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참정권(한문: 女性 參政權)이란 여성선거권피선거권을 말한다. 여성 또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 시민이며 인간이라는 외침이 여성참정권 운동의 시작이었다. 여성참정권 운동사가 곧 페미니즘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다.[1]

1 서양에서의 역사[1]

  • 1789~1794년 : 여성을 정치적으로 배제하는 것에 대한 항변의 목소리는 일찍이 프랑스 대혁명기(1789~94) 때도 존재했다. 프랑스혁명 당시 혁명세력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발표했다. 하지만 권리선언이 말하는 시민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1791년 올랭프 드 구즈는 ‘여성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발표한다.
  • 1792년 : 영국 작가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는 <여성의 권리 옹호>를 펴내, 여성도 이성을 지닌 온전한 인격체이며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고 동등하게 직업에 종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 1848년 : 뉴욕에서 세계 최초의 여권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소신선언’이 채택됐고, 이것이 미국 여성참정권 운동의 토대가 된다.
  • 1849년 : 프랑스 잔 드로앵은 “남자로만 구성된 의회는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 사회를 다스리는 법을 제정하는 데에 부적합하다. 이는 마치 노동자의 이익을 토론한다면서 특권층으로만 의회를 구성하거나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겠다며 자본가들로만 의회를 구성한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제 2공화국의 헌법을 거부하고 여성으로서 선거에 출마했다.
  • 1869년 :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의 종속>을 출간해 여성의 권리를 옹호했다.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던시기에 여성참정권 청원을 하원에 제출했다. 같은 해 수잔 앤서니는 전국여성참정권협회를 조직했다.
  • 1872년 : 수잔 앤서니가 미국 대통령 선거투표를 강행해 이듬해 100달러 벌금형을 부과받기도 했다.
  • 1903년 : 영국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여성사회정치동맹을 조직해 참정권 운동을 한다.


2 각국의 여성 참정권 인정 시기

아이러닉하게도 영국미국, 프랑스 등 민주주의 전통이 일찍 확립된 국가에서 여성 참정권이 보장된 시기는 꽤 늦다.[2][3]

  • 뉴질랜드: 최초로 여성의 투표권을 보장한 나라. 1883년에는 선거권을, 1919년에는 피선거권을 부여했다.
  • 호주: 1902년에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 핀란드: 1906년 유럽 최초의 보통선거 실시. 1907년 세계 최초 여성 의원 19명 선출.
  • 노르웨이: 1913년 허용.
  • 덴마크: 1915년 허용.
  • 영국: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제한적으로 참정권을 부여했다가 10년 뒤 21세 여성까지 확대.
  • 미국: 1870년 흑인 남성에게 참정권을 준 반면 여성의 참정권은 1920년에 인정했다.
  • 프랑스: 1946년 허용.
  • 스위스: 1971년 허용.
  • 포르투갈: 1974년 허용.
  • 사우디아라비아: 2015년 허용. 그 날 지방선거에서 20명의 여성이 당선되었다.

그 외 국가들의 여성참정권은 각각 다음과 같다. 소비에트연방(1917), 캐나다(1918), 독일,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1919), 헝가리(1920), 에콰도르(1929), 남아프리카공화국(1930), 브라질, 우루과이(1932), 터키, 쿠바(1934).[4]

아시아에서는 미얀마가 1922년, 태국이 1932년, 필리핀이 1937년, 중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1946년, 대한민국이 1948년, 인도가 1949년, 파키스탄이 1956년 여성 참정권을 보장했다. [5] 대한민국((1948)년)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46년)은 각각, 해방 이후 실시 된 선거부터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현재 여성의 참정권이 허용되지 않는 나라는 교황이 다스리는 바티칸 시국. 교황을 선출할 수 있는 투표권은 추기경만 가지고 있는데, 남성은 추기경이 될 수 있기에 참정권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반면 여성은 추기경에 오를 수가 없다. 즉 바티칸의 여성은 가능성조차 없는 것이다.

3 유명한 여성 참정권론자들


4 관련 작품

4.1 영화

5 같이 보기

6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