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최근 편집: 2023년 3월 11일 (토) 23:51

1986년 6월 부천경찰서 형사 문귀동이 운동권의 권인숙을 구금하여 성추행을 동반한 고문을 하고, 전두환 정부가 사건 축소은폐 및 용공조작을 시도한 사건. 당시에는 "부천서 사건", "부천서 권 양 사건" 정도로 불렸다.

전말

전두환 정부 시기에는 대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공장 등에 취업하여 노동운동에 참여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것이 흔히 말하는 "운동권"이다. 이 때 고학력자는 노동운동, 반정부활동에 가담할 우려가 크다 하여 생산직에서 대학 출신자를 채용하기를 꺼려했으므로 학력이 낮은 다른 사람의 명의로 위장취업하곤 했다. 서울대학교 의류학과 4학년생이던 권인숙은 1985년 4월경 경기도 부천시의 <주식회사 성신>에 "허명숙"이라는 가명을 써서 위장취업을 했다가, 1986년 6월 4일 위장취업을 위해 주민등록증을 위조한 혐의로 부천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권인숙은 관련 사실을 모두 시인하였으나, 부천경찰서 조사계 문귀동 형사는 86년 5월의 인천 민주화시위 관련자의 행방을 추궁하며 6~7일 양일간 뒷수갑을 채운 채 성추행을 동반한 고문을 하며 수배자의 소재를 추궁했다.

16일 교도소로 옮겨진 권인숙은 다른 재소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28일부터 단식투쟁을 개시, 조영래, 홍성우, 이상수 변호사 등의 도움을 얻어 1986년 7월 3일에 문귀동을 강제추행 혐의로 인천지검에 고소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날 권인숙은 공문서변조 및 동행사, 사문서변조 및 동행사, 절도, 문서파손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고, 가해자인 문귀동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자신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느냐며 권인숙을 명예훼손 혐의로 인천지검에 고발했다. 이에 7월 5일에 권인숙의 변호인단 9명은 문귀동과 옥봉환 부천경찰서장 등 관련 경찰관 6명을 독직, 폭행 및 가혹행위 혐의로 고발했고, 문귀동은 권인숙을 무고혐의로 맞고소했다.

수사과정

수사를 맡은 인천지검의 김경회 검사장은 김성기 법무부장관에게서 "원칙대로 파헤치라"는 호언장담을 받았으나, 7월 15일 오전 김경회 검사장은 검찰총장 서동권에게 불려가 '안기부에서 성고문의 '성'자도 나와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안기부장은 하나회 회원으로 전두환 정부 실세 중 하나였던 장세동이었다. 7월 16일 아침에는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검사가 간부회의가 열리고 있는 검사장실로 들어와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김경회는 검사장이 직접 수사결과를 발표하라는 대검찰청의 지시를 거부했다. 다음날 검찰총장의 유선상 내리갈굼이 있었고, 문귀동에 대해 기소유예처분을 내리자 장관이 간부들에게 나눠주라며 격려금을 보냈다고 한다.

언론통제

1986년 7월 17일 공안당국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권인숙을 "權의 성모욕주장은 급진세력 등이 상습적으로 벌이고 있는 소위 의식화투쟁의 일환으로서 자신의 구명은 물론 사회일반의 반정부·반공권력 투쟁을 확산하려는 선동적 조작으로 분석된다", "이들 좌경의식화 세력은 성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의식도 내던져버림으로써 투쟁과 혁명을 위해서는 어떤 가치도 희생시킬 수 있다는 노선을 걷고 있는 것이다" 등으로 호도했다.[1] 조선일보는 7월 17일자 기사에 '성적 모욕 없었고 폭언 폭행만 했다'(86년 7월17일치)는 검찰 발표문을 제목으로 뽑았고, 편집국 내에선 `어떻게 다 큰 처녀가 자기가 당했다는 사실을 남에게 내세울 수 있느냐'며 `보호해 줄 가치가 없다'는 발언이 나왔다고 한다. 검찰출입기자들은 뒷돈을 받아 챙겼다고 한다.[2] 집권여당 민주정의당 국회의원 김중위는 "권인숙의 정신감정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공보부(現 문화체육관광부)는 언론에 해당 사건에 대한 보도지침을 내렸다.

  • 오늘 16시 검찰이 발표한 조사결과 내용만 보도할 것
  • 사회면에서 취급할 것(크기는 재량에 맡김)
  • 검찰 발표문 전문은 꼭 실어줄 것
  • 자료 중 ‘사건의 성격’에서 제목을 뽑아 줄 것
  • 이 사건의 명칭을 성추행이라 하지 말고 성모욕행위로 할 것
  • 발표 외에 독자적인 취재보도 내용 불가
  • 시중에 나도는 반체제측의 고소장 내용이나 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KNCC), 여성단체 등의 사건 관계 성명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

이 보도지침은 안기부장 장세동이 지시한 것으로, 1986년 9월 6일 시사 월간지 《월간 말》 특집호 〈보도지침―권력과 언론의 음모〉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으며, 정부는 이를 폭로한 김태홍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사무국장, 신홍범 실행위원,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 구속했다.

재정신청

검찰이 문귀동을 기소유예처분하자 권인숙 측 변호인단은 9월 1일 불복하여 재정신청하였고, 무려 166명의 변호사가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했는데,[주 1] 사흘 후 기각되어 서울고검으로 송치되고, 9월 30일에 기각되었다.

10월 1일에 변호인단이 서울고법에도 재정신청을 내고 법관기피신청을 내었으나 기피신청이 기각,[3] 31일에 서울고법은 "권인숙의 일방적인 진술만으로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다"며 재정신청을 기각했고, "피의자 문귀동은 직무에 집착한 나머지 무리한 수사를 하다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으로 이미 파면되고 비등한 여론으로 인하여 정신적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기소유예 처분이 정당하다고 보았다. 11월 7일에 변호인단이 낸 대법원 재항고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2월 4일 인천지법의 선고공판은 “비록 목적이 근로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심정에서 위장 취업했다고 하나 남의 주민등록증을 훔쳐 사진을 갈아붙이고 기타 인적사항을 도용해 이력서를 작성한 행위는 그 방법에 있어 지나치다”며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7일 후 신청한 항소도 기각된 후 4월에 변호인단이 대법원에 상고포기서를 제출하며 형이 확정되었다.

결말

6.29. 민주화 직후인 1987년 7월 8일 권인숙가석방되고, 1988년 1월 29일 대법원이 재정신청을 수용했다.[4] 문귀동에 대한 기소유예처분이 취소되었고, 징역 5년에 자격정지 3년을 받아 수감되었다. 권인숙의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도 받아들여졌다.

