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학당은 1886년 창립된 여성교육기관으로 이화여자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의 전신이다.
법인
학교법인 이화학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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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여성을 가르칠 학교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메리 스크랜턴에게 1886년 5월 31일(양력) 김 부인이라는 여인이 왕비의 통역관이 되고 싶다며 한밤중에 하인을 거느리고 스스로 찾아와 창립되었다.[1][2][3]
위치
정동 32번지[4]
명칭
1887년 2월 중순 고종황제가 외아문에 명하여 이화학당(梨花學堂, 배꽃 학교)이라는 학교명을 적은 현판을 내려주었다.[4][2]
학생
- 김 부인: 첫 번째 학생으로 3개월간 수업을 받았다.
- 꽃님이: 한 엄마가 가난 때문에 딸을 부양할 수 없다며 데려왔다고 하며 10세였다.[1]
- 별단이: 콜레라로 인해 서대문에 버려졌던 4세 아동이었다.[1]
- 조별단: 1986년 6월 말에 찾아왔으며 당시 12세 가량이었다.[3] [5]
- 복순이
- 박에스더: 네 번째 학생.
- 류관순 : 유명하다. 이화여자고등학교 재학 당시 독립 운동을 하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출처
- ↑ 1.0 1.1 1.2 허문명 기자 (2005년 5월 31일). “[책갈피속의 오늘]1886년 이화학당 설립”. 《동아닷컴》. 2018년 1월 15일에 확인함.
- ↑ 2.0 2.1 “창립이념 및 역사”. 《이화여자대학교》. 2018년 1월 15일에 확인함.
- ↑ 3.0 3.1 “이화학당”. 《문학콘텐츠닷컴》. 2018년 1월 15일에 확인함.
- ↑ 4.0 4.1 “선교사 집 안에 있는 이화 학당 학생들”. 《우리역사넷》. 2018년 1월 15일에 확인함.
- ↑ 현재형으로 치면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초등학교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