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교차성

최근 편집: 2023년 6월 16일 (금) 13:01

상호교차성 또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은 최근 약 20년 사이에 급부상한 이론이자 방법론, 또는 패러다임으로, 상호교차적인(intersecting) 또는 겹쳐지는(overlapping) 사회적 정체성 및 이와 관련된 억압, 지배구조, 차별을 연구한다.[1] '상호교차성'이라는 용어는 1989년에 미국의 비판적 법 인종 이론(critical legal race) 연구자 킴벌리 윌리엄즈 크렌셔(Kimberlé Williams Crenshaw)에 의해 고안되고 체계화되었으나[2], 관련된 개념들에 대한 논의는 1800년대 중반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다.

상호교차성 이론은 한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범주는 단일하지 않으며 젠더, 인종, 사회 계급 등 다양한 측면이 상호교차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한 사람에게 작용하는 억압, 지배구조, 차별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과 창발적 속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관점에 의하면 여성이 받는 차별과 흑인이 받는 차별을 개별적으로 나누어 분석한 후 이 둘을 취합하는 방식(더하기 모델)으로는 흑인이면서 동시에 여성인 사람이 받는 차별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정의

교차로. 상호교차성 개념에 대한 비유로 종종 활용된다.

상호교차성은 인간의 존재가 인종, 민족성, 토착성, 젠더, 계급, 성, 지역, 나이, 장애, 이민, 종교 등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들 강조한다. 또한, 사회적 위치를 규정하는 다양한 측면들 사이에서의 상호작용은 법, 정책, 정부, 기타 정치적 또는 경제적 연합체, 종교 단체, 미디어 등 다양한 체제와 권력 구조라는 맥락 하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식민주의, 제국주의, 인종주의, 동성애혐오, 에이블리즘, 가부장제와 같이 상호의존적 형태의 특권과 억압이 만들어진다고 본다.[1]

상호교차성 관점에서 볼 때 불평등은 결코 단일한 요인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모든 불평등은 상이한 사회적 위치, 권력 관계, 경험에서 복합적으로 파생된 결과물이다.

크렌쇼의 교차로 비유는 흑인 여성이 겪는 차별을 잘 표현하고 있다.

차가 네 방향에서 모두 오고 가는 교차로(intersection)를 떠올려보자. 교차로를 지나는 차량과 마찬가지로 차별은 한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고 또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 교차로에서는 어느 방향에서 온 차에 인해서든 사고가 날 수 있으며, 때로는 모든 방향에서 온 여러 자동차에 동시 책임이 있을 수도 있다. 이와 유사하게 교차점에 서 있는 흑인 여성이 피해를 입는 경우, 이 피해는 성차별 수도 있고 인종 차별일 수도 있는 것이다. .. 흑인 여성은 때로 백인 여성과 유사한 차별을 경험하고, 때로는 흑인 남성과 유사할 차별을 겪는다. 또 한편으로는 인종 차별과 성 차별이 결합된 형태의 이중적 차별을 겪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서, 흑인 여성은 인종 차별과 성 차별의 합이 아닌, 흑인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겪기도 한다. --킴벌리 윌리엄즈 크렌쇼, [2]

즉, 흑인 여성은 다음과 같은 종류의 차별을 겪는다.

  1. 흑인이기 때문에 겪는 인종 차별
  2.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성 차별
  3. 두 가지 차별을 동시에 겪는 이중적 차별
  4. 인종 차별과 성 차별의 합산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흑인 여성'에 대한 특별한 차별

인종과 성별 뿐 아니라 민족성, 토착성, 계급, 지역, 나이, 장애, 이민, 종교 등 다양한 차원을 추가로 고려하면 문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복잡해진다.[주 1]

역사

1850년대. 소저너 트루스의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1851년 오하이오 주에서 열린 여성 인권 대회(Women's Rights Convention)에서 노예제 폐지론자이자 여권 운동가인 소저너 트루스는 모든 여성과 모든 흑인에게 동등한 인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연설을 하였으며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 연설은 이후에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Ain't I a woman?)"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상호교차성 분석의 여러 주제들을 포함하는 연설로 평가 받는다.[4]

1960년대. 프란시스 빌의 "이중의 위험"

