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와 똥가방

최근 편집: 2019년 7월 17일 (수) 15:16

운동화와 똥가방은 해외 한인 동포 사회 운동, 한국의 인권과 사회 정의 운동의 조직활동가였던 윤한봉의 자서전이다. 1996년에 한마당을 통해 출판되었다. 1979년 부마 항쟁부터 5·18 광주민중항쟁, 해외 운동, 1993년 귀국, 그리고 그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의 활동을 다룬다.

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의 미국 정치 망명기

책머리

숲속의 작은 새들은 침묵했다. 모든 나뭇가지 끝에 정적이 깃들고 모든 산봉우리에서 그대는 숨결조차 느끼지 못한다.
베르히트 브레히트 「숨결에 관한 기도문」중에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색만 하고 있는 산보다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바다를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몇 시 간씩 바닷가에 홀로 앉아 있곤 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서로 속이야기를 털어놓을 정도로 바다와 친해졌다. 18세가 되 던 여름 어느 맑은 날 고향 바닷가 바위 위에 앉아 내가 전부터 궁금하게 여겼던 몇 가지 것에 대해 물었더니 바다는 눈을 지 그시 감고 중간 중간에 긴 한숨을 토해가면서 낮으나 힘이 들어있는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나도 눈을 지그시 감고 바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색깔을 보고 네가 짐작한 대로 원래 나는 하늘과 하나였단다. 그런데 갑자기 우주에 사고가 발생해 본의 아니게 나는 하늘과 갈라져 지구로 내려오게 되었단다. 지구로 온 그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하늘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만나지도 못한 채 그리움 속에서 바라만 보며 살아왔단다. 오늘처럼 살포시 미소 짓는 하늘, 평온한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은 나도 한없이 즐겁고 평화롭단다. 그러나 며칠 전처럼 먹구름이 가려버리거나 세찬 바람이 내 눈을 쳐서 하늘을 볼 수 없게 만들면 나는 화를 내고 거칠어진단다. 나는 그리운 하늘을 바라만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단다. 그래서 나는 하늘과 맞닿아 있는 수평선을 향해 억겁의 세월 쉬지 않고 굽이쳐 달려가고 또 달려왔단다. ‘어서 가자! 저기 가면 만나볼 수 있다! 힘을 내자! 저곳에 가면 옷자락이라도 만져볼 수 있다. 넘실넘실 너울너울, 그렇게 가도 가도 가까워지지 않는 수평선을 향 해 굽이쳐 가다보면 낮은 들판 높은 절벽 얼음산들이 내 앞을 가로막곤 한단다. 그럴지라도 하늘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넘어서라도 뚫고서라도 수평선을 향해 계속 가야하기 때문에 나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장구한 세월 동안 때로는 지친 채로 때로는 화가 난 채로 이렇게 밀고 부딪치는 몸부림 을 계속 해오고 있단다. 그리고…”

나는 72년 10월 17일의 소위 유신쿠데타 때부터 바다처럼 민주와 자주와 통일과 평화의 수평선을 향해 그리움을 안고 쉴 새 없이 굽이쳐 다녔다. 제적, 고문, 교도소, 현상수배, 만리타국이 앞을 가로막고 분열의 먹구름과 중상모략의 폭풍이 시야를 가려도 나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수평선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더 빨리 가기 위해 밀고 부딪치는 몸부림을 계속했다.

이 글은 굽이치고 몸부림쳤던 지난날의 한때를 기록한 것이다. 나는 나를 숨겨주고 밀항탈출 시켜준 분들에게 12년 망명 생활과 해외운동에 대해 보고도 드리고 전두환 노태우 일당의 탄압과 DJ의 중상에 영향을 받아 지금도 나를 경계하고 있는 분들에게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 그리고 나의 5.18 관련 내막 과 밀항탈출 과정과 귀국 후의 생활에 관심을 가진 분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기 위해 이 글을 썼다. 또한 나는 나이 오십이 다 된 내 인생의 마무리 차원에서, 새로 시작할 일의 준비를 위해서 잠시 지난날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썼다. 독자들에게 실망이나 안 주었으면 좋겠다.