변호인단 변론요지서

  • 대부분의 내용은 조영래 변호사가 작성하였다.[5]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 변론 요지

1

 변호인들은 먼저 이 법정의 피고인석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권양 -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사람은 누구인가? 온 국민이 그 이름은 모르는 채 그 성만으로 알고 있는 이름없는 유명인사, 얼굴없는 우상이 되어버린 이 처녀는 누구인가? 그녀는 무엇을 하였는가? 그 때문에 어떤 일을 당하였으며 지금까지 당하고 있는가? …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국가가, 사회가, 우리들이 그녀에게 무엇을 하였으며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눈물 없이는 상기할 수 없는 ‘권양의 투쟁’ - 저 처참하고 쓰라린, 그러면서도 더없이 숭고하고 위대한 인간성에의 투쟁에 대하여, 그리하여 마침내 다가올 ‘권양의 승리’, 우리 모두의 승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진흙탕 속에서 피어난 해맑은 연꽃처럼 오늘 이 법정을 가득히 비추고 있는 눈부신 아름다움, 그 백설 같은 순결, 어떤 오욕과 탄압으로도 끝내 꺾을 수 없었던 그 불굴의 용기와 진실을 위한 눈물겨운 헌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 이 법정에서 이룩되어야 할 일이 무언인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운동권학생’이니 ‘위장취업자’니 하는 낯선 이름으로 불리는 젊은이들의 무리가 등장하였습니다. 공안당국의 눈에는 이 젊은이들은 단순한 하나의 치안교란요인, 질서파괴를 위한 선동꾼,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태평성대에 일부러 혼란을 조성하기 위하여 태어난 하나의 이방인집단, 피도 눈물도 인간적 감정도 없는 정신적 기형아, 불가사리처럼 사회를 좀먹는 괴물, 심지어는 악마로까지 보일는지 모릅니다. 실제로 권양에 대한 성고문사건에 관한 검찰 수사결과 발표가 있을 때 도하 각 신문에 함께 보도된 ‘공안당국의 분석’에 의하면 이 젊은이들은 상투적으로 거짓말과 조작을 일삼는 사기꾼처럼,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패륜아, 심지어는 인륜도덕과 성까지도 도구화하는 이념적 냉혈동물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공안당국적 시각은 지극히 명백한 한 가지 사실 - 즉 이 젊은이들은 바로 우리 사회에서 태어나서 우리 사회에서 자라난 우리의 아들딸이요 형제자매라는 사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운동권’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들이 ‘운동권’에 뛰어들고 ‘위장취업’자가 되게 된 것은 이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병폐 - 이 젊은이들의 순결한 양심으로 하여금 도저히 소리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온갖 불의와 비리, 억눌린 사람들의 아픔, 그리고 그 아픔을 결코 외면할 수 없다는 도덕적 결단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고의로 외면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이래의 경제성장과정에서 가장 큰 공헌을 하고서도 그 성과로부터는 철저히 소외되어온 대다수 노동계층의 현실, ‘선진조국’을 운위하게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기본급 10만원 미만짜리가 허다한 살인적 저임금과 세계적으로 가장 흑심한 장기간 중노동, 열악한 작업환경에 시달리면서 멸시와 천대 속에서 인간 이하의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아픔, 남들이라면 한창 부모 품에서 재롱을 부릴 나이인 열세살의 어린 소녀시절부터 소음과 먼지로 뒤덮인 숨막히는 작업장 원단더미 속에 파묻혀 십년여일하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변소 갈 틈도 없이 잔업에 철야에 뼈빠지게 노동을 하였으나 남은 것은 병든 육신과 지칠 대로 지친 영혼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스물세살 미싱사의 눈물, 노동조합을 결성하려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해고를 당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구로공단의 뒷골목을 힘없이 배회하는 해고노동자들의 탄식, 기본급 10만원을 요구하였다는 이유로 회사폭력배들에게 머리채를 끄잡힌 채 각목과 발길질로 집단폭행을 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구속된 구속노동자의 분노, 그리고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인간다운 삶의 꿈 때문에, 그것을 관철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서 꽃다운 젊은 목숨을 스스로 불길 속에 던져넣는 분신농동자들의 잇따른 참혹한 죽음 - 바로 이런 것들이 보다 유복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이 젊은이들, 어쨌거나 대학까지 다닐 수 있었던 행운을 타고난 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더 이상 그 행운에 안주하고 있을 수 없도록, 더 이상 그 부모들이 기대하는 대학졸업의 경력에 걸맞는 안일하고 안전한 삶의 길을 갈 수 없도록 만들고 그 대신에 ‘운동권’과 ‘위장취업’의 험난한 가시밭길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원동력이라는 사실, 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젊은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오랜 동안 기성세대가 보여주지 못했던 놀라운 도덕적 용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제 36년의 이민족지배와 외세에 의한 분단의 쓰라린 역사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의 도덕적 건강성은 심대하게 훼손되었고 사회적 양심은 거의 마비되다시피 하였습니다. 우리의 최근세사는 불행하게도 권선징악의 교훈에 친하지 못합니다. 반민족적․반민주적․반사회적 행위에 대하여 응당한 응징이 가해진 일이 없었고 한편 수많은 항일투사와 그 자손들의 불루한 생애가 웅변적으로 보여주듯이 민족과 사회에 대한 애정과 헌신에 대하여 그 어떤 정신적 보상조차도 주어진 일이 없었습니다. 이같은 왜곡된 역사 속에서 우리들 대다수의 기성세대는 일찍부터 부모들과 선배들과 사회로부터 힘 앞에 순종하고 체제에 순응하며 그 안에서 자기만의 안일을 추구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인간, 비겁하며 왜소한 인간이 되도록 교육받으며 자라났습니다. 우리들 기성세대의 뇌리에 깊이 주입된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처세철학에 의하면,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이란 한낱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지나지 않는 어리석은 짓이었고 가난하고 억눌린 이웃에 대한 관심이란 곧바로 개인적인 몰락과 패가망신의 길을 가리키는 위험표지판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같은 기성세대의 눈으로 볼 때, 오늘의 젊은이들이 대학출신자에게 보장되어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노동자들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하여 일생을 걸고 노동현장에 취업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로 비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들 기성세대는 우리들의 척도로 이 젊은이들을 판단하려 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분명히 인식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은, 이제 우리 사회에 하나의 새로운 세대, 기성세대와는 다른 세대, 그들의 양심을 스스로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젊은 세대가 자라났다는 사실입니다. 이 새로운 세대는 민주화의 국민적 갈망을 불러일으킨 4․19의 감격으로부터 시작된 60년대와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일깨운 전태일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70년대, 그리고 광주사태라는 엄청난 민족적 참화로부터 시작된 80년대의 시련을 거치면서 서서히 회복되어온 우리 민족의 도덕적 원기와 사회적 양심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젊은이들 중 일부가 일시적으로나마 현실의 벽 앞에 부딪쳐 절망한 나머지 파괴적 충동에 휩싸일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부작용은 우리 사회가 이 젊은이들의 항의와 비판을 경청하고 거기에 대하여 성실하게 대응할 자세를 갖추게 될 때, 그리하여 민주적 기본질서가 확립되고 사회정의를 위한 진지한 노력이 기울여지며 사회의 도덕적 건강성이 회복되게 될 때에, 자연히 치유되고 해소될 수 있는 문제이고, 또 반드시 그같은 과정을 통하여서만 치유되고 해소될 수 있는 문제라고 우리는 확신하는 바이며, 그같은 부작용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젊은이들이 노동현실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 자체를 탓하거나 억압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말해두고자 합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본 변호인단은 이 젊은이들이 노동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노동현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삼을 것이 없으며, 오히려 이 젊은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놀라운 도덕적 용기야말로 우리 사회의 밝은 내일을 예감케 하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징후이며, 본의건 아니건 알게 모르게 기성사회의 부패와 사악에 동참하고 있는 우리 기성세대들 중 누구도 이 때묻지 않은 순결한 젊은이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거나 단죄할 수가 없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만약 정부 당국이 진실로 사회의 안녕질서와 평화를 이룩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이 새로운 세대를 섣불리 백안시하거나 이단시하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먼저 뜨거운 애정으로 이들을 포용하여야 할 것이며, 물리적인 탄압과 처벌로 이들을 꺾으려는 헛된 시도를 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우리 사회의 누적된 비리와 병폐를 척결함으로써 근원적인 해결을 모색하여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충심으로 권고하고자 합니다.

