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옥주

최근 편집: 2022년 12월 29일 (목) 15:00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우리 형제자매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집에서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도청으로 나오셔서 우리 형제자매들을 살려주십시오.

전옥주1980년 5월 19일 밤부터 5월 20일 새벽까지 금남로에서 전남도청 앞까지 소형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계엄군의 진압상황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가두방송을 하였다. 이 방송은 본격적인 5·18 민주화운동의 시작에 큰 역할을 하였다. 본명은 전춘심이다.

1949년 보성에서 태어났다. 32살이 되던 해 친구를 만나러 광주에 방문했을 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목격했다. 5월 19일 오후 11시께 첫 가두방송을 시작했다.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발포를 앞두고 시민대표 3명 중 한 명으로서 전남지사와 만나 계엄군 철수를 요청했다. '옥주'라는 이름은 이때 만든 예명이다. 5월 22일 간첩 누명을 쓰고 중앙정보부에 잡혀 15년형을 선고 받고 1년 옥살이를 하다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1988년 국회 청문회 광주특위 증인으로 출석해 2시간 30분 동안 증언했다. 2021년 2월 16일 급성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

출처

  1. 김성희 기자 (2021년 2월 17일). "광주시민 여러분···" 5·18 가두방송 전옥주씨 별세”. 《무등일보》.