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적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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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란 오로지 사실에 대한 명제(무엇이 어떠하다, 무엇이 존재한다 등)만을 근거로 도덕적 가치 판단에 대한 명제(무엇이 옳다, 무엇이 좋다)을 이끌어내는 논리적 오류를 이른다.

예를 들어 "육아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해왔다"라는 사실 명제로부터 "(그러므로) 육아는 여성이 해야한다"라는 가치 판단을 이끌어내는 시도는 전형적인 자연주의적 오류이다. 특히 "육아를 전통적으로 여성이 해왔다"라는 사실 명제가 참인 명제이건 거짓인 명제이건 전체 논증은 오류라는 점이 중요하다.

1 정의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용어는 도덕철학G. E. 무어윤리학원론(Principia Ethica)에서 소개하였다. 무어에 의하면 "좋다", "옳다" 등 윤리적 속성은 "파란색이다", "무겁다" 등의 자연적 속성과 별개이며 자연적 속성의 조합을 통해 윤리적 속성을 기술할 수 없다. 무어가 말하는 자연주의적 오류란 바로 자연적 속성의 조합으로 윤리적 속성을 정의하려는 시도를 이르는 말이다.[1]

다만 현대의 여러 논의, 특히 진화심리학과 관련한 문헌들에서 말하는 자연주의적 오류란 무어가 정의한 의미보다는 철학자 데이비드 흄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A Treatise of Human Nature)에서 다루고 있는 존재-당위 문제(is-ought problem)에 가깝다.[2] 흄에 의하면 오로지 그러하다/존재한다(is) 또는 그렇지 않다/존재하지 않는다(is not) 등의 사실 명제만으로부터 그러해야한다/마땅하다(ought) 또는 그러해서는 안된다/마땅치 않다(ought not) 등의 가치 명제를 도출해내서는 안된다.[3] 존재-당위 문제는 종종 흄의 법칙(Hume's law) 또는 흄의 길로틴(Hume's guillotine) 등으로도 불린다.

이 밖에도 여러가지 유사한 논리적 오류들이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4]

  1. 존재(is)로부터 당위(ought)를 도출하기 (흄)
  2. 사실(fact)로부터 가치(value)를 도출하기
  3. 자연적 속성으로부터 좋음(good)을 설명하기 (무어)
  4. 좋음(good)이 자연적 속성이라는 주장
  5. 진화의 방향을 따르자는 주장
  6. 자연스러운 것(natural)은 좋은 것(good)이라는 주장
  7. 지금 존재하는 것은 앞으로도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
  8. 설명(explanation)을 정당화(justification)로 오해하기

이 문서에서는 주로 흄이 주장한 "존재로부터 당위를 도출하는 오류"에 대해 설명한다.

2 사례

2.1 여성 비하 및 차별의 정당화

여성 비하 또는 각종 차별을 정당화하는 맥락에서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는 사례가 많다.

모유는 여자에게서 나온다. 모유 수유를 하느라 6개월 휴직을 하면 노동 효율이 떨어진다. 그래서 임금도 낮은거다. 이건 당연한거다.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익명의 글 일부를 요약 발췌함

많은 오류가 담겨 있지만 우선 이 중 자연주의적 오류와 관련된 부분만 살펴보자. 위 인용의 논리 구조는 아래와 같다.

  • 전제1: 모유는 여자에게서만 나온다 (사실명제)
  • 전제2: 모유 수유를 하면 노동 효율이 떨어진다 (사실명제)
  • 결론: 여성의 임금이 남성에 비해 낮은 것은 당연하다 (가치명제)

사실 명제만을 전제로 나열한 후 가치명제를 결론으로 도출하고 있으므로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한 논증이다. 오류에서 벗어나려면 전제 부분에 한 개 또는 그 이상의 가치 명제를 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위 인용문에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가치 명제가 숨어 있을 것이다.

