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낙엽1124/사례로 알아보는 여성혐오

최근 편집: 2018년 2월 13일 (화) 20:24
읽기 전에… 이 글은 하드 정리하다가 발견한 제가 2016년에 과제로 쓴 글인데 제 흥에 실컷 취해 쓴 것이 문체도 우스꽝스러운데다 당시에는 나름 최신 이슈라고 다룬 것들도 지금 보면 다 지나간 얘기들 뿐인 것이 재미있어 읽을 만한 것 같아 신상정보가 드러난 부분만 삭제하고 한번 올려봅니다.

서론

요즘에는 여성 혐오라는 말을 쓰는 사람의 수가 제법 늘어난 것 같다. 여성발전기본법양성평등기본법이 되고, 성차별이란 표현보단 양성평등이란 표현이 더 많이 쓰이는 와중에 여성혐오란 단어는 일견 시대를 거스르는 것 같게도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은 오랜 인류 역사에서 불리한 (性)에 속한 것이 언제나 여성이었단 사실을 드러내면서도 또한 이것이 우리가 고쳐나가야 할 분명한 잘못임을 상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여성혐오가 우리 생활에 얼마나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가를 사례를 들어 살펴보고, 그 기저에 깔린 사상을 알아보며 고쳐나가야 할 부분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사례. 대상화

얼마 전 KBS에서 방영한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구설수에 올랐다. ‘본분 금메달’이란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여성 연예인들을 극한 상황에 밀어넣고 그런 상황에서 얼마나 “이쁜척”을 잘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내용이었다. 시청자들은 격분했으며, 한국여성민우회는 이와 같은 방송 내용이 방송심의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방송민원을 제기하고 본분 금메달의 정규편성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인터넷에서 잠깐 화제가 된, 여자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신호, 일명 “그린라이트”를 나타내는 기준 글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눈을 3초 이상 마주쳐도 피하지 않는다면/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귀와 목을 보여주려 한다면/귓볼을 만지면서 손목의 안쪽을 나에게 보인다면/대화를 나누면서 나를 가볍게 툭 친다면/몸의 중심이 나에게 치우쳐 있다면/배꼽이 나를 향하고 있다면/다리를 꼬았을때 위쪽 발끝이 나를 향하고 있다면/목걸이, 반지, 팔찌를 계속해서 만진다면…

네티즌들은 “숨만 쉬어도 그린라이트”, “남자를 거세를 시켜도 그린라이트라고 할 판”이라며 비꼬았다. 과장된 면이 있는 것 같겠지만, 이 그린라이트 글이 공유되면서 많은 여성들은 자신이 한 아무 것도 아닌 행동이 낯선 남성에게 의미를 부여당한, 대부분 성희롱으로 이어진 사연들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남성들은 이런 시각을 갖게 돼버린 걸까?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은 ‘남성의 부속품’이었으며, 곧 그 주인이 되는 남성의 능력을 드러내주는 존재로서만 가치가 있었다. 모든 미혼 여성은 아직 피지 못한 꽃으로서 열심히 자신을 가꾸어 남편을 찾아 시집을 가야 했으며, 그해 반해 미혼 남성은 자신의 능력을 뽐내기 위해서 응당 계집을 하나쯤은 얻어야 했다. 이런 경향은 아주 오랜 세월 지속되었으며, 문학과 예술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많은 동화의 주인공들은 당연히 남성이고, 여성은 단지 뛰어난 외모만을 가지고 있으며 반드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1] 다른 면에서, 영화나 소설, 애니메이션에서 익살맞거나 뚱뚱한 등장인물들은 모두 남자라는 사실은 또 하나의 재미 있는 예다. 여성 작가가 쓴 소설 해리포터도 악역과 조연 대부분이 남성이며, 독립적인 여성상을 보여주어 페미니스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겨울왕국에서조차 눈사람은 남자 목소리를 낸다. 한편 영화계에는 마치 우스갯소리 같은 벡델 테스트라는 것이 있는데 이 테스트는 다음과 같다.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적어도 두 명은 등장하는가? 그 여성 인물들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는가? 대화를 했다면 혹시 남자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는가? 예상하겠지만 이 테스트를 통과하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성추행, 스토킹, 시선 폭력 등은 모두 이런 문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상에서 모든 여성은 남자를 기다리는 길가의 꽃 같은 존재이며, 남성은 길가의 꽃을 꺾는 일에 꽃에게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이제 우리는 ‘본분 금메달’이 어디에서 시작한 것인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보기 좋은 장식품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여성에게는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못생겨질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고작 웃기자고 만든 프로그램’에 목숨을 걸고 화를 내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별 거 아닌 그린라이트 운운에 짜증이 나는 이유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자들은 도대체 여자를 가만 놔두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례. 비대칭적 대화