3

 이 자리에 피고인으로 서 있는 권양은 이같은 새로운 세대의 젊은이 중 한 사람 입니다. 그녀는 성실한 공직자 가정의 막내딸로서 이렇다 할 생활의 어려움을 알지 못한 채 순탄한 성장과정을 밟았으며 타고난 명민한 자질로 원주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학에 진학하였습니다. 변호인들은 당시 원주법원에 재직하였던 어떤 분으로부터, 권양이 서울대학에 합격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법원 직원들이 권양의 부친에게 경사라고 축하의 인사를 하고 권양의 부친이 흐뭇해하던 일이 눈에 선한데 그 권양이 이런 일을 당하게 되다니 실로 감회가 무향하다고 하는 말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어느모로 보나 권양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양명하고 축복받은 환경과 여건 속에서 자라난 젊은이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대통령 피살소식이 전해졌을 때 당시 여고 2년생이었던 권양은 동급생들과 함께 목을 놓아 통곡을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와 사회에서 가르친 대로 ‘유신만이 살 길’이며 박대통령만이 우리나라를 영원히 영도할 수 있으며 ‘한국적 민주주의’만이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는 유일한 정치체제라고 조금도 의심 없이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이 순진한 소녀에게, 박대통령의 피살소식은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더욱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은, 박대통령이 피살된 바로 그 순간부터 아무도 더 이상 유신체제의 정당성에 대하여 말하지 않게 되었으며, 오히려 날이 갈수록 유신체제를 공공연히 비판하고 부정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졌으며, 엊그제까지만 해도 그토록 유신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고 박대통령을 위대한 영도자로 추켜세우던 세상사람들이 일변하여 박대통령의 장기집권욕과 독재 그리고 그 아래서의 부패와 비리를 거론하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국민학교 시절 이래 여고 2년생이 되기까지 기성세대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배웠고 그래서 의심없이 믿어왔던 것이 실은 거짓이었으며 속은 것이었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진실 앞에서, 기성세대와 사회에 대한 그녀의 신뢰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권양은 이때부터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신문을 보지 않게 되었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정의와 진실에 대한 관심, 정치와 사회의 현실에 대한 싹트기 시작했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후 권양은 노동자들의 아픈 현실에 대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번민을 거듭하던 끝에 같은 세대의 다른 많은 젊은이들처럼 대학생으로서의 특권을 포기하고 스스로 노동자가 되어 노동자들의 권리를 증진시키는 데에 헌신하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가명으로 어떤 공장에 취업하였고 그로부터 불과 며칠 만에 가명 입사 사실이 발각될까 우려한 나머지 자진 퇴사하였습니다. 이것이 권양이 한 일의 전부입니다. 변호인들은 여기에 무슨 잘못이 있는지를 묻고자 합니다. 누가, 무슨 권리로, 이러한 권양의 행위를, 그 양심의 표현을 단죄할 수 있는가를 묻고자 합니다.

 검찰은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권양은 노동현장에 취업하였기 때문에 구속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일는지는 몰라도 진실은 아닙니다. 1984년 4월 24일 노동부는 “앞으로 각 기업체에서 근로자를 신규채용할 때에는 학력과 경력은 물론 본인의 면담 등을 통해 신상심사 등 취업희망자의 신원조회를 철저히 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정부와 기업측에서는 대학출신 노동자들이 불법적 쟁의를 선동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이들을 해고조치하기 시작하였고 1985년 이후부터는 대학출신 노동자들이 학력은폐의 수단으로 작성․제출한 타인 명의의 이력서나 주민등록증 때문에 형사입건되는 사례가 빈번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으로 보면 당국의 의도는 대학출신자의 노동현장취업 자체를 저지하려는 데 있는 것이고 주민등록증 변조 등을 사유로 한 형사처벌은 이 취업저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인 것이 명백합니다.

