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최근 편집: 2022년 3월 4일 (금) 20:30
이동국
출생1979년 4월 29일
대한민국 경상북도 포항시
국적대한민국 대한민국
본관경주 이씨
학력포항제철동초등학교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위덕대학교 사회과학과 (졸업)
직업방송인, 축구 해설위원 (축구 선수)
현직CJ ENM 해설위원 (2021년 ~)
종교
가족이길남 (父), 김명자 (母), 이수진 (아내), 이재시, 이재아, 이설아, 이수아, 이시안 (자녀)
정보 수정

이동국(李同國[1], 1979년 4월 29일 - )은 대한민국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이다. 현재 전북 현대 모터스 소속으로 뛰고 있다. 2020년 현재 4년 연속 K리그 최고령 선수이다. 2007년 개명 전까지는 한자표기로 李東國[1] 을 썼다. KBS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했다.

개요

1979년부산시에서 태어나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자랐다. 포항제철동초등학교,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위덕대학교를 졸업하였다.[2][3] 데뷔 초기에는 머리가 길어 골을 넣고 뛰어다닐 때 머리 모양이 사자의 갈기와 비슷하다는 연유로 '라이언킹'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2014년 9월 5일 베네수엘라와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여 A매치 100경기 출전을 달성, 센츄리클럽에 가입했다. 이동국은 이 경기에서 2골을 기록했다.

클럽 경력

포항 스틸러스

1998년에 지역 연고 팀이었던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가 되었다. 1998년 3월 21일 천안 일화 천마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뤘으며 1998년 3월 31일 열린 전북 현대 다이노스와의 1998 아디다스컵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기록했다. 1998년 7월 22일 열린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 K리그 데뷔골을 포함해 2골을 기록했다. 1998시즌 K리그에서의 활약과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에 크게 공헌하여 신인상을 받게 되었다. 2000년 대한축구협회의 주도 하에 국내 유망주들의 해외 이적이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무릎 부상 치료차 독일에서 재활 중이었던 이동국은 2001년 1월 푸스발-분데스리가SV 베르더 브레멘로 6개월 임대 형식으로 이적하게 되었다.[4] 그러나 부상의 여파로 인해 SV 베르더 브레멘 구단에서 선수의 건강 상태에 대한 보호 차원으로 출장 기회를 제한하였으며, 이 때문에 월드컵 국가대표 선발에 대한 위기 의식으로 귀국을 결심하였고, 결국 6월 포항 스틸러스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 뒤에 FA컵 2회 준우승 (2001년, 2002년)에 공헌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은 그를 2002년 FIFA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하였고 그 자리는 설기현으로 대체하였다.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도 동메달에 그쳐 병역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 이후 광주상무에 입단하여 본인의 플레이 스타일도 적극적으로 바꾸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져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2005년 군 복무를 마치고 포항 스틸러스로 복귀하였다.[5] 2004년 9월 19일 대전 시티즌과의 홈 경기에서 K리그 통산 46번째로 20-20클럽에 가입하였다.

미들즈브러

이후, 이동국은 2007년 1월 23일 프리미어리그미들즈브러에 입단하였다.[6] 포항 스틸러스 구단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동국을 이적료 없이 이적시키기로 미들즈브러와 최종 합의했다. 이동국은 K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하게 된 첫 번째 선수가 되었다. 2006년 큰 부상여파에도 불구하고 데뷔전에서 스튜어트 다우닝의 크로스를 발리슛으로 연결해 골대를 맞추는 등 초반의 인상적인 활약으로 눈에 띄었으나, 이후 골을 기록하지 못하며 현지에서 그리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부상여파 여서인지 자신감이 많이 하락되있는 모습으로 2시즌 동안 FA컵풋볼 리그 컵에서 1골씩 넣고, 결국 2007-08 시즌이 끝나고 2008년 6월 30일을 끝으로 상호간에 계약을 해지하였다.