가벼운 화제로 돌아가, 아직 논란이 없는 예능 이야기를 해보자. JTBC의 ‘마녀를 부탁해’는 예능으로서는 드물게도 고정 출연진 다섯명이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으로, 남자 게스트를 초대해 토크를 진행한다. 세번째 게스트로서 윤정수와 함께 출연한 코미디언 김영철은 자신의 말을 계속해서 가로막는 여성 MC들에게 “여기는 기 쎈 여자들만 모였어”라고 외치는데, 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런데 기가 쎄다는 게 대관절 무슨 소리일까? 내게는 오히려 김영철이 듣는 사람은 관심이 없을 이야기를 끝없이 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고, 같이 나온 윤정수 또한 김영철의 표현대로라면 마치 기 쎈 여자처럼 김영철의 말을 자르며 화를 냈다.

우선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면, 남성 사회의 여성은 의견을 가져서는 안되는 입장에 처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여자는 마땅히 남자가 하는 말에 동의하고, 맞장구를 쳐주고 남자의 기를 살려주어야 한다. 실제로 이 방송에서 김영철은 계속해서 여성 출연진들이 리액션이 부족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 전통적인 남성에게는 여자들이 오히려 말을 하려고 하는 그 상황이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을 것이다.

(중략)

이와 같이 자신이 아는 지식을 계속해서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매우 흔하며, 픽션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주라기 월드에서 관광 중 조난을 당한 어린아이 그레이 미첼은 거의 대부분의 등장 시간을 자신이 아는 공룡 지식을 방출하는 데 할애한다. 왜 이렇게 사람의 지식은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항상 입 밖으로 꺼내져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한 ‘’이란 개념이 잘 설명해 준다.[2] 만약 ‘남에게 전해져야만 하는 이야기(밈)’와 ‘혼자만 알아야 하는 이야기(밈)’가 있다면 도태되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 남아 퍼지는 이야기는 당연히 '남에게 말해야만 하는 이야기(밈)'일 것이다. 즉 사람이 수다스러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경우에 따라 듣는 사람이 싫어할 화제는 피하고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하다. 칼럼니스트 겸 방송인 곽정은은 작년 5월, 다음과 같은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택시를 탔는데 앉자마자 기사분이 주말인데 좋은 데 놀러 가느냐고 묻는다. 일하러 가는데요 라고 했더니 아니 이렇게 예쁜 공주님들도 일을 하러 가느냐고 다시 묻는다. 탄김에 곧장 서울역까지 가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중간에 내려 지하철을 타야겠다.

예쁜 공주님들도 일을 하느냐는 이상한 소리는 제쳐두더라도, 이 짧은 일화에서 우리는 택시기사와 손님이라는 두 인격체의 '대화'가, 전혀 대화같지도 않은 일방적인 형태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성 택시기사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을 상대방이 듣고 싶은지 어떤지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말하고 있는데 반해, 여성 손님은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조차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그저 택시에서 내릴 뿐이다. 왜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일까? 리베카 솔닛은 ―이 상황을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같은 맥락이므로 인용한다― "젠더의 사회적 작동방식에 드러나는 거시적 패턴을 반영한 젠더 간 엄청난 힘의 격차가 악랄한 형태로 표출된 현상"이라고 하였다.[3]

(중략)

