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란 생산 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사상이다. '사적 소유는 줄이고 개인적 소유는 늘리는 것'[1][주 1]을 목표로 한다.
분파
사회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는 개량적 사회주의라는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학파를 중심으로 결성된 좌파이다. 대표적으로 독일 사회민주당이 그에 속한다. 공산주의의 경우는 1980년대만 해도 전 세계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집단을 형성하였고, 좌파의 수장격 이념으로 급부상했지만, 1991년 소련 붕괴로 인해 좌파 내 공산주의 진영은 오늘날 크게 위축되었다. 그에 반해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평등을 민주적으로 실현하려는 조류였는데, 1951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부터 공산주의 진영에 대항하여 적대적 관계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공산주의 진영에 대항하기엔 그 힘이 그렇게 크지 않았으며, 소련 붕괴 전까지는 좌파에서 소수에 해당했다. 사회민주주의는 인민들이 사회권 곧 사회적 안전망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상에 따라 복지국가를 건설함으로써 납세자들인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오늘날 인민들에게 인정받는 정치이념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대의 좌파 대부분은 사회민주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삼고있다. 현재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회민주당, 영국 노동당, 노르웨이 노동당, 중화민국 민주진보당, 이탈리아 사회당, 오스트리아 사회당, 공정 러시아, 정의당이 사용하고 있는 이념이다.
공산주의
공산주의는 마르크스, 엥겔스와 같은 과학적 사회주의 즉, 청년 헤겔 급진파의 전통성을 잇는 좌파들이 후에 통칭하여 사용된 공동생산이론이다. 이 공산주의계는 기본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르며 그 안에서도 모택동주의, 스탈린주의, 트로츠키주의, 레닌주의로 분열되었다.
종교사회주의
종교사회주의는 칼 바르트, 폴 틸리히, 블룸하르트 등의 독일 개신교의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였고,사회주의와 기독교의 연관성을 찾고자 했다. 현재는 이탈리아의 좌파의 일부가 이 이념을 따르고 있다.
이 외에도 아랍사회주의 중 나세르주의 또한 좌익 이념으로 보기도 한다. (바트주의의 경우, 제3의 위치로 분류되기도 함)
기독교 사회주의
그 외 기독교 사상에 근거한 사회주의들인 기독교 사회주의, 종교사회주의가 사회주의계 좌파로 여겨진다. 기독교 사회주의는 찰스 킹슬리, 윌리엄 모리스 등의 영국 성공회 사제들이 주장했으며, 자발적 나눔으로써 가난한 사람을 배려할 것을 주장한다.
기타
유럽공산주의는 소련의 비민주적인 탄압이 심해져 국제적으로 비판이 일자, 서유럽의 공산당들이 독자적으로 내걸은 민주적인 공산주의 이념이며, 현재는 프랑스 공산당, 이탈리아 공산당, 일본 공산당, 키프로스 노동인민진보당이 이 이념을 따르고 있다.
현실 사회주의와 현대에서의 사회주의[2][3][4][5][6][7][8][9][10][11][12][13][14][15][16][17][18]
소련, 중국, 동독, 북, 쿠바의 여성의 상황을 살펴보면 사회주의 건설에서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법적으로 평등한 권리의 공포, 토지개혁에서 여성의 동등한 재산권, 노동권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법 해설과 문맹퇴치, 무상교육, 무상의료, 공공주택, 여성을 육아와 가사노동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여러 조치들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여전히 육아와 가사노동은 여성의 일로 생각하고 있다. 그것으로 인해 국가의 중요한 위치에 참여하는 여성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소수라는 측면도 있다. 계급사회의 모든 잔재가 남아 있는 한, 남성의 성역할에 대한 낡은 의식도 남아 있었을 것이다.
