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이스트우드

최근 편집: 2023년 6월 16일 (금) 13:27
the Hunt Institute for Botanical Documentation[1]

앨리스 이스트우드(Alice Eastwood, 1859년 1월 19일 ~ 1853년 10월 30일)는 식물학자이다.

생애

앨리스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앨리스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는 앨리스와 두 남매를 의사인 삼촌 윌리엄에게 맡기고 홀로 떠났다. 앨리스는 삼촌이 사는 동네에서 식물을 관찰하고 식물에 붙여진 라틴어 이름을 배우며 자라났다. 여동생과 함께 근처 수녀원에 있는 학교에 들어갔을 때에는 그곳에서 원예 공부를 시작하기도 하였다.

몇 년 후 콜로라도 덴버에 정착한 아버지가 앨리스와 두 남매를 미국으로 데려오면서, 앨리스는 덴버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앨리스는 가정부와 보모일을 하거나 모자 공장에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1879년에서야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에는 덴버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혼자서 식물학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였다. 여름방학에는 로키 산맥까지 가며 희귀식물을 찾았고, 콜로라도 식물의 견본을 대량으로 수집하였다. 아버지와 함께 몇 년 동안 부동산에 투자하여 많은 돈을 번 뒤에는 교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식물 채집을 위한 여행을 하였다.

1890년에 앨리스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캘리포니아 과학아카데미에서 식물표본 큐레이터 캐서린 브랜디지(Katharine Brandegee)와 만남을 가졌고, 1892년에 과학아카데미의 제의를 받아 식물표본 큐레이터 보조원으로 일하였다. 1893년에 캐서린 브랜디지가 은퇴하면서 캐서린은 식물표본 전시책임자가 됐으며, 연구소가 발행하는 잡지의 편집책임자의 직위도 넘겨받았다.

1906년에 큰 지진으로 전체 식물표본집이 사라졌지만, 앨리스는 새로 지은 캘리포니아 과학아카데미에서 전보다 더 훌륭한 식물표본집을 만들어내었다.

1950년에 앨리스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제7회 국제식물학술대회에서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고, 1953년 10월 30일에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업적

1906년 4월 18일, 지진으로 건물이 산산조각나고 화재가 일어나며 샌프란시스코의 104억 평방미터가 잿더미가 되었다. 앨리스는 과학아카데미로 뛰어들어가서 빌딩이 불타기 직전에 1500개의 희귀식물 표본과 함께 탈출했다. 앨리스는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과 뉴욕 식물원, 런던과 파리 식물원을 방문하여 식물 수집품을 연구하였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 과학아카데미의 식물 수집물 표본을 34만 개 이상으로 재구성하였다.

앨리스는 아마추어 식물학자와 정원사들을 격려하는 한편, 일반 대중들에게 캘리포니아의 자생식물-붉은 목재인 거대한 아메리카 삼나무 등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앨리스는 과학단체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미국의 남성과학자라는 책에 이름이 실리기도 했는데, 남성 이름과 구별하기 위해 각 권마다 앨리스의 이름 옆에 별이 붙었다.

출처

달렌 스틸 (2008).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 양문. ISBN 978-89-87203-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