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4일 (토) 10:09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1985년 8월 12일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오사카 이타미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던 일본항공 국내선의 보잉 747SR-100(등록번호 JA8119기)가 일본 군마 현의 다카마가하라 산에 추락한 사고를 말한다.[주 1]

단일 항공사고로는 사상 최대의 사망자를 낸 사고이다. 일본 운수성 항공사고조사위원회의 사고조사보고서[주 2] 에 의하면, 사망자 수는 승무원과 승객을 합쳐 524명 중 520명(태아 제외)에 달하며, 그 중에는 한국인 6명을 포함, 가수 사카모토 큐, 한신 타이거스 구단 사장 등의 유명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생존자는 4명으로, 그 중 한 명은 일본항공 비번 객실승무원이었다. 또한 이 사고는 일본의 성묘명절인 오본을 앞두고 일어났기 때문에 슬픔이 컸으며, 항공업계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반적으로 ‘일본항공기 추락사고(日航機墜落事故)’나 ‘일본항공 점보기 추락사고(日航ジャンボ機墜落事故)’라고 말하는 경우는 이 사고를 가리키는 일이 많다.

사고 경위

사고 당일 JAL123편의 행적

당시 123편은 18시 정각에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을 이륙, 남서쪽을 향한 후 이즈오지마에서 서쪽으로 순항, 구시모토 상공에서 북서쪽으로 비행하여, 18시 56분에 오사카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사고 기체는 보잉 747인 JA8119이었다.

해당 기체는 이 날 503편과 504편으로 도쿄 ~ 삿포로, 363편과 366편으로 도쿄 ~ 후쿠오카를 왕복하는 정기편으로서 비행하고, 오사카 이타미 국제공항에 도착 후, 130편으로서 이타미발 도쿄행의 최종편을 운항할 예정이었다. 연료는 3시간 15분 정도의 비행이 가능한 정도의 양을 탑재하고 있었다.

승무원은 49세의 기장 타카하마 마사미, 39세의 부기장 사사키 유타카, 46세의 항공기관사 후쿠다 히로시 세 명의 조종사와, 객실 승무원(남성 1명, 여성 11명) 12명 등 총 15명이었고, 승객은 509명(한국인 6명 포함)이었다. 조종석에서는 기장 승격 훈련을 받는 부기장이 기장석에 앉아 조종하고 승무원에게 지시를 하였다. 기장은 부기장석에서 부기장을 지도, 무선 교신 등 부기장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당시 항공 기관사는 2번째로 JA8119에 탑승하였으며, 부기장은 다른 항공기에 탑승한 후 이 기체로 탑승하였고, 기장은 그날 첫 비행이었다.

18시 4분, 524명을 태운 123편은 원래 출발 시간보다 약간 늦게[주 3] 하네다 공항 18번 탑승구를 떠나 18시 12분에 16번 활주로에서 이륙했다.

승무원

사고기인 보잉 747SR-100 123편 JA8119
  • 기장 : 다카하마 마사미(高濱雅己, 49세, 운항부문 지도교수 총 비행시간 12,423 시간). 부조종사 석에서 기장승격 훈련 감독 및 무선통신 등의 부조종사의 업무를 담당.
  • 부조종사 : 사사키 유타카(佐々木祐, 39세, 기장승격 훈련생 총 비행시간 3,963 시간). 기장 석에서 기장 승격 훈련, 승무원의 지시를 담당.
  • 항공 기관사 : 후쿠다 히로시 (福田博, 46세, 엔지니어 부문 강사 총 비행 시간 9,831 시간). 하네다 - 후쿠오카 선 363.366 편에서 계속 JA8119에 승무.
  • 객실 승무원
수석 사무장 : 하타노 쥰 (波多野純, 39세, 총 비행 시간 10,225 시간)
보조 사무장 :

키하라 사치요 (木原 幸代, 30세) 아카다 마리코(赤田 真理子, 31세) 후지타 카오리(藤田 香, 28세) 미야미치 레이코(宮道 令子, 30세) 쓰시마 유미코(対馬 祐三子, 29세) 요시다 마사요(吉田 雅代, 27세) 에비나 미츠요(海老名 光代, 28세)

스튜어디스 :

시라뵤시 유미코(白拍子 由美子, 25세) 오노 미키코(大野 美紀子, 26세) 오노 세이코(大野 聖子, 24세) 하타노 쿄코(波多野 京子 24세)