1969년, 프란시스 빌(Frances Beal)은 "이중의 위험: 흑인이자 여성으로 산다는 것(Double Jeopardy: To Be Black and Female)"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발표한다. 이 에세이는 <블랙 파워> 운동의 가부장적 성격, 여성 운동 내의 인종차별주의 등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과 엮어 분석하는 선구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8년 후인 1977년에 작성된 콤바히 리버 컬렉티브의 선언문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5]

1970년대. 콤바히 리버 컬렉티브 선언문

1970년대에 결성되었던 레즈비언 흑인 여성 페미니스트 집단인 콤바히 리버 컬렉티브는 기존의 중산층 백인 여성 중심의 페미니즘 사상은 자신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억압을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 한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는 성별 이외에도 인종, 계급, 성적지향 등 다양하다는 점, 억압의 주요 체계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엮여 있다는 점 등을 주장하였다. 이들이 발표한 선언문은 블랙 페미니즘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의 기초가 된 주요 문헌 중 하나이다. 프란시스 빌의 분석에 더하여 콤바히 리버 컬렉티브의 선언문은 이성애중심주의 및 호모포비아 문제 또한 다루고 있다. 다음을 참고할 것 콤바히 리버 컬렉티브

1980~90년대. 상호교차성 용어의 탄생, 학문적 전개

1989년에 미국의 비판적 법 인종 이론(critical legal race) 연구자 킴벌리 윌리엄즈 크렌셔(Kimberlé Williams Crenshaw)는 콤바히 리버 컬렉티브의 선언문 등에 담긴 사상을 이어받아 더욱 체계화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는 용어를 고안하였다.[2]

상호교차성 이론 연구자이자 블랙 페미니즘 학자인 페트리샤 힐 콜린스에 의하면 크렌쇼는 상호교차성이 현실과 단절된 이론으로 그쳐서는 안되며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으나, 이러한 측면이 현재 충분히 부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콜린스는 또한 용어의 고안이나 제도권에서의 학문적 전개 등이 시작된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를 상호교차성의 출발점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이 같은 경향이 기존 사회 운동 시기에 전개된 논의들이 내포하고 있는 다양성 및 사회 변혁적 잠재력을 축소하고 상호교차성 논의의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점을 우려한다.[5]

2000년대. 사회 개혁을 위한 도구로써의 상호교차성

캐나다의 사회학자 올레나 한키브스키는 상호교차성을 사회 및 제도 개선을 위한 분석 도구로 활용하는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한키브스키는 "다양성 주류화(diversity mainstreaming)"를 위해 의료정책수립의 모든 단계와 과정에 있어서 전일론적 평등성을 장려하기 위한 장치로 상호교차성 이론을 차용한다.[6] 북아일랜드의 "평등 및 다양성 주류화(Equality and Diversity Mainstreaming)" 프로그램은 만연해 있는 "젠더 우선 정책"의 폐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치로 상호교차성 이론을 활용한다.[5]

핵심 원리

상호교차성 이론의 핵심적인 원리는 다음과 같다:[6]

  • 인간의 삶은 단일한 특성(characteristics)으로 환원될 수 없다.
  • 특정한 하나의 요인 또는 여러 요인들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방식으로는 인간의 경험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 '인종'/민족성, 젠더, 계급, 성적지향, 장애와 같은 사회적 범주 또는 위치는 사회적 구성물이며, 유동적이고 유연하다.
  • 사회적 위치는 분리 불가능하고, 서로 상호작용하는 여러 사회적 과정과 구조에 의해 형성된다. 사회적 과정과 구조들은 권력에 의해 형성되며 시간과 장소에 영향을 받는다.
  • 사회 정의와 평등성 실현을 장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상호교차성 관점에서 바라보기

젠더와 인종: 범주화의 문제

상호교차성 이론의 뿌리 중 하나는 블랙 페미니즘이다. 블랙 페미니즘에서는 흑인 여성이 겪는 차별은 흑인의 차별과 여성의 차별을 단순히 합치는 방식으로 이해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인종, 계급, 젠더 등 각 범주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억압을 강화하기 때문이다.[7]

