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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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진군은 현대에 인천광역시와 북한의 행정구역으로 각각 존재하며, 그 관할 영역에 차이가 있다.

  • 옹진군(인천) : 서해5도에 경기만의 섬들 대부분이 편입된 군.
  • 옹진군(황해남도) : 북한에서 군면리 대폐합으로 설립한 옹진군. 강령군 편입 직전의 옹진군 강역과 흡사하다.
  • 일제강점기의 옹진군: 옹진반도 동북부 3개면 제외
  • 이북5도청에서 인정하는 옹진군 : 일제강점기의 옹진군에, 1945년 말에 3개면을 편입한 것을 포함. 38선에 갈린 면을 일부만 편입시킨 것은 인정하지 않음. 북한 행정구역상 옹진군+강령군의 영역을 합친 것과 흡사

연혁

옹진군(甕津郡)은 원래 황해도의 옹진반도에 위치한 군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옹진반도의 화산동이 행정중심지였다. 1906년에 옹진반도의 중심지인 현재의 옹진읍(당시 마산면)이 편입되었으며 옹진반도 서북부에 위치한 가천면은 1908년에, 교정면은 1909년에 편입되었다. 또한 1909년에는 강령군이 옹진군에 편입되었다.[1] 좀 떨어져서 위치한 서해5도백령군도는 광복 당시 장연군에 속해 있었고, 연평도는 해주군에 속한 옹진반도 동부 3개면인 송림면의 부속도서였다. 백령군도는 조선시대에 장연과 옹진 사이를 오간 지역이었다. 원래는 장연현에 속해있다가, 1406년에 옹진현에 이관되었고, 16세기에 장연현으로 돌아갔다. 대청도 일대는 조선시대에 군사적인 중요성으로 인해 1799년에 수원부에 편입되었다가 1894년에 장연군으로 환원되었다.

1945년 38선 분단으로 옹진읍의 북쪽 산록과 서북부 2개면[2]은 일부 지역이 38선에 갈려 분단되었고, 주인을 잃은 벽성군의 옹진반도 3개면(연평도 포함)과 장연군의 백령군도, 벽성군의 3개 면[3]의 각 일부가 38선 이남이 됨에 따라 이들 지역이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이때 면의 일부만이 편입된 지역은 따로 면사무소를 설치하지 않고 다른 면에 편입시켜 관리했으며, 북반부가 잘려나간 서북부 2개 면 또한 출장소로 전환하고 다른 면에 편입시켰다. 한편 구 황해도를 경기도에 편입시다.

반대로 옹진군의 일부 지역만을 점유한 북측은 한국전쟁 전까지 옹진군을 설치하지 않고, 벽성군에 편입시켜 관리하였다.

한국전쟁으로 옹진반도 육지는 북한이 지배하였으나 남측은 옹진반도 일대의 대부분의 섬을 점유하고 있었으나, 서해5도를 제외한 도서는 해상포위를 우려한 북한측의 반발로 유엔군은 서해5도를 제외한 섬들을 북에 인도하는 내용으로 한국휴전협정을 체결하였다.

앞서 북한은 옹진군에서 강령군을 분리하였고, 대한민국의 옹진군은 1973년에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경기만의 도서들을 편입해 경기만의 섬을 아우르는 군역을 가지게 되었다.

출처

  1. 군사보호구역 문화유적 지표조사(경기도) 책, 옹진군의 역사, 589페이지
  2. 가천면, 교정면
  3. 대거면(대차면),월록면, 가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