사고의 발생과 진행

123편 경로

18시 24분(이륙으로부터 12분후), 사가미 만 상공에서 순항 고도 24,000피트(7,200 m)를 향해 상승하던 중, 23,900 ft를 통과하는 순간 갑작스런 폭발음[주 4]과 함께 123편의 꼬리날개는 수직 안정판의 하단부만을 남기고 파괴되어 유압계의 총 4 계통 모두가 완전히 상실되었다. 유압을 사용하는 엘리베이터(승강타)나 에일러론(보조 날개)의 조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휴고이드 운동더치 롤을 일으키며, 기체는 17분간 고도 20,000피트(6,000m) 이상으로 비행을 계속한다.
18시 40분 무렵, 하강을 위해 항력 장치인 랜딩기어를 내린 후, 후지산 동쪽 기슭으로 북상하나, 야마나시현 오츠키시 상공에서 급작스레 오른쪽으로 선회하며 고도 22,000피트에서 6,000피트로 단번에 15,400ft(4,600m)를 하강한다.
그 후, 기체는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을 향하는 항로가 지나가는 사이타마 현 상공에서 왼쪽으로 선회, 군마 현 남서부의 산악 지대로 향하기 시작한다.

객실 내의 상황

기내에서는 폭발음이 들린 직후 각 좌석마다 산소 마스크가 내려오고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또 일부 좌석에서는 바닷가에 빠질 때를 대비해 구명조끼를 착용하기도 했다. 남성 승무원은 전 객실 승무원에게 기내 안내방송으로 산소통의 준비를 지시했다.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기내는 이상 발생 직후부터 추락까지 혼란에 빠지지 않고 전원 침착하게 행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승객들은 충격에 대비하는 충격 방지 자세[주 5]를 취하고 추락에 대비했다. 승객 중에는 죽음을 생각하고 불안정한 기체 안에서 가족에게 유서를 남긴 사람이 여러 명 있었다. 이 유서들은 장주기 운동[주 6]으로 인해 글자들이 이곳저곳으로 삐쳐 있다. 이러한 유서는 후에 사고 현장에서 발견되어 희생자의 비통함을 전했다. 일반적인 추락 사고에서는 문제 발생 후 불과 몇 분 만에 추락에 이르지만, 이 사고는 18시 24분의 이상 발생부터 30분 이상 비행을 계속하여 유서를 쓸 시간이 있었던 보기 드문 사례이다.

