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렌느 퀴리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4일 (토) 18:51
[1]

이렌느 졸리오-퀴리(Irene Joliot-Curie, 1897년 9월 12일~1956년 3월 17일)는 방사화학자이다.

생애

이렌느는 마리 퀴리의 장녀로 태어났다. 이렌느는 할아버지에게 돌봐졌고, 이 시기에 마리 부부가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여 화제가 되었다. 1903년에 마리 부부가 노벨상을 받으면서 기자들이 집을 방문하는 것에 시달리고, 1906년에 아버지 피에르 퀴리가 마차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경험하였다.

이렌느는 마리 퀴리로부터 요리, 뜨개질, 바느질과 함께 수학, 수영, 자전거, 스케이트, 스키, 승마, 등산, 체조 등을 배우고, 가정교사로부터 폴란드어를 교육받았다. 또한 마리 퀴리가 세운 사립 조합학교[주 1]에서 2년 반동안 물리화학과 수학, 실험물리학, 문학, 미술, 자연과학, 영어, 독어를 배웠다. 사립 조합학교가 없어진 뒤에는 다시 마리 퀴리로부터 수학을 교육받았다.

이렌느가 13살이 되던 해인 1910년에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1911년에 마리 퀴리의 스캔들이 불거지는 동시에 마리가 노벨상을 받는 일이 일어났다. 마리 퀴리가 요양하는 동안 이렌느는 동생과 함께 폴란드인 가정교사에 의해 돌봐졌다.

이렌느가 17살이 되던 해인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폴란드어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간첩으로 의심당하는 상황속에서 마리 퀴리와 함께 X선 장비를 이용하여 부상자들을 살리고, 1915년에는 벨기에 병원에서 X선 장비의 사용법을 군의관들에게 가르쳤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렌느는 라듐 연구소에서 마리 퀴리의 조수가 되었고, 1920년대에 몇 안 되는 방사능 전문가가 되었다. 1925년에 소르본느 대학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6년 10월에 프레데릭 졸리오와 결혼하고, 1927년에 결핵으로 요양을 권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프레데릭과 공동으로 방사능물질을 연구하였다.

이렌느 부부는 보테의 논문-베릴륨 금속을 폴로늄의 입자로 충격을 가하면 '새로운 종류의 광선'이 강한 힘으로 2센티미터의 두께의 납을 뚫는 현상을 재검증하였다.

1932년에 중성자에 관하여 연구를 시작한 이렌느 부부는 '전자만한 입자들의 흔적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이렌느 부부는 중성자 현상에 관하여 추가로 연구한 결과, 1934년에 인공 방사능을 발견하였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35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노벨상을 받은 후, 이렌느는 당시 프랑스에서 제일 저명한 연구센터인 꼴레주 드 프랑스[주 2]로 자리를 옮겼다. 연구센터에서 관리, 가속 장치의 설계, 기금 모금활동에 주력하였고, 라듐 연구소에서 연구 개발 부장으로 일하면서, 파리 대학의 교수로 채용되기도 하였다.

이렌느는 여러 여권 단체에 참여하면서, 여성이 집에 있기를 원하는 파시스트들에게 여성들이 미혼이거나 혼자 살거나 가족의 수입이 부족하기 때문에 밖에서 일을 할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파시스트에 대항하여 반파시스트 모임에 참여하고, 과학 연구를 위한 국무 장관으로서 프랑스의 첫 여성 각료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여성에게는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3개월 후에 사임하고 남자 동료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마리 퀴리와 함께 파리의 요양원에 남아있었으나 프레데릭 졸리오가 반 파시스트 집단의 책임자로 지목되면서 1944년 6월 6일에 아이들과 함께 스위스로 밀입국하였다.

이렌느는 전쟁 중의 물자부족으로 인해 결핵이 악화되었고, 전쟁이 끝난뒤 개발된 향균제 스트렙토마이신으로 결핵을 치료하면서 조금씩 건강을 되찾았다.

이렌느는 원자폭탄에 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핵무기 금지와 여권 신장을 위한 국제회의에 참석하였으며, 오르세이의 핵연구 센터로 자리를 옮겨 1956년 1월까지 연구를 계속하였다.

1956년 2월에 백혈병을 진단받은 이렌느는 1956년 3월 17일에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업적

1927년부터 프레데릭 졸리오와 공동으로 방사능물질을 연구하여 세계에서 가장 많은 폴로늄을 생성하였다.

이렌느 부부는 보테의 논문-베릴륨 금속을 폴로늄의 입자로 충격을 가하면 '새로운 종류의 광선'이 강한 힘으로 2센티미터의 두께의 납을 뚫는 현상을 재검증하여, 'X선의 힘을 가진 감마선'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가진 양자를 움직이는 요인이라고 부정확하게 결론내렸다.

얼마지나지않아 제임스 채드윅에 의하여 이 현상이 중성자-핵 안에서 크고 중성을 띠는 입자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다.

1932년에 중성자에 관하여 연구를 시작한 이렌느 부부는 '전자만한 입자들의 흔적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는 현상'을 발견하였으나, 전자만한 입자-양전자를 다른 정상적인 전자가 만들어낸 현상으로 해석하였다.

반물질의 양전자를 발견한 공로는 칼 앤더슨에게 돌아갔고, 앤더슨은 193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렌느 부부는 1933년부터 1934년까지 '폴로늄과 같이 둔 알루미늄 호일에서 중성자와 양전자가 분출하는 현상'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 인공 방사능을 발견하였다.

알루미늄 핵이 폴로늄으로부터 알파 입자로부터 충격을 받고, 알파 입자가 알루미늄 핵으로 들어가면서, 중성자가 방출되고 알루미늄 핵이 방사성을 가진 인이 되며, 추가로 양전자가 방출되면서 방사성 인이 규소핵으로 변하는 인공 방사능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렌느 부부는 1934년에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 올랐고, 1935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1938년에 이렌느는 중성자로 우라늄에 충격을 가하는 실험 끝에 우라늄이 중성자를 흡수하여 더 무거운 원소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를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던 오토 한이 이렌느의 실험결과를 재검증하다가 우라늄의 핵분열현상에 관한 논문을 출판하고 1944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부연 설명

  1. 여섯명의 학부형이자 교수들이 총 10명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전공학을 가르치는 시스템의 학교.
  2. College de France. 프랑스의 최고 석학들이 교수진으로 있는 시민 대학 또는 개방 대학.

출처

섀런버트시맥그레인 (27 November 2007). 《두뇌 살아있는 생각》. 룩스미아. ISBN 978-89-91274-23-5. 

  1. “Irène Joliot-Curie – For the Joy of Science”. 《Saints, Sisters, and Slu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