상호교차성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제안안 법학자 킴벌리 윌리엄즈 크렌쇼의 논문에 소개된 사례를 살펴보자. 다섯 명의 흑인 여성이 제너럴 모터스를 고소한 사건이다. '흑인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그 이유였다, 제너럴 모터스가 1964년 이전에는 흑인 여성을 한 번도 고용한 적이 없으며 1970년 이후에 고용된 모든 흑인 여성은 불황기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모두 퇴직 처리가 되었다는 점이 증거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판사는 인종에 대한 차별이나 성별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는 따져볼 수 있으나 인종과 성별의 조합된 형태의 차별에 대해서는 인정된 판례가 없으며, 이런 식으로 보호되어야 할 대상 집단을 임의로 조합하기 시작하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이라는 이유로 '흑인 여성에 대한 차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판사는 또한 '흑인 여성'이 고용된 사례는 없지만 '백인 여성'을 고용한 사례는 있으므로 성차별적이었다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성차별 주장을 기각하고,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같은 피고에 대해 진행 중인 다른 건과 병합할 것을 추천하는 것으로 판결을 마무리하였다.[2]

흑인 여성이 겪는 차별을, "인종 차별" 범주와 "성 차별" 범주로 나누는 바람에 문제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는 '더하기 모델(additive model)'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한 흑인 여성이 미국의 군수업체인 '휴즈 헬리콥터스'를 고소한 사건은 또 다른 문제를 보여준다. 원고는 회사 내에 흑인 여성에 대한 승진 차별(유리천장)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는데, 그 증거로 남성과 여성 사이에 큰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점과 흑인 남성과 백인 남성 사이에는 약간의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통계적 자료를 제출하였다. 하지만 원고의 주장은 기각되었는데, 이번에는 앞의 사례와 정반대의 이유이다. 판결문에 의하면 그 이유는, 원고가 여성 일반에 대한 차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흑인 여성에 대한 차별을 주장한 반면 원고는 백인 여성을 포함한 '여성 일반'을 적절히 대표하지 못한다는 이유이다.[2]

두 사례를 종합하면 흥미로운 모순이 드러난다. 제너럴 모터스 사례에서는 흑인 여성인 원고를 '여성' 범주에 넣은 후, 백인 여성 고용 사례가 있으니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고 말한다. 휴즈 헬리콥터스 사례에서는 반대로 흑인 여성인 원고가 '여성 전반에 대한 차별' 사례를 들고 와서 '흑인 여성 차별'을 주장하였다는 이유로 원고의 주장을 기각하였다.[2]

일차적이고 중요한 문제 대 주변적인 문제라는 잘못된 이분법

전통적인 정치 담론에서 어떠한 문제는 중요하며 일차적인 문제로 취급되고 어떠한 문제는 부차적이거나 급하지 않은 문제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계급 투쟁, 국가 제도, 정치 체제, 전쟁 등의 문제는 중요한 일차적 문제이며, 성차별 문제는 부차적이라고 보는 식이다.

어떠한 담론이 일단 부차적 문제로 인식되면 이 담론은 곧 기존의 '일차적' 구조에 담기기 위해 파편화되고 왜곡된다. 예를 들어 '정신대' 문제는 피해 여성의 인권이 아니라 민족의 수치 내지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의 폐해 등의 측면에서 논의된다.[8]

하지만 상호교차성 접근에 의하면, 사회 문제를 분석함에 있어서 특정한 문제 범주나 구조의 중요성은 미리 선언될 수 없으며 문제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발견될 수 있을 뿐이다.[1] "해일(2002년 대선)이 밀려 오는데 조개나 줍고(개혁당 내 성폭력 사건) 있다"[주 2] 같은 인식은 무엇이 해일(일차적 문제)이고 무엇이 조개 줍기(부차적 문제)인지에 대한 확고한 기준이 정해져 있다는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한다.

흑인 남성의 '인종 프로파일링' 문제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이 아닌 상호교차성 이론 자체가 반드시 교차성의 한 축으로 '여성'을 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호교차성 이론은 공공정책을 평가하기 위한 틀로 활용될 수 있다.[6]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상대적 특권을 누리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모든 남성이 동일한 특권을 갖지는 않는다. 가령 흑인 남성은 백인 남성이 겪지 않는 억압을 받는다. 이 경우 젠더라는 범주만으로는 흑인 남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올바른 분석을 위해서는 인종이라는 범주가 추가로 도입되어야 한다. 또한 '전형적 범죄자'라는 편견 문제에 있어서 흑인 남성은 젠더 범주와 인종 범주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내는 억압을 겪게 된다. 단순히 젠더 범주와 인종 범주에서 문제를 각각 살펴보는 것(additive approach)으로는 '전형적 범죄자' 편견에 따르는 문제를 포괄적으로 분석할 수 없으며 두 범주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야 한다.