성남 일화 천마

K리그 복귀를 타진하던 중, 하향세를 보이던 팀에 보탬이 될 것이라며 성남 일화 천마 구단 고위층이 영입에 적극 나섰다. 성남에 입단하기 전까지 대전 시티즌,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도 협상했다.[7] 하지만 리그 중위권인 대전 시티즌 보다는 상위권인 성남 일화 천마에 입단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여 2008년 7월 25일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했지만,[8] 많은 출전 기회를 살리지 못하였다. 시즌 후 팀이 신태용 감독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그는 전력에서 배제되어 트레이드 카드로 올라가게 되었다.[9]

전북 현대 모터스

때마침 조재진J리그에 진출하게 되어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그의 영입을 타진하자 2009년 1월 10일 미드필더 김상식과 함께 문대성홍진섭을 상대로 전북 현대 모터스에50.[10] 성남에서의 좋지 않은 모습 탓에 주변에서는 전북 최강희 감독의 지나친 모험수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2009 K리그가 개막한 후 2라운드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2골을 쏘아올리며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또한 7월 4일 열린 광주 상무 불사조와의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3-2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결국 2009시즌 K리그에설 29경기 20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이 당시 20골 이상의 득점왕은 K리그 통산 4번째 기록이었다.[11] 시즌 종료 후 열린2009 K리그 대상에서 2009 시즌 MVP를 수상하였다.

12년 만에 월드컵에 출전하였던 2010년 시즌의 이동국은 활동량이 더욱 증가하며 리그 28경기 12골을 기록하였으며, K리그 개인 통산 99호 골을 기록하였으나 이후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100호 골을 넣지 못해 다음 해인 2011년 시즌 3라운드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 100호 골, 101호 골을 넣어 아홉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12]

2011 시즌에 15도움을 기록하면서 도움왕에 선정되어 프로 데뷔 14년 만에 신인상(1998), MVP(2009), 득점상(2009) 등 K리그 역사상 최초로 4대 개인 타이틀을 모두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AFC 챔피언스리그 2011에서 팀은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동국은 대회 9득점을 기록하여 득점왕과 대회 MVP를 차지하였다.

2012년 3월 3일 개막전 성남 일화 천마와의 경기에서 전반 14분, 18분 연속 골을 터트려 우성용의 116골을 뛰어 넘은 117골을 기록, K리그 사상 최다 골 신기록을 세웠다. 이후 2012년 11월 4일 부산 아이파크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터뜨리며 K리그 통산 137골로 K리그 최다 골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2013년 7월 16일 대전 시티즌전에서는 K리그 통산 최다 연속 득점 기록인 8경기 연속 득점에 도전하였으나, 골을 넣는 데 실패하며 7경기 연속 득점에서 연속 득점 기록을 멈추었다.[13]

2014년 8월 16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전북 입단 이후 181경기 만에 100번째 골을 기록하였고 K리그 역사상 4번째로 한 구단에서 100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14] 하지만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2014년 11월 30일 포항 원정경기에서 골을 기록한 산토스에게 득점왕 타이틀을 내주었다.

2016년 9월 13일 상하이 상강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경기에서 3-0으로 우세한 상황에서 2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5-0승리를 이끌었다. 2016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첫 번째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2017년 9월 17일에 포항 스틸러스을 상대로 1골, 도움 2개를 기록하여 K리그 사상 최초로 70-70클럽에 가입한 선수가 되었다.[15] 2017년 10월 29일 제주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1골을 넣어 K리그 사상 최초로 통산 200골을 달성하여 전북의 리그 5번째 우승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리그 최종전 경기에서 골을 기록한 이동국은 K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9년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의 대기록을 세웠다.

