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밴드)

최근 편집: 2023년 1월 5일 (목) 19:02
Oasis의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의 커버. 왼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노엘 갤러거, 폴 아서스, 폴 맥귀건, 토니 맥캐롤, 리암 갤러거. 이 사진은 폴 아서스의 아파트에서 촬영되었다.

오아시스(영어: Oasis)는 1991년에 맨체스터에서 결성되어 2009년까지 활동한 영국의 록 밴드다. 브릿팝이라고 불리웠던 영국 락 음악의 한 세대를 대표하는 밴드다. 보컬 리암 갤러거와 기타리스트 노엘 갤러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거의 대부분의 곡은 노엘 갤러거가 작곡했다. 해체 전에는 갤러거 형제와 함께 앤디 벨, 겜 아처로 구성되어 있었다.

역사

'Rain'에서 오아시스로

오아시스의 모체는 맨체스터 인디씬에서 활동하던 밴드 레인이었다. 베이시스트 폴 맥귀건과 기타리스트 폴 아서스, 드러머 토니 맥캐롤, 보컬 크리스 휴튼(Chris Hutton)으로 구성된 밴드였다. 휴튼이 못마땅했던 아서스는 리암 갤러거를 영입했고, 리암은 밴드의 이름을 '오아시스'라고 짓자고 제안했다. 그 당시 리암의 방에는 인스피리얼 카펫츠의 투어 포스터가 붙어있었는데, 투어일정에 있는 스윈든(Swindon)의 "오아시스 레저센터(Oasis Leisure Centre)"라는 공연장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밴드의 변화가 온 것은 리암의 형 노엘 갤러거가 영입되면서부터였다. 인스피리얼 카펫츠의 로디[주 1]였던 노엘은 밴드의 곡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이 모든 곡을 쓰겠다고 마음 먹었고, 이는 오아시스 초기의 모든 곡을 노엘 혼자 쓰게된 이유가 되었다.

전성기

우연히 오아시스의 공연을 본 크레이션 레코드의 사장 앨런 맥기의 제안으로 크레에이션 레코드와 계약한 오아시스는 1994년 4월에 데뷔 싱글 <Supersonic>을 발매한다. 데뷔 앨범은 차트 랭킹 31위에 올라갔으며, 후속 싱글은 <Shakermaker>였다. 세번째 싱글 <Live Forever>에 접어들어 처음으로 10위권에 진입했고, 8월 29일에 발매된 첫 앨범 <Definitely Maybe>는 악틱 몽키즈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영국에서 가장 빨리 판매된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침체기

오아시스가 그 전성기를 마감하게 된 것은 세번째 정규앨범 <Be Here Now>가 발매하면서부터였다. 앨범 자체는 무난한 편이었으나, 지난 두 앨범의 스타일은 그대로 답습하면서 곡의 완성도는 다소 떨어진 것이 화근이었다. 하루 42만장을 판매하며 영국에서 가장 빨리 판매한 앨범으로 기록되었지만, <Be Here Now>의 실패는 노엘 갤러거가 이 앨범 자체를 외면할 정도로 오아시스에게 상처가 되었다.

오히려 싱글 앨범의 B사이드로 수록된 곡들을 모은 비정규앨범 <Masterplan>이 비평적인 측면에서 호평을 받게 되는데, 적지 않은 오아시스 팬들은 <Masterplan>이 정규앨범으로 발매되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Masterplan>은 영국에서 60만장, 세계 200만장 판매를 기록했다.

이후 발매된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2000)과 <Heathen Chemistry>(2002)도 그리 좋지 못한 성적을 거듭했다. 싸이키델릭 록을 시도한 <Standing on...>은 60만장 판매에 그쳤고, <Heathen..>은 그보다 좀더 나은 100만장 판매에 그쳤다. 이는 두 앨범 사이에 발매되었던 라이브 앨범 <Familiar to Million>의 판매량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재기

해체

<Dig Out Your Soul!>은 오아시스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앨범이었지만, 밴드의 마지막을 알리는 앨범이기도 했다. 물론 오아시스의 해체는 그들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아주 작은 오해 때문에 생긴 싸움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는데, 2009년 8월 23일 V 페스티벌 공연을 앞두고 리암이 후두염에 걸리면서 공연이 어렵다고 밝히자 노엘이 화를 내면서 싸움이 발생한 것이다. 리암은 후두염을 증명할만한 의사의 소견서를 함께 갖고 와서 자신의 병을 설명했으나, 노엘은 리암이 불성실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싸움의 와중에 화가 난 리암이 자신의 어쿠스틱 기타를 집어던졌고, 이를 피한 노엘이 기타를 발로 밟아 부숴버리고 공연장을 떠나면서 오아시스는 그대로 흩어졌다.

음반리스트

오아시스/디스코그라피 항목 참고.

멤버

오아시스/멤버 항목 참고.

음악적 특징

영국 락 음악의 역사

오아시스의 음악은 영국 락 음악의 역사를 압축해놓은 것과 같다. 앞선 세대의 뮤지션들에게서 리프와 멜로디, 곡의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노엘 갤러거의 작곡방식은 듣는 이들에게 또다른 뮤지션을 떠올리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밴드는 비틀즈였다. 갤러거 형제는 비틀즈의 열렬한 팬이었고, 심지어 리엄은 존 레논의 스타일과 노래부르는 자세까지 흉내낸다. 두번째로는 섹스 피스톨즈의 영향을 들 수 있다. 리암 갤러거의 가창 스타일은 섹스 피스톨즈의 보컬 자니 로튼과 존 레논을 절충한 느낌을 준다.

그 외에도 스탠다드 팝 작곡가 버트 버카락이나, 브릿팝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La's, 글램 록 밴드 T-Rex, 캐나다 출신의 포크 뮤지션 닐 영 등, 장르를 넘나드는 영향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모든 음악을 닥치는대로 듣곤 하는 노엘의 특징 때문인데, 영국 락 음악의 역사를 섭렵하고 본인이 싫어하는 밴드들의 음반까지도 챙겨듣는 부지런함을 보여준다.

표절 논란

광범위한 리스닝, 그리고 영국 록 음악에 대한 애정은 오아시스 음악과 끊나지 않은 표절 논란의 원천이었다. 노엘 갤러거 본인의 작곡 스타일이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지 리스닝' 계열의 곡을 주로 쓰고, 다른 음악에서 코드 진행이나 리프를 차용하는 것에 적극적이다. 표절 논란이 발생해도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인정한다.

라이벌

블러와의 관계

로빈 윌리엄스와의 관계

유산

한국에서의 평가

한국에서는 90년대에 대학생활을 하던 세대에서 인기를 얻었다. 젊은 세대 가운데에서는 음악으로 오아시스를 처음 접하기보다는 짤방이나 유머 코드로 갤러거 형제를 처음 접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부연 설명

  1. Rodie, 뮤지션의 투어를 따라다니면서 장비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 스탭이다. 노엘은 이 밴드의 보컬 오디션을 봤다가 낙방하고 채용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