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귀달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9일 (목) 10:13

손귀달은 한국의 원폭피해자다. 한국 최초로 공개적으로 일본을 상대로 원폭 피해의 책임을 물으며 ‘원폭증’ 치료를 요구하는데 앞장섰다.

원자폭탄 투하 당시 히로시마 시립 제2고등여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미쯔비시조선소에 학도 동원되어 작업하던 중 피폭되어 화상과 함께 얼굴에 5~6cm 상처 자국이 남았다. 아버지 손용조는 중상, 오빠 손진두는 심한 화상을 입었다. 그해 9월 가족과 함께 귀국했는데, 귀국 후 온 가족이 원폭 후유증으로 고생하였고 3년만에 아버지가 사망했다.

손귀달은 결혼해 사산 후 아들을 낳았으나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진찰 결과 원폭 후유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에 대해 남편이 과거를 숨기고 결혼했다고 비난하고 생활비를 주지 않아 아들과 함께 집을 떠났고 이후 원폭 후유증을 귀책사유로 재정적인 지원 없이 이혼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 결성에 참여하면서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피해 전문 치료병원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1968년 9월 30일 밀항했다. 밀항으로 인해 구속되자 공개적으로 일본 정부에 치료를 요구했지만, 야마구찌 지방법원은 밀항자로 선고했고, 11월 진단 결과도 받지 못하고 강제 송환되었다. 이 판결로 이후 도쿄의 한 독지가가 무료로 치료해 주겠다는 초청장을 보내왔으나 출국이 거부되었다.

이후 극빈자 대우로 생활하다 1996년 설립된 합천원폭피해자복지관에 입소했다. 2009년 11월 19일 영면했다. [1]

출처

  1. 김경애 여성신문 편집위원 (2018년 7월 17일). “[일본의 책임을 묻는데 앞장 선 원폭피해여성들]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지””. 《여성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