2018년 2월 13일 가시와 레이솔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에서 하프타임에 교체 투입되었다. 2-0으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후반 10분 만회골과 후반 41분 역전골을 기록했고 팀은 3-2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2018년 3월 1일 울산 현대와의 K리그1 개막전에서 후반 16분 득점을 기록해 2018년 K리그1의 첫 번째 골을 기록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후반 40분 1도움을 기록해 2-0승리에 일조했다. 2018시즌 이동국은 35경기 13골 5도움을 올리며 K리그 역사상 최초로 10년 연속으로 10득점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16]

2019년 6월 2일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 문선민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해 득점에 성공했다. 이 골로 이동국은 전북 현대 모터스 소속으로 200번째 득점을 기록했다. K리그역사 상 한 팀에서 200득점을 기록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17] 6월 23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에서는 전반 1분 수원 골키퍼 노동건의 골킥이 이동국의 얼굴에 맞은 뒤 골문안으로 들어가서 득점을 하는 황당골을 기록해 화제가 되었다.[18] 2019시즌 총 리그에서 33경기 9골 2도움을 기록했다.

국가대표팀 경력

1998년 이동국은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최다 득점을 하며 대한민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 때 이동국은 김은중과 투톱을 이루며 득점왕은 물론 대회 MVP에도 선정되었다.[19]

신인 시절 황선홍의 뒤를 이을 대형 스트라이커로 주목받았다. 1998년 5월 16일 자메이카와의 친선 경기에서 후반 34분 황선홍과 교체되면서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경기에 데뷔했다. 이후, 1998 FIFA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되어 예선 2차전에서 서정원과 후반교체출전으로 월드컵에 데뷔하게 되었는데, 당시 이동국의 나이는 19세였고 대한민국 역사상 최연소 월드컵 출전이었다. 네덜란드전에서 다비즈를 따돌리고 강력한 중거리 슛을 쏘아 네덜란드 골문을 위협하여 강한 인상을 준 바 있다. 0:5로 대패하였지만 당시 경기를 지켜본 영국 언론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상깊은 선수였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등 호평이 이어졌고 실제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PSV 에인트호번에서 이동국을 영입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출하기도 하였다. 월드컵이 끝나고 청소년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을 거치며 대표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자리잡게 되고,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 6골로 득점왕을 차지하였다.[20]

이동국은 3년간 국가대표팀과 청소년대표팀 올림픽대표팀 K리그까지 병행하며 혹사 당했다. 그리고 독일로 진출할 당시 이동국은 재활치료가 주목적이었고, 뜻밖의 브레멘 오퍼로 유럽 진출을 한다. 하지만 혹사 당해 부상당한 무릎이 회복되지 않았고 팀에서나 국가대표팀에서나 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 히딩크 역시 혹사 일지를 전혀 모르던 상태였고 혹사 일지를 잘 알던 당시 포항감독 최순호는 히딩크에게 한달만 시간을 준다면 몸상태 100%로 만들어서 대표팀에 보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히딩크는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며 거절 했고 이동국은 정상적이지 못한 몸상태로 대표팀에서 뛰며 안타까운 상황을 맞이해야만 했다.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후반 막판 극적인 결승골을 넣고 경쟁에 불을 지핀다.

하지만 2002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엔트리에서 제외되어 큰 충격을 받았고, [21] 같은 해에 개최된 2002년 아시안 게임 축구 대표팀에서 주장을 맡아 분전했지만 준결승전 이란전에서 이영표가 일명 '동국아 군대가라슛'을 날려서 승부차기 끝에 패하면서 끝내 병역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하여 결국 2003년 상무에 입대하였다.

2004년 새로 부임한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바레인전에서 골을 기록하고, 2004년 AFC 아시안컵에서 4경기 4골을 기록하는 등 여러 좋은 장면을 연출하면서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의 눈도장을 찍었다. 2004년 12월 19일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독일과의 친선 경기에서 세계 최고의 골키퍼 올리버 칸을 상대로 터닝 발리 슛으로 결승골을 넣어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22] 이 골은 축구팬들이 뽑은 '2004년 최고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23] 참고로 아시안게임에서 이동국은 6경기 5골을 기록했다.

