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 카라 들로리아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6일 (월) 09:10
엘라 카라 들로리아[1]

엘라 카라 들로리아(영어: Ella Cara Deloria, 1889년 1월 31일 ~ 1971년 2월 12일)는 인류학자, 언어학자이며 소설가이다.

생애

엘라는 사우스다코타 안데스 호수 근처에 있는 양크턴 수우족 보호구역에서 심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에 태어났다. 네 형제 중 첫째로 태어난 엘라는 수우족으로서 'Anputu Waste Win'-아름다운 날의 여성이란 이름을 받았다.

엘라는 스탠딩 락 보호구역에서 자라며 열네 살까지 세인트 엘리자베스에 있는 미션스쿨을 다녔고, 후에 다코타 남부에 있는 수우 폴즈의 올 세인트 학교에 들어갔다. 1910년에는 시카고대학에서 공부하다가 1911년에 오하이오 오벌린대학으로 옮겼으며, 다시 뉴욕의 컬럼비아대학 사범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915년에 졸업하였다. 엘라는 컬럼비아대학에서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를 만났다.

1915년부터 1919년까지 엘라는 수우 폴즈의 올 세인트 에피스코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후에 미국 YWCA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캔자스 로렌스에 있는 해스켈 인디아 학교에서 미국 원주민 소녀들을 위해 체육교육을 가르치면서, 엘라 자신이 태어난 다코타의 전통 문화와 언어 연구에 대한 소망을 품었다.

엘라는 1927년에 보아스의 제안을 받아, 해스켈 인디아 학교를 사임하고 컬럼비아대학 인류학과 학생들에게 미국 인디언 방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42년에 보아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엘라는 다코타와 라코타 보호구역을 여행하며 노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언어와 신념과 생활방식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편집,번역하여, 보아스와 동료 학자인 루스 베네딕트에게 정기적으로 정보를 보냈다.

엘라의 연구는 여러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지만, 엘라는 전적으로 연구에 매달리지 못하고 아버지와 자매, 조카를 돌보며 집안일을 해야했다. 1955년에는 세인트 엘리자베스 미션스쿨 교장이 되어 1958년까지 일하였고, 그후 사우스다코타 래피드에 있는 수우 인디언 박물관에서 일하다가, 사우스다코타대학의 W. H. 오버박물관의 부관장이 되었다. 1940년대까지 엘라가 쓴 책은 다코타의 언어와 문법에 관한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았고, 엘라는 1971년에 2월 12일에 라코타 수우족 사전을 편찬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저서

기념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는 2010년부터 그의 이름을 딴 학부생 연구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2]

출처

  • 달렌 스틸 (2008).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 양문. ISBN 978-89-87203-96-6.
  1. “Ella Cara Deloria Anpetu Wastéwin”. 《Akta Lakota Museum & Cultural Center》. 
  2. “Ella C. Deloria Undergraduate Research Fellowship”. 2018년 5월 2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