주요 용어 및 관련 이론

다중 억압(multiple jeopardy)과 더하기 모델(additive model)

상호교차성 분석은 정체성 및 차별구조에 대한 분석에 있어서 반-환원주의적 관점을 취한다. 데보라 킹은 "다중 억압(multiple jeopardy)"의 개념을 소개하며 더하기 모델(additive model) 또는 더하기 접근법(additive approach)의 한계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9]

...다양한 차별들 사이의 관계가 그저 "더하기(additive)"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정하며 이중-삼중의 위험(double and triple jeopardy) 개념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적용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차별들 사이의 관계는 인종차별 더하기 성차별 더하기 계급차별이라는 수식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 그러나 이같이 단순한 더하기 과정은 흑인 여성들이 겪는 억압을 올바르게 담아내지 못할 뿐 아니라 특정한 하나의 요인이 다른 요인들을 뒤덮을만큼 강력할 수 있다는 부적절한 결론을 유도해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흑인 여성의 지위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요소는 계급 억압이며, 따라서 우선적으로 경제적 측면의 문제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이러한 선언은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이 서로 엮여있는 통제 체제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내가 다중 위험(multiple jeopardy)라고 명명한 상호작용 모델은 이같은 억압의 과정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

입장론 (standpoint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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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 메트릭스 (matrix of dom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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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외부인 (outsider-wit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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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교차성 분석에서 젠더는 항상 가장 중요한 축이어야 하는가

북아일랜드의 "평등 및 다양성 주류화(Equality and Diversity Mainstreaming)" 프로그램은 만연해 있는 "젠더 우선 정책"의 폐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치로 상호교차성 이론을 활용한다.[5] 이같은 접근은 젠더를 포함하여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어떠한 단일 차원에 대해서도 차별적 우선순위를 선험적으로 부여해서는 안된다는 상호교차성 이론의 원리에 기반한다. 교차성 분석에서 젠더가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나 모든 분석에 있어서 젠더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상호교차성의 원리에 배치된다. 사회 문제를 분석함에 있어서 특정한 문제 범주나 구조의 중요성은 미리 선언될 수 없으며 문제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발견될 수 있을 뿐이다.[1]

2017년 3월, 크렌셔는 "사회운동에 있어서 상호교차성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10]라는 주제의 대담에서 젠더 이슈에 대해 아래와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유색인종 여성이거나 퀴어 여성이라고 해서 꼭 상호교차성 분석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백인 여성이거나 유색인종 남성이라도 상호교차성 분석을 할 수 있고요. 어떤 운동이나 조직을 누가 이끄는지만 보면 그게 상호교차성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다는 식의 발상을 멀리하고자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You can be a woman of color or you can be a queer woman and not necessarily have an intersectional analysis. And you can be a white woman or man of color and have an intersectional analysis. So it's one of the reasons why I stay away from the idea of you can tell us a movement or organization is intersectional just based on who's leading it.)

상호교차성은 정체성의 단순열거일 뿐인가

그저 정체성이 몇 개나 존재하는지 찾아내고, 각 개인이 얼마나 많은 정체성으로 지칭될 수 있는지 열거하는 것이 상호교차성 분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크렌셔는 <세계 여성 축제 2016(Women of the World Festival 2016)>에서 <교차성에 대하여(On Intersectionality)>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며 이같은 오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바 있다.[11]

…특히 반-주변화demarginalizing 관련 논의를 초창기부터 추적해오지 않은 이들은 종종 상호교차성을 그저 다중의 정체성에 대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내 정체성은 세 개", "너는 여섯 개" 등. … 적어도 나는 상호교차성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상호교차성은 일차적으로 정체성 자체가 아닌, 사회 구조가 어떤 방식을 통해 특정 정체성들을 취약성에 이르는 수단으로 만드는가에 대한 것이다. (…particularly those who haven’t followed demarginalizing from its initial iteration, often mistakenly think the intersectionality is only about multiple identities. “I’ve got three,” “you’ve got six,” the identity question goes on and on. … That’s not at least my articulation of intersectionality. Intersectionality is not primarily about identity, it’s about how structures make certain identities the consequence of the vehicle for vulnerability.)