이후 아시안컵월드컵 지역 예선을 통해 10골 넘게 기록하면서 '본프레레호의 황태자'로 확실하게 부활하였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본프레레 감독의 후임으로 임명된 후에도 대표팀에 소집되어 2006년 FIFA 월드컵 무대를 노렸지만 2006년 4월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입어 무릎 수술을 받기로 해 월드컵 본선에서의 활약이 끝내 좌절되었다.[24][25]

이후, 2007년 AFC 아시안컵 엔트리에 발탁되었으나 이때도 이동국은 부상이 완쾌되지 않아 아시안컵 총 6경기중 총 출전시간은 90분도 안될 정도로 기회가 저조했다. 차라리 이때 뽑히지 않았더라면 아시안컵 기록은 10경기 10골로 경기당 1골의 어마어마한 커리어를 보유했을텐데 득보다 실이 많았던 대회.

2009년,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자 일부 축구 팬들은 이동국의 대표팀 발탁을 바라는 목소리를 높였고 언론들도 이동국의 국가대표 발탁 여부를 조명하기 시작하였다. 대표팀의 허정무 감독은 "더 좋은 활약을 펼쳐야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히다가[26], 2009년 말 대표팀 평가전에 다시 발탁하였다[27].

재발탁 직후 대표팀 전술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8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이후 4경기 3골을 넣었고, K리그에서도 개막 이후 5경기 동안 침묵하다가 AFC 챔피언스리그와 인천전에서 연속골(3경기 4골)을 넣는 등 절정의 몰아넣기를 과시했다.

이동국은 2010년 5월 16일 에콰도르전에서 전치 3주의 허벅지 부상을 당하여 월드컵 엔트리 합류 여부가 불투명하였으나 허정무 감독에 의해 2010년 FIFA 월드컵 국가대표 최종 엔트리 23명에 선발되었다.

조별 예선 두 번째 경기 아르헨티나전에서 후반전에 조커로 교체 출전하여 수비진을 따돌리고 중거리 슛을 때리는 등 무난한 활약을 선보였다. 16강 우루과이전에서도 후반전에 김재성과 교체되어 34분 간 경기를 뛰며 활약했다. 후반 40분, 박지성이 연결해 준 패스를 받아 골키퍼와 1:1이 되는 결정적인 상황을 맞이했으나 수중전 상황에서 물을 잠긴 공을 찬 슛이 빗맞아 골키퍼 정면으로 굴러가 막혀 버리며 동점 골을 넣는데 실패하여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대한민국은 결국 1:2로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1년 9~11월, 나름 괜찮던 이동국을 외면하던 조광래 감독이 여론에 못 이긴 채 그를 발탁하고, 폴란드와의 평가전에서 이동국 맞춤 전술을 구사하겠다고 언론에 밝혔으나, 어울리지 않는 쓰리톱 전술로 후반전 시작과 함께 바로 경기장 밖으로 교체해 내보냈고, 그 다음 경기에서도 후반전 20여분만을 뛰었다. 이동국도 그 이후 대표팀 은퇴를 시사하는 트위터 글을 남기기도 했다.

2011년 12월, 최강희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된 후 부름을 받았고 2012년 2월 25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친선 경기에 이동국은 선발로 출전하여 2골을 넣어 최강희 감독의 데뷔전 승리를 이끌었다. 2010년 3월 3일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 이후 약 2년 만에 나온 골이었다.