 당국은 대학생출신 노동자들이 순순한 노동자들과는 달리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운동을 할 목적으로 노동현장에 취업하는 것이 마치 무슨 불순하고 불법적인 일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는 노동운동의 자유를 그 불가결의 일부로 포함하고 있는 것이며, 대학생이든 누구든 그 양심에 따라 노동자로서 직업을 선택하고 노동운동에 헌신할 수 있는 권리는 우리 헌법이념상 당연히 시인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노동운동 자체를 불온시하는 당국의 견해는 위헌적인 발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기업체들이 대학출신 노동자들을 채용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결국 노동자들의 권리의식과 노동운동의 발전을 저지하기 위한 부당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며, 이같은 부당한 의도는 우리 헌법의 인간적 존엄성의 이념에 반하는 것이므로 법의 비호를 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장취업’은 이같은 기업주측의 부당한 의도로부터 직업선택의 자유와 노동운동의 발전이라는 정당하며 합헌적인 목적을 방어하고 관철시키기 위하여 불가피하며 유일한 수단입니다. 따라서 대학출신자가 남의 이름을 빌려 노동현장에 취업하고 그 때문에 위조 또는 변조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도 도저히 비난받을 수 없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법질서의 관점에서도 시인되어야 할 적법한 행위라고 우리는 주장합니다. 즉 이것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권양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결백할 뿐만 아니라 법률상으로도 무죄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정법상의 유․무죄의 문제를 떠나서, 우리가 권양의 행위에 관하여 진정으로 묻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그토록 엄청난 범죄였는가, 6월 7일 토요일 깊은 밤에 부천경찰서의 불꺼진 한 조사실에 두시간 가량이나 갇혀 금수와 같은 형사 하나와 단 둘이 대면한 가운데 노예처럼 뒷수갑을 채우고 처녀의 부끄런 알몸을 발가숭이로 벗기우고 필설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야만적인 능욕과 고문을 당해야 마땅할 만큼 엄청난 범죄였는가, 그것도 부족하여 ‘공안당국’으로부터 만천하 공개리에 저 견딜 수 없는 모욕, “혁명을 위해서는 성도 도구화하는 이념적 냉혈녀요, 있지도 않은 성고문 사실을 허위조작하여 수사기관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국가의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려 한 추악한 마녀인 것처럼 터무니없는 모략중상을 당하여도 좋을 만큼, 한 인간으로서 또 한 처녀로서의 마지막 자존심마저도 그토록 여지없이 짓밟혀도 좋을 만큼, 그토록 엄청난 범죄였는가, 또 그처럼 철저하고도 잔혹한 인간적 파괴와 오욕을 당하고 나서도 아직껏 여기에 이렇게 묶여 있어야 할 만큼, 그 분노와 절망에 지칠 때로 지친 영혼과 육신을 억지로 지탱하면서 수개월 동안이나 차디찬 철장 속에 갇혀 있어야 할 만큼, 그토록 엄청난 범죄였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변호인들은 깊은 분노로 말합니다. 이 재판은 거꾸로 된 재판입니다. 여기에 묶여 서서 재판받아야 할 것은 이 연약하고 순결무구한 처녀가 아니라 바로 이 처녀에게 인간의 탈을 쓰고서도 차마 상상할 수 없는 추악한 만행을 저지른 문귀동, 우리 사회의 법질서와 인권과 인륜도덕을 그 근본에 이르기가지 남김없이 유린하고 우리로 하여금 인간성에 대한 마지막 신뢰마저도 지닐 수 없게 만든 극악극흉한 범죄를 저지른 문귀동 발로 그 사람인 것입니다. 아울러 문귀동의 범행을 교사․방조하였던 모든 사람들, 문귀동을 비호하고 그 범행을 은폐하려고 들었던 모든 사람들이 그 책임의 경중에 따라서 여기에 서서 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문귀동이 의법처단되지 않는 한, 권양에 대한 이 재판은 원천적으로 불의한 사태인 것이며,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국민들 어느 누구도 문귀동이 기소유예처분을 받고 바깥세상을 활보하고 있는 터에 권양이 묶여서 재판을 받고 있는 사태를 도저히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변호인들의 확신입니다.

 따라서 권양은 더 이상 묶여 있어서는 안 되며, 바로 이 자리에서 즉각 석방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주장합니다.

4

 권양이 부천경찰서에서 당했던 일, 저 입에 올리기조차 끔찍스럽고 더러운 만행의 자세한 경위에 대하여 우리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권양이 어떤 일을 당했는가는 이제 온 세상에 알려져 있고, 정보당국이 그토록 그 진상을 은폐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권양의 주장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신문에서 이 전대미문의 성고문사건에 대한 보도를 막으려는 당국의 집중적인 보도통제노력 때문에 권양의 주장내용조차 제대로 보도되지 못하고 있을 때, 성고문의 진상을 국민에게 직접 알리려는 정당․사회단체의 폭로대회가 매번 경찰의 필사적인 제지로 방해되었을 때, 성고문에 항의하던 사람들이 숱하게 잡혀들어가고 유인물들이 수없이 압수되었을 때, 검찰이 그 실제 수사결론과는 상반되는 터무니없는 ‘수사결과 발표’라는 것을 하고 ‘공안당국’이 권양에 대하여 온갖 욕을 퍼부었을 때, 고등법원에 제기한 재정신청이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전후 모순되는 이유설시 아래 어처구니없이 기각되었을 때, 그때마다 권양의 진실은 그것을 끝내 은폐하려는 강대한 권력의 힘 앞에 부딪혀 차단되고 좌절되어버린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바로 그 진실을 필사적으로 은폐하기 위하여 허둥대는 권력의 모습에 의하여 한단계 한단계 승리의 길로 전진을 거듭하였던 것입니다.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진실은 끝내 알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진실은 감방 속에 가두어둘 수가 없습니다.

 만약 아직도 그 진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진실을 대면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서울고등법원의 재정신청기각 결정문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법원 결정문은 그 이유설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피의자 문귀동의 이 사건 피의사실 중 피의자 문귀동이  가. 1986. 6. 6. 04:20경부터 06:30 사이에 부천서 수사과 조사계 제5호 조사실에서 위장취업과 관련하여 연행된 피해자 권양을 상대로 5․3인천소요사태 수배자와의 관련 및 소재에 관하여… 추궁하였으나 그녀가 모른다면서 이에 응하지 않자 젖가슴을 들추어보고 그녀의 바지지퍼를 끌러내린 다음 같은 경찰서 수사과 형사계 근무 순경인 피의자 이흥기를 불러 입회시킨 가운데 그녀에게 화난 소리로 ‘이년’ ‘저년’ ‘옷 벗어’ 등 폭언을 하고 ‘5․3사태관련 여자아이들도 나한테 걸리면 금방 다 자백했어’라고 은근히 진술을 강요하면서 위협을 하여도 불응하자 그녀의 티셔츠 위로 젖가슴을 3, 4회 만지고 위 이흥기 순경을 향하여 ‘이년 안 되겠군’ ‘고춧가루 물 가져와’ 라고 말하며 마치 고춧가루물로 고문할 것처럼 위협하는 등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보조하는 사법경찰로서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형사피의자에 대하여 가혹한 행위를 하고,  나. 같은 해 6. 7. 20:30경 그녀의 재킷과 남방셔츠를 벗게 한 후 건너편 제3호 조사실에서 일하던 순경 김혜성에게 수갑을 가져오게 하여 위 권인숙의 양손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고 ‘거짓말하지 마라’며 고함을 지르고 그녀를 세면바닥에 무릎 꿇게 하다가 약 30분 후인 그날 21:00경 위 제1호 조사실과 바로 붙은 위 조사계 북서쪽 구석에 있는 피고인의 방인 제2호 조사실로 그녀를 끌고가 그때부터 23:00경까지 사이에 불도 켜지 않아 실내가 어둡고 약 12미터 떨어져 있는 무기고 앞 외등의 불빛에 의하여 겨우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방안에서 단 둘이서 피고인은 북쪽으로 난 피고인의 책상 앞 창가에 앉아 위 권인숙을 가까이 오라고 하여 그녀의 바지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린 후 자기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철제의자에 그녀를 앉게 하고 그녀 가까이 다가 앉으면서 그녀의 상의를 모두 올리고 양손으로 젖가슴을 만지면서 ‘간첩도 결국은 분다, 너 같은 독한 년은 처음 본다’거 하면서 그녀가 정말 모른다면서 신음소리를 내자 ‘신음을 내면 아무도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겁을 주고 욕설을 하면서 그녀의 허리부분과 상체를 어루만지는 등 추행을 함으로써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보조하는 사법경찰로서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형사피의자에 대하여 가혹한 행위를 한 사실은 인정된다.”