베벨이나 엥겔스가 말했듯이 완전한 여성해방은 모든 계급이 폐지될 때 가능한 것이다. 20세기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는 계급이 완전히 폐지된 완전한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었다. 지구의 절반 이상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존재하고 그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도발하고 이에 맞서 인민생활의 향상을 위해 사용해야 할 노동과 생산물을 전쟁무기 만드는 데 사용해야 했다. 발달한 생산력을 인민의 필요를 위해 사용하지 못하는 조건에서, 국내에서도 여전히 도시와 농촌,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존재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탈린 격하운동을 벌이면서 수정주의의 길을 걸었던 소련의 지도부들에 의해서 소련 붕괴의 조짐들은 점점 더 자라고 있었고, 이러한 역사적 후퇴는 여성해방의 측면에서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계급해방과 분리되는 여성해방은 무엇일까? 위와 같은 객관적 조건(법적으로 평등한 권리의 공포, 토지개혁에서 여성의 동등한 재산권, 노동권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법 해설과 문맹퇴치, 무상교육, 무상의료, 공공주택, 여성을 육아와 가사노동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여러 조치들)들이 없이 완전한 여성해방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클라라 제트킨은 “여성해방은 사회주의의 승리를 통해서, 사회주의의 승리는 오직 프롤레타리아 여성과의 결합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고 했고, 로자 룩셈부르크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도 이런 정신으로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교육하여 혁명의 절반의 힘으로 만들었고, 혁명 이후 위와 같은 객관적 조치들을 취하면서 남성에게 남아있는 낡은 의식과 투쟁했던 것이다.
러시아혁명 이후 당의 한 부서로 만들어졌던 제노텔(여성국)이 가장 열성적으로 그 일을 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스탈린의 반동적 조치가 제노텔을 해체한 것이 아니라 1920년대 말이 되어 여성문맹이 대부분 해결되고 법령 해설 등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서 소비에트 여성위원회 등으로 조직 개편한 것이란 것을 헬렌 버제스의 책에 언급되어 있다. 또한 사회주의 승리에서 여성의 역할은 북에서 ‘여성은 혁명의 한 쪽 수레바퀴’라고 표현되었다.
이하의 인용문은 스탈린주의적 입장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반소련주의자들은 소련에서 스탈린의 반동적 조치로서 낙태죄가 부활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1930년대 낙태죄 부활은 스탈린이 아니라 "소비에트 여성들의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낙태가 건강에 해롭고, 자유로운 낙태를 악용하는 남성들에 의한 강요된 낙태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것은 법률에서 누가 처벌대상이었는지에 의해서 확인된다. 낙태를 받은 여성은 견책, 낙태를 시행한 의사는 징역 1~2년, 여성에게 낙태를 받도록 강요한 자는 징역 2년, 밀실낙태나 옷걸이 낙태를 행한 자는 징역 최소 3년이었다. 이후 소련은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낙태에 관한 의술이 좀 더 발전하고 강요된 낙태의 문제보다 여성의 자주권이 더 우선시되자 1955년에 낙태죄를 다시 폐지하게 된다. 소련에서의 낙태죄의 부활은 가부장제의 사례가 아니라 당이 여성당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강요된 낙태를 처벌함으로써 소비에트 남성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19]
하지만 이는 전국노동자정치협회(이하 노정협)가 스탈린주의적인 입장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가 있다. 한정숙(2010)에 따르면 소비에트 연방 성립 초창기 여성의 안전한 낙태의 문제는 민간 시술사의 집도가 아니라 근대화된 의료체계에서 낙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20] 혁명 이전의 제정러시아는 낙태 문제에 대해 상당히 억압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었고 이는 여성이 낙태를 비위생적이고 검증받지 못한 시설과 방식으로 시도하게 되는 문제를 낳았다. 혁명 이후 볼셰비키는 이러한 문제를 근대적인 의료체계의 확충과 낙태를 그 체계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으로 여성이 안전한 보건의료제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다. 해당 연구들에서 낙태가 불법화된 것은 스탈린주의 시기의 보수 회귀적 여성 가족론에 기반한 것이라고 서술되어있다. 당시 사회 내에서 이러한 낙태 반대론의 주요 지지층은 산부인과 의사와 아동보호론, 모성보호론자들이었다. 노정협의 기존 서술에서는 이것이 '소비에트 여성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지만 어떤 근거도 없으며 이 여성들이 어떤 구성으로 이뤄졌는가에 대해서도 일체의 근거가 없다. 이영아(2013)에 따르면, 당시 스탈린 통치하의 소련에서 반동적 가족주의론이 국가이데올로기가 되면서 당대 조선에서도 낙태찬성론이 힘을 잃기까지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21]
