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에서 발표한 운동사회 성폭력 가해자 실명 명단이다.

1 전문

성폭력 사례를 공개하며

운동사회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이하 100인위)에서 운동사회내 성폭력 사례를 공개합니다. 우리는 '가해자 실명공개'를 통해 성폭력의 재발을 막고, 운동사회내에서 지금까지 은폐되어 왔던 성폭력의 실상을 알리려 합니다. 운동사회 또한 일반사회인들이 갖는 편견과 자본주의적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는 완벽한 인간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일반사회에서 지켜지는 상식적인 문제의 해결 또는 운동진영의 궁극적 목표가 기존 사회의 이데올로기와 구조를 넘어서서 진정한 인간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싸운다면 우리 내부에서부터 그런 기풍을 가져나가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문제는 접어두고라도 성폭력 사건에 대한 운동사회 내에서의 의식과 처리 방식은 어땠습니까? 일반사회에서도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문제조차 은폐되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협박과 2차 가해가 가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동안 어렵게 문제제기했던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은 애초의 자리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결국 피해자들은 어떤 식으로건 운동을 떠나거나 오랜동안 몸담아왔던 조직을 떠났고 심지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오랜기간 동안 자신의 삶을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가해자들은 그 자리에서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굳건히 버티고 있고 심지어 2차 3차의 가해를 하기도 합니다.

첫 번째 모임을 갖고 '가해자 실명공개' 라는 사업방식을 밝힌 이래 100인위는 발족도 하기 전부터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비아냥거림과 우려와 때로는 충고를 가장한 공격과 협박에 시달려 왔습니다. 그런 한파를 뚫고 자신이 직, 간접적으로 겪은 성폭력 사건을 100인위에 접수해 주신 피해자 분들과 주변 분들에게 뜨거운 연대의 인사를 먼저 드립니다. 사례를 접수하면서 저희는 많이 고통스러웠습니다. 물론 예상은 했지만 정말 극악한 사례가 많았고, 피해자나 주위 분들을 만나서 사례에 대한 확인을 거치고 하는 작업과정도 저희에겐 또하나의 폭력이었습니다. 우리는 여성으로 살면서 언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피해자는 그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1차 공개되는 사건들은 사건 자체가 처음으로 공개되는 사건도 있고, 기존에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 알려진 사건도 있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사건들은 기존에 피해자들이 문제제기조차 하지 못했던 사건입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불이익과 고통을 감수하고 사례를 접수해 주었습니다. 나머지 사례들은 이미 지난 6월에 있었던 "이제는 말하자! 운동사회 성폭력" 토론회와 말지, 시사저널 등의 매체와 통신망을 통해 사건이 일어난 단위안에서 문제제기가 되었던 사건들입니다. 그러나 어느 매체에서도 가해자의 실명이 정확하게 거론된 적이 없기에 최초로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합니다.

100인위에서는 그동안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례를 접수해주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이후 2차 3차 공개를 통해 이번에 공개되지 않은 사건들도 공개할 것을 약속합니다.

  • 사례 1. 김성희 (1996년 연세대 성정치위원회)
  • 사례 2. 김용범 (1996년 봉천3동 철거대책위원회)
  • 사례 3. 김정두 (전 오늘의책 총무)
  • 사례 4. 박을락 (전 현대자동차노조간부)
  • 사례 5. 박일문 (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저자)
  • 사례 6. 박진홍 (1997년도 수원대학교 공대학생회)
  • 사례 7. 송보순 (전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
  • 사례 8. 이경수 (1994년 지하철노조 간부)
  • 사례 9. 이영주 (1998년 서울대 총학생회)
  • 사례 10. 이영태 (미디어오늘 기자)
  • 사례 11. 이일재 (전 민주노총 지도위원)
  • 사례 12. 전성백 (1997년도 수원대학교 부총학생회장)
  • 사례 13. 정병도 (1998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 사례 14. 최재혁 (1999년 중앙대 총학생회 연사국장)
  • 사례 15.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
  • 사례 16. 정용주 (2000년 부산대학교 총학생회 사무국장,농활 청장년반 주체)
  • 다음 글은 성폭력 2차 가해자에 대한 글이며, 피해자가 진술한 것입니다.