 `추행을 한 사실은 인정된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귀동이 불 꺼진 방에서 권양에게 뒷수갑을 채우고 무릎을 꿇게 한 채 권양의 상의를 모두 올리고 권양의 바지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리고 양손으로 젖가슴을 만지고 허리부분과 상체를 어루만지는 등 추행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문서도 아닌 법원의 결정문 입니다. 더구나 그것도, 국민의 편에 감연히 서서 재정신청을 받아들인 재판부과 아니라, 우리가 의심하기로는 필경 권력의 유형․무형의 압력 앞에 견디지 못하여 사법권의 존엄과 법관의 긍지를 스스로 저버리는 재정신청기각이라는 부당한 결론, 권력의 의도에 맞는 결론을 내린 재판부가 작성한 결정문인 것입니다.

 이 결정문이 나옴으로써, 이제 그 누구도, 경찰․검찰 ‘공안당국’ 또는 그밖의 그 어떤 측도 더 이상 권양의 진실 앞에 도저히 저항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지적하고자 합니다. 권양의 성고문 주장이 허위조작이냐 진실이냐 하는, 저 한동안 세상을 소란하게 하고 우리를 통분으로 질식케 하였던 어리석은 논쟁은 이제 이것으로 끝장난 것입니다. 권양의 완벽한 도덕적 승리로 결판이 난 것입니다. 권양을 모함하였던 모든 사람들에게, 권양의 피해주장을 운동권세력의 상투적인 허위조작이라고 매도하였던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제 입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요구하고 싶습니다. 누가 더 이상 권양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지 나서보라고 요구하고 싶습니다. 누가 과연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상투적인 허위조작과 모략을 일삼는 거짓말쟁이인지, 어느 쪽이 과연 목적을 위해서는 성과 인륜도덕마저도 도구화하기를 서슴지 않는 세력인지는 이것으로써 명백히 판명이 났습니다.

 물론 이 고등법원 결정문이 권양의 주장내용을 액면 그대로 전부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귀동의 범행사실 중에서도 가장 극악하고 추잡한 대목―특히 “손으로 음부를 만지고 자신의 성기를 꺼내어 음부에 비비는” 추행을 한 대목에 한해서는 이를 “인정하기가 어렵다”고 이 결정문은 설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지극히 세부적인 하나하나의 정활사실에 이르기까지 다 권양의 주장대로 사실로 인정하면서도 어째서 이 마지막 대목만은 ‘인정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인가―요컨대 이 대목만은 문귀동이 끝까지 부인을 하고 있고 당시의 주변상황으로 보아 문귀동이 “그토록 저열하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추행을 한다는 것은 일반경험칙상 수긍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삼척동자도 믿지 않을 자가당착적인 궤변입니다. 우리는 묻노니, 그렇다면 명색이 형사라는 자가 조사받는 처녀를 불 꺼진 방에 가두어놓고 뒷수갑을 채우고 무릎을 꿇려놓고 웃옷을 다 벗겨 알몸으로 만들고 바지지퍼까지 내리고 젖가슴을 주무르고 ‘허리부분과 상체’를 어루만지는 것은 그다지 ‘저열한’ 일이 아니고 그다지 ‘비정상적인 방법의 추행’이 아니라는 것입니까? 그런 정도의 추행은 ‘정상적인’ 추행으로서 ‘일반경험칙상 수긍’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처럼 정상적인 윤리감정을 갖춘 인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불법무도한 비정상적 추행이 실제로 일어난 것을 인정하는 터에 어떻게 거기서 불과 반발짝 더 나아간 것밖에 안 되는 추행만은 주변상황으로 보아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인지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법원이 이처럼 그 누구도, 아니 그 자신조차도 설득시킬 수 없는 허약한 자가당착적 논거를 가지고 문귀동의 범행사실 중 그 일부분만을 억지로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태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가 열망하여마지않는 사법권의 독립을 위하여 진실로 애석하고 슬프게 생각하는 바이며, 이에 대하여 엄중히 항의하는 바입니다.

5

 회고하건대, 저 잔약한 체구의 처녀가 지난 6월 6일과 7일 부천서에서 저 무도한 야수적 능욕을 당하고, 산산이 파괴된 인생의 절망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비통한 자기모멸감과 수치심 그리고 출구를 알 수 없는 치떨리는 분노에 시달리면서 경찰서 보호실에서 유치장으로, 다시 교도소의 감방으로 짐짝처럼 넘겨질 때에, 그 순간순간마다 그녀의 뇌리를 무겁게 짓눌렀던 것은 오직 자기파괴와 죽음에의 충동, 그리고 한시도 떠나지 않은 악몽 속의 가위눌림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권양은 이 죽음과 같은 절망을 뚫고 부활했습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고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내며 실로 위대한 결단과 용기로 진실을 위하여 일어섰습니다. 여기에 이르기가지 권양이 겪은 저 전인미답의 지옥과 같은 고통과 번민, 좌절과 망설임, 그 악몽의 시간에 대하여 우리는 실로 눈물 없이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진실을 위하여, 오직 인간의 존엄성을 위하여, 권양은 처녀로서의 수치심과 명예를 모두 내던져버렸으며, 처녀로서는 차마 밝힐 수 없는 것을 만천하에 밝히기 위하여 입을 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건 눈물겨운 결단은 우리들의 잠들어 있던 양심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엄청난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권양의 외로운 절규는 저 두꺼운 감방의 벽, 저 엄청난 억압의 벽을 헐고 나와 마침내 세상사람들의 가슴가슴에 닿았습니다. 많은 선의의 사람들이 그녀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추기경에서 이름없는 시골 촌부에 이르기까지, 노종자와 학생에서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실로 그 수효를 알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방방곡곡에서 소리 없는 외침으로 권양을 성원하고 축복하였으며 궈양의 영혼이 피로써 내건 인간성과 진실의 깃발 아래로 모여들었습니다. 혹은 교도소로 혹은 변호인들의 사무실로 수없는 사람들이 위로와 격려의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어떤 가정주부는 변호인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나는 왜 이 나라에 태어났는지, 나는 왜 딸을 낳았는지, … 권양을 위하여 기도를 하려면 목이 맵니다”라고 호소하였습니다. 부천경찰서로 몰려가 항의하다가 체포된 사람들도 있었고 인천지방검찰청에 신나통을 들고 들어가 시위를 하다가 현주건물방화죄로 구속기소되는 여대생들도 생겨났습니다. 어느 고위공무원은 이같은 상황에서 더 이상 공무원으로 양심을 속이고 남아 있을 수가 없다고 양심선언을 발표하면서 전국의 공무원에게 “권양의 고통과 용기에 동참하여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폭로하는 국민의 공무원이 될 것”을 호소하기도 하였습니다. 명동성당과 해인사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성고문을 규탄하는 기도회와 집회가 잇따라 개최되었습니다. 이 권양의 대열에는 남녀노소의 구별도, 도시와 농촌, 사회계층의 구별도, 수녀와 승려, 신부와 목사, 종교의 구별도 없었습니다. 우리 변호인들도 이 대열에 동참하여 미미한 노력이나마 보탤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이것을 더없는 일생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권양과 더불어 요구한 것은 진실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진상을 있는 그대로 파헤치고 문귀동을 비롯한 모든 관계자들을 의법처단함으로써 다시는 이같은 추악한 공권력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보장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요구였으며, 아무 지나칠 것이 없는 요구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인륜도덕과 법질서를 위하여, 인권상황의 개선을 위하여 반드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아니 되는 필수적인 요구였으며 정치적 견해와 이념의 차이를 초월하여 양식 있는 사람, 눈물이 있는 사람, 우리 자녀들의 내일을 걱정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최소한도의 요구였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권양의 눈물겨운 요구에 대하여, 모든 국민들의 간절한 열망에 대하여, 국가의 공권력은 과연 무엇을 하였으며, 지금껏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법행당사자인 경찰은 무엇을 하였는가?― 경찰이 그 스스로의 사명, 국민의 혈세로 유지되고 국민의 재산과 생명의 안전을 책임지고 범죄로부터 국민의 인권과 법질서를 최전선에서 보호해야 할 경찰로서의 사명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었더라면, 적어도 이 사건에서만큼은, 다른 사람도 아닌 경찰관이 다른 장소도 아닌 경찰서 안에서 피의자를 이처럼 있을 수 없는 추악한 폐륜의 범죄를 저지른 이 사건에 있어서만큼은, 마땅히 스스로 범행전모를 철저히 파헤치고 국민 앞에 솔직히 진상을 공개하고 사과하였어야 옳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처음부터 전조직을 총동원하다시피 하여 새빨간 거짓말을 조작하면서 범행 일체를 은폐하려고 나섰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적반하장격으로 권양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였습니다.

