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경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5일 (일) 03:35
이해경
출생1930년 5월 4일 [1]
서울특별시 종로구
본관전주 이씨
학력경기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음악학과 (졸업) 텍사스 메리 하딘 베일러 여자대학교 음악학 (석사)[2]
경력풍문고등학교 음악 교사 컬럼비아 대학교 동양학도서관 학국학사서·도서관과장
직업교사, 사서, 음악가, 저술가
작위대한민국 황손녀
종교개신교 (침례회)
정보 수정

이해경대한민국 고종 손녀로, 교사이다. 교사, 음악가, 저술가로, 미국 뉴욕 주 뉴욕 시티에 주로 거주하였다.

그녀의 부모는 아버지 의친왕과 생모 김금덕과 적모 덕인당 김수덕이 있었고 직계 친척 관계는 이복 언니 이해원, 이복 남동생 이갑, 이석, 사촌 오빠 이구, 이복 조카 이원 등이 있다.

그녀는 세 살 때부터 생모 김금덕과 떨어져 사동궁에서 의친왕비 김씨와 살았다.

생애

1949년 경기여자고등학교를 나와, 1953년 이화여자대학교음악과를 졸업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야간학반을 다니며 풍문고등학교 [3] 에서 음악교사 생활을 하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 주한미8군사령부 도서관에서 일했으며, 이것이 훗날 사서를 하게 된 계기가 된다.

집안이 몰락해 가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56년 미국으로 유학[4]을 떠났다. 생모인 김금덕은 반대했다. 이때 경기여고 2년 선배 노라노가 싼 값으로 해준 양장을 입고 출국했다고 한다.[5] 텍사스 메리 하딘 베일러 여대에서 성악을 전공하였고 1959년에 이 학교를 음악학 석사 졸업했다. 비록 계속 성악가의 길을 걷지는 않았지만, 1973년 뉴욕 카네기 홀에서 독창회를 가지고, 1985년 테너 이인선 추모음악회로 국내 무대에 선 바 있다.

1969년부터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동양학 도서관 한국학 사서로 일하다, 1996년 과장으로 정년 퇴직했다. 현재 독신으로 뉴욕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현재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자문위원을 역임하고 있다.

기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황실은 문화컨텐츠로만 남아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틀:출처.

흔히들 자신에게 "마지막 공주" 또는 "마지막 옹주"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공주"와 "옹주"는 어디까지나 왕(제후)의 딸을 가리키는 호칭인데 자신에게 이 호칭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거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6][7]

저서

  • 《마지막 황실의 추억》
  • 《나의 아버지 의친왕》

참고 문헌

  • 《주간동아》 1997년 7월 10일자, 〈아버지, 이젠 부르고픈 이름이여〉

각주

  1. “Daum 카페”. 2021년 12월 30일에 확인함. 
  2. “사단법인 대한황실문화원”. 2021년 12월 30일에 확인함. 
  3. 당시 풍문여자고등학교
  4. 마지막 왕녀 이해경씨 경기전 참배, 《연합뉴스》, 1999년 3월 15일 작성, 2011년 3월 16일 확인.
  5. 정순태 (2006년 12월 1일). “[역사 현장 답사] 高宗황제의 손녀 李海瓊 여사, 皇嗣孫 李源씨와 함께한 古宮 산책『황실은 우리 민족의 文化 콘텐츠 중 하나일 뿐이죠』”. 《월간조선》. 
  6. 《TV조선 뉴스쇼 판》 2012년 10월 16일 방영분의 본인 인터뷰에서 밝힘
  7. “고종 손녀 “나는 프린세스가 아니다””. 《시사IN》. 2011년 2월 28일. 2017년 12월 2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