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론

최근 편집: 2023년 1월 6일 (금) 19:18

일원론(一元論, 영어: Monism)은 모든 존재자(存在者)를 단 하나의 존재 또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인식론적 관점이다.

일원론과 관련된 모든 담론은 여러 가지 철학적 입장과 겹쳐진 상태로 존재한다. 가령, 단 하나의 물질이 존재할 뿐이며, 모든 존재는 이 물질의 배열에 불과하다는 원자론의 입장부터, 그 물질조차 단 하나의 일자(一者)가 만들어낸 파생물이라는 입장[1]까지 다양하다.

고대부터 근대의 철학사에서 일원론은 선차성(priority)의 측면[2], 실존(existence)의 측면[3], 소재(substance)의 측면[4]에서 다뤄졌다. 현대 심리철학에서 일원론은 이중측면론(Double-aspect theory)에서 다루는 담론이며, 매우 중요한 입장 중 하나로 소개된다.

용어

일원론(Monismus)이라는 용어는 18세기 독일의 철학자인 크리스티안 볼프가 고안하였다. 영(靈)과 육(肉)을 구별하지 않고, 이것을 모두 하나의 개념을 통해 통섭하려는 학자를 묘사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저서 『논리』(Logik)에서 일원론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다.[5]

담론

일원론의 담론은 선차성, 실체, 소재의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선차성

선차성 담론은 모든 존재자를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또는 존재의 근원에서 “제1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고대의 일원론자인 피타고라스는 모든 존재자의 근원을 수(數)라고 하였으며, 그 수를 통해 이루어진 모든 논리 구조를 대우주(makrokosmos)라고 하였다. 피타고라스는 모든 존재자가 수의 완성된 배열 또는 완성되어지고 있는 배열 과정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즉, 모든 존재의 선차는 수라고 본 것이다.

후기 플라톤주의자인 플로티노스는 만물이 일자(tohen)로부터 파생된 것이라고 봤다. 즉, 플로티노스 입장에서는 만물의 근원, 그것의 선차가 일자이다.

선차성 담론은 존재하는 것, 사물의 존재 근거에서 제1원인을 규명하려는 시도였다.

실존

실존 담론은 존재의 양식에 대한 담론이다. 하나의 세계의 실존을 사고할 때, 그것은 단일한 존재의 존재 양식으로부터 규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스토아 학파 사상가인 키티온의 제논은 세계가 이성(logos)으로 구성되었다고 봤다. 피타고라스는 세계가 곧 대우주이며 배열되는 수라고 봤다. 마르크스는 세계의 존재 양식이 물질의 운동과 일체라고 봤으며, 물질 운동은 물질의 가장 고유한 존재 양식인 모순에 의한 결과라고 봤다.

이렇게 일원론자는 단 하나의 물질, 존재 또는 그것의 자기운동을 통해 세계의 존재 양식을 규정하려고 한다.

소재

소재 담론은 세계가 어떠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논의이며, 일원론에서 가장 기초가 된 논의이다.

탈레스는 세계를 이루는 근본 소재를 물이라고 하였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불,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하였다.

고대의 유물론자인 데모크리토스는 세계가 원자(atom)의 배열로 이루어져 있다고 봤으며, 원자는 절대 쪼개지지 않는 부동의 고체라고 봤다. 플라톤에게 영향을 준 파르메니데스 또한 세계가 절대 쪼개지지 않은 구(球)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다.

고대가 말기로 접어들자 점점 철학자들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입자를 통해 소재를 파악하려고 하기보단, 추상적인 관념을 통해서 소재를 파악하려고 했다.

이원론

일원론이 사상사에서 항상 이원론과 대척점에 선 것은 아니었지만, 몇몇의 단면에서 이원론과 대립한 적이 상당히 많았다.

베단타 학파의 영수 중 한 명이었던 인도의 철학자 아디 샹카라(Adi Shankara)는 당대의 이원론에 대항하였다. 그의 저서 『브라흐마수트라』는 현재까지 인도 힌두 철학에서 일원론의 최고 권위 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6] 마찬가지로 근대 서구의 철학자인 바뤼흐 스피노자는 데카르트학파의 이원론을 비판하였다.

비판

일원론은 기본적으로 모든 현상과 존재자의 존재 양식을 단 하나의 존재와 개념을 통해 설명하려고 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다원주의를 반대하는데, 이러한 입장에 기초한 사회 운동이 교조적으로 나아갈 경우 전체주의로 변질할 위험이 크다.

자유주의 철학자인 이사야 벌린은 일원론을 통해 사회의 전체주의를 이룬 대표적인 이념이 마르크스주의라고 지적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현상을 물질의 자기운동, 그리고 그 자기운동의 근거인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역사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 국가들이 모두 전체주의적 요소를 지니게 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7]

한편, 버트런드 러셀은 일원론이 교조주의와 극단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설명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일원론자들이야말로 부조리한 세상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봤다. 러셀은 일원론자들의 투쟁이 사회가 공공선(公共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대한 변화를 추동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혼란과 파괴도 가져올 수 있다고 봤다.

페미니즘과 일원론

페미니즘에서 일원론 담론을 받아들인 학자로는 대표적으로 매리 댈리가 있으며, 사회주의 페미니즘도 일원론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다. 보통 일원론을 받아들인 페미니즘은 젠더 이론에 반대하며, 여성성과 남성성이 불완전한 인간성의 한 단면일 뿐이라고 주장하거나, 감각적 오해에서 비롯된 인습, 전통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론적 차원에서 미시적인 관점보다는 거시적인 관점을 선호한다.

각주

  1. 신피타고라스주의, 신플라톤주의 등이 이에 해당한다.
  2. Brugger, Walter (ed) (1972), Diccionario de Filosofía, Barcelona: Herder, art. dualismo, monismo, pluralismo
  3. Strawson, G. (2014 in press): "Nietzsche's metaphysics?". In: Dries, M. & Kail, P. (eds): "Nietzsche on Mind and Nature". Oxford University Press. PDF of draft
  4. Cross, F.L.; Livingstone, E.A. (1974),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OUP, art. monism
  5. "monism", Columbia Electronic Encyclopedia, 6th Edition. Retrieved 29 October 2014.
  6. Wilhelm Halbfass (1995), Philology and Confrontation: Paul Hacker on Traditional and Modern Vedant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ISBN 978-0791425824, pages 137–143
  7. 이사야 벌린. 헨리 하디 (2001년). 박동천. 2014년.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아카넷. pp. 349-350, 355-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