2012년 2월 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쿠웨이트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전에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이때 이동국의 결승골로 인해 한국축구는 기사회생으로 최종예선에 어렵사리 진출하게 된다. 2012년 6월 9일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카타르와의 경기에서는 김신욱의 골을 어시스트하였으며, 2012년 9월 11일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는 1:1 상황에서 역전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전에서 골을 기록한 이외에는 부진한 플레이로 인해 다음 이란과의 경기에서는 엔트리에서 제외됐으며, 이후 K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최강희호에 재승선하여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2013년 6월까지 계속된 카타르, 레바논, 우즈베키스탄, 이란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에서 부동의 원톱으로 경기에 나섰다. 3월 26일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손흥민의 골을 어시스트했고 최강희호는 본선 진출을 확정후 감독직을 놓게 된다. 이후 홍명보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이동국은 대표팀에서 단 한차례로 발탁되지 못하는 수모를 겪게되었고,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는 기존에 뽑혔던 선수들로 구성하고 깜짝 발탁은 없다는 홍명보 감독의 인터뷰로 인해 브라질 월드컵 출전은 사실상 좌절되었다. 결국 소속팀에서 벤치에 있는 선수들은 국가대표팀에 부르지 않겠다던 자신의 원칙을 깨고 박주영을 발탁. 몰매를 맞는다.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서 결국 홍명보 감독과 인맥축구 소리를 듣던 박주영은 최악의 부진을 보여주며 이동국의 부재를 더욱 그립게 만들었다.

브라질 월드컵이 종료된 후 2014년 9월 5일 베네수엘라와의 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하여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였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정식으로 부임한 후 2014년 10월 14일 코스타리카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기록하였다.

2017년 8월 14일,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국가대표 26인에 공격수로 발탁되었다.[28][29]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물오른 이동국 대신 김신욱을 발탁. 2018년 FIFA 월드컵 본선 명단에서는 제외되었다. 스웨덴전 김신욱 카드는 실패를 맛봤다.

논란

아시안컵 기간 중 숙소 무단이탈 및 성매매 룸살롱 출입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2007 아시안컵 축구대회 도중, 동료 국가대표 선수인 이운재, 김상식, 우성용과 함께 자정즈음 국가대표팀 숙소를 무단이탈해 룸살롱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신 사실이 들통나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실제 언론사 뉴시스의 현지 취재에 따르면 이동국은 룸살롱에서 접대부들과 함께 폭탄주를 마시고 새벽까지 춤추고 노래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고, 심지어 '2차'까지 나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해당 업소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성매매 유흥행위를 하는 업소로 널리 알려진 곳이었는데, 이동국 등을 접대한 현지 접대부들은 선수들을 직접 지목하며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한 사진까지 공개하였다. 이에 인도네시아 교민들은 선수들의 부적절한 성추문에 커다란 실망감과 분노감을 드러냈다.기사

사건이 널리 알려진 직후 이운재, 김상식, 우성용 등 음주파문에 연루된 선수들은 사죄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이동국은 당시 영국에 체류하고 있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에 불참하였으며서면 사과로 이를 대신하였다. 이동국은 국내로 복귀한 뒤 오랜시간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당시 룸살롱 출입사건에 대해 침묵하였고, 몇년 뒤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에 자신은 룸살롱에 출입한 것이 아니라 지인이 운영하는 일반 술집에 출입한 것이며, (대회도중 숙소를 무단으로 이탈해 룸살롱 접대부들과) 맥주 한 잔 마신 것이 큰 잘못이 되었다며 항변하였고, 심지어 당시 미들즈브러에서 함께 뛰었던 동료들의 입을 빌려 자신의 행동을 비판한 대중들까지 싸잡아 비판하는 뉘앙스로 적시했다. 본인 입장에서는 업소에서 부적절한 성행위가 없었다는 것을 강변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나, 해당 업소가 현지에서 워낙 널리 알려진 성매매 업소였기에 이동국의 일방적 주장은 객관적 신빙성이 부족하다. 대한축구협회 또한 선수들의 성매매는 없었다는 자체 조사결과를 내놓았지만 지금까지 축협의 자체조사 결과를 신뢰하고 있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단순 음주파문을 넘어 단체 성매매 의혹을 강하게 받는 사건임을 감안한다면 이동국의 입장에서는 이 정도로 묻힌 것이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사건이다.

