ 프레이밍의 변주화

흔히 여성적, 남성적이라고 분류되는 통념들 가운데 여성성은 대개 남성성보다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며 부정적인 딱지가 붙는다. 혹은 모든 실수, 잘못, 미숙함 따위가 여성적인 것으로 규정되어 버린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의 질서가 통용되는 주류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여성성을 부정하도록 강요받는다. 혹은 남성이 허용 가능한 여성성만을 갖추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남성이 좋아할 만한 여성에 ‘개념녀’로 명명하고, 그 외 여성은 모두 ‘개념 없는 여자’가 된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실례로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의 여군특집을 들 수 있다. 여군특집은 기존의 진짜 사나이 포맷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양쪽 모두 고강도의 훈련을 요구받지만, 남성의 경우 군 생활의 추억을 되살리는 전역자들이 주를 이루고, 우스운 촌극을 일으키는 캐릭터로서 군 생활이 낯선 외국인들이 등장한다. 반면에 여군들은 모두가 군 생활이 낯선 이들이지만 더욱 가혹한 훈련을 받게 된다. 그리고 프로그램은 이들 여성연예인들이 훈련의 고통을 감내하는 의지를 갖추고 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 망을 구축한다. 이때 훈련의 고통을 감내하는 의지란 단순히 개개인이 프로그램에 성실히 참여하는 것을 뛰어넘어 자신의 여성성을 소거하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진짜 사나이’가 되는 것이다.

즉, 프로그램이 기대하는 것은 명령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과 고된 훈련을 수행하는 의지이다. “여자인 척 하지 마!”, “여자가 그렇게 하는 거지 군인은 그렇게 안 한다.” 여성성은 명령의 성공적인 수행을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군대의 입맛에 맞지 않는 모든 것들은 여성적이라 명명된다. 군필 여성을 추앙하는 동시에 군 관련 지식이 부족하거나 복무 태도가 미숙한 여성을 ‘무개념’으로 묘사해버린다. 자의적 기준에 따른 ‘개념녀’를 걸러낸 뒤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 여성을 죄책감 없이 비난할 수 있는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것이다.[1]

한편, 그런 ‘와중에도’ 이들 여성연예인들은 여전히 예쁘길, 환언하건대, 남성이 좋아하는 여성적 속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길 기대된다. 여성 아이돌의 본분은 그 언제든지 예뻐야 한다며 이들을 가학적으로 ‘진단’하고자 했던 KBS의 설 특집 예능프로그램 <본분 금메달>이 떠오른다. 방송에서는 출연진 동의 없이 실제 몸무게를 측정, 프로필과 비교해 정직함을 측정하는가 하면 모형 바퀴벌레를 던져 깜짝 놀라게 만든 뒤 얼마나 프로답게 이미지 관리를 하는가를 테스트했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은 여자아이돌들의 굴욕적인 표정을 포착해 슬로비디오로 반복 재생하고, 캡처 사진을 들고나와 웃음의 소재로 사용했다. 특히 ‘섹시 댄스 테스트’를 가장한 ‘정직도 테스트’에선 영하의 날씨에 아이돌을 건물 옥상으로 불러 무대의상을 입고 섹시 댄스를 추게 했다.[2]

<본분 금메달>과 <진짜 사나이>의 가학적인 설정에도 여성 아이돌들은 화를 낼 수가 없다.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이들에게 ‘강요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서 ‘개념녀’의 본분을 다 해야 하는 것이다. 비록 <본분 금메달>은 그 황당하고 과도한 설정 때문에 시청자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그러나 대중문화가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은 대개 <본분 금메달>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방법이 교묘하거나, 그 방법은 절대 교묘하지 않더라도 여성혐오가 너무나도 만연하여 쉬이 허용되는 실정이다.

이렇게 <진짜 사나이>를 비롯한 여러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여전히 ‘개념녀’와 ‘개념 없는 여자’의 이분법을 바탕으로 여성혐오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여성혐오 자체를 올바른 징치 행위인 양 시청자들의 공감을 유도하며, 때때로 시청자들은 진실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한편, 이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남성들과 별개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여성들에게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거나 “열폭(열등감 폭발의 줄임말)” 따위의 딱지가 붙는다. 남성들의 여성혐오에 동조하는 여성 또한 혐오로부터 찰나라도 자유로울 수 없는 꼴이다. 이렇게 ‘모든 여성이 아니라 일부 개념 없는 여성만을 욕할 뿐’이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된다.

여성혐오가 자행되는 프로그램의 일례 <냉장고를 부탁해>

JTBC에서 매주 월요일 오후 9시 30분 부터 방영되는 프로그램이다. 매번 다른 게스트를 2명씩 섭외하고 게스트들의 냉장고를 함께 가져와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 이용해서 새로운 요리를 만들고 게스트가 두 요리 중 하나를 평가하게 만드는 형식이다. 두 남성 MC가 진행을 하며 소소한 예능감을 더해가는데 문제는 여성혐오 및 여성의 성 상품화를 큰 예능코드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가수 포미닛 멤버 중 섹스심벌로 유명한 아이돌 '현아'와 '제시'가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현아가 냉장고 속의 내용물을 꺼내기 위해 잡힌 뒷모습을 과도하게 클로즈업 하며 게스트들 끼리 뒤태도 예술이라면서 서로 앞다투어 가로막는 모습을 웃음코드로 잡았다. 여성이 인간으로써 특정한 목적을 위해 뒷 모습을 보이는 것 조차 성적으로 소비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또한 냉장고를 열어보기 전에 두 엠씨는 "우리가 냉장고를 열어보는 첫 남자야?"라는 다소 부적절하고 예의에 어긋날 수 있는 질문을 하며 냉장고를 끌어안고 뽀뽀하는 모습 또한 예능코드로 잡았다. 여성의 집에 있는 필수적인 가전제품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 대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지저분한 상상을 하게 유도한다는 것이 굉장히 역겨운 일이다. 남성 게스트로써는 왠만하면 요구되지 않는 섹시댄스를 요구하고 이에 대해 환호성으로 답하는 것 자체가 전철 등에서 매일같이 자행되는 시선강간과 별다를 것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