 우리는 문귀동이 당초에 그토록 당당하게 범행사실을 부인하고 나서고, 만천하를 상대로 감히 터무니없는 조작된 알리바이까지 들고나오면서 권양을 조사한 횟수와 시간 등 가장 기초적인 사실에서부터 거짓말을 일삼고, 심지어는 후안무치하게도 권양을 상대로 명예훼손죄와 무고죄로 고소까지 제기하는 것을 보고, 이것이 과연 막강한 경찰조직의 뒷받침을 배경을 삼지 않고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문귀동 한 개인의 결단만으로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우리의 이러한 의혹은 검찰 수사과정에서 명백한 현실로써 입증되었습니다. 문귀동은 실제로는 6월 6일 새벽과 6월 7일 아침, 그리고 6월 7일 밤 9시경부터 11시경까지의 세 차례에 걸쳐 권양을 조사하였고 6월 7일 밤의 마지막 조사 때에는 입회 형사가 전혀 없는 가운데서 단 한 차례 조사하였을 뿐이며 6월 6일에는 아예 부천경찰서에 출근한 사실조차 없었고 당일 송추로 놀러 갔었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점에 관해 조사받기 위해 검찰에 불려나온 부천경찰서 서장, 수사과장 이하 모든 형사들은 하나같이 입을 맞추어 이 문귀동의 거짓말을 완강하게 뒷받침하다가 제반 객관적인 관계증거에 의하여 허위임이 탄로되자 비로소 진술들을 번복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습니까? 경찰이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피의자들이 범행사실을 자백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질책을 하고 마치 당연한 일인양 고문까지 일삼는 그 경찰이, 어떻게 이처럼 경찰서 하나의 조직을 총동원하여 엄청난 거짓말을 꾸며대며 집요하게 검찰을 기만하고 수사업무를 방해할 수 있습니까? 이처럼 스스로 하나의 범죄조직, 범행은폐조직으로 전락해버린 경찰에게 우리가 어떻게 더 이상 범죄수사와 법질서유지의 책임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경찰은 그 명예와 위신의 실추를 막기 위하여 성고문의 범행을 은폐하려고 하였던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제 경찰의 명예와 위신은 정작 성고문범행 자체보다도 오히려 그 범행을 은폐하려 들었던 경찰의 부도덕성 때문에 여지없이 실추되었습니다. 경찰이 그 실추된 명예와 위신을 조금이마나 회복하려면, 지금이라도 이같은 범행은폐의 과오에 대하여 국민과 권양 앞에 사과하고, 경찰 조직 내부의 성고문범행 관련자는 물론이요 그 범행은폐책동에 공모가담하였던 일체의 관계자들도 남김없이 적발하여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의법처단하여야 할 것이며, 우리는 바로 이것을 경찰에 요구합니다. 만약 경찰이 이것을 끝내 거부할 때에는, 우리는 경찰에 대하여 도덕적 파산을 선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범죄수사의 주체이며 인권옹호직무의 담당장인 검찰은 무엇을 하였는가―이것을 생각할 때에는 우리들 변호인들은 분노보다도 먼저 슬픔이 앞선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검찰이 이 성고문사건의 수사에 있어서 전례없이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로 진실을 추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 노고가 많았던 것을 인정합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인천지검의 수사인력을 총동원하다시피 하여 사건당사자인 권양과 문귀동, 그리고 43명의 참고인들을 상대로 연일 불철주야로 집중적인 조사를 전개하였습니다. 그 결과 검찰은 문귀동과 부천서 간부진 및 형사들이 조작해낸 모든 거짓진술들을 낱낱이 타파하였고 권양의 모든 주장이 진실임을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게 드러내었습니다.

 그런데 “폭언․폭행은 있었으나 성 모욕행위는 없었다”는 검찰 수사결과 발표는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서울고등법원 재정신청사건 재판부는 다른 독자적인 증거조사는 일체 시행하지 않은 채 오로지 검찰 수사기록에만 의거하여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문귀동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적어도 문귀동이 권양의 웃옷을 완전히 벗기고 바지지퍼를 내리고 젖가슴을 주무르고 허리와 상체를 주무르는 등의 성고문을 한 사실만은 검찰 수사기록상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이처럼 ‘수사기록상 명백상’ 성추행 사실마저도 끝내 부인하려고 든 것, “젖가슴을 주무른 것은 아니고 티셔츠를 입은 가슴 부위를 주먹으로 서너 차례 쥐어박은 것”이라고까지 강변하여야만 했던 것을 우리는 대체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까?

