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 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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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 뇌터(Amalie Emmy Noether, 1882년 3월 23일~1935년 4월 14일)독일수학자로서 대수구조를 연구하여 뇌터 환(Noetherian ring)을 발견하는 등 대수학을 일반화, 추상화하고 정립하여 추상대수학의 창시자라고 여겨진다.[2][3] 또한 뇌터가 발표한 뇌터 정리는 현대물리학의 핵심에 있는 이론으로 평가된다.[4]

만약 누군가 A는 B보다 작거나 같다, 그리고 다시 A는 B보다 크거나 같다는 걸 보여주어 A와 B라는 수가 같다는 걸 입증해 낸다면, 그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그보다는 두 수가 근본적으로 같다는 이유를 정확히 파악해, 둘이 같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주 1]

업적

추상대수학

1921년 추상대수학의 시작을 알리는 'Idealtheorie in Ringbereichen(The Theory of Ideals in Ring Domains)' 논문을 출간하였다.[3][5] 이 논문의 이론은 나중에 뇌터 환(Noetherian ring)이란 이름이 붙었다.

현대물리학

1915년 아인슈타인힐베르트상대성 이론으로 경쟁을 하는데, 상대성 이론에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발견한다. 힐베르트는 클라인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뇌터를 괴팅겐으로 초대한다. 뇌터는 이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물리학의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치는 정리를 발표한다.[4] 그것이 1918년에 뇌터가 'Invariante Variationsprobleme' 논문으로 발표한 대칭성과 보존 법칙 사이의 일대일 대응관계에 관한 법칙 뇌터 정리 이다.[6][7] 뇌터 정리의 영향력이 물리학에 끼친 영향은 방대하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만큼 중요한 이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8]

생애

에미 뇌터독일프랑코니아에서 4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수학자막스 뇌터였다.

뇌터는 여학교의 언어 강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다가, 18세가 되던 해부터 에를랑겐 뉘른베르크 대학교에서 여학생에게 허락되지 않는 수학 과목을 청강했다. 1903년 7월 14일에 뇌터가 졸업시험을 다른 남학생들보다 훨씬 높은 점수로 통과하자, 1904년에야 에를랑겐 뉘른베르크 대학교가 여성을 학생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방침을 바꿔, 수학과 학생으로 공식 인정 받았다. 1907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지만 그후 십여년이 지나도록 교수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에를랑겐 대학의 수학 연구소에서 7년간 무임금으로 일하였다.

1915년에 괴팅겐 대학교에서 강의하던 교수 다비트 힐베르트의 도움을 받아, 그 후 4년간 힐베르트의 이름으로 강의를 하면서 여성 교수 논란에 부딪쳤다. 다비트 힐베르트 또한 '대학은 남성 여성을 가르는 대중목욕탕이 아니다'라고 계속해서 뇌터를 지지했다.[9] 뇌터는 1922년에 비공식적이지만 뛰어난 교수라는 의미로 특별교수 직위를 부여받았다.

에미 뇌터는 강의계획표를 잘 지키지 못했지만 강의에 방해되는 외부인은 적극적으로 쫓아내면서 학생이 원한다면 국경일에도 강의실 밖에서 강의하였다. 뇌터의 학생으로는 그레테 헤르만, 하인리히 그렐, 베르너 베버, 제이콥 레비츠키, 막스 듀링, 한스 피팅, 오토 쉴링이 있다.

1928년과 1829년의 겨울에는 모스크바의 노던 주립대학에서 추상대수학과 대수기하학을 가르치는 동시에 수학적 연구를 진행하였다.

1932년에는 추상대수학에 관한 업적을 인정받아 에밀 아르틴과 함께 Ackermann-Teubner Memorial Award를 수여받았다. 500마르크의 상금을 탔고, 스위스의 국제 수학자회의 총회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연설하였다.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유대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해고되고 대학 강의를 금지당하자 자신의 아파트에서 강의를 하였다. 알렉산드로프의 지원을 받아 1933년에 독일을 탈출하여 미국으로 건너갔고, 펜실베니아 주의 브린 모어 대학교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1935년 4월에 뇌터의 골반 근처에서 종양이 발견되어 제거 수술을 받았다. 칸탈루프[주 2] 크기의 난소 낭종을 제거하던 중에 양성으로 보이는 작은 종양이 추가로 발견되었으나 연장 수술의 위험성으로 작은 종양은 제거되지 않았다. 수술 후 뇌터는 빠르게 회복세에 들어가다가 14일에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고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82년에 여성 수학 단체는 에미 뇌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에를랑겐 시는 에미 뇌터 김나지움이란 이름의 신축학교를 세웠다.

