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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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신정휴 교수(1998년 MBC뉴스).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1992년 서울대학교 신 교수가 우 조교를 지속적으로 성희롱한 사건으로, 한국 최초로 법적으로 제기된 성희롱 사건이라는 의의를 가진다.

1 사건 개요

피해자인 우 조교는 1992년 4월경 신 교수로부터 화합물분석기의 일종인 엔엠알기기 담당 조교 선발을 위한 면접 및 기기조작 테스트를 받고 같은 해 5월 29일부터 위 엔엠알기기실에 출근하여 기기 관리 및 조작에 관한 교육을 받는 한편 선임 조교들의 도움을 받아 실제로 시료측정을 하기도 하는 등 업무를 수행하여 오다가, 같은 해 8월 10일자로 임기 1년의 엔엠알기기 담당 유급조교로서 정식 임용되었고, 1993년 6월 15일 화학과 교수회의에서 재임용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어 1993년 8월 31일 자동면직되었다.[1]

우 조교의 주장에 따르면 위 기간 중, 신 교수는 6월에서 8월 사이에 우 조교를 수 차례 성희롱을 하였다고 하며, 10월경 성희롱를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후 부당한 간섭과 불리한 조치로 우 조교의 업무처리를 방해하여 우 조교가 해임되도록 유도하였다고 한다.[1]

아래는 성희롱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있으므로 열람에 유의해 주십시오.

우 조교의 주장에 따르면, 신 교수는 6월 5일경부터 2, 3주간 주로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사이에 서울대학교 23동 108호 엔엠알(NMR)기기실에서 기기조작 방법을 교육한다는 구실로 우 조교의 등 뒤에서 포옹하는 듯한 자세로 원고 앞의 컴퓨터 자판을 치면서 그의 가슴을 원고의 등에 의도적으로 접촉하고, 우 조교의 어깨나 등에 손을 올려 놓거나 쓰다듬기도 하고 우 조교가 기기를 작동하고 있을 때 옆에 있다가 교육을 한다는 구실로 우 조교의 팔을 손으로 잡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신체의 일부분을 우 조교에게 접촉시키는 등의 행위를 20 내지 30차례 자행하였다고 한다.[1]

또한 신 교수는 1992년 6월경부터 8월경까지 사이에 서울대학교 23동 108호 앞 복도 등에서 우 조교와 마주칠 때면 의도적으로 우 조교의 등에 손을 대거나 어깨를 잡는 경우가 많았고, 같은 해 8월경에는 22동 309호실 실험실에서 "요즘 누가 시골 처녀처럼 이렇게 머리를 땋고 다니느냐."고 말하면서 우 조교의 머리를 만지기도 하고, 우 조교가 정식 임용된 동년 8월 10일경 단둘이서 입방식을 하자고 제의하기도 하고, 같은 무렵 23동 4층 교수연구실에서 우 조교를 심부름 기타 명목으로 수시로 불러들여 위아래로 훑어 보면서 몸매를 감상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여 피해자가 불쾌하고 곤혹스러운 느낌을 가졌다고 한다.[1]

또한 신 교수는 1992년 10월경 자신이 사용하던 의자가 두동강이 나서 이를 고치러 간다는 명목으로 우 조교에게 교내 목공소까지 동행을 요구하여 함께 목공소로 가던 중 우 조교에게 관악산에는 조용한 산책길이 많은데 점심 먹고 함께 산책을 가자고 제의하면서 옷차림이 불편하면 자신의 연구실에 청바지랑 운동화랑 가져다 놓고 갈아 입으면 된다는 취지의 얘기를 하였고, 이에 우 조교가 그 자리에서 명확하게 싫다고 거절의 뜻을 표시하자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고, 이후 종래의 호의적인 태도에서 돌변하여 업무상 부당한 간섭과 불리한 조치로서 정상적인 업무처리를 방해하다가 결국에는 우 조교에 대한 재임용추천을 거부하고 사실상 해임하였다고 한다.[1]