자본주의 국가들도 법적으로는 얼마든지 평등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의 문구상의 평등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위의 사회주의적 조치들이 동시에 행해져야 한다. 예를 들면 육아와 가사노동의 사회화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사회서비스일자리는 저임금·비정규노동으로 여성을 착취하고 여러 민간자본들의 난립으로 무수한 문제를 만들고 있는 보육, 간병의 분야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소련이 해체되고 중국, 베트남 등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며 시장사회주의라는 수정주의 노선으로 변화한 옛 반수정주의·현실사회주의 국가들에서 현재 여성의 현실을 살펴보면 더욱 사회주의와 여성해방의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진보노동당은 ⌜소비에트 국가들의 붕괴 20년 후⌟ 라는 글을 통해서 소련 및 동유럽 소비에트 국가들의 붕괴 이후 20년 동안 인민들의 삶이 얼마나 궁핍해졌는지를 생활수준과 건강의 쇠퇴, 여성에 대한 공격과 여성의 권리의 후퇴라는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1995년까지, 구 소비에트 연합 전체에 걸친 기대수명의 저하 때문에 연간 50만에서 100만 정도의 추가 사망자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헝가리에서 시장 개혁은 남성 심장 질환 증가를 유발했고, 자살률이 50% 상승하기 까지 몇 년이 걸리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사망률은 출생률의 두 배에 달한다. 이러한 건강의 쇠퇴의 근본원인은 사회주의적인 의료체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소아마비, 결핵, 콜레라, 디프테리아, 이질과 같이 이미 오래전에 근절되었던 질병들이 새로운 자본주의 러시아에서 부활하였다.
노동자들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것은 여타 공공서비스가 사라진 것이다. 난방연료 보조 폐지, 공공기업 사유화, 2007년 푸틴에 의해 통과된, 벌목을 통한 사적 이익 추구와 부패한 지방 관료들의 손에 러시아의 광대한 산림을 넘겨주는 산림법. 이와 같은 것은 사람들이 깨끗한 물이나 전기, 난방을 저렴하게 이용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고, 삼림의 훼손에 의한 산불의 발생은 두 배로 증가했다.
구소련 지역에서 건강에 대한 최후의 위기는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적 관계가 노동자계급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다. 자본주의에서 항상 존재하는 스트레스와 소외감으로 심장병 발생이 증가했고, 약물 중독과 알콜 중독은 동유럽 전체에 유행처럼 확산되었다. 러시아에서는 시장 전환 2년 만에 약물 남용이 80% 증가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이용하였다. 소비에트 지역의 금주프로그램을 없애고 값싼 술을 대거 시장에 도입했다. 보드카의 가격은 노동자의 임금보다 더 빨리 하락했다. 최근 러시아상공회의소는 러시아에서 매년 알콜중독으로 50만 명이 사망한다고 했다. 서유럽과 미국에서 담배 판매가 부진해진 1990년대에 소련붕괴는 담배산업의 생명줄처럼 보였다. 미국 자본은 즉시 새롭게 사유화한 동구권의 담배 공장을 모두 사들였고, 무차별적으로 광고를 살포하기 시작했다. 동유럽은 담배와 말로보맨의 사진으로 넘쳐났다. 이 결과 구소비에트 국가들에서 흡연자의 수는 극적으로 증가했다.
러시아혁명의 승리는 전 세계 여성들의 거대한 승리이며 마찬가지로 소련의 붕괴는 중대한 패배를 의미한다. 여성 실업률이 급격히 증가해서, 1996년 러시아에서 실업의 80%가 여성이었다. 그들은 가정 적은 임금을 받는 일이나 낮은 기술의 일에 고용되었고, 어느 회사에서나 가장 먼저 해고되고 가장 늦게 고용되었다. 소련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유급 임신·출산 휴가, 남성과 동등한 승진과 임금, 특별훈련기회, 작업장에서 특별한 안전장치와 같은 모든 권리는 박탈되었고, 직장에서 무수한 성희롱을 당하게 되었다. 한 폴란드 여성은 이제 취업하기 위해서는 “젊고, 아이가 없고, 가슴이 커야 한다”고 통탄했다. 동독 사람들의 88%는 자본주의 5년 동안 생활에 비해 과거 동독의 여성 조건이 훨씬 나았다고 한다. 동독 출신 한 여성은 “여성이 빼앗긴 것은 단지 보육시설과 수입이 아니라 여성의 사회적 삶, 인간관계, 일터로 집중되어 있는 공동체적 연대감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자본주의와 함께하고, 자본주의의 한 부분인 성차별은 동유럽 여성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성차별의 부활로 여성에 대한 폭력이 끔찍하게 증가했다.
