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일야방성대곡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5일 (일) 16:17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은 1905년 11월 20일에 장지연황성신문에 발표한 논설이다. '시일야방성대곡'의 뜻은 "이 날에 목놓아 통곡하노라"이며,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요한 것을 규탄하는 내용이다.

시대상

당시 황성신문은 이 논설만이 아니라 '오조약청체전말(五條約請締顚末)'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어 을사늑약이 체결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보도하였다.[1] 장지연은 황성신문주필이며 사장이었다.

내용

원문

국문[2]

이날을 목 놓아 우노라(是日也放聲大哭)

지난번에 이토(伊藤) 후작이 한국에 왔을 때, 어리석은 우리 인민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 삼국의 정족(鼎足)1)의 안녕을 주선하겠다고 자처하던 사람이었다. 이번에 한국에 온 것은 필경 우리나라의 독립을 굳게 부식(扶植)케 할 방략을 권고할 것이다”고 하여 항구부터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官民)의 위아래가 환영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세상일 가운데 헤아리기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뜻밖에 5조약이 어디에서부터 나왔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하는 조짐을 만들어낼 것인즉, 그렇다면 이토 후작의 본의는 어디에 있는가.

비록 그렇다 해도 우리 대황제 폐하는 강경한 성의(聖意)로 거절하기를 그치지 않으셨으니, 이 조약이 성립되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하건대 이토 후작 스스로 알고 간파하였을 것이다. 아,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득이나 바라고 거짓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역적이 되는 것을 달갑게 여겨서 4000년의 강토와 500년의 종묘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000만 백성을 남의 노예가 되도록 하였도다.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거니와 명색이 참정대신(參政大臣)이란 자는 정부의 수반임에도 단지 ‘부(否)’자로써 책임을 다했다고 둘러대어 명예를 얻는 밑천으로 삼을 계획이었는가. 김청음(金淸陰)처럼 문서를 찢고 통곡하지도2) 못했고, 정동계(鄭桐溪)처럼 칼로 배를 가르지도3) 못하고 버젓이 살아남아서 세상에 다시 나섰으니 그 무슨 낯으로 강경하신 황제 폐하를 다시 뵈올 것이며, 무슨 낯으로 2000만 동포를 다시 대할 것인가.

아, 원통하고 분하도다. 우리 2000만 남의 노예가 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과 기자 이래의 4000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별안간 멸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황성신문>, 1905년 11월 20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