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푸어 선언

최근 편집: 2023년 1월 4일 (수) 02:14

밸푸어 선언은 열강이 처음으로 이스라엘 건국을 공식 지지한 사건으로, 시온주의 유대인의 오랜 이상, '이스라엘 건국'이 실현되는 촉매가 됐다.

시발점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교장관 아서 밸푸어가 영국의 유대계 유력 인사 라이어널 월터 로스차일드에게 보내는 서신은 본문이 단 세 문장에 불과하지만 중동, 나아가 세계 역사의 방향을 정하는 문건이 됐다. 밸푸어는 이 서신에서 "국왕폐하의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본국 설립을 긍정적으로 여기며 이 목표 실현이 가능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고 선언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에 사는 비(非)유대 사회의 시민권이나 종교의 자유, 또 다른 나라에 있는 유대인이 향유하는 정치적 권리와 지위를 해치는 어떤 일도 없을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고 썼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에서 고전한 영국이 전세계 유대계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 이스라엘 건국 지지 선언을 하게 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당시의 평가

이렇게 만들어진 밸푸어 선언은 영국이 앞서 팔레스타인 독립을 지지한 입장을 뒤엎는 것인 데다, 시온주의자의 열망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20세기 초반 영국의 중동 구도 설계에 큰 영향을 미친 학자이자 관리인 거트루드 벨은 밸푸어 선언을 두고 "모든 면에서 현실과 괴리된 인위적인 계획"이라고 혹평하고, "밸푸어의 시온주의 선언은 결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 단언했으며 특히 "그 땅의 인구 3분의 2는 유대인을 경멸하는 아랍 무슬림"이라고 지적했다.

벨푸어 선언이 끼친 영향

밸푸어 선언은 시온주의자들의 건국에 촉매제 역할을 했다. 유대인들은 1948년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들을 대거 몰아내는 것으로 벨이 지적한 '현실'을 바꿔버렸다. 아랍인들이 '나크바'(대재앙)로 부르는 이 기간에 많게는 70건에 이르는 학살이 벌어졌고, 팔레스타인인 70만명이 고향에서 쫓겨났다. 밸푸어 선언은 이스라엘에는 건국 열망이 실현되는 계기이고, 영국에게는 외교·군사적 선택이지만, 팔레스타인에게는 고난의 시작이었다.

역사적으로는 중동 지역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는 유혈사태와 분쟁의 씨앗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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