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 지 100년이 넘은 부산의 오래된 집창촌으로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부산항에 일본인 집단 거류지가 형성됐고, 이를 중심으로 점차 유곽이 성장한 것이다. 1900년대 중후반부터 ‘녹정유곽’이라는 명칭의 공창으로 영업했고,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인 손님을 위주로 운영되었다. 해방 후에는 부산 텍사스 마을과 함께 미군부대 기지촌이 되었고, 1970년대에는 국내 성매매의 확산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성매매 집결지가 되었다. 당시 미등록 포함 약 2,000명의 여성이 완월동에 거주하며 성매매 일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1]
2001년 2월 14일 부산시 완월동 성매매업소 화재참사 및 성매매특별법 제정의 영향을 받아 축소되기 시작하였다. 2016년 4월에는 부산 서구청은 서부경찰서, 서부교육지원청, 중부소방서, 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 부산해바라기센터, 신나는 디딤터 등 유관기관과 여성단체, 청소년 단체 등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와 성매매방지대책협의회를 만들어, 성매매 집결지 실태조사, 집결지 폐쇄를 위한 홍보활동, 도시정비계획 수립과 도시재생 사업 추진, 성매매 합동 단속·점검 등의 활동을 시작했고, 자립 지원이 절실한 성매매 여성을 직접 찾아가 도움을 주는 방문지원 활동과 현장 상담, 성매매를 그만둔 여성의 보호 대책·성매매 여성 지원 조례안 마련 등의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에서는 완월기록연구소를 만들어 동네가수 이내와 함께 완월동 이야기 수집가 활동을 벌여 <주간 불현듯>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고 있다.
- ↑ 최, 윤희 (2023년 8월 31일). “[부산 완월동] 100년 넘게 꺼지지 않는 홍등가”. 《채널P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