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현

최근 편집: 2023년 1월 5일 (목) 18:49
(오키나와에서 넘어옴)
일본국의 행정구역
홋카이도 홋카이도
도호쿠 아오모리, 아키타, 후쿠시마, 이와테, 미야기, 야마가타
간토 도쿄, 이바라키, 도치기, 군마, 사이타마, 지바, 가나가와
주부 후쿠이, 이시카와, 나가노, 니가타, 도야마, 야마나시, 아이치, 기후, 시즈오카
간사이 교토, 오사카, 미에, 시가, 효고, 나라, 와카야마
주고쿠 히로시마, 오카야마, 시마네, 돗토리, 야마구치
시코쿠 에히메, 가가와, 고치, 도쿠시마
규슈 후쿠오카, 나가사키, 사가, 구마모토, 오이타, 미야자키, 가고시마
오키나와 오키나와

오키나와 현은 일본 본토와 대만 사이에 있는 일본의 행정단위이다.

과거 유구(류큐)라는 이름의 독립 왕국이었지만, 일본에 병합되었다.

겨울에도 날씨가 따뜻해서, 한국 프로야구단들의 스프링캠프 지역으로 채택되곤 한다.

악동뮤지션의 200%, Give Love 뮤직비디오를 이곳에서 촬영하였다.

일본 본토의 차별의 역사가 길다.

금의 가고시마 현)이 침입하였다. 류큐왕국은 사츠마에 항복하였고, 사츠마와 에도막부에 종속되고 만다.

1872년 에도막부를 이은 일본제국은 류큐왕국을 류큐번으로 격하시켰고, 1879년에는 류큐번을 폐지, 오키나와 현을 설치하고 류큐왕국의 마지막 왕인 쇼타이(尚泰)를 도쿄로 압송하여 류큐왕국을 완전히 멸망시켰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5년에는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하여 오키나와 전투가 발발하였다. 일본군에 의한 옥쇄 강요 등으로 인하여 10만 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오키나와 전투 이후 오키나와는 미국의 통치를 받는다. 미국은 오키나와에 군기지를 설치하고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의 중요한 후방 지원기지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주민들이 받는 피해가 막심하였고, 일본의 현으로 돌아가면 평화헌법을 통해 미군기지를 없앨 수 있다는 생각에 본토복귀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1972년 오키나와는 일본의 현으로 되돌아왔으나, 일본 정부는 미군기지 문제를 거의 손대지 않았다. 현재도 미군기지에 관련한 여러 문재와 갈등들이 이어지고 있다.

주민

오키나와 현의 인구는 2016년 6월 기준 1,432,874 명이며, 이 가운데 대부분이 오키나와 본섬 중부 및 남부에 모여살고 있다.

류큐 민족은 오키나와 현의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류큐 민족은 일본 본토와 구분되는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

산업

1차 산업으로는 사탕수수 농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2차 산업의 비중은 매우 낮은 편이다.

3차 산업의 비중은 매우 높으며, 특히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군기지에서 일을 하는 주민의 비중도 작지 않다.

문화

오키나와는 본토의 일본어와 구분되는 류큐어를 많이 사용해왔다. 류큐어도 멀리 떨어진 섬들간의 차이가 매우 커서, 다시 6개 내지 11개 언어로 구분하기도 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류큐어는 현의 중심지인 오키나와 본섬 서남부 지역에서 쓰이는 오키나와어이다. 그러나 현재 공용어로 표준 일본어가 사용되며, 류큐어 화자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다.

본토와 기후가 다르고, 해외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에 오키나와 요리는 본토 일본의 요리와 많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불교의 영향이 적어서 돼지고기와 같은 육류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 전통 염색인 빈가타, 전통 도자기인 야치문 등의 공예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예인 가라테는 오키나와의 전통 무술인 티(手, てぃー)에 기반을 두고 있다.

  • [1] 중화인민공화국과 영토분쟁중인 센카쿠 열도(尖閣列島)의 면적이 포함된 수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