1996년 9월 10일 윤한봉

목차

  • 밀항 탈출
    • 급히 마산으로 내려가다
    • 성공 확률 5%, 작전 계획을 세우다
    • 암호를 정하다
    • 잠입을 시도하다
    • 비상식량을 확보하다
    • 드디어 출항하다
    • 영해를 벗어나다
  • 부마항쟁에서 5.18까지
    • 부마항쟁의 충격
    • 항쟁을 예감하다
    • 최선을 다해 대비하자
    • 모두 내 말을 웃어 넘기다
    • 혼자서 준비해 나가다
    • 호소에 반응이 나타나다
    • 기습을 당하다
    • 비겁하게 피신하다
    • 회한의 서울 도피 생활
    • 가증스러운 적들의 조작
    • 독일 망명을 시도하다
    • 광주 운동권의 걱정
    • 망명 결심과 준비
  • 밀항선 속에서
    • 살인적인 더위와 굶주림
    • 토끼, 용궁에 갔다 오다
    • 배멀미에 녹초가 되다
    • 지루한 나날들
    • 정찬대와 최동현의 밀항 협조 전말
    • 상륙 준비
    • 요트가 안 보이다
    •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다
  • 미국 상륙과 정치 망명
    • 마침내 미국땅을 밟다
    • 암호명 ‘봉선화’와 ‘진달래’
    • 풀리는 의문들
    •  이민국 출두 명령의 거부
    • 망명생활을 위한 각오와 다짐
    • 망명 생활의 수칙을 정하다
    • 이민국 출두와 정치망명 신청
    • 6년간 끌어버린 망명재판
  • 해외운동을 준비하다
    • 동양식품점에서 일하다
    • 해외운동에 대한 학습
    • L.A로 옮기다
    • L.A의 김상원
    • ‘광주 수난자 돕기회’를 만들다
    • 박관현의 옥사와 10일 간의 항의 단식
    • 미주운동의 역사와  현황
    • 망명 사실이 탄로나다
  • 민족학교 설립
    • 해외 운동 10년 계획을 세우다
    • ‘민족학교’의 설립
    • 사면팔방의 중상모략
    • 신분을 밝히다
    • 초미니 데모
    • 민족학교 초기의 어려움
    • 평화시위장의 충격
    • 인종차별 규탄 시위장의 충격
    • DJ의 LA강연
    • 망월 묘역의 흙과 꼬방동네의 흙
  • 해외 활동 1 (운동화와 똥가방)
    • 재미한국청년연합의 결성
    • 재미한국청년연합의 결성
    • 미국의 중남미 개입 규탄시위장의 충격
    • 각 지역의 마당집 설립
    • “임금님 사위 항쟁이 뭡니까?”
    • 터닦기와 틀잡기 – 문화운동(1)
    • 운동의 생활화 – 문화 운동(2)
  • 해외 활동 2 (운동화와 똥가방)
    • 국제 외교 연대운동
    • 6년 만의 망명 허가
    • LA 한인회장 선거의 승리와 패배
  • 해외 활동 3 (운동화와 똥가방)
    • ‘한겨레운동 재미동포 연합(한겨레)’ 결성
    • 87년 대선과 절망
    • ‘미주 한겨레신문’ 발간 시도와 실패
    • 전두환, 노태우 방미 규탄시위
    • 5.18 기념행사 개최
    • 건강이 나빠지다
    • 조국 운동에 대한 연대와 지원
    • “거지들 모임 같다.”
  • 해외 활동 4 (운동화와 똥가방)
    • FBI의 교묘한 탄압
    • 운동화와 똥가방
    • 여행증명서와 영주권을 받다
    • 핵무기 철거요청 10만 명 서명운동
    • ‘윤한봉 선생 귀국 추진위원회’의 결성
    • ‘광주 청문회’와 헛된 귀국의 꿈
    • 어머님이 찾아 오시다
  • 해외 활동 5 (운동화와 똥가방)
  • 해외 활동 6 (운동화와 똥가방)
    • 노태우 일당의 악랄한 중상모략
    • DJ의 추악한 중상모략
    • 22일간의 UN본부 앞 단식농성
  • 해외 활동 7 (운동화와 똥가방)
    • 「범민련」과의 갈등
    • 일본지역 운동과의 갈등
    • 15일간의 UN본부 앞 단식농성
    • ‘해외한국청년운동연합(해외한청련)’의 결성
    • 제2차 국제 대행진의 포기
    • 4.29 LA 폭동을 겪다
  • 미국에서 보고 느낀 것들
  • 해외 활동 8 (운동화와 똥가방)
    • 남-북 UN 분리가입과 눈물
    • 정세변화와 강령 개정
    • 재미한국청년연합 강령
    • 정만수 이주영 장학금
    • 재미 동포사회의 문제점
    • 민족적 수치
    • 마음 고생
    • 위로, 격려해주신 방미 인사들
    • 조국의 전쟁 위기에 대응하다
  • 조국에 돌아와서(운동화와 똥가방)
    • 12년 만의 귀국
    • 망명생활의 청산과 영구 귀국
    • 정치의 충격
    • 사회의 충격
    • 지역주의의 충격
    • 광주의 충격
    • 뒷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