 이 수사결과 발표에서 검찰은 단순히 문귀동의 성고문 범행을 부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권양이 “폭행사실을 성 모욕행위로 날조․왜곡함으로써 자신의 구명과 아울러 일선 수사기관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반체제 혁명투쟁을 사회 일반으로 확산시켜 정부의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려” 하였다고 악의적인 중상모략을 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검찰이 이처럼 그 자신의 실제 수사결론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너무나도 상반되는 어처구니없는 ‘수가결과 발표’를 하게 된 데 대하여. 변호인들은 일찍이 검찰 발표과정에 검찰권의 독립적 행사를 저해하는 외부세력의 작용이 개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검찰은 그 소신에 어긋나 수사결과 발표, 진실을 왜곡․은폐하고 전국민을 기만․우롱하고, 권양의 명예와 자존심을 여지없이 유린한 그 수사결과 발표에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그 책임을 다른 누구에게도 전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말해두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제 서울고등법원의 결정문 내용이 밝혀짐으로써 검창의 수사결과 발표가 고의적인 허위발표였음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검찰에서 국민 앞에 이렇다 할 사과나 해명의 말 한마디가 없고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데 대하여 엄중히 항의합니다. 검찰의 직분을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에서, 우리는 검찰이 이 사태를 시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종전의 발표내용을 철회하고 그 경위를 해명하고 사건의 진상을 백일하에 공개할 것을 요구합니다. 서울고등법원 결정으로 적어도 문귀동이 권양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등의 고소가 무고임이 명백히 드러난 이상, 문귀동을 무고죄로 추가 입건하여 즉각 구속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검찰이 권양에게 가한 저 부당하고 부도덕한 정신적 학대에 대하여 사과하는 의미에서라도, 권양에 대한 이 사건 공소를 즉각 취소할 것을 요구합니다. 만약 검찰이 이 중 어느 것도 하지 않을 때에는 우리는 그 본래의 사명에 부응하는 ‘진정한 검찰’을 갖지 못한 비애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국민의 기본권의 마지막 보루라고 불리어지는 사법부는 무엇을 하였는가―오늘날의 사법부의 유감스런 현실에 대하여 우리는 굳이 장황하게 말씀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적어도 이 성고문 재정신청사건에 관해서만큼은 사법부에 대하여 한가닥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전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이 사건에서 사법부의 올바른 결정을 탄원하기 위하여 166명이라는 우리 법조사상 초유의 대규모 변호인단이 권양을 대리하여 재정신청에 나섰습니다. 이것은 사법부가 우리 사회의 법질서와 인권과 인륜도덕의 존폐가 걸린 최후의 방어선이 되다시피 한 이 사건에 있어서만큼은 , 어떤 일이 있더라도 행정권력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서 그 최소한도의 양식에 입각한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되기를, 그리하여 법의 존엄과 사법권의 독립이 아직 건재함을 보여주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재야 법조계의 한결같은 열망의 표현이었습니다. 국민 누구나가 납득하지 아니하는 문귀동에 대한 기소유예 결정, 검찰 스스로도 납득하지 아니할 그 상식에 어긋한 기소유예 결정을 그래도 명색이 사법부에서 설마 그대로 시인할 리가 있겠는가, 결정을 하지 않은 채 시일을 끄는 일은 있을지언정 차마 재정신청을 기각하기야 하겠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같은 기대는 물거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재정신청사건을 심리한 서울고등법원은 문귀동이 저지른 야수적인 성고문 사실을 대부분 이전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하여 평가하기를 “살피건대 우리 헌법 제9조가 선언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근본 규범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있어서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집행하는 경찰관이 형사피의자를 위협하고 특히 여성으로서의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여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위와같은 인권침해는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행위로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엄히 응징하여야 함은 마땅하다 할 것이다”라고 설시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법원은 그 결론에 있어서는 천만뜻밖에도 문귀동에 대한 검사의 기소유예 처분을 상당하다고 시인하면서 재정신청을 기각하였습니다.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행위’,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엄히 응징되어야 마땅할’ 행위에 대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것이 적절하다니, 도대체 이같은 자가당착이 어디에 있으며, 도대체 이것이 법관의 양식으로써 있을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더욱이 위 법원 결정문이 기소유예 처분이 상당하다는 논거 중의 하나로서 “문귀동이 … 그동안 이 사건으로 인한 비등한 여론과 피의사실로 인하여 형벌에 못지않은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점을 들고 있는 데 이르러서는 우리는 실로 망연자실, 할말을 잃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여론의 지탄을 받는 극악범죄일수록 형사처벌은 가벼워져야 옳다는 말인지, 국가는 범죄자의 응징과 범죄의 예방을 사회여론에 내맡기고 뒷전에 물러나 있어야 한다는 말인지, 검찰과 법원은 대체 무엇 때문에 존재한다는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째서 우리 사법부가 이처럼 어불성설의 궤변까지 동원해가면서 한사코 문귀동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을 옹호하여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이 나라에는 문귀동 한 사람의 인권만이 존재하고 있는 듯한 환각마저도 일어납니다. 우리 변호인들은 이른바 가정파괴범들의 소행에 비하여 문귀동의 범행이 과연 어느 만큼이나 덜 흉악하고 덜 파괴적인 경미한 범행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인지를 묻고자 합니다. 가정파괴범들에 대하여는 “스스로 인간이 되기를 포기했다”고 하는 이유로 일말의 동정도 없이 사형을 선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바로 그 사법부가, 어떤 의미에서는 단순한 가정파괴범보다도 더욱 가증스럽고 더욱 용서받지 못할 야수적 만행을 저지른 문귀동에 대해서만은 유독 자상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온갖 있는 정상, 없는 정상을 다 들추어내가며 용서를 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이 사태를 우리는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까? 우리는 이것이 사법부의 본의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든 확신을 가지고 말하거니와, 이것은 결코 독립된 사법부가 스스로의 법률적 양심과 양심에 입각하여 내린 판단일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이르러 우리는 오늘 우리 사법부의 몰락을 봅니다. 아무리 뼈아프더라도 이 말을 들어주십시오. 사법부는 그 사명을 스스로 포기한 것입니다. 한 그릇의 죽을 얻는 대가로 장자상속권을 팔아넘긴 에서처럼, 사법부는 한갓 구구한 안일을 구하기 위하여 국민으로부터 위탁받은 막중한 사법권의 존엄을 스스로 저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태에 대하여 사법부에 몸담고 있는 법관 개개인들만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 사태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사법부로서는 이 사태의 책임을 다른 누구에게도 전가하려 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해두고자 합니다. 용기가 없는 사법부, 스스로의 사명을 스스로 저버린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기대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비통한 심정으로 말하거니와 이 재정신청 기각결정으로 인하여, 이제 더 이상 사법부의 독립성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법부의 존립근거 자체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이 사태의 위험성에 대하여, 사법부에 몸담고 있는 모든 법관들이 깊이 통찰하고 사법권의 존엄을 스스로 지키기 위한 건곤일척의 몸부림을 시작하지 않으면 아니 될,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역사적 순간이 도래하였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민주주의의 보루라는 언론은 무엇을 하였는가―우리는 일선 취재기자들을 비롯하여 제도언론에 몸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개인적으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제한된 여건 아래서 최소한으로나마 권양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고 숨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선의는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제도로서의 언론 전체가 이 사건에서 보여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편파보도, 권력에 대한 굴종과 국민에 대한 배신의 타락상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언론은 이 사건에서 성고문의 진상을 은폐․왜곡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내용이나 아무런 근거 없이 등뒤에서 칼을 찌르듯 일방적으로 권양에 대하여 악의적인 비방․중상을 퍼부은 이른바 ‘공안당국의 분석’내용이란 것은 액면 그대로 대문짝만하게 보도하였으나, 권양측의 주장내용에 대하여는 거의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권양이 주장하는 성고문 피해사실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권양이 당한 성고문의 내용이 국민들에게 알려진 것은, 이 엄청난 만행에 공분을 느낀 숱한 시민들과 사회단체들이 성고문 내용을 알리는 유인물 등을 자발적으로 인쇄 또는 복사해서 주위사람들에게 손에서 손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달한―그같은 매스컴 이전시대를 방불케 하는 수공업적 통신과정을 통해서였습니다. 과연 이럴진대, 비대할 대로 비대해진 제도언론은 대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까?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할 그 가장 기본적인 사명을 스스로 저버림으로써, 언론의 존재이유와 존립근거 자체에 근복적인 물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위험한 사태를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문공당국이 수시로 각 신문사에 이룬바 ‘보도지침’이라는 것을 시달해온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폭로한 자료가 시중에 유포된 것을 본 바에 의하면, 이 성고문사건에 관한 검찰 수사결과 발표 당시를 전후하여 문공부는 연일 집중적으로 성고문사거에 관한 ‘보도지침’을 시달하였고, 거기에서 보도해야 할 기사와 보도되어서는 안 될 기사, 보도할 기사의 크기와 보도내용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지침’을 제시하였습니다. 우리는 당시 각 일간지에서 실제로 보도되었던 내용이 위 문공부 ‘보도지침’을 거의 그대로 준수한 것이었음을 발견하고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묻노니, 모든 언론이 이처럼 정부권력의 홍보자료로 전락해버린 이 암담한 사태는 대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모든 언론들이 이 사태의 책임을 스스로 통감하고 다른 누구에게도 전가하지 말기를 호소합니다. “힘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만약 그같은 변명이 통할 수 있는 것이라면, 히틀러 치하에서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가담한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언론의 자유는 쟁취되어야 하는 것이며, 이 싸움에 앞장서야할 것은 누구보다도 언론인들 자신이라는 것을 우리는 강조하고자 합니다. 언론인들 스스로가 자신의 직분을 지키기 위하여 몸부림치지 않는 한, 언론의 자유는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주어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몸부림은 지금 당장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권양의 변호인들로서, 언론에 대하여 우선 무엇보다도 권양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합니다. 검찰 발표내용이나 ‘공안당국의 분석’ 내용이 전혀 터무니 없는 것으로 드러났음을 분명히 밝혀주기를 요구합니다. 그 동안의 모든 편파보도를 시정하고 권양을 근거 없이 비방․중상하는 숱한 기사들이 보도된 경위를 일일이 해명할 것을 요구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것을 해낼 때에만, 언론은 자신이 그동안 권양에게 가한 부당한 박해―한 연약한 처녀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박해에 대하여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게 될 것이며, 무엇보다도 언론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되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6

