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저너 트루스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4일 (토) 09:29
소저너 트루스
Sojourner Truth
1864년의 소저너 트루스
본명Isabella Baumfree
출생1797년 경
뉴욕 시 스와트킬
사망1881년 11월 26일 (약 86세)
미시간 배틀 크리크(Battle Creek)
직업노예제 폐지론자, 작가
부모제임스 바움프리(James Baumfree)
엘리자베스 바움프리(Elizabeth Baumfree)
정보 수정

소저너 트루스는 흑인 노예 제도 폐지론자이며, 여성 권리 운동가이다. 트루스는 흑인 노예 제도 폐지론자이자 여성 권리 운동가로 거듭나면서, 이사벨라 바움프리라는 원래의 이름을 버리고 ‘진실에 머무는 자’라는 뜻의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로 개명하였다. 주로 대중연설을 통해 흑인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고, 1851년 오하이오 애크런의 여성 권리 집회의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연설이 유명하다.

2014년, 트루스는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의 "가장 중요한 미국인 100명"에 등재되었다.[1]

생애

트루스는 하든버그(Hardenbergh) 장군의 노예였던 제임스 바움프리(James Baumfree)와 엘리자베스 바움프리(Elizabeth Baumfree)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태어났을 때의 이름은 이사벨라 바움프리였다. 하든버그의 영토는 스와트킬(Swartekill)이라는 네덜란드 이름으로 불리는 언덕 (현 뉴욕 시 리프턴(Rifton) 북쪽)에 있었는데, 이곳은 에소퍼스(Esopus)에서 북쪽으로 153km 떨어진곳이었다.[2] 하든버그 장군이 사망하자, 하든버그 장군의 아들이었던 찰스 하든버그(Charles Hardenbergh)는 아버지의 부동산중 일부와 함께 바움프리 가족의 소유권을 상속받는다.[3]

1806년 찰스 하든버그가 죽은 이후로, 트루스는 경매에 부쳐졌다. 당시 그는 9살이었으며 100달러에 한 떼의 양들과 함께 뉴욕 킹스턴 근처에 사는 존 닐리에게 팔렸다. 트루스는 원래 네덜란드어만을 하였는데, 이때부터 영어를 하게된다.[4] 트루스는 닐리에게서 많은 고난을 당했으며, 트루스는 훗날 닐리를 몽둥이 묶음으로 트루스를 구타하는 잔인하고 냉혹한 사람으로 묘사하였다. 닐리는 1808년, 포트 어윈의 술집 주인 마티너스 슈라이버에게 트루스를 105달러에 팔았고, 슈라비너는 트루스를 18개월 동안 소유하였다. 1810년 슈라이버는 뉴욕 웨스트 파크의 존 듀몬트에게 그를 175달러에 팔았다.[5] 듀몬트의 아내는 수많은 방법으로 트루스를 괴롭혀 트루스의 삶을 고달프게 만들었다.[3]

1815년 경, 트루스는 이웃 농장에서 로버트라는 이름의 노예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로버트의 주인인 캐틀린은 이 관계를 금지하였다. 자신의 노예가 다른 사람의 노예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지면, 그 아이는 자신의 노예가 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로버트는 주인에게서 잔인하게 구타당하여 사망한다.[6] 1817년 트루스는 듀몬트의 강요로 나이가 더 많은 토마스라는 노예와 결혼을 하였고, 트루스는 다섯 명의 자식을 낳았다.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인가' 연설문

다음은 1851년 오하이오 여성권리 집회에서 그녀의 가장 유명한 연설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인가(Ain't I a Woman?)>의 전문이다.

여러분, 이렇게 야단법석인 곳에는 뭔가 정상이 아닌 게 있음이 틀림없어요. 내 생각에는 남부의 검둥이와 북부의 여성 모두가 권리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 그 사이에서 백인 남성들이 곧 곤경에 빠지겠군요. 그런데 여기서 얘기되고 있는 건 전부 뭐죠? 저기 저 남성이 말하는군요. 여성은 탈것으로 모셔 드려야 하고, 도랑은 안아서 건너드려야 하고, 어디에서나 최고 좋은 자리를 드려야 한다고. 아무도 내게는 그런 적 없어요. 나는 탈것으로 모셔진 적도, 진흙구덩이를 지나도록 도움을 받은 적도, 무슨 좋은 자리를 받아본 적도 없어요.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날 봐요! 내 팔을 보라구요! 나는 땅을 갈고, 곡식을 심고, 수확을 해왔어요. 그리고 어떤 남성도 날 앞서지 못했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나는 남성만큼 일할 수 있었고, 먹을 게 있을 땐 남성만큼 먹을 수 있었어요. 남성 만큼이나 채찍질을 견뎌내기도 했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난 5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들 대부분 노예로 팔리는 걸 지켜봤어요. 내가 어미의 슬픔으로 울부짖을 때 그리스도 말고는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이런 일을 사람들이 머리와 관련해 얘기할 때 뭐라고 부르죠? 맞아요. 지성이 여성의 권리나 흑인의 권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거죠? 나의 잔이 1파인트도 담지 못하고, 당신의 잔이 2파인트를 담고 있는데, 당신은 내 보잘 것 없는 절반 크기의 잔을 채우지 못하게 할만큼 야비하지는 않겠지요? 저기 검은 옷을 입은 작은 남자가 말하네요. 여성은 남성만큼의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요.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여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요! 당신들의 그리스도는 어디서 왔죠? 어디서 왔느냐고요? 하나님과 여성으로부터 왔잖아요! 남성은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죠. 하나님이 만든 최초의 여성이 혼자서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만큼 강했다면, 이 여성들이 함께 세상을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지금 여성들이 그렇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게 더 좋을 겁니다. 내 말을 들어야만 해요. 이제 늙은 소저너는 더 이상 할 말 없어요.

그녀의 연설은 백인여성만이 ‘여성’이었던 시절에 흑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되물음으로써 젠더가 오로지 생물학적 성에 따라 구성되지 않으며, 인종계급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임을 누구보다 먼저 강렬한 방식으로 드러냈다. 그녀에게는 ‘결혼’을 통해 자신의 ‘가족’을 구성할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남녀의 노동 분업이 적용되지 않았다. 소저너 트루스의 연설은 젠더/인종/계급이 교차되는 억압과 모순적 상황을 정확하게 언어화한 명문이다.

출처

  1. Tom Frail. “Meet the 100 Most Significant Americans of All Time”. 《2014-11-17》. 2019년 12월 24일에 확인함. 
  2. Sojourner Truth, Whalin, W. Terry, Barbour Publishing, Inc., 1997, ISBN 978-1-59310-629-4
  3. 3.0 3.1 Amazing Life page, Sojourner Truth Institute site, 접속일 2006년 12월 28일
  4. “Sojourner Truth page”, Women in History site, 접속일 2006년 12월 28일
  5.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New Paltz, On the trail of Sojourner Truth in Ulster County, New York by Corinne Nyquist Librarian, Sojourner Truth Library, 접속일 2008년 3월 6일
  6. Sojourner Truth page, “Narrative of Sojourner Truth”, 접속일 2006년 1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