해당 사건이 첫 쌍둥이 임신 기간이었던 것을 생각할 때, 육아 예능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면서도 논란이 일지 않았던 것은 신기한 일이다.

여담

경력

클럽 기록

2019년 12월 1일 기준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국내 컵 리그 컵 대륙 대회 통산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대한민국 리그 FA컵 리그컵 AFC 통산
1998 포항 스틸러스 K리그 15 7 0 0 9 4 - 24 11
1999 15 7 0 0 4 1 - 19 8
2000 7 4 0 0 1 0 - 8 4
독일 리그 DFB-포칼 리가포칼 UEFA 통산
2000-01 베르더 브레멘 분데스리가 7 0 0 0 - 0 0 7 0
대한민국 리그 FA컵 리그컵 AFC 통산
2001 포항 스틸러스 K리그 17 3 2 1 0 0 - 19 4
2002 21 7 4 3 0 0 - 25 10
2003 광주 상무 불사조 27 11 0 0 - - 27 11
2004 19 1 2 0 4 3 - 25 4
2005 0 0 0 0 1 0 - 1 0
포항 스틸러스 17 3 3 0 7 4 - 27 7
2006 10 7 0 0 0 0 - 10 7
잉글랜드 리그 FA컵 리그컵 UEFA 통산
2006-07 미들즈브러 프리미어리그 9 0 2 0 0 0 - 11 0
2007-08 14 0 2 1 2 1 - 18 2
대한민국 리그 FA컵 리그컵 AFC 통산
2008 성남 일화 천마 K리그1 10 2 0 0 3 0 - 13 2
2009 전북 현대 모터스 29 21 4 4 3 1 - 36 26
2010 28 12 2 0 2 1 8 4 40 17
2011 29 16 1 0 0 0 8 9 38 25
2012 40 26 2 2 - 6 4 48 32
2013 30 13 2 2 - 8 3 40 18
2014 31 13 2 0 - 7 3 40 16
2015 33 13 1 1 - 7 4 41 18
2016 27 12 0 0 - 14 5 41 17
2017 30 10 1 0 - - 31 10
2018 35 13 2 0 - 8 4 45 17
2019 33 9 0 0 - 8 1 41 10
통산 대한민국 503 210 28 13 34 14 74 37 639 274
독일 7 0 0 0 - 0 0 7 0
잉글랜드 23 0 4 1 2 1 - 29 2
종합 533 210 32 14 36 15 74 37 675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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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각주