지상과의 교신

  • 123편은 18시 24분 47초에 긴급 구난 신호 「스쿽 77(7700)」을 발신하고 신호는 도쿄컨트롤(ACC)에 전해진다. 그 직후, 기장이 무선으로 ACC에게 긴급사태가 발생했으므로 도쿄 국제공항으로 회항한다고 말하자 ACC는 회항을 승인했다. 123편은 이즈오시마로의 레이다 유도를 요구했다. ACC는 좌우 어느 쪽으로의 선회 신호를 보낼까 묻자, 기장은 우회가 되는 오른쪽 선회를 택했다.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은 긴급착륙의 준비에 들어갔다.
  • 27분 ACC가 123편에 긴급사태가 있는지 묻자, 123편으로부터 대답이 돌아왔다. 계속해서 123편에게 어떤 긴급사태인지를 물었지만, 응답은 없었다. 또, ACC는 일본항공 본사에 123편이 긴급 신호를 발신하는 것을 알린다.
  • 28분 ACC는 123편이 동쪽으로 향하도록 지시하지만 123편은 이미 완전한 조종 불능 상태였다. ACC는 이때서야 123편이 완전한 조종 불능에 빠진 것을 알게 된다.
  • 31분 ACC는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보다 가까운 나고야 코마키 공항에 긴급 착륙할 것을 제안하지만 123편은 활주로 길이가 더 긴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 착륙을 희망했다. 통상 항공기와 지상과의 교신은 영어로 하는 것이 원칙이나, 123편 기장의 부담을 생각해 일본어의 사용을 허가했다. 이후 ACC와 123편의 통신 일부는 일본어로 이루어졌다.
  • 33분 일본항공은 컴퍼니 라디오 (사내무선)로 123편과 교신했으며, 35분 경에 123편으로부터 짐칸 문이 파손됐다는 대화가 오갔다. 또, 긴급 강하하고 있었으므로 잠시 후에 호출할 때까지 무선을 주시하도록 요청하자, 일본항공은 승낙했다.
  • 40분 ACC는 123편과 타 항공기와의 교신을 위해 123편 전용의 주파수를 준비해 123편에게 그 주파수로 바꾸도록 요구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 42분 주파수 변경 지시에 응답이 없자, ACC는 반대로 123편을 제외한 전 항공기에 대해서 그 주파수로 변경하도록 요구해 교신은 지시가 있을 때까지 자제하도록 요구했지만, 일부 항공기는 이전 주파수로 교신을 계속했기 때문에 ACC는 교신을 하는 항공기에 대해 개별적으로 계속 교신해야 했다.
  • 45분 교신을 대기하고 있던 주일 미군의 요코타 기지(RAPCON)가 123편의 지원에 나서, 123편에게 미군이 준비한 주파수로 변경하도록 요구했지만 123편에서는 조종 불능이라고만 응답했다. ACC가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 접근 관제소(APP)와 교신할 것을 123편에게 제안하지만, 역시 123편은 거절했다.
  • 47분 123편이 치바의 키사라즈로 레이다 유도를 요구하자 ACC는 동쪽으로 나아가도록 지시한 뒤, 조종 가능한 지 물었지만 123편으로부터 「Uncontrolable」(조종 불능)이라는 대답이 왔다. 그 후, APP의 주파수로 교신 대상을 변경하도록 하자 123편은 승낙했다.
  • 48분 무언으로 기장의 거친 호흡음이 녹음됐다.
  • 49분 일본항공이 컴퍼니 라디오 (사내 전용 무선)로 3분간 호출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 53분 ACC가 123편을 호출했다. 123편은 「조종불능」이라고 응답했다. ACC와 RAPCON이 대답, RAPCON은 요코타 기지가 긴급 착륙의 준비에 들어가 있다고 대답했다.
  • 54분 일본항공도 호출을 실시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123편이 현재위치를 묻자 APP가 하네다로부터 55마일(100km) 북서에, 쿠마가야에서 25마일(45km) 서쪽지점에 있다고 한다.
  • 55분 (이 때만 「일본어로 말씀드립니다.」라고 교신을 한다)APP로부터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과 요코타가 긴급 착륙 준비를 실시하고 있어 언제라도 최우선으로 착륙할 수 있다고 말하자, 기장이 「준비됐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 말이 123편의 최후 교신이 되었다. 그 직후에 APP가 123편에 향후의 의향을 물었지만 응답은 없었다. 그 후에도 56분전까지 APP와 RAPCON이 123편에 대해서 호출을 실시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 57분 RAPCON가 123편에 대해, 「귀기는 요코타의 북서 35마일(65km) 지점에 있고 요코타 기지에 최우선으로 착륙할 수 있다」라고 거듭 교신을 시도하고, ACC도 123편에 대해서 요코타 기지로 주파수를 변경하도록 요구했지만, 이때 이미 123편은 추락한 뒤였다.

추락

조종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23편은 계속 하강하여 18시 56분 14초에 대지 접근 경보 장치(GPWS)가 작동했다.

17초 무렵, 기체는 조금 상승했다. 18시 56분 23초, 기체 후부와 오른쪽 주 날개가 수목과 접촉했다. 이때 기수를 올리기 위해 엔진 출력을 올린 것과 함께 기체가 급강하하면서 속도는 346kt(640km/h)에 도달했다. 이후 기체는 일단 상승했지만,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어졌다.

26초, 오른쪽 주 날개가 지면과 충돌하고 동시에 기체의 파괴가 시작되었다(수직·수평꼬리, 오른쪽 주 날개의 이탈). 28초에는 기체 후부가 분리. 기체는 기수를 내리면서 우측으로 회전했다. 18시 56분 30초, 123편은 타카마가하라산의 경사면에 반전하는 형태로 추락, 충돌했다.