2 법원 판결

  • 1994년 5월 1심에서 우 조교가 승소하였다.[2]
  • 1995년 7월 25일 선고공판에서 고등법원이 우 조교 패소 판결을 내렸다.[2]
  • 1998년 2월 10일 대법원이 신교수의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고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2]

3 교내 움직임

1993년 9월 학생들 사이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대자보 논쟁이 벌어졌다.[2] 1994년 5월, 총학생회에서 화학과 조교 성희롱사건 대책위를 꾸려 신교수 퇴진운동을 벌였다.[2] 95년 7월 25일 고등법원 판결에 종학 공동대책위는 설문조사, 재판부에 엽서 보내기, 총장 면담 등의 활동을 계획하고 본부 측에 성폭력 학칙 재정과 신 교수 징계 회부를 제시했다.[2] 학생들은 신교수가 1996년 2학기 학부 강의를 맡았을 때 수강신청 집단 거부를 통해 강의를 취소시켰다.[2] 1998년 8월 우 조교는 총학생회에 사건 내용을 알리고 자보를 붙여 자신의 입장을 학내에 표명하였고 이에 따라 총학생회, 대학원 자치회, 여성문제 동아리 연합회 세 단체가 대책위를 구성하고 8월에서 11월에 걸쳐 진상규명 활동을 진행했다.[2] 2000년 인문대 여성위원회 등 학내 여성위원회 등에서 신정휴/구양모 교수 수업복귀에 관한 항의를 진행하였던 것 같다.[3]

4 의의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은 한국 최초로 법적으로 제기된 성희롱 사건으로,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피해 당사자와 여성운동계는 6년 동안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가해자를 상대로 지난한 투쟁과 법적 공방을 펼쳤다. 그 결과 1998년 2월 대법원은 신교수 성희롱이 고용환경을 악화시키고, 노동권을 박탈하는 명백한 직장내 성희롱임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직장내 성희롱이 여성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박탈하는 심각한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을 마련하였고, 1999년 남녀고용평등법,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 '직장내 성희롱 예방과 처벌 조항'이 신설되는 성과를 낳았다.[4]

5 기타

  • 신 교수는 이 사건 외에도 전임 조교와 직원에게도 기기교육을 빙자한 신체접촉행위와 산책 동행을 요구하는 등 성적 접근을 시도하였다고 하며, 제자 두 명과의 사이에서도 불미스런 추문이 있었다고 한다.
  • 세간에 이 사건은 엉뚱하게도 피해자인 우 조교를 따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2002년 10월 24일, 서울대 정운찬 당시 총장은 여성부 장관 면담에서 이 사건에 대해 "재계약에서 탈락된 우 조교의 앙심에서 비롯돼 억울한 사람을 매장한 사건이었으며, 당시 우조교를 지원한 여성운동이 신중하지 못했다"라고 평하였으며, 바로 다음 날인 24일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은 이 발언을 망언으로 일축하고 공개사과를 요구하였다.[4]
  •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화학부 홈페이지에 신교수는 2008년 2월까지 재직한 것으로 되어 있다.[5]

6 같이 보기

7 링크

8 출처

  1. 1.0 1.1 1.2 1.3 1.4 “대법원 1998. 2. 10. 선고 95다39533 판결”. 《종합법률정보》. 
  2. 2.0 2.1 2.2 2.3 2.4 2.5 2.6 2.7 배하은 기자. “관악 여성운동은 진화한다”. 《서울대저널》. 
  3. “관악 여성 연대 모임 자유게시판”. 《관악여모》. 2000년 7월 6일. 2000년 5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4. 4.0 4.1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연합 (2002년 10월 24일). “서울대 정운찬 총장은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을 왜곡시킨 발언에 대해 공개사과하라!!”. 《한국여성민우회》. 
  5. “역대교수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화학부》. 2017년 12월 11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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