 이제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우리는 국가와 권력의 존립근거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란 그 구성원인 국민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만 존재할 정당한 이유를 지니는 것입니다. 만약 국가의 공권력이 거꾸로 국민의 인간적 존엄성을 훼손하고 인간적 가치의 실현을 제약하는 파괴적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면, 그같은 공권력은 더 이상 존재하여야 할 의의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성고문사건의 진전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국가와 사회의 모든 기성의 권력과 권위들이 심각한 도덕적 위기에 봉착하고 있음을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경찰과 검찰과 사법부 그리고 언론에 대하여 말한 것은, 우리 국가와 사회가 권양에게 가한 온작 부도덕하고 비열한 박해의 일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우리가 봉착하고 있는 전반적인 도덕적 위기의 한 징후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본 변호인단은 확신하거니와, 이 도덕적 위기야말로 그 어떤 군사적․정치적 혹은 사회경제적 위기보다고 앞서는 우리 국가와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위기인 것이며, 이것이 정당하게 극복되지 아니하는 한 우리들과 우리 자녀들의 앞날은 실로 암담한 것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 권양은 하나의 놀라운 기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지난 7월 7일 변호인들이 인천소년교도소로 그날까지 열흘째 단식을 계속하고 있던 권양을 찾아갔을 때, 권양은 배가 쓰리고 머리가 어지럽다고 하면서도, “이 분노를 그대로 삭일 수가 없다. 차가운 교도소 마룻장을 베고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진실을 밝혀내고야 말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목숨을 건 진실에의 열정 하나만으로, 권양은 끝내 이 불의한 세상의 온갖 권세를 이겨내었습니다. 권양이 그토록 열망하였던 진실, 다시는 이 땅의 딸들이 자신과 같은 불행을 겪는 일이 없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국가공권력에 의하여 인간의 존엄성이 이처럼 여지없이 짓밟히는 사태가 더 이상 지속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권양이 그토록 밝히려고 열망하였던 진실은,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이 진실을 밝히기 위하여 권양이 바친 그 모든 눈물겨운 희생과 헌신은 우리나라 인권의 역사에서 두고두고 뜨거운 감사의 정과 더불어 기억될 것입니다.

 권양은 우리에게 ‘진실에의 비밀은 용기뿐’이라는 교훈을 온몸으로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미 혼탁하고 타락한 세대의 신화가 되어버린 권양의 투쟁에서, 일찍이 김수영 시인이 노래하였듯이 “어째서 지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흐르는가를” 배웠습니다.

 권양이 처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는 슬픔과 절망으로 왔으나, 이제 우리는 가슴 가득한 기쁨과 희망으로 권양의 승리에 대하여 증언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권양이 이미 도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한 바 있으나, 이제 머지않은 장래에 현실적으로도 완벽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의 진실은 만천하에 낱낱이 공개될 것이며, 그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려 들었던 모든 어리석고 비겁한 책동은 하나도 남김없이 타파될 것입니다.

 이 진실의 최종적인 승리를 위하여, 지금 이 자리에 선 우리 모두는 권양이 우리에게 바친 헌신에 만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도록 각자의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제 저 잔혹하였던 여름과 가을을 지나, 권양은 이 법정에 섰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눈물로써 호소하고자 하는 것은, 이 빛나는 영혼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순결무구한 처녀는 이 시대의 모든 죄악과 타락과 불의를 속죄하는 제물로서 역사의 제단 앞에 스스로를 바쳤으며, 우리들 중 누구도 이 시대에서 가장 죄가 없는 이 처녀를 더 이상 한시라도 차디찬 감옥 속에 갇혀 있게 하는 죄악의 공범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권양, 국민의 가슴속 깊은 곳에 은밀하고 고귀한 희망으로 자리잡은 우리의 권양은, 즉각 석방되어야 합니다.

1986.11.21.

위 피고인의 변호인

변호사 고영구 변호사 조준희 변호사 김상철

변호사 홍성우 변호사 박원순 변호사 황인철

변호사 이돈명 변호사 손태봉 변호사 이상수

변호사 황산성 변호사 조영래 변호사 이태영

인천지방법원 귀중


부연설명

  1. 이 변호인단 중에는 박원순도 있었다. 이 변호인단은 훗날 민변으로 발전한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