사례. 호모소셜

얼마전 미용 프랜차이즈 업체인 준오헤어의 대표가 대학 강연에서 여성 비하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고 결국 보직 해임이 된 일이 있었다. 문제가 된 발언들은 대강 다음과 같다. "여자는 리더십과 팔로어십이 없다.", "여자들은 회식 자리에서 소주를 먹지 않고 백세주 같은 술을 시킨다", "남자는 아무리 똑똑해도 군대 가서 기합도 받고 밑에서부터 있으면서 팔로어십을 배운다.", "여자들은 사회성도 부족하다", "회사에서 여자를 뽑으면 (상사가) 뭐라 하면 울고, 심지어 엄마한테 전화도 오더라". 한편,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3월 14일 헤럴드경제가 낸 기사 "바둑에 'ㅂ'도 모르는 여성도 '센돌' 광팬됐다"에 대해, SNS를 통해 "바둑의 'ㅂ'자는 몰라도 인권의 'ㅇ'자는 압니다. '바둑 모르는 사람'을 '여자'라고 쓰는 헤럴드경제 수준 참."이라고 꼬집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집단 내 편견에 대한 한 실험을 알아보자. 실험 설계자들은 보육원의 3~5세 아이들을 무작위로 파랑 집단과 빨강 집단으로 나누고 교사로 하여금 예를 들어 "좋은 아침이에요. 파랑이들, 빨강이들" 하며 인사를 하는 식으로 아이들이 자신의 집단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3주가 지나자,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더 선호하며 다른 집단에 속하는 아이들과 놀고 싶은 욕구를 크게 표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4] 준오헤어 전 대표의 소주 발언은 분명히 이 실험의 연장선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그가 속해 있는 '남성 집단'은 소주를 좋아하였고, 그러므로 그는 백세주를 싫어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거의 책 한 권을 이러한 남성 집단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들의 특징 중 하나로 여성배척을 꼽았다. 바둑도 모르는 여성들이 감히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로 이세돌이 속한 남성 그룹의 권위를 높이고, 자연스레 여성들을 싸잡아 낮춘 헤럴드 기사의 헤드라인은 이런 젠더 서열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소주를 싫어하는 남자도 충분히 있을 법 한데 왜 황 대표의 앞에 나타난 모든 남성은 소주에 대한 기호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우에노 치즈코는 남성 역시 젠더의 속박 속에서 고통받아 왔다고 언급한다.[5] 남성에게는 자신이 충분히 남성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자기 혐오에 작용하여 고통받는다는 것인데, 우리 교재새로 쓰는 여성복지론:쟁점과 실천. 양서원.에서도 “가장과 권위적 아버지로 상징되는 남성의 역할로 인해 자신을 억압하는 남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교재 32쪽) 만약 준오헤어 전 대표가 바라는 남성상이 정말 이렇게 남성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여성에게 권할 것이 아닌 것은 물론이거니와 남성들에게서도 뿌리 뽑아야 할 문화일 것이다.

결론

여태까지 여러가지 방면에서 실생활에서 관찰할 수 있는 여성혐오와 그 기반 사상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선배 여성운동가들의 도움으로 인해, 21세기에는 당당하게 여성이 열등함을 주장하는 사람은 꽤 줄었다. 그러나 여성혐오라는 것이 너무나 짙고 옅게 이 세상에 퍼져있기 때문에, 보통은 인지조차도 하지 못한 채로 여성혐오에 바탕을 둔 행동을 하기 일쑤고 이로 인해 양 성간의 불화가 초래―말하자면 정말로 '의도한 바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혐오를 포함한 성 인지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이해를 높여 성 주류화 도모한다면, 여성혐오 현상은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많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믿는 많은 여성학자, 여성정책가, 여성운동가, 여성단체 등의 활동은 더더욱 환영받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코델리아 파인 지음, 이지윤 옮김, 《젠더, 만들어진 성》(2014), 휴먼 사이언스, 316~317쪽.
  2.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난 옮김, 《이기적 유전자》(30주년 기념판), 을유문화사, 335쪽.
  3.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2015), 창비, 27쪽.
  4. 코델리아 파인 지음, 이지윤 옮김, 《젠더, 만들어진 성》(2014), 휴먼 사이언스, 323쪽.
  5. 우에노 치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