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거니즘 언어

최근 편집: 2023년 1월 15일 (일) 20:26

재전유의 힘

비거니즘 언어는 육식주의 언어를 재전유한다.

비건 커뮤니티 내부에서는 ‘콩고기'라는 단어가 육식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따라서 대안 단어로 콩단백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권리 운동의 전략과 마찬가지로 비거니즘에서도 육식주의 언어를 재전유할 수 있다. 이는 비건 사회로의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물권, 친환경 등 새로운 가치가 떠오르면서 비(非)비건 제품을 대체하는 식·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비건 가죽, 비건 고기가 있다. 상기하였듯 가죽이나 고기는 전통적으로 동물의 죽음을 거쳐 생산되는 제품이었기 때문에 비건 커뮤니티 내에서 해당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비거니즘 언어는 기존에 사용되던 고기나 가죽의 의미를 바꾸고 해당 단어들을 재전유한다고도 볼 수 있다. 비건 가죽 중에서 애플레더를 살펴보자. 현재 가죽의 사전적 의미는 1) 동물의 몸을 감싸고 있는 질긴 껍질 2) 동물의 몸에서 벗겨 낸 껍질을 가공해서 만든 물건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식물성과는 어떠한 관련도 없는 뜻이다. 하지만 사과 가죽, 애플레더가 지칭하는 대상은 명확하게 사과 껍질 부산물을 이용해 만들어낸 비건 제품이다. 즉, 사과에는 동물의 껍질이 없는데도 사과 가죽이라는 단어는 이미 쓰이고 또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지 가죽, 파인애플 가죽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채식주의 언어는 육식주의 언어가 독차지하고 있던 의미를 해체하고, 쪼개고, 나누고, 훔쳐오고,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 육식주의 언어의 독점적 지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비건이라는 형용사는 모든 제품이 비건이 될 때 사라질 것이다. ‘고기’가 비건 고기, ‘가죽’이 비건 가죽을 가리키게 그 날에 말이다. 비거니즘 언어에서 육식주의 언어를 추방함으로써 육식주의 언어의 위상을 독자적으로 만들어줄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동물 학대를 통해서 생산되었던 제품이 더 이상 동물의 학대 없이도 생산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설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육식주의 언어를 가져오는 데에는 큰 의미가 있다. 재전유는 강력한 힘이다. 비거니즘 언어의 재전유 기능, 확장 가능성을 버리거나 한계 짓기보다는 활용하도록 하자.

기록과 나눔

비거니즘 언어를 기록하고 함께 나눕니다. 아주 간단한 단어나 문장도 괜찮습니다. 설명은 자유롭게.

  1. “동물원에서 여성 원숭이 1명이 사망했다.”[1] 이때의 ‘명’은 사람을 셀 때의 名(이름 명)이 아닌 命(목숨 명)이다.
  2. 물살이: 물고기의 대안어

같이 보기

출처

  1. 한승희 (2021년 8월 9일). 《동물해방물결 ‘종평등한 언어생활 워크숍 현장’: ‘동물원에서 여성 원숭이 1명이 사망했다’》. 두루미. 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