  • 전제1: 모유는 여자에게서만 나온다 (사실명제)
  • 전제2: 모유수유를 하면 노동 효율이 떨어진다 (사실명제)
  • 전제3: 어떠한 이유에서건 노동 효율이 떨어지면 낮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숨은 가치명제)
  • 결론: 여성의 임금은 남성에 비에 낮은 것은 당연하다 (가치명제)

전제 부분에 숨어 있던 암묵적 가치명제를 드러내면 자연주의적 오류를 피할 수 있으나, 그 순간 위 주장의 폭력성이 명백히 드러난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어떠한 이유에서건 노동 효율이 떨어지면 낮은 임금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가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며 여성 비하 또는 차별을 정당화하는 대부분의 주장에는 숨어있는 가치 명제가 담겨 있으며 그 암묵적 가치 명제가 잘못된 결론의 원인인 경우가 많다. 이 가치 명제를 명시적으로 드러내면 주장을 쉽게 논박할 수 있다.

참고로 자연주의적 오류와 별개로 위 주장은 다음과 같은 오류 또는 검증되지 않은 가정을 담고 있다.

  • 모유 수유를 하면 노동 효율이 떨어질 것이다 (즉, 전제2인 사실명제가 참인 사실인지에 대한 근거가 필요하다)
  • 육아에 있어서 모유 수유는 필수 불가결하다
  • 모유가 여자에게서만 나오기 때문에 남자는 모유 수유와 관련하여 도울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 모유 수유 이외의 육아 관련 노동은 그 비중이 매우 낮거나,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 여남 간 임금 차이의 상당 부분은 육아로 인한 노동 효율 차이에서 기인할 것이다.

2.2 성적 지향성

동성애 비판자들은 종종 동성애가 "자연을 거스른다"고 주장하며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 반대한다고 말한다. 이는 두 가지 의미에서 잘못되었다.

첫째, 동성애는 보노보 침팬지 등 인간 외의 종에서도 발견되는 행동이므로 엄밀히 말해서 자연을 거스른다고 말할 수 없다. 둘째, 다른 종에서 동성애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고 가정을 하더라도 "자연이 어떠하다"라는 사실 명제만로부터 "동성애는 잘못되었다"라는 가치 명제를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에 이 주장은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2.3 우생학

나치우생학사회 다윈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은 바 있는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회 다윈주의는 자연주의적 오류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이다.

사회 다윈주의는 진화를 살펴봄으로써 무엇이 옳은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스펜서의 가정 - "좋음"은 "진화적 성공"으로 요약할 수 있다 - 에 기반한다. Social Darwinism is based on Spencer's assumption that we can look to evolution to discover what is right - that "good" can be boiled down to "evolutionarily successful." --스티븐 핑커빈 서판 중에서 발췌[5]

현대 진화생물학에서 진화적 성공이란 단순히 집단 내 개체군의 유전자 빈도 증가를 뜻하며 도덕 또는 윤리적 의미에서의 "좋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따라서 스팬서는 사실에 대한 기술로부터 사회가 추구할 방향에 대한 당위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3 오해

3.1 사실 명제에 대한 오해

논리학에서 사실 명제란 사실인 명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명제를 뜻한다. 따라서 사실 명제는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코끼리는 코가 세 개이다"라는 명제는 잘못된 사실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나 그래도 사실에 대해 말하고 있으므로 사실 명제이다. 단 거짓인 사실 명제일 뿐이다. 자연주의적 오류를 평가하는 맥락에서 중요한 것은 전제로 쓰인 사실 명제의 참/거짓 여부가 아니다. 전제의 사실 명제가 모두 참이라고 하더라도 오로지 사실 명제만 전제로 하여 가치 명제를 유도하는 결론이 내려지면 자연주의적 오류이다.

3.2 "사실 명제로부터 가치명제를 유도"

많은 사람들이 자연주의적 오류를 "사실 명제로부터 가치 명제를 유도하는 오류"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완전하지 않다. 가치 명제를 유도하기 위해 사실 명제가 근거로 쓰이는 것은 정당하다. 다만 오로지 사실 명제만을 쓰는 경우가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전문적인 저술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2]

3.3 페미니즘 이론가들의 오해

페미니스트들의 과학 비판, 특히 진화심리학 연구에 대한 비판 중 일부는 연구자들이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에서 기인한다.

