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야 코발렙스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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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 Found in the collection of Academy of Sciences, Saint Petersburg.[1]

소피야 코발렙스카야(러시아어: Со́фья Васи́льевна Ковале́вская, 영어: Sofia Vasilyevna Kovalevskaya, 1850년 1월 15일 ~ 1891년 2월 10일)는 러시아수학자이다. 스웨덴으로 이주한 후에는 소냐(Sonya)로 불리기도 하였다.[2]

1 생애

소피야는 모스크바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11살 때부터 수학에 흥미를 느끼고, 자신의 방 벽에 수학자 미하일 오스트로그래드스키의 적분 계산법 개론서 페이지를 붙여서 공부하였다. 가정교사를 통해 미적분을 배웠지만 러시아의 대학에는 입학할 수 없었다. 고생물학자 블라디미르 코발레프스키와 가짜로 결혼하여 1867년에 러시아에서 빠져나왔다. 1869년에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입학하였지만, 다른 학생들과 달리 강의 교수가 따로 시간을 내어 별도로 개인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학생 시절의 소피야는 여성 소설가 조지 엘리엇의 살롱에 초대받기도 하였는데, 그곳에서 '여성의 추상적 사고력'에 관하여 토론하면서 '여성 문제가 혁명 문제보다 덜 복잡하지는 않다'고 주장하였다. 1871년에 베르사유 정부군의 공격으로 부상당한 노동자들을 치료하고, 19세기 말에 일어난 러시아 허무주의(Nihilism)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망명생활을 하였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헤르만 폰 헬름홀츠구스타프 키르히호프, 로베르트 분젠 교수들에게 2년간 수학을 배운뒤, 소피야는 베를린으로 가서 카를 바이어슈트라스 교수의 개인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다.

1874년에 소피야는 괴팅겐 대학교에 토성의 고리의 비선형 역학타원형 적분 그리고 편미분 방정식에 관하여 총 세 개의 논문을 제출하였고, 카를 교수의 지원으로 필수 강의와 시험을 생략하여 최우수 졸업자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편미분 방정식에 관한 논문은 후에 코시-코발렙스카야 정리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놀랍게도 이 때까지 유럽에서 여성은 박사 학위를 받지 못했다.

소피야는 자신이 대학교수가 되면 무료로 강의하겠다고 밝혔지만 유럽의 대학들은 그를 거부했다. 러시아에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기에, 소피야는 독일로 가서 블라디미르와 결혼생활을 하다가 딸을 낳았다. 1년동안 딸을 돌본 소피야는 언니에게 딸을 맡기고 수학 연구를 재개하였다.

1883년에 소피야는 대학동기인 예스타 미타그레플레르의 도움으로 스웨덴의 스톡홀름 대학에서 시간 강사 일자리를 구했다. 1884년에는 대학의 5년계약직 임시교수로 채용되었고, 수학 연구 저널 중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술지 Acta Mathematica의 편집자가 되었다.

1888년에는 '회전 문제의 특정 경우에 관하여 초타원함수를 사용한 논문'으로 비대칭 형태의 물체에 적용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여, 파리 아카데미 데 시앙스로부터 Prix Bordin상을 수여받았다. 이 해법으로, 적분가능모형은 라그랑주 팽이와 오일러 팽이 그리고 코발렙스카야 팽이 세 개가 되었다. 코발렙스카야 팽이는 코시-코발렙스카야 정리와 더불어 남성 수학자들의 세계에서도 독보적인 발견이다.

1889년에 소피야는 스톨홀름 대학에서 정규직 대학교수로 임명되었고, 유럽 최초의 여성 대학교수가 되었다.

소피야는 유년기의 추억을 포함한 회고록, 공동작업한 희곡 행복을 위한 투쟁, 자서전 성격을 띈 소설 허무주의자를 쓰기도 하였지만, 이들은 모두 소피야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출판되었다.

소피야는 폐렴으로 인하여 1891년 2월 10일에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 사후의 명예

  • 소피아의 일대기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 달의 분화구 중 하나는 소피야의 이름이 부여되었다.
  •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는 Sofia Kovalevskaya streets가 있다.
  • 1951년에 소련은 소피야 우표를 발행하였다.
  •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은 2002년부터 The Sofja Kovalevskaja Award을 59개 수여하였다.[3]
  • 수학여성학협회(AWM)는 소피야의 이름을 따서 만든 Sonya Kovalevsky Lecture로 2003년부터 아이린 폰세카(Irene Fonseca, 2006년), 잉그리드 도브시(ngrid Daubechies, 2005년), 조이스 맥러플린(Joyce R. McLaughlin, 2004년), 린다 페졸드(Linda R. Petzold, 2003년)를 후원하였다.

3 소피야와 여성 차별

  • 러시아의 대학은 소피야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하였다.
  • 러시아의 여성이 해외여행을 하기위해서는 아버지 또는 남편의 허가가 필요했다.
  • 대학생 시절, 소피야는 성인 잡지에 실린 여성 모델의 몸에 자신의 얼굴이 합성된 사진으로 모욕을 당했다.
  • 소피야가 정규직 대학교수로 임명된 후, 소피야를 알게 된 사람들이 로비 활동을 벌인 끝에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는 룰을 바꿔 소피야를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 소피야가 정규직 대학교수로 임명된 후에도 러시아의 대학들은 소피야를 대학 교수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 소피야의 일대기 작가들은 소피야의 수학적 연구를 기록하면서도 연구의 독창성을 인정하지 않고 표절을 의심하였으며, 소피야가 모성애가 부족하고 평범한 일은 전혀 할 줄 몰랐다고 묘사하였다.
  • 펠릭스 클라인은 소피야가 지도교수 카를 바이어슈트라스와 부적절한 관계라고 주장하여 소피야의 평판을 떨어뜨렸다.
  • 에릭 템플이 소피야의 논문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수학을 만든 사람들이란 책에서 곧바로 소피야의 이름이 빠졌다. 소피야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 오류가 미미한 것으로 밝혀졌다.

4 출처

니콜라 비트코프스키 (2015). 딴짓의 재발견 두번째 이야기. 애플북스. ISBN 978-89-94353-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