18시 56분 28초까지 녹음됐던 음성 기록장치에는 23초와 26초 무렵에 충격음이 남아 있다. 23초의 충격음 직전에는, 기장의 「이제 안된다(もうだめだ!)」라는 절박한 고함소리도 녹음되어 있다.[주 7]

충격에 의해 기체 앞부분부터 주 날개 부근의 객실은 원형을 알 수 없을 만큼 파괴되었다(후의 조사에 의하면 기체의 대부분은 수백 G의 충격이 더해졌다고 한다). 두 날개도 파괴됐다. 한편, 28초 때 분리된 객실 후부와 뒷날개는 산의 능선을 넘어 경사면을 스치고 지나갔다. 객실 후부는 능선과의 충돌을 면하고, 경사면에 평행에 가까운 각도로 착지해 수목을 쓰러뜨리면서 능선의 경사면과 접촉하여 천천히 감속했다. 이 때문에 다른 부위에 비해 충격을 덜 받았다. 또, 화재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 덕분에 객실 후부의 좌석에 앉아 있던 여성 4명은 기적적으로 생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외의 사람은 즉사 혹은 거기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중상을 입은 생존자 중 상당수가 이튿날 아침에 수색대가 도착하기 전 사망했다.

원인

추락한 항공기는 사고 7년 전 1978년 6월 2일 오사카 이타미 국제공항에 착륙 중 테일스트라이크로 후미의 손상을 입어 제작사인 보잉에 정비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벌크 헤드는 비행기의 기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데(알루미늄캔의 바닥을 생각하면 된다.) 당시 격벽이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일본항공에서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을 입었다.

당시 보잉의 기술자는 이를 수리할 때 2줄의 리벳이 박힌 이중 철판으로 동체와 고정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지만 이를 1줄의 리벳이 박힌 이중 철판만으로 고정했다. 그 결과 계속된 비행으로 압력이 변할 때 금속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터져 나가 수직 꼬리 날개를 날리면서[주 8] 방향 타면을 움직이는 동력을 제공하는 유압의 분배기인 토크 박스를 터트려 서서히 유압이 새어 나가면서 조종 능력을 상실한 비행기는 추락하고 만다.

또한 테일스트라이크로 인한 동체의 변형이 수리 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어 사고 직전까지 캐빈 뒤쪽의 화장실 문이 잘 닫히지 않는다던지, 바람이 새어 들어오든지 휘파람 소리가 난다던지 등의 결함이 있었다.

이후 테일스트라이크 부분의 정비 부실로 2002년 중화항공에서 여객기가 공중분해된 사건이 일어난다.

사고 결과

이 사건으로 일본항공 업계는 큰 손실을 입게 되었고 일본 측에서 사고 원인 조사 이후 보잉사에 형사 고발을 했으나 기각되고 말았다. 또한 일본 국내선 수요는 25%나 감소 했으며 대부분의 승객이 전일본공수로 갈아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항공은 기업경영에 타격을 입게된다. 일본항공은 피해자 측에게 배상하는 동시에,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사임 또는 해고되었고, 7년 전 사고기의 기장과 정비 총담당자는 자살하였다. 또한 보잉사의 정비불량은 사실이었지만, 일본항공보잉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소문에 한동안 시달렸다.

미디어

TBS에서 2015년 8월 12일 오후 7시 해당 사고의 30주기를 맞아 "8.12 일본항공 점보기 추락사고 30주년의 진상"을 방송하였다.

참고 자료

링크

부연설명

  1. 추락 지점은 오스타카 산 바로 남쪽의 다카마가하라 산에 있는 이름 없는 산등성이이다. 후에 이곳은 우에노 촌의 촌장이었던 구로자와 마사오에 의해 ‘오스타카의 산등성이’라고 명명되었으나, 실제 오스타카에 속하는 산등성이는 아니다.
  2. http://araic.assistmicro.co.jp/araic/aircraft/download/bunkatsu.html#5
  3. 자료에 따르면 지연은 4분이었다. 각 항공사는 15분 이상의 지연을 처음으로 ‘지연’이라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123편은 일단 ‘정각’에 이륙한 것이 된다.
  4. 조사 결과 기내 뒷부분과 꼬리날개의 수직 안정판 사이의 벌크헤드가 기압차를 이기지 못하고 금이 감과 동시에 칸막이 너머로 유입된 산소가 수직 안정판을 파괴. 폭발음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5. 앞자리에 두 손을 깍지쥐고 머리 부분을 안는 자세
  6. 기체가 통제불능 상태에서 기수가 올라가며 상승했다가 기수가 내려가며 하강하는 것을 반복하는 현상
  7. 사고 이후 CVR의 녹음 내용이 활자로 공표되었을 때, 이 부분은 판독 불능으로 되어 있었지만 저렇게 들린다는 것이 통설이다.
  8. 비행기의 조종 안정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