페미니스트이자 사회학자인 힐러리 로즈강간진화적 적응일 수 있다는 진화심리학적 가설(강간의 자연사 참고)에 대하여 "남성이 자연적으로 강간을 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은 여성혐오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6] 하지만 남성들에게 생물학적으로 그러한 경향이 있다는 가설이 참으로 밝혀지건 참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건 적응에 대한 가설은 그 자체만으로 강간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로 쓰일 수 없으며, 잘 알려진 진화심리학 논문, 교과서, 대중서 중 어디에서도 정당화의 방편으로 강간에 대한 가설을 기술하고 있지 않다.

힐러리 로즈는 진화심리학자들이 아래와 같은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 전제: 남성의 여성 강간은 진화적 적응이다 (사실 명제)
  • 결론: 남성의 여성 강간은 정당하다 (가치 명제)

하지만 위 주장이 오류가 아니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숨은 전제가 가정되어야 한다.

  • 전제1: 남성의 여성 강간은 진화적 적응이다 (사실 명제)
  • 전제2: 어떠한 행동이 진화적 적응이라면 그 행동은 정당한 것이다 (숨은 가치 명제)
  • 결론: 남성의 여성 강간은 정당하다 (가치 명제)

힐러리 로즈는 사실 명제인 전제1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자동적으로 전제2를 함축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제2는 자연주의적 오류이며 최소한의 소양을 갖춘 진화심리학자라면 이처럼 기초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7]

강간이 진화적 적응이건 아니건 강간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가치 명제는 변하지 않는다. 숨은 가치 명제를 올바르게 드러내면, 동일한 사실 명제로부터도 전혀 다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 전제1: 남성의 여성 강간은 진화적 적응이다 (사실 명제)
  • 전제2: 강간은 나쁜 것이다 (가치 명제)
  • 결론: 남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간 예방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가치 명제)

어떠한 가치 명제들이 전제에 담기느냐에 따라 동일한 사실로부터 완전히 다른 결론을 얻어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실 명제 자체 보다는 전제에 숨어 있는 가치 명제가 무엇인지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암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이 암 발병을 장려하거나 암을 정당화하기 위해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진화심리학자들이 강간에 대해 연구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강간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강간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단을 찾기 위한 것이다.

3.4 한국 진화론 '전문가'들의 상습적 실수

참고더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다면 최재천#상습적인 자연주의적 오류 문서를 살펴 보세요.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인 최재천 교수는 전중환, 장대익 등과 함께 한국에 몇 안되는 진화생물학 전문가로 꼽힌다. 덕분에 대중 강연 및 대중서 저술에 활발한데, 아쉽게도 상습적으로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곤 한다.

4 참조

  1. George Edward Moore (2004). Principia Ethica. Courier Corporation. ISBN 978-0-486-43752-1. 
  2. 2.0 2.1 Wilson, David Sloan; Dietrich, Eric; Clark, Anne B. (2003). "On the inappropriate use of the naturalistic fallacy in evolutionary psychology". Biology and Philosophy 18 (5): 669–681. ISSN 0169-3867. doi:10.1023/A:1026380825208. 
  3. David Hume (August 2008). A Treatise of Human Nature. BiblioBazaar. ISBN 978-0-554-31403-7. 
  4. Curry, O. (2006). "Who's Afraid of the Naturalistic Fallacy?". Evolutionary Psychology 4 (1). ISSN 1474-7049. doi:10.1177/147470490600400120. 
  5. Steven Pinker (26 August 2003). The Blank Slate: The Modern Denial of Human Nature. Penguin Publishing Group. ISBN 978-1-101-20032-2. 
  6. Hilary Rose; Steven Rose (15 December 2010).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Random House. ISBN 978-1-4464-1217-6. 
  7. Griet Vandermassen (10 February 2005). Who's Afraid of Charles Darwin?: Debating Feminism and Evolutionary Theory.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ISBN 978-1-4616-47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