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여성(한국)

최근 편집: 2018년 11월 14일 (수) 19:01

개화기에 들어와 (일부의) 여성은 가정이라는 한정된 사적 영역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출입하며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1910년, 대한제국이 한일합병조약을 맺어 국권을 빼앗기고, 조선총독부는 여성에 대한 교육을 전개하게 된다. 조선총독부에 의하면 여성의 교육은 부덕(婦徳)을 지니게 하여 한사람의 국민으로 형성하기 위함이었는데, 이는 식민 공간에서 보다 용이한 지배를 위한 교육이었기에 여성은 한정된 교육 밖에 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당시의 여성들은 더욱 고등한 교육을 받기 위하여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신여성'의 예비역들은 이렇게 탄생하게 된다. 신여성은 이후 식민공간인 조선에서 '여성해방론'을 전개하게 되며 '현모양처론'과 대립을 이룬다.

쉬이 ‘모던걸’과 '신여성'을 혼동된 개념으로 보는데, '신여성'은 1910년대에 대두된 개념이며, '모던걸'은 1920년대부터 담론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신여성은 근대 시기에 서구 교육의 수혜 대상이 되어 공적 제도의 영역으로 나온 최초의 여성 엘리트 집단을 말한다. 이들은 근대적 교육을 통해 개인적ᆞ사회적 주체성을 새롭게 구성하기 시작한 여성들로서 소수의 전문직 여성 군을 형성하며 공적 공간에서 활동한다.[1]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부가되었던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자유롭게 바깥 출입을 하며 조선의 근대 학교 교육을 받았고 일부는 해외로 진출하여 유학하였다.[2]



정의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

종래의 인습과 도덕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패션과 유행을 따르는 여성을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했다.

역사

참고 신여성(1920년 미국) 문서도 살펴 보세요

신여성은 주로 일제강점기에 많이 사용되던 용어이다. 이 용어가 언제, 누구에 의하여 최초로 사용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일제강점기 초부터 널리 통용되었다. 특히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김일엽이 『신여자』 제2호에 ‘신여자선언’을 발표하는 등 신여성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신여성’은 영국 빅토리아 후기 시대에 처음 나타나서 곧 다른 여러 사회에서 등장한 세계적 현상이다. 각 사회에서 신여성은 중등교육이나 고등교육을 받은 초기 세대들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가치와 태도를 추구하는 존재로 등장하였다. ‘신여성’이라는 어휘는 경제적 독립을 추구하고 기존의 결혼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자신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표명하는 일군의 집단을 가리켰으며, 다양하고 뜨거운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는 것이 세계적인 공통점이다.[3]

맥락

요즈음 서울의 거리에 신여성의 내왕이 벗적 느럿다. 그중에도 잇다금 양비단의 홀란한 色彩와 紋儀로 시중의 주목을 닛글면서 압도적 ‘에로’를 발산하고 지나가는 정체 모를 여인 들하고 거리에서 마조칠 수 잇는 영광 이여! 정체를 모르는데 고아한 맛이 잇거든 아모튼지 신 앙은 무지에서 생긴다...나희는 열칠팔세나 되엿슬가말가 이러한 하이카라색씨가 가로수에 등을 긔대는둥 만둥 의지해서서 애인을 긔다리는지 동무를 긔다리는지 그 옷맵씨에 꼭 어울리니는 女優적 세련된 표정은 멧년동안이나 體鏡 속에 빗친 제 영상을 흘겨보고 억천신늉을 다 부린 나머지에 戰取한 기술이란말가. 대체 이 어린 末世的 洋裝美 處女가 엇던 類의 여자일고.
신여성이라는 말이 쓰인 별건곤 제34호에 실린 기사 '가을거리의 남녀풍경' 일부.[4]

1910년대 전후에 유포된 ‘신여성’이라는 기표는 식민지 전 시기에 걸쳐 통용된 지배적인 근대 여성 이미지이지만 식민지 당대의 시간적 추이에 따라 의미의 변형을 겪는다. 식민지 초기의 '신여성'이 1920년대 이후에 '모던걸'을 거쳐 '현대여성'이라는 다양한 파생어를 낳는다.

여학생’이기도 하고 ‘기생’이기도 하며, ‘여급’이기도 한 산책하는 여성들은 당대 대중 매체 속에서 포괄적으로 식민지 조선의 ‘모던걸’로 명명되었다.[1]

소설 속 재현

여성작가들의 작품에서 신여성은 긍정적이고 선구적인 이미지로 그려졌다. 여성작가의 작품에서 재현된 신여성은 봉건주의와 가부장주의를 거부하는 존재이며, 인간적 주체성과 낭만적 사랑을 추구하는 존재이다.[5]

비난

남성 지식인들은 한국 여성이 '민족의 어머니', '민족의 아내'로서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기를 기대했으며 여성 교육이 그 역할을 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여성에게 부여한 역할이 정당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여성 교육을 사회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생각했던 신여성들은 이들의 기대를 배반하였고, 남성 지식인들은 이들이 '개인', '자아'를 말한다는 사실에 몹시 당황한다. 이에 따라 '참된 신여성' 담론을 거듭하면서 이들을 죄인으로 몰아붙였다.[6]

인물 (가나다 순)

출처

  1. 1.0 1.1 서지영 (2006). “식민지 조선의 모던걸”. 《한국여성학》 22 (3): 199–228. 
  2. 김경애, "가부장제 사회에서 신여성의 삶과 남성들", 젠더연구/-(16), 2011., 131-150, 동덕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소
  3.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여성”. 
  4. “가을거리의 男女風景”.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5. 송명희(Song  Myung-Hee), "근대소설에 나타난 신여성 모티프", 인문사회과학연구/11(2), 2010., 1-27,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6. 박정애. (2000). 초기 '신여성'의 사회진출과 여성교육. 여성과 사회, (11), 4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