  1. 1.0 1.1 노주환 (2007년 8월 13일). “이동국, 역술인의 도움으로 한자 이름 개명”. 스포츠조선. 2016년 1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3월 16일에 확인함.  단, 호적상의 이름을 바꾼 것은 아님.
  2. 포철공고 이동국 막막한 한국축구 빛이 보인다 떠오른 초대형 샛별, 《경향신문》 1997년 7월 5일 (네이버 디지털 뉴스 아카이브)
  3. 이해준 기자 (2007년 9월 16일). “고졸 선수들, 병역 연기 위해 대학 입학”. 일간스포츠. 2009년 11월 16일에 확인함. 
  4. 박용철 (2001년 1월 10일). “이동국, 獨브레멘 입단 확정”. 한국일보. 
  5. 최원창 (2005년 4월 1일). “이동국, 2년간 5억+a 초특급대우 포항 등록”. 조이뉴스24. 
  6. 서호정 (2007년 1월 23일). “이동국, EPL 미들즈브러 진출 확정”. 대한축구협회. 깨진 링크
  7. 전광열 (2008년 7월 30일). “이동국 우여곡절 끝에 성남 입단...연봉 4억”. 스포츠경향. 
  8. 윤신욱 (2008년 7월 30일). “이동국, K리그 성남 입단…계약 기간 1년 5개월”. 마이데일리. 
  9. 김동욱 (2008년 12월 31일). “이동국, 성남과 결별…구단 공식 통보 받아”. 노컷뉴스. 
  10. 김삼우 (2009년 1월 10일). “이동국·김상식, 전북 입단...문대성·홍진섭과 트레이드”. 이데일리. 
  11. 조수현 (2009년 11월 2일). “오늘의 스포츠 (이동국 득점왕 외)”. 연합뉴스. 2009년 11월 16일에 확인함. 
  12. 박린 (2011년 3월 20일). '이동국 100호 골' 전북, 2연승 질주”. 세계일보. 
  13. 김준영 (2013년 7월 16일). “이동국 연속골 불발…7경기서 기록 멈춰”. 세계일보. 
  14. 김준영 (2014년 8월 17일). “이동국, 전북에서 통산 100호 골”. YTN. 
  15. 이동국 '70-70 클럽' 가입…전북, 포항 제압
  16. 이동국, 역대 최초 10년 연속 두 자릿수 골
  17. ‘전북 통산 200골’ 이동국, ‘220골’ 주문한 모라이스 감독에 “한 번 도전해보겠다"
  18. 이동국, 골키퍼가 찬 공에 얼굴 맞고 득점…행운의 ‘안면 골‘
  19. 1998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이 일본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자료
  20. 김준동 (2000년 10월 30일). “결승골 이동국…득점왕 등극”. 국민일보. 
  21. 라동철 (2002년 4월 30일). “안정환 합류 이동국 탈락… 월드컵 엔트리 23명 확정”. 국민일보. 
  22. “한국 축구, 전차군단 격파…'3골 축포 쐈다'. 마이데일리. 2004년 12월 19일. 
  23. 이상헌 (2004년 12월 28일). “독일전 이동국 골, 네티즌이 뽑은 2004 최고의 골에 선정”. 대한축구협회. 깨진 링크
  24. 김현기 (2006년 4월 10일). “이동국 '십자인대 파열 진단'…월드컵 참가 적신호”. 마이데일리. 
  25. 배영은 (2006년 4월 13일). “이동국, 끝내 월드컵 출전 좌절...무릎 수술키로”. 조이뉴스24. 
  26. 김진회 (2009년 7월 6일). “허정무 감독 “이동국 재발탁, 지켜봐야 한다””. 동아일보. 깨진 링크
  27. 이상규 객원기자 (2009년 11월 16일). “펄펄 날던 이동국·이근호 ´이유 있는 침묵´”. 데일리안. 2009년 11월 16일에 확인함. 
  28. '만 38세' 이동국, 1기 신태용호 승선…손흥민·기성용도 합류(종합)”. 2017년 8월 14일에 확인함. 
  29. “[SW포토] 신태용 감독, 김민재-권경원 첫 발탁”. 2017년 8월 14일에 확인함. 
  30. 김종력 (2005년 8월 12일). “박주영 이동국, 올스타전 홍보 포스터 모델”. 조이뉴스24. 
  31. 김현기 (2005년 12월 18일). “이동국, 미스코리아 이수진씨와 백년가약”. 마이데일리. 
  32. 박지은 (2007년 8월 14일). “이동국, 마침내 '쌍둥이 아빠' 됐다”. 노컷뉴스. 
  33. 김기범 (2005년 12월 26일). “이동국 차두리 코카콜라 동반CF”. 스포츠투데이. 깨진 링크
  34. “펠레·바이킹·골대·중국·푸마·코카콜라의 공통점은?”. 한겨레. 2006년 6월 21일. 
  35. 윤신욱 (2009년 3월 15일). '터졌다!' 이동국, 대구전 2골…'과도한 세리머니? 추가골 이후 퇴장'. 마이데일리. 
  36. 이동국, ‘슈돌’로 최우수상 수상 “현직 운동선수가 여기서 상 받아도 되나요?"
  37. “KBS 연예대상 대상 후보 공개, 이동국부터 이영자까지(공식입장)”. 2019년 7월 1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9년 7월 10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