여성주의와 사회주의
이상에서 소련, 중국, 동독, 북, 쿠바를 통해 20세기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그러나 여성 문제가 사회 전체 문제의 한 부분이므로 사회주의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여성문제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70년 이상 반공교육을 받고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통제되는 사회에서 자라고 살고 있는 우리는 사회주의를 온전히 이해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다. 최근에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기관지 『정세와 노동』 159호부터 문영찬의 ⌜20세기 사회주의의 역사적 성격⌟이 연재되고 있다.
고전 사회주의 저서 목록
-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 공산당 선언
- 독일 이데올로기
- 임노동과 자본
- 공상에서 과학으로
- 프랑스 내전
-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 무엇을 할 것인가
- 제국주의론
- 국가와 혁명
-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주석
- ↑ 개인적 소유가 철폐된다는 것은 오래된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 중 하나이다. 공산당 선언에서도 노동의 대가로 얻은 노동 수확물을 소유(혹은 점유)할 권리를 인정한다.
출처
- ↑ 바스카 순카라, 에릭 올린 라이트 등. 《The ABCs of Socialism》 [사회주의 ABC]. 나름북스. 42쪽. ISBN 9791186036280.
- ↑ 헬렌 버제스 지음, 여성한국사회연구회 옮김 『소비에트 여성은 말한다』 1989 앎과함
- ↑ 이태준 『소련기행· 농토· 먼지』 2001 깊은샘
- ↑ 백남운 『소련인상』 2005 선인
- ↑ 김이경 『좌충우돌 아줌마의 북맹탈출 평양이야기』 2019 내일을 여는 책
- ↑ 김련희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2017 도서출판 615
- ↑ 심규석 ⌜북한의 여성정책: ‘여성은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 2001 통일경제
- ↑ NK투데이 ⌜북한은 왜?⌟ 2018
- ↑ 문영찬 ⌜20세기 사회주의의 역사적 성격⌟ 2020 『정세와노동』 159호~163호 노동사회과학연구소
- ↑ 배진희 『거꾸로 가는 쿠바는 행복하다』 2019 시대의 창
- ↑ 박세길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2』 돌베개
- ↑ 이리나 말렌코 ⌜소련사회에 대한 진실 혹은 오해⌟ 2013 레디앙 주최 간담회 및 스리랑카 사회주의 청년조직과의 인터뷰, 전국노동자정치협회
- ↑ 미국진보노동당, 번역 전국노동자정치협회 ⌜쏘비에트 국가들의 붕괴 20년후(2)⌟, 2012.11.30. 노동자정치신문 90호
- ↑ 통일부, 독일통일 총서 8 『여성분야 통합 관련 정책문서』 2014
- ↑ 정재훈·박수지 『동독 사회보장제도 : 역사와 변화』 2017 한국보건사회연구원
- ↑ 윤성혜 ⌜‘여성해방’주도했던 중국공산당, 지금은?⌟ 프레시안 2020.7.13
- ↑ 박현숙 ⌜중국여성들은 새로운 ‘평등과 자유’를 원한다⌟ 2001 오마이뉴스
- ↑ 천연옥 ⌜노동운동과 페미니즘⌟ 『현장과 광장 2호』 2020 노동전선
- ↑ ⌜쏘련에서의 여성의 권리와 낙태에 관하여⌟, 2017.11.8.전국노동자정치협회.
- ↑ 한정숙. “소비에트 정권 초기의 가족·출산 정책: 현실과 논의들- 특히 1920년대 낙태 문제를 중심으로-”. 《서양사연구》 43.
- ↑ 이영아.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낙태’ 담론 및 실제 연구”. 《의사학》 2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