패트리샤 콜린스 역시 상호교차성을 단순히 정체성에 대한 이론의 하나로 이해하려는 경향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5]

상호교차성을 정체성에 대한 이론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 교차성을 개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론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주로 교차성을 비판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지곤 한다. 이러한 시도는 교차성 이론의 어떠한 측면은 지나치게 강조하고 다른 측면들은 축소해버린다.

다른 분야의 유사한 접근법

도서관학의 다면분류

다음을 참고할 것 다면분류

다면분류(faceted classification)는 많은 양의 정보를 유연하게 분류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 중 하나이다. 다면분류의 핵심적 아이디어는 하나의 대상을 여러 측면(facets)에서 분류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예를 들어 상영중인 영화를 분류할 때, 장르별 분류, 상영 시간대별 분류, 극장 위치별 분류 등 다양한 측면에서 분류할 수 있다.

특정 장르의 영화를 보고자 하는 사람은 장르별 분류를 통해 원하는 영화를 찾은 후 상영 시간대와 극장 위치를 살펴보는 것이 편하다. 집 근처에서 하는 영화를 보려는 사람은 위치와 시간대별 분류를 통해 영화를 찾는 편이 편하다. 감독별 분류, 출연자별 분류 등 다른 패싯들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단일 계층의 분류 방식에서는 장르, 시간대, 위치 중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상위 분류를 선택하고 나머지 분류는 이에 따라 파편화된다. 예를 들어 장르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면 시간대 및 위치는 각 장르 밑에 파편화되어 속하게 된다. 장르별 폴더가 있고 특정 폴더를 펼치면 그 밑에 시간대별 폴더가 나오고, 이걸 펼치면 위치별 폴더가 나오는 파일 구조를 상상해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상호교차성과 도서관학 사이의 유사성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듀이십진분류미국의회도서관분류 등 단일 계층 분류 방식[주 3]은 남성 중심의 학자들이 중요하게 여겨온 정치-사회 운동인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공산주의 등에 대해서는 독자적 분류 코드를 부여하고 있으나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별도의 분류 코드를 부여하지 않는다. 여성과 관련된 주제는 존재하더라도 '사회과학' 분류나 '관습' 분류의 하위에 파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관련 정보를 찾으려면 문학, 음악, 예술, 생물학, 의학, 경제학, 교육학, 전쟁 등 온갖 분류를 뒤지고 다녀야 한다.[12] 이러한 문제는 상호교차성이 해결하고자 하는 현상의 일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소프트웨어 공학의 관점지향 프로그래밍

다음을 참고할 것 관점지향 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 공학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복잡한 소프트웨어를 체계적으로 분해하여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단위(모듈)로 나누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를 관심사 분리(separation of concerns)라 부른다.

전통적인 관점은 주어진 소프트웨어를 분해하는 가장 좋은 한 가지 방식이 있다고 가정한다. 이를 지배적 분해(dominant decomposition) 또는 주요 분해(primary decomposition)이라 칭한다. 예를 들어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에서는 소프트웨어를 객체 단위로 분해하고, 절차 지향 프로그래밍에서는 함수 혹은 프로시저 단위로 분해한다. 한 패러다임에서는 다른 방식의 분해는 일반적으로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이는 전통적인 페미니즘 이론에서 한 사람에 대한 억압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하나의 요소가 성별이라고 가정하는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프트웨어에는 관점에 따라 여러 분해 방법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지배적 분해 방법을 선택하는 순간 이 분해 방법에 딱 들어맞지 않는 나머지 관심사들은 파편화(scattering)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배적 분해에 들어맞지 않는 관심사들을 '횡단적 관심사(cross-cutting concerns)'라 하며, 횡단적 관심사의 파편화를 '지배적 분해에 의한 폭정(a tyranny of the dominant decomposition)'이라 부른다.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에서는 성별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인종, 계급, 장애 등 다른 관점들이 주변화(marginalize)시킨다고 본다.

