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최근 편집: 2023년 10월 25일 (수) 01:17


이명박
출생1941년 12월 19일
거주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 (자택)
서울특별시 송파구 문정동 서울동부구치소 (수감지)
국적대한민국
별명호: 청계(淸溪)
약칭: MB
학력포항영흥초등학교
포항중학교
동지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 (졸업)
정당
종교개신교(장로회)
정보 수정

이명박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이다.

정계 입문 이전

고려대학교에서 단과대 학생회장을 했고, 이 시기 박정희 정부의 한일협상에 반대하는 시위도 하였다. 이후 정주영현대건설에 사원으로 취업하였다. 이명박은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현대건설 사장직까지 올랐다. 이명박은 '샐러리맨의 신화'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대통령 당선 이전 정치 행보

현대그룹 총수 정주영 회장이 국민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했으나, 이명박은 함께하지 않는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서울특별시 종로구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제3회 지방선거에서는 서울특별시장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 새천년민주당 김민석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었다.

서울특별시장 시절

2002년 7월부터 2006년 6월까지 서울특별시장으로 재임하였다. 청계천 복원, 서울 시내버스 체계화 사업 등 치적을 남겼다. 그리고 이 기간은 이명박이 대권 주자로 성장하는 발판이 된다.

대통령 시절

이명박은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한나라당 소속 후보로 출마하였다. 당 내 경선에서 박근혜를 이겼다. 이명박은 48.67%로 2위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을 20%P 이상 차이로 이기고 대통령직에 당선되었다. 주요 공약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 747 비전(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이었다.

임기 초반인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이 불거지며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로 인해 수입 조건의 변경이 이루어졌다.

이명박 정부 시기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4대강 사업으로 바뀌어 진행되었고, 해외자원개발 사업도 추진되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발생한 녹조 문제에 대해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주변 보 개방을 추진하는 듯 하였으나, 몇 군데 개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개방이 이루어진 금강, 영산강의 녹조는 최대 97% 저감되었다는 환경당국의 발표가 있었다.[1] 세종보에는 서식 환경이 회복되어 법종보호종인 철새 수가 크게 늘었다.[2]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처음에도 성과가 미미하다고 비판을 받았고, UAE와의 비밀 군사 협정에 비상시 한국군 자동개입이 알려져 문제가 되었다.[3]

국가기관의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개입 사건이 있었다. 공무원이 상부 지시로 업무의 일환으로 여론 조작을 위한 댓글을 비밀리에 대량으로 작성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로 비난받고 있다.

긍정적인 평가

서울시장 재임시 진행한 대중교통 통합 환승과 청계천 정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존재한다. 2008년 경제위기를 선방했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마이스터고 설립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비판

BBK 수사 외압 및 횡령

인터넷 탄압

박정근 사건

박정근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선전용 SNS를 리트윗과 풍자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 재판이 된 사건이다. 2심까지 진행되었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

미네르바 사건

정부 정책에 반하는 의견을 낸 미네르바가 실제로 구속수감되는 등 언론의 자유가 크게 실추된 시기이다.

서울 대중교통 통합 환승

임기 중 치적을 위해 졸속으로 추진되어 초기 장애 등 많은 문제가 있었다. 대형 사업이 민자사업으로 진행된 것에 대해 초기부터 비판이 있었다. 준공영제로 인해 버스 운영사의 사측의 부당이득 편취에 대해 지속적인 비판이 있었으며, 일부는 박원순 시장 시절에도 계속되고 있다.

청계천 정비

지속가능하지 않은 인공하천을 만들어서 수돗물을 틀어 유지한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청계천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주변 상인들을 가든파이브로 이주시켰으나, 비싼 임대료와 유동인구가 거의 없다시피하고 기존 조건과 심하게 차이나는 입지로 인해 가든파이브 이주를 성공한 상인은 거의 전무한 수준이다. 가든파이브는 아직도 상당한 공실을 자랑하고 있다.

신종플루 대응

신종플루 의심 환자를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게 하는 등 미비한 초기 대응으로 74만명에 이르는 감염자가 발생하였고, 263명이 사망하였다.

4대강 오염

심한 녹조가 여러군데 발생하였고, 영남지방에서는 가뭄으로 고통받았다. 물류와 관광으로 이용하겠다던 경인운하를 운영하는 배는 사실상 없어 비판받고 있다.[4]

여성혐오적 발언

마사지걸 발언을 한 적 있다. 해당 기사 참고로 이때 한 발언은 정말 가관이었다.

현지에서 오래 근무한 선배는 마사지걸들이 있는 곳을 갈 경우 가장 얼굴이 덜 예쁜 여자를 고르더라. 예쁜 여자는 이미 많은 손님들을 받았겠지만 예쁘지 않은 여자들은 자신을 선택해준 게 고마워 성심성의껏 서비스를 하게 된다.

노무현의 가정폭력 발언과 홍준표의 돼지흥분제 발언과 마찬가지로 역시 6070대 남성들의 전근대적인 여성관을 알려주는 중요 예시이다.

홍준표와 마찬가지로 이명박은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 저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회고했다는 변론도 존재하나, 저런 발언을 문제의식 없이 공개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는 반론할 여지가 없다.

사학법 개정 저지

이 당시 박근혜랑 같이 사학법 개정 저지에 참여했다. 국가가 감시하고 인력이 지속적으로 교체되는 공립과 달리, 재단 외에 견제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학을 옹호함으로써 학교에서의 성적 압력과 착취가 고발되지 않고 장시간 유지되는데 한 역할을 차지하였다.

독도 언급

2008년, 일본 홋카이도 G8에서 후쿠다가 "일본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표기하겠다."고 하자, 이명박은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발언했다. 이후 청와대에서 "사실무근" 이라며 일축했지만 Hold back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일본 언론을 통해 공개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비판을 받고 있다. [5] [6]

퇴임 이후

2018년 3월 22일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23일 자정 무렵 서울동부구치소로 이송되었다.

비하어

이명박에 대한 비하어로는 쥐박이,2MB 등이 있다. 꼼꼼하게 비리를 저질렀다는 평가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