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희

최근 편집: 2022년 12월 14일 (수) 22:40
손병희
출생1861년 4월 8일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금암리 대주마을
사망1922년 5월 19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
본관밀양 손씨
경력천도교 제3대 교주 (1897년 ~ 1908년)
대한국민의회 대통령
조선민국 임시정부 대통령 (1919년)
직업선교사, 독립운동가
종교천도교
상훈건국훈장 (1962년)
정보 수정

손병희는 대한민국 천도교 교주, 민족대표 33인인 독립운동가이다.

생애

1861년 4월 8일, 충청북도 청주시 대주마을 아전인 아버지 손두흥 차남으로 태어나 불우한 시절을 지냈고, 1882년, 만인 평등 교리 때문에 입도하고 최시형을 만나 수제자가 되어 충의포 도소 대접주까지 올라간다. 그러면서 1894년 동학 농민 제2차 봉기에 지휘자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일본군 우금치 패배로 원산으로 피신하여 숨어지내는 신세가 된다.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고, 조선인 부호 행세를 해 정치 활동으로 개화파 인사들과 안면을 익혔다. 이때 이용구는 국내에 돌아와 진보회를 조직하고, 단발령 급진 개화 운동을 일으키며 일본을 도우며 손병희 충실한 수족 역할을 하였다.

이후 송병준이 접근하여 이용구는 친일파로 변절했고, 일진회가 을사조약을 지지한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동학에서 일진회를 분리한다. 이후 동학은 손병희를 교주로 해 천도교로 개칭한다.

이후 교주를 박인호에게 인계하고, 독립에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보성전문학교, 동덕여자의숙을 인수하여 교육 사업에 나선다.

천도교 대표로서 민족대표 33인 회의에 참석해 삼일운동을 주도했다가 구속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석방되고서 가족 앞에서 임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