관점 지향 프로그래밍(aspect-oriented programming) 접근법은 단일한 지배적 분해가 존재한다는 기존의 가정을 비판하며 소프트웨어를 여러 측면(aspects)에서 바라보고 분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다차원적 관심사 분리(multi-dimensional separation of concerns)라 한다. 분리된 각각의 관심사들은 관점 엮기(aspect weaving)라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합쳐진다. 이와 유사하게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에서도 한 인간의 사회적 정체성은 성별, 인종, 계급, 장애 등의 엮임(interlocking)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한다.[13]

관점 지향 프로그래밍은 그러면서도 기존 소프트웨어 공학의 프로그래밍 패러다임에 존재하는 생태계를 해치지 않는다. 실제로 응용되는 거의 대부분의 관점지향 프로그래밍 관련 도구들은 무리 없이 관점 지향적 요소들을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즉 관점 지향 프로그래밍은 1980년대 이래로 소프트웨어 공학에서 가장 주류였던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의 한계를 보완하고 더욱 객체 지향의 이상향을 잘 구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며, 객체 지향의 장점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상호 교차성이 가미된 이론은 기존 이론의 한계를 보완할 뿐,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이른바 물타기를 시도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제시된 것이 아니다.

체화된 인지

인지과학의 한 갈래인 체화된 인지(embodied/embedded cognition) 이론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뇌' 뿐 아니라 그 사람의 몸(embodied cognition), 몸이 놓여 있는 상황(embedded, situated cognition)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14]

이같은 주장은 흑인 여성이 삶을 통해 체득한 상황적 지식(situated knowing)이 가지는 고유한 가치에 대한 주장, 페미니즘 입장론 또는 페미니즘 인식론과 통하는 면이 있다.[15]

부연 설명

  1. 전산학에서는 이를 조합적 폭발(combinatorial explosion)[3] 또는 차원의 저주(curse of dimensionality)'라 부른다.
  2. 2002년 대선 기간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지던 시기에 발생한 개혁당 성폭력 사건에 대해, 당시 개혁당 집행위원이었던 유시민 작가가 한 발언이다.
  3. 듀이십진분류의 경우 다면분류와 유사한 방식으로 분류코드를 조합할 수 있는 방법이 이후에 추가되었으나 근본적으로는 단일한 계층에 기반한 열거 방식이다.

출처

  1. 1.0 1.1 1.2 1.3 “Intersectionality 101” (PDF). 《Simon Fraser University》. 
  2. 2.0 2.1 2.2 2.3 2.4 2.5 Crenshaw, Kimberlé (1989). “Demarginalizing the intersection of race and sex: a black feminist critique of antidiscrimination doctrine, feminist theory and antiracist politics”. 《University of Chicago Legal Forum》 (PhilPapers) 140: 139–167.  Pdf.
  3. “Combinatorial Explosion”. 《Department of Computer Science, University of Essex》. 
  4. Ain’t I A Woman? Revisiting Intersectionality, Avtar Brah and Ann Phoenix, 2004
  5. 5.0 5.1 5.2 5.3 5.4 Intersectionality - Key Concepts, Patricia Hill Collins and Sirma Bilge
  6. 6.0 6.1 6.2 “An Intersectionality-Based Policy Analysis Framework”. 《Simon Fraser University》. 
  7. “Intersectionality: The Double Bind of Race and Gender” (PDF). 《americanbar.org》. 
  8. p171, 페미니즘의 도전
  9. Multiple Jeopardy, Multiple Consciousness: The Context of a Black Feminist Ideology by 데보라 킹, 1988
  10. What Intersectionality Really Means for Movements, W. K. Crenshaw
  11. "On Intersectionality" by W. K. Crenshaw, Women of the World Festival 2016
  12. "What I discovered in American libraries and archives was that - much like women's history - the history of feminisms has never been accorded a place in existing taxonomies of knowledge." Karen M. Offen (2000). 《European Feminisms, 1700-1950: A Political History》. Stanford University Press. ISBN 978-0-8047-3420-2. 
  13. Robert E. Filman (2005). 《Aspect Oriented Software Development》. Addison-Wesley. ISBN 978-0-321-21976-3. 
  14. The Extended Mind
  15. "Feminist approaches to neuroscience also have important implications for questions about embodied cognition." Robyn Bluhm; Heidi Lene Maibom; Anne Jaap Jacobson (27 January 2012). 《Neurofeminism: Issues at the Intersection of Feminist Theory and Cognitive Science》. Palgrave Macmillan UK. 1–쪽. ISBN 978-0-230-36838-5. , p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