에미 뇌터와 여성차별

입학 차별

뇌터는 학창 시절 한 학기 동안 괴팅겐 대학교에서 힐베르트의 강의를 들은 바 있으나,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여학생을 받아주는 유일한 대학이 있는 에를랑겐에서 보냈다.[9]

대학 강사 채용금지

프로이센 정부는 1908년에 여성이 대학 강사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의 법을 제정하였다.

뇌터는 학위과정을 마친 후 1915년에 괴팅겐으로 돌아왔으나, 여자라는 이유로 정식 교수 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9]

괴팅겐 대학교의 교수들은 에미의 여성 교수 논란에 관하여, 프로이센 법과 같은 입장이었다. 이들은 '여성의 뇌는 수학적인 창의성을 발휘하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말도 하였고, '독일의 전쟁을 위해 강한 아들들을 키워내야 할 여성의 애국적 의무를 못하게 하는 일'이라는 비난을 수용하고자 했다.

1917년에 프로이센 정부는 에미 뇌터가 괴팅겐,프랑크푸르트뿐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강사가 될 수 없다며 법 수정을 거부하였다.

뇌터는 1차 대전 종전 후 괴팅겐대의 학칙이 바뀐 후에야 채용될 수 있었는데 대학 관계자들은 뇌터를 사강사[주 3]로 채용하는 것도 반대했다. 힐베르트는 뇌터의 채용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성별이 무슨 상관이냐며 설득했고, 결국 뇌터를 힐베르트의 강의 중 하나를 맡는 조수로 등록하는 타협안이 채택됐다.[9]

프로이센 정부는 에미에게 마지못해 객원 강사 직위를 부여할 당시 '이 명칭이 당신의 법적 지위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며, 공식적 지위에 걸맞는 임금을 받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임금 차별 및 혜택 미지급

에미는 1920년대에 괴팅겐 대학교에서 가장 적은 임금을 받는 교수였다. 공무원 제도와 국민보험, 연금에서도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게다가 에미는 1923년까지 월급을 받지 못하면서 강의를 하였다.

동료들로부터의 차별

에미는 괴팅겐대학교에서 유일한 여성 과학자였고, 동료들로부터 남자 취급을 받으며 '괴팅겐의 삼겹살'이라고도 불렸다.

일화

  • 에미의 장례식장에서 어떤 사람이 에미를 ‘막스 뇌터의 딸'로 표현하자 에드문트 란도(Edmund Landau) 박사가 이렇게 응수했다. “(에미 뇌터가 막스 뇌터의 딸이 아니라) 막스 뇌터가 에미 뇌터의 아버지인 것입니다. 에미는 뇌터 가(家)의 정점에 있습니다(Max Noether was the father of Emmy Noether. Emmy is the origin of coordinates in the Noether family).”

부연설명

  1. "If one proves the equality of two numbers A and B by showing first that 'A is less than or equal to B' and then 'A is greater than or equal to B', it is unfair, one should instead show that they are really equal by disclosing the inner ground for their equality."
  2. 멜론의 일종. 어린 호박 크기.
  3. 근현대의 독일 대학에서 수강생 수업료로 임금을 받았던 비정규직 계약 교수

출처

  1. “Famous Physicists”. 《Physics at Illinois State University》. 
  2. “Emmy Noether Lebensdaten”. 《Dr. Cordula Tollmien Historikerin und Kinderbuchautorin》. 
  3. 3.0 3.1 Kleiner, Israel (2007). “Emmy Noether and the Advent of Abstract Algebra”: 91–102. doi:10.1007/978-0-8176-4685-1_6. 
  4. 4.0 4.1 “The female mathematician who changed the course of physics—but couldn’t get a job”. 《ars Technica》. 
  5. Noether, Emmy (1921). “Idealtheorie in Ringbereichen”. 《Mathematische Annalen》 83 (1-2): 24–66. doi:10.1007/BF01464225. ISSN 0025-5831. 
  6. “History and Philosophy of Physics”. 《arXiv.org e-Print archive》. 
  7. “Invariante Variationsprobleme”. 《wikisource》. 
  8. “The Mighty Mathematician You’ve Never Heard Of”. 《The New York Times》. 
  9. 9.0 9.1 9.2 9.3 피터 보이트 (2008) [2006]. 《초끈이론의 진실(Not Even W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