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제르맹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4일 (토)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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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소피 제르맹(Marie Sophie Germain, 1776년 4월 1일 ~ 1831년 6월 27일)은 프랑스의 수학자이다.[2]

생애

소피는 프랑스 파리 생드니 가에서 세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소피가 13살이 되었을 때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안전을 위해 외출금지를 당하였고,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놀다가 수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1794년에 이공계 학교 에콜 폴리테크니크가 세워지면서 입학을 희망하였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피는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수학 강의 노트를 따로 구하여 공부하였고 르블랑이란 남학생의 이름으로 과제를 제출하였다가 교수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에게 걸렸다. 다행히 라그랑주 교수는 소피를 격려해 주었고, 이 후로도 소피는 라그랑주 교수와 교류하였다.

1808년까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작업에 몰두하다가, 에른스트 클라드니탄성 표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방정식을 구현하여 1816년에 과학 아카데미 최초의 여성 수상자가 되었다.

탄성 고체의 운동과 평형 법칙을 발견한 공로로 화학 물리 연보에 소피의 이름이 실렸지만, 숨을 거둘때까지 수학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소피는 1829년부터 암으로 고통받다가 1831년 6월 27일에 세상을 떠났다.

'탄성 표면' 문제

1808년에 물리학자 에른스트 클라드니가 금속판과 모래를 가지고 금속판의 진동으로 흩어진 모래알들이 기하학적인 모양을 만드는 것을 보이자, 과학 아카데미 데시앙스에서 이 탄성 현상을 분석하는 것에 상금을 걸었다. 소피가 세 차례 도전한 끝에 1816년에 아카데미 측에서는 '금속판 위 한 점에서의 운동이 그 지점에서의 판의 곡률에 비례한다'는 소피의 해법을 채택하였다.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 되었지만, 진동이 없던 구역은 곡률이 제로로 평평한 반면 곡률이 가장 많이 휘어진 곳에서는 진동이 최대치에 달하는, 소피의 방정식으로는 탄성 현상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었다.

1821년에 소피는 아카데미가 채택한 해법을 논문으로 자비출간하고, 1826년에 개정 논문을 아카데미에 다시 제출하였다. 개정 논문은 1831년에 표면 곡률에 대한 기록이란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소피 제르멩 정리

1804년에 소피는 르블랑이라는 이름으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에게 편지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관한 자신의 증명을 내보였다. 하지만 가우스는 답장에 소피의 증명에 관하여 첨언해주지 않았고, 1807년에 소피가 가우스의 안전을 염려하여 가족과 알고 지내던 독일의 장군에게 가우스의 보호를 부탁한 후에야, 소피에게 감사를 표하며 서신으로 소피의 증명에 관하여 토론해주었다. 하지만 가우스는 소피의 증명에 관하여 여전히 제대로된 관심을 표현해주지 않았고 종종 답장이 늦게 오면서 1809년을 마지막으로 서신을 주고 받지 않았다.

1815년에 과학 아카데미가 탄성 문제 다음으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문제로 내걸면서, 소피 또한 자신의 증명을 다시한번 정리하여 가우스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소피와 교류하던 수학자 아드리앵마리 르장드르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소피 제르멩 소수소피 제르멩 정리를 사용하였다고 밝히면서, 소피의 업적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출처

니콜라 비트코프스키 (2015). 딴짓의 재발견 두번째 이야기. 애플북스. ISBN 978-89-94353-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