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위구르자치구

최근 편집: 2023년 1월 5일 (목) 15:10

신장 위구르자치구는 중화인민공화국 북서부에 있는 위구르족의 자치구이다. 이 지역을 일컫는 다른 말로 동튀르키스탄이 있다.

역사

기원전에 살던 타림 분지의 주민의 유해인 타림 미라는 백인에 가까운 민족이 타림 분지에 살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토하라인이라고 하는데,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를 사용했으며, 위구르족의 한 조상이 된다. 당시 신장 지역에는 인도유럽계의 토하라인과 인도이란계의 사카인이 살았다. 그들은 백인에 가까운 민족들로 중국인등의 동아시아인과 인종적으로 구분되었지만, 불교를 믿었다.

이후 몽골쪽에서 온 튀르크계의 위구르 카간국이 세워져 토하라인과 사카인들을 흡수하고 혼합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지역의 종교는 불교에서 텡그리 신앙으로, 다시 이슬람교로 차츰 변모되었다. 카라한 칸국이 이슬람교를 채택하면서 이 지역은 이슬람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징기스칸이 이 지역을 점령하였고, 차가타이 칸국이 영토를 잃고 모굴리스탄 칸국으로 변화하고, 투르판과 고창을 점령하면서 타림분지와 그 주변은 완전히 이슬람화하였다.

하지만 현재의 신장 전부가 튀르크계 무슬림이 주로 사는 것은 아니었고, 북부 지역에는 오이라트계의 준가르인이 살고 있었다.

준가르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위구르족이 많이 살고 있던 타림 분지(알티샤르)까지 침략하여 위구르족을 괴롭혔다.

또한 몽골쪽으로도 세력을 확장하면서 청나라와도 대립한 끝에 청나라 황제는 준가르 분지의 준가르인을 멸족시키기로 결정하고, 어린이와 노인을 제외한 모든 남성을 죽이는 등의 학살을 벌여 멸망시켰다. 그리고 한족, 회족, 카자흐족, 위구르족, 시버족 등의 다양한 민족이 준가르 분지로 이주하였다. 한족이나 만주족, 시버족 외의 민족들은 중앙아시아계에 무슬림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회족은 인종적으로는 동아시아계이지만 신장지역의 중앙아시아계 민족들과 종교 상의 공통점이 있었다.

19세기에 들어 무슬림들과 청나라의 갈등이 심해졌다. 우즈벡 출신의 야쿱 벡이 주도한 둥간 혁명은 타림 분지의 전부와 투르판을 점령하고 우루무치를 위협하기도 하였으나, 과도한 이슬람 원리주의로 인해 이슬람교를 믿는 주민들조차도 불만을 가졌고, 청나라로부터 자치권을 얻은 하미 지역의 위구르족 칸이 청나라를 지지하면서 좌종당군은 하미 지역에 주둔하여 전력을 강화한 뒤 야쿱 벡을 무너트리고 신장을 청나라 영토로 다시 병합하는데 성공하였다.

신해혁명 이후 2차례 반란이 일어나 중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나, 결국 다시 중국에 병합되었다.

민족 분포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신장 지역 대부분의 민족은 위구르족이었으나, 중가리아는 인구가 상대적으로 희박하였다. 중가리아로 한족의 이주도 계속되었고, 신장 남부의 위구르족도 타림 분지를 떠나 북부 지역으로 많이 이주하였다.

또한 병단을 파병하거나, 석유 채굴을 위해 중요한 지역에 한족을 이식하는 작업도 진행되었다.

그러나 위구르족의 출산력이 한족보다 높기 때문에, 신장 전체에서 위구르족의 비율이 감소하던 것이 멈추고, 비율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위구르족은 신장 전체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민족이며, 유사한 튀르크계 중앙아시아 민족을 합치면 과반을 넘는 인구를 차지한다.

그러나 자치구의 성도인 우루무치는 원래 청나라가 개척을 위해 세운 도시이기도 하고, 한족이 더 많은 편이다.

독립운동

이지역의 위구르족들은 중국으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다. 그래서 독립을 원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중국으로서는 신장 자치구 북부에 있는 수백만명의 한족과, 중앙아시아로 가는 무역로가 있어서 중요한 문제일 뿐 아니라,

위구르족이 많이 사는 신장을 일부라도 독립을 허용했다가는 일반 중국인과 문화적이나 인종적, 언어적으로 더 비슷한 집단인 홍콩, 티베트의 독립 요구를 자극할까봐 무조건 막는 면이 있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중화인민공화국의 핵심 이익이 언급될 때 홍콩이나 티베트는 항상 언급되지만 위구르를 빼고 언급되는 경우도 있다.

레비야 카디르가 동튀르키스탄의 평화적인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