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약

최근 편집: 2022년 12월 30일 (금) 08:55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빨간약이란 본래 워쇼스키 자매의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소재로, 넓은 의미로는 '기존의 가치관을 바꿀 만큼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이게 만든 어떤 것', 좁은 의미로는 '기존에 갇혀 있던 세계에서 뛰쳐나와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만든 어떤 것'을 뜻하게 된 말이다.

페미니즘적인 의미의 빨간약은 '여성혐오의 존재를 인정한 시점 또는 그 계기'페미니즘을 뜻한다.

유래

매트릭스라는 거짓된 세계에 속하지 않은 인간들은 시온이라는 도시를 세웠다. 매트릭스는 완벽하지 않았으므로, 종종 인간들은 어떠한 이유로 매트릭스의 허구성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시온의 전사들은 이런 사람들을 찾아내어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제시하였는데, 파란 약을 먹으면 모든 것을 잊고 현실에 안주할 수 있고, 빨간 약을 먹으면 자신이 잠들어 있던 인큐베이터에서 깨어나 매트릭스에서 탈출할 수 있다. 인큐베이터에서 깨어나면 매트릭스를 관리하는 AI가 그것을 자동으로 인식하여 쓰레기 처리장으로 보내는데, 빨간 약은 약을 먹은 사람의 위치를 시온의 전사들에게 알려주어 그를 구출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빨간 약은 불편한 진실을 깨닫는 도구이면서도 그 사람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요소인 것이다.

빨간 약과 페미니즘

매트릭스 내에서도 매트릭스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불편함의 출처를 명확히 알지 못하며, 의심의 단계에서 생각을 끝낸다. 그러나 시온의 전사들이 건넨 빨간약을 먹으면, 자신이 느낀 불편함의 출처를 알 수 있게 되고, 진실을 마주하게 되며, 다시는 빨간약을 먹기 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매트릭스라는 세계의 표적이 되어 제거당하는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빨간 약에 대해 제대로 말해줬으면 내가 빨간 약을 먹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이처럼 빨간약은 옳지만 힘들고 불편한 것이며 원래 안주하던 세계가 경계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살면서 크고작은 여성으로서의 불편함들을 느껴 왔다. 한창 남성들이 여성들을 프로불편러로 몰아가 조롱하는 방식으로 사용했던 표현인 "이거 나만 불편해?"라는 표현은 여성들 개인의 불편함들이 그저 의심의 영역에서만 취급되고 뒷전이 되었던 현실을 반영하는 말이다. 남성들은 그 표현의 의도를 '선동'으로 이해하였지만, 실제 여성들이 그 표현을 사용한 것은 정말로 이것이 '자신만 불편한 것인지', '내가 프로불편러인지'가 궁금해서였다. 불편과 불쾌를 인지하고 말하는 것조차 재단당해왔던 것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빨간약은 이 불편함의 이유를 찾아주었고 불편함이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래디컬 진영과 TERF에서는 빨간약이라는 신어와 함께, 그 어원인 '매트릭스'와 남성의 성기 '지'를 합성하여 남성중심사회를 일컫는 자트릭스라는 신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일부 페미니즘에서는 남성성을 '자지'로 대변하는 것은 성기환원주의적이기 때문에 언피씨한 성격이 짙다고 비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