피해자는 99년 여름농활에서 농활이 끝나던 날 밤에 마을 아저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피해자는 당시 농활이 우여곡절 끝에 잘 마무리되었는데 신고를 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질타할 것 같았고 자신을 어떻게 볼까 두려워서 신고를 하지 못하였다. 그동안 피해자는 성폭력에 대한 공부와 다른 페미니스트 여성들과의 교류를 통해 성폭력의 상처를 상당히 치유하였고 이제는 성폭력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까지 되었다. 그러던 중 올해 6월 여름농활이 시작되기 1주일 전에 피해자말고도 다른 여성 피해자들이 농활에서 매해 발생해 왔고 피해자보다 훨씬 더 심한 경우도 많았으나 쉬쉬되고 제대로 해결된 사건이 없다는 것을 비공식 경로로 알게 되었다. 이에 피해자는 농활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더이상은 생기게 하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사건 해결과 공개를 통해 농활에서 성폭력을 공론화시키고자 하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피해자 진술 전문

피해자는 신뢰인을 대리인으로 세워 대리인이 2000년 여름농활 때 피해자의 진술서를 들고 농활을 가 농활 본부에 신고하였다. 신고한 자리에는 3인이 있었는데, 피해자의 대리인과 농활 청장년반 주체 정용주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4), 그리고 여성농민반 주체 이윤미 (현재 총여학생회장, 철학 3)였다. 대리인이 피해자의 진술서와 요구사항을 전달하면서, 사건을 공개하는 것과 가해자의 실명공개사과자보를 마을에 부착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정용주씨가 "농활이 어떤 농활인줄 아느냐?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것이다.", "성폭력 사건의 공개는 농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명자보가 가해자를 매장할 수 있다.", "언론에서 알면 가만히 있겠느냐.", "사건공개의 여부를 다시 논의하자."라고 말하며 성폭력 사건의 공개에 반발하고 은폐하려는 의도를 드러냈으며, 대리인의 말을 신뢰하지 않으며 피해자를 직접 만나봐야 겠다는 등의 말을 하였다. 이 이야기를 대리인으로부터 전해들은 피해자는 정용주씨의 이러한 발언을 2차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정용주씨의 공개사과와 성폭력 재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1차 성폭력의 가해자는 자신의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가 요구했던 개인 사과문을 전달했으며, 재교육을 이수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런데 2차 성폭력 가해자인 정용주는 2차 성폭력 가해에 대한 피해자의 이러한 이야기를 대책위로부터 전해 듣고는 '그런 의도의 말을 한 적이 없다'라는 내용의 말을 전해왔다. 피해자는 당시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3자대면을 요구하였다. 피해자가 3자대면을 요구하는 자리에서 여성농민반 주체이며 당시 2차 성폭력적 발언의 자리에 함께 있었던 이윤미가 피해자에게 "선배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니다. 선배의 말 한마디 한마디 보다는 전체 맥락 속에서 선배의 말을 이해해야 한다."라고 피해자에게 말해 피해자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는 이윤미를 꾸짖었다.

3자대면의 자리에는 대책위원 중의 1인인 부산대학교 총여학생회 부회장 임봉씨와 2차 가해자 정용주, 피해자 대리인, 이윤미, 그리고 피해자가 참석했다. 처음에 2차 가해자 정용주는 자신의 발언이 성폭력적 발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다가 피해자와 대리인의 반복 설명에 수긍을 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피해자가 농촌 마을에 가해자의 공개실명자보를 붙이는 것을 요구한 것에 대해 이윤미가 "보수적인 농촌 정서상 성폭력 사건의 공개는 힘들다. 마치 농활가서 여학생이 농민분들 앞에서 담배 못피우는 것과 같은 문제다."라고 말해 피해자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이윤미는 계속해서 사건이 공개해결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말을 하였다. 피해자는 '피해자 중심'이라는 원칙이 이해되지 않는 것에 참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그래서 결국 "나도 9박 10일동안 농활을 수행한 농활대원이었다. 나도 함께 농활을 일군 사람이다. 그러나 당신들 논리에 의하면 나는 재수없이 성폭력 당해서 농활 망치는 애밖에 더 되느냐"라는 말까지 하게 되었다.

결국 2차 가해자 정용주도 자신의 가해사실을 인정하고 공개사과를 하여 사건해결이 마무리지어졌다. 그러나 1차 가해자인 신계철은 자신이 사는 거창에 성폭력 재교육을 받을 데가 없다는 이유로, 그리고 2차 가해자인 정용주는 총학생회 사무국장이라 바빠서 재교육을 이수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사건 공개 3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재교육을 이수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는 재교육을 이수할 것을 거듭 요구했다. 특히 2차 가해자는 총학생회에서 당분간 사무국장일을 그만두고서라도 당장 이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농촌 마을에 공개사과자보를 붙이는 것에 대해, 그것을 책임져야 할 농민회에서 (농민회도 대책위원회로 들어와 있었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두절하여, 그렇다면 가해자가 재교육을 충실히 이수하는지를 보고 충실히 이수하지 않을 경우에 다시 자보부착을 요구할 것이라고 하였다.

2 기타

이 곳에 가해자 명단과 피해진술, 보도자료와 성명서 등 당시의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다. http://go.jinbo.net/commune/list.php?board=wom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