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다 러브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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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다 러브레이스
Augusta Ada King, Countess of Lovelace 위키베이스 항목 수정하기
출생1815년 12월 10일 위키베이스 항목 수정하기
사망1852년 11월 27일 (36세) 위키베이스 항목 수정하기
국적영국 위키베이스 항목 수정하기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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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영국의 수학자이자 작가다.

기계가 연산을 수행하도록 명령문을 처음 작성한 최초의 프로그래머다.

에이다(Ada)언어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발명하는 데 공헌한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이름을 땄다.

2 업적

  • 배비지의 차분기관[주 1]과 해석기관[주 2]을 공동 작업하였다.
  • 1842년에 배비지의 해석기관에 대한 분석을 출판하여, 서브루틴, 루프, 점프제어문의 개념과 프로그래밍하는 방법을 설명하였다. 1843년에는 에이다의 노트가 Richard Taylor의 Scientific Memoirs Volume 3에 실리기도 하였다. [1]

컴퓨터의 개념, 특히 Jacquard의 직조기 카드[주 3]의 아이디어로부터 나온 프로그램-내장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예리하게 이해했다. Charles Babbage의 '해석 엔진(Analytical Engine)'의 프로그램은 데이터와 연산이 쓰여진 일련의 카드들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었다. 러브레이스는 이 기계가 실행하는 계산의 몇 가지 예를 개발했는데, 이 중 하나는 베르누이 수를 계산하는 프로그램으로 중첩 반복문을 포함하고 있다.[1][2][3] 배비지나 다른 사람도 프로그램의 예를 만들었지만, 러브레이스의 예처럼 반복문을 포함한다든가 하는 현대 프로그램과 비슷한 예를 제시하지는 않았었다.[4][주 4] 이러한 이유로 그녀는 최초의 프로그래머라고 불린다.

러브레이스는 "해석기관은 마치 자동으로 장식 패턴을 발생시키는 자카드식 문직기가 꽃과 잎사귀를 직조하듯이 대수 패턴을 짠다"고 열의에 찬 어조로 쓰면서 "해석기관이 단순한 '계산 기계'와 어떻게 바탕이 다른지"를 설명하고 "해석기관은 온전히 그 자신의 위치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배비지는 주로 수치표를 만들기 위해서 산술 목적으로 해석기관을 사용하는 데 집중한 반면, 러브레이스는 그 목적 이상의 것을 보았던 것이다.[5]

또한 러브레이스는 계산의 기본적인 기호체계[주 5]를 이해하고 해석기관에 적용했다. 러브레이스의 스승 오거스터스 드 모르간에서 배웠던 기호논리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과 베르누이 수 계산을 위해 해석기관예 필요한 명령문을 개발했다. 이는 역사상 처음으로 작성되어 발표된 컴퓨터 프로그램인 셈이다. 이 명령문은 1843년 후반에 사이언티픽 메모아즈(Scientific Memoirs) 저널에 실렸다.

에이다는 음악의 요소들이 해석기관이 처리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될 수 있다면 해석기관을 이용하여 작곡과 같은 창작활동도 가능하다고 언급하였고 여기서 현대의 컴퓨터에 대한 예측을 엿볼수 있다.[6]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Loof Statement, GOTO Statement, IF Statement 같은 제어문의 개념을 소개하였다. 그는 서브루틴에 관한 개념도 고안해, 1948년 모리스 윌키스가 개발한 최초의 어셈블리어에 기반이 되었다.

3 생애[2]

본명은 어거스타 에이다 바이런(Augusta Ada Byron)이다. 에이다는 1815년 12월 10일에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앤 이사벨라 밀뱅크(Anne Isabella Milbanke)와 유명한 낭만파 시인 바이런(Byron)의 딸로 태어났다. 바이런은 에이다가 태어나고 한 달 후 그들을 떠났다. 러브레이스의 어머니 앤은 에이다가 방탕한 아버지를 닮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아버지 바이런의 시를 읽는 것을 금지시켰다. 또한 아버지의 기질을 닮지 않도록 여러 명의 뛰어난 스승들에게 수학과 과학을 배우도록 하였다. 선구적인 여성 과학자 매리 서머빌(Marry Somerville)과 기호논리학의 지지자였던 유명한 수학자 오거스터스 드 모르간(Augustus de Morgan) 등이 러브레이스를 가르친 스승이었다. 앤 이사벨라 밀뱅크는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캠브리지 대학교 교수 출신의 스승들로부터 철학, 과학, 수학을 배웠고, 자신의 딸도 같은 길을 걷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다.

러브레이스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그 후 긴 병치레 기간 동안 여러 보모들의 손을 거치며 간호를 받았다. 13세 때는 지독한 홍역 때문에 몸이 마비되어 거의 1년 동안 침대에 누워 지냈고, 회복된 후에도 12개월 동안 목발에 의지하여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종이 위에다 자신만의 비행기를 설계하고 비행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비행학』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러브레이스는 19살에 결혼하였지만 "결혼생활이 수학에 대한 나의 열정을 위축시키지 못한다"고 썼다.[3] 27세 때 스승 찰스 배비지의 해석기관에 대한 프랑스어 논문을 번역하면서 방대한 주석을 붙여 출간했다.[3] 1852년 11월 27일, 에이다는 자궁암과 의사의 잘못된 처방이 원인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4] 에이다는 유물론자였지만 어머니의 종용으로 병상에서 자신의 삶을 신에게 회개하였고, 어머니를 유언의 집행자로 지명하였다. 세상을 떠나기 한달 전, 간통의 고백을 들은 남편은 그의 병상을 지키지 않았다.


4 평가

  • 미국 언론인 월터 아이잭슨은 "그의 통찰은 디지털 시대의 핵심 개념이 됐다"고 평가했다.[3]

5 부연 설명

  1. 기계식 수동 계산기
  2. 기계적 범용 컴퓨터 설계. 펀칭 카드에 손으로 일일이 구멍을 뚫어 데이터 기호를 기록하고 기계가 읽어내는 형태.
  3. 1800년대 초에 등장한 카드의 형태를 천의 문양으로 바꾼 'programmed' 기계. 카드나 종이테이프의 형태로 기계의 작동에 영향을 주는 데이터를 공급한다.
  4. 심지어 러브레이스의 베르누이 수 계산에는 최초의 버그까지 있었다.
  5. 수치표기법으로 결과를 주는 해석엔진은 산술적(arithmetical)이고 수치적(numerical)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엔진은 수치적 양을 마치 글자나 다른 일반적 기호처럼 배열하고 결합할 수 있다.

6 출처

  1. “Augusta Ada King, countess of Lovelace”. 《MacTutor History of Mathematics》. 
  2.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생애”. 
  3. 3.0 3.1 3.2 천지우 기자 (2018년 4월 18일). “[And 월드] 컴퓨터 나오기 100년 전, 그녀는 이미 상상했다”. 《국민일보》. 
  4. “Ada Byron Countess of Lovelace”. 《San Diego Supercomputer Center (SDS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