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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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순(尹熙順, 1860년 8월 11일~ 1935년 8월 1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로, 안사람 의병단을 조직한 최초의 여성 의병 지도자였다. 의병운동 25년, 독립운동 15년의 40년간 구국운동에 헌신했다. <안사람의병단>의 의병장으로 활동했고, 「안사람 의병가」,「의병군가」「병정가」 등 의병가사와 서간문, 일생록 등 16편의 기록을 남겼다. 서훈으로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1]

1 생애

1860년 경기도 구리시에서 태어났다.[2] 1875년 16세에 유제원과 결혼했다.[2]

1907년 정미의병으로 유홍석이 청년의병들과 의병운동을 할때에, 윤희순은 의병장 유인석의 부인 최골댁과 유씨 집안 여성들, 향촌 여성들 등 76명으로부터 군자금 355냥을 모금하여 탄환 제조소를 운영, 의병들에게 탄환을 제공하였다. 또한 가정리 여성 30여 명으로 여성의병을 조직하여 의병들의 취사, 세탁 및 훈련에 참가하는 한편 남장을 하고 정보수집에 나서기도 하였다.[3]

아무리 왜놈들이 강승한들 우리들도
뭉쳐지면 왜놈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사랑 모를소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 있나.
우리도 나가 의병 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
금수에게 붙잡히면 왜놈 사정 받들소냐. 우리 의병 도와주세.
우리나라 성공하면 우리나라 만세로다. 우리 안사람 만만세로다.

윤희순은 안사람 의병가 등 8편의 의병가와 4편의 경고문을 제작하여, 많은 여성들이 의병운동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1910년 8월 일제에 의해 국권이 찬탈되고 의병대 또한 해산되었지만, 1911년 윤희순은 유홍석, 유제원과 함께 만주로 이주하여 20년 넘도록 황무지를 개간하며 군자금을 모아 항일운동단체에 전달하였다.

1912년 윤희순은 이희영, 우병렬, 중국인 도원훈, 손홍령과 함께 만주 한인현 남괴마자에 노학당을 설립하고, 박종수, 이정현, 마덕창 등을 비롯한 50여 명의 항일운동가를 양성하였다. 무순 포가둔으로 이주한 뒤에는 한중 연합으로 180여 명의 조선독립단을 조직하고 조선독립단학교를 설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족부대를 조직하여 직접 군사훈련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중국에서 시아버지, 시동생, 남편을 잃었다.[4]

1935년에 장남 유돈상이 일본군에 체포되어 무순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나오던 도중 숨지자 시신을 용봉산에 묻고 나서 음식을 끊고 12일간 자신의 일대기 해평윤씨일생록을 지었다.[4] 그 후 윤희순은 77세로 숨을 거두었다.

중국 요령성 해청에 있던 묘소는 손자 류연익이 찾아 1994년 10월 17일에 강원도 춘천 소재 선영으로 옮겨 안장되었다.[5]

2 상훈

  • 1983년 대통령표창 추서[6]
  •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2]

3 기념

  • 1982년 11월 9일 강원대학교항골마을 생가 터에 해주윤씨의적비를 건립하였다.[7]
  • 묘소에는 애국선열윤희순여사사적비가 있다.[8]
  • 1990년 11월 7일 춘천시립도서관에 윤희순상이 건립되었다.[9]
  • 2008년 9월 국가보훈처가 발표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6]
  • 강원도의 대표여성인물로 지정되었고, 2009년 8월에 올해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 2014년 5월 27일 광복회 강원도지부는 해주윤씨의적비·의병노래비 제막식을 가졌다.[10]
  • 2017년 7월 14일 강원도 홍천군 내춘면 척야산수목원에서 윤희순 의사 노랫말비 제막식이 열렸다.[11]
  • 2018년 10월 27일 역사교양프로그램 천상의 컬렉션은 윤희순 의병 가사집을 소개했다.[6]

4 춘천과 충북의 선양사업

충북에서 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을 만드며 윤희순 의병장의 흉상과 기록을 전시할 예정이 보도되자 20년 전부터 윤희순을 기려온 강원도 춘천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6]

강원도민일보는 1월 14일자 보도에서 "윤희순 의사는 학술문헌상 서울(혹은 경기구리)에서 태어나 16세가 되던 해에 춘천 의병장 유홍석의 장남 유제원과 결혼하며 춘천에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또 "문헌과 달리 국가보훈처에서 제공하는 국가독립유공 서훈록에 윤 의사의 출생지를 '충북'으로 표기하고 있어 윤희순 의사 선양사업의 주도권 마저 자칫 충북에 빼앗길 우려까지 낳고 있다"고 덧붙였다.[6] 춘천시의회도 "윤희순 의병장 선양사업을 충북에 빼앗기지 않겠다"며 '춘천시 윤희순 의병장 지원 조례(가칭)'을 상정할 예정이었다.[6]

5 출처

  1. 여성독립운동가사전. 심옥주. 천지당(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2. 2.0 2.1 2.2 한선위 (2017년 8월 3일). “그 누구 못지않던 독립운동가, 윤희순”. 《사단법인 한국의인물 선정위원회》. 2017년 8월 3일에 확인함. 
  3.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2년 12월 14일). 《6.25 전쟁 여군 참전사》. ISBN 978-89-89768-86-9. 
  4. 4.0 4.1 “윤희순의 해평윤씨일생록”. 《지역N문화》. 
  5. 소설가 김도연 (2012년 8월 16일). “[역사속의 강원인물]묘역 뒤편 우뚝 솟은 잣나무…윤희순 義士의 기상처럼 푸르렀다”. 《강원일보》. 
  6. 6.0 6.1 6.2 6.3 6.4 6.5 이재표 (2019년 1월 17일). “최초 女의병장 윤희순 충북-강원 “우리가 기릴래””. 《세종경제뉴스》. 
  7. “江原大(강원대) 尹熙順義蹟碑(윤희순의적비) 건립”. 《동아일보》. 1982년 11월 5일. 
  8. 한선위 (2017년 8월 3일). “그 누구 못지않던 독립운동가, 윤희순”. 《사단법인 한국의인물 선정위원회》. 2017년 8월 3일에 확인함. 
  9. “윤희순상”. 《국내 여행 정보와 관광 명소 정보》. 2019년 12월 24일에 확인함. 
  10. 김정호 (2014년 5월 28일). “여성의병장 윤희순 의적비 제막”. 《강원도민일보》. 
  11. “홍천에 첫 여성의병장 윤희순 의사 노랫말비